漢棠邑侯陳嬰之母也
注+① 棠漢表作堂, 嬰蓋堂邑人爲東陽令史. 其母播旌人也. 播旌東陽堂邑, 俱屬臨淮郡.注+② 【校注】 史記項羽紀集解張晏曰 “陳嬰母潘旌人, 墓在潘旌.”라 始
에 嬰爲東陽令史
하여 라
秦二世之時에 東陽少年殺縣令하고 相聚數千人하여 欲立長帥하되 未有所用하여 乃請陳嬰이라
嬰謝不能한대 遂強立之하고 縣中從之得二萬人일새 欲立嬰爲王이라
我爲子家婦
하여 聞先故不甚貴
注+① 【校注】 故, 史記作古.하니 今暴得大名
은 不祥
이라 不如以兵有所屬
하니 事成猶得封侯
요 敗則易以亡
이니 可無爲人所指名也
라
하여 以兵屬項梁
한대 梁以爲上柱國
이라 後項氏敗
에 嬰歸漢
하여 以功封棠邑侯
라
君子曰 嬰母知天命
하고 又能守先故之業
注+① 先故, 猶先古也. 言能守其先世舊故之業.하여 流祚後世
하니 謀慮深矣
로다 詩曰 貽厥孫謀
注+② 貽, 毛詩作詒.하여 以燕翼子
라하니 此之謂也
라
한漢나라
후侯 진영陳嬰의 어머니이다.
注+① ‘당棠’은 ≪한서漢書≫ 〈공신표功臣表〉에 ‘당堂’으로 되어 있으니, 아마 진영陳嬰은 당읍堂邑 사람으로 동양현東陽縣 영사令史가 되었을 것이다. 그 어머니는 파정播旌 사람이다. 파정播旌과 동양東陽과 당읍堂邑은 모두 임회군臨淮郡에 속한다.注+② 【교주校注】 ≪사기집해史記集解≫ 〈항우본기項羽本紀〉에 장안張晏이 말하기를 “진영陳嬰의 어머니는 반정潘旌 사람으로, 묘가 반정潘旌에 있다.”라고 하였다. 처음에 진영이
의
가 되어 그 현에 거처하면서 평소
신실信實하고
근신謹愼하여
충후忠厚한
장자長者라 일컬어졌다.
가
제위帝位에 있을 때 동양현의
소년少年이
현령縣令을 죽이고 수천 명을 모아
수령首領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적합한 사람이 없어 이에 진영에게 청하였다.
진영이 능력이 없다고 사양하였는데 결국 억지로 진영을 수령으로 세우고, 현에서 따르는 자 2만 명을 얻게 되자 진영을 옹립하여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
“내 너의 집안의 며느리가 된 이후로 들어보니 너의 집 선대에 크게
현귀顯貴하게 된 분이 없었다.
注+① 【교주校注】 ‘고故’는 ≪사기史記≫에 ‘고古’로 되어 있다. 지금 갑자기 큰 이름을 얻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 병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만 못하다. 일이 이루어지면 오히려
후侯에 봉해질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화를 면하기 쉬울 것이니, 사람들에게 지목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영지모陳嬰之母
진영이 어머니의 말을 따라 병사를
에게 맡겼는데, 항량이 진영을
으로 삼았다. 뒤에 항씨가 패하자 진영은
한조漢朝에
귀부歸附하여
공功으로
당읍후棠邑侯에 봉해졌다.
군자君子가 말하기를 “진영의 어머니는
천명天命을 알고, 또 능히 선대의
구업舊業을 지켜
注+① ‘선고先故’는 ‘선고先古’와 같으니, 능히 선세先世의 구업舊業을 지킴을 말한다. 그
복록福祿을 후세에까지 전해지게 하였으니, 계책과 사려가 깊었다.”라고 하였다.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