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靈吳女者는 號孟姚니 吳廣之女요 趙武靈王之后也라 初에 武靈王娶韓王女爲夫人하여 生子章하니 立以爲后하고 章爲太子라
王嘗夢見處女鼓瑟而歌曰
注+① 瑟, 史記作琴. 美人熒熒兮
여 顔若苕之榮
注+② 苕, 卽凌霄也. 榮, 華也. 史記集解綦母邃曰 “陵苕之草, 其華紫.”이로다 命兮命兮
注+③ 兮, 史記作乎.여 逢天時而生
注+④ 史記無此句. 集解綦母邃曰“言有命祿, 生遇其時”, 卽此句之注也.이언마는 曾莫我嬴嬴
注+⑤ 莫, 史記作無, 嬴字不作重文. 集解綦母邃曰 “人莫知己貴盛盈端也. 今按嬴嬴, 猶盈盈也, 亦與熒熒聲義同, 皆言其容體輕麗也.”이로다
異日에 王飮酒樂일새 數言所夢하여 想見其人이라 吳廣聞之하고 乃因后而入其女孟姚하니 甚有色焉이라 王愛幸之하여 不能離라 數年에 生子何라
孟姚數微言后有淫意하고 太子無慈孝之行하니 王乃廢后與太子하고 而立孟姚爲惠后하고 以何爲王하니 是爲惠文王이라 武靈王自號主父라하고 封章於代하여 號安陽君이라
四年
에 朝群臣
하니 安陽君來朝
어늘 主父從旁觀窺群臣宗室
注+① 【校注】 史記下有之禮二字.이라가 見章儽然也
注+② 【校注】 儽, 史記作傫.하여 反臣於弟
하고 心憐之
라
是時에 惠后死久恩衰라 乃欲分趙而王章於代라가 計未決而輟이라
主父
沙
宮
注+① 【校注】 史記正義云 “沙丘宮在邢州平鄕縣東北二十里.”이어늘 章以其徒作亂
하니 李兌乃起四邑之兵擊章
이라 章走主父
하니 主父閉之
注+② 閉, 史記作開, 言開門納之也. 本亦作閉, 謂閉藏之也. 二義俱通.한대 兌因圍主父宮
이라
旣殺章
하고 乃相與謀曰 以章圍主父
로되 卽解兵
이면 吾屬夷矣
리라하고 乃遂圍主父
라 主父欲出不得
하고 又不得食
하여 乃探雀鷇而食之
注+③ 史記索隱引曹大家注云 “鷇, 雀子也. 生受哺者, 謂之鷇.”러니 三月餘
에 遂餓死沙邱宮
이라
詩曰 流言以對하나니 寇攘式內라하니 言不善之從內出也라
조趙 무령왕武寧王의
오녀吳女는
호號가
맹요孟姚이니,
의 딸이요 조 무령왕의 왕후이다. 처음에 무령왕이
한韓나라 왕의 딸을 맞이하여 부인으로 삼아 아들
장章을 낳으니, 부인을 세워 왕후로 삼고
장章을
태자太子로 삼았다.
왕이 일찍이 꿈에서 처녀가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는 것을 보았다. 그 노래에
注+① ‘슬瑟’은 ≪사기史記≫에는 ‘금琴’으로 되어 있다. “환하고 아름다운 미인이여, 얼굴이 능소화 같도다.
注+② 초苕는 바로 릉소凌霄이다. 영榮은 꽃이다. ≪사기집해史記集解≫에 기모수綦母邃가 말하기를 “능초陵苕의 화초는 그 꽃이 자색紫色이다.”라고 하였다. 운명이여! 운명이여!
注+③ ‘혜兮’는 ≪사기≫에는 ‘호乎’로 되어 있다. 천시天時를 만나 태어났건만,
注+④ ≪사기≫에는 이 구절이 없다. ≪사기집해≫에 기모수가 말하기를 “운수가 있으니 태어남이 그 때를 만난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으니, 바로 이 구절에 대한 주注이다. 나의 아름다움 알아주는 이 없도다.”
注+⑤ ‘막莫’은 ≪사기≫에는 ‘무無’로 되어 있고, ‘영嬴’자는 중첩된 글로 되어 있지 않다. ≪사기집해≫에 기모수가 말하기를 “자신의 고귀하고 아름다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지금 살펴보건대 ‘영영嬴嬴’은 ‘영영盈盈’과 같고, 또한 ‘형형熒熒’과 독음과 의미가 같으니, 모두 그 용모와 몸매가 날씬하고 아름다움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다른 날 왕이 술을 마시며 즐길 적에 꿈에 본 처녀를 여러 번 말하면서 만나고 싶어 하였다. 오광이 이 말을 듣고 왕후王后를 통해서 자신의 딸 맹요를 왕에게 들여보냈는데 맹요가 매우 아름다운지라 왕이 총애하여 곁을 떠나지 못하였다. 몇 년이 지난 뒤에 맹요가 아들 하何를 낳았다.
맹요가 여러 차례 왕에게 왕후는 음란한 마음을 품고 있고 태자는 부모를 사랑하고 효도하는 행실이 없다고 넌지시 말하였다. 왕이 이에 왕후와 태자를
폐위廢位하고 맹요를 세워
혜후惠后로 삼고
하何를 왕으로 삼으니 이가 바로
혜문왕惠文王이다. 무령왕은
주부主父라
자호自號하고
장章을
땅에
봉封하여
안양군安陽君이라 불렀다.
4년이 지난 뒤에
혜문왕惠文王이 신하들을 조회하였는데
안양군安陽君도 와서 조회하였다.
주부主父가 곁에서 신하들과 종실 귀족들을 엿보다가
注+① 【교주校注】 ≪사기史記≫에는 이 아래에 ‘지례之禮’ 두 자가 있다. 장章이 고개를 숙이고 기가 죽은 채
注+② 【교주校注】 ‘래儽’는 ≪사기≫에는 ‘뇌傫’로 되어 있다. 도리어 아우에게 신하 노릇 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가련히 여겼다.
이때는 혜후惠后가 죽은 지 오래되어 은총도 쇠하였는지라 이에 주부主父가 조趙나라를 나누어 장章을 대代의 왕으로 세우고자 하다가 계획이 결정되기 전에 중지되었다.
주부主父가
에 가서 지냈는데
注+① 【교주校注】 ≪사기정의史記正義≫에 이르기를 “사구궁沙丘宮은 형주邢州 평향현平鄕縣 동북東北쪽 20리 지점에 있다.” 하였다. 장章이 그의 무리를 거느리고 난을 일으키니
가 이에 네
읍邑의 병사를 일으켜 장을 공격하였다. 장이 주부에게 달아나니 주부가 궁문을 닫아걸고 장을 숨겨 주었는데,
注+② ‘폐閉’는 ≪사기≫에는 ‘개開’로 되어 있으니, 문을 열어 들어오게 함을 말한다. 일본一本에 또한 ‘폐閉’로 되어 있으니, 문을 닫아걸어 숨겨 줌을 이른다. 두 가지 뜻이 모두 통한다. 이태가 주부의
궁宮을 포위하였다.
이태가 이미 장을 죽이고 부하들과 모의하기를 “장을 토벌하기 위해 주부를 포위하였지만 병사를 해산하면 우리들은 주륙당할 것이다.” 하고, 이에 드디어 주부를 포위하였다. 주부가 나가려고 하여도 나갈 수 없고, 또 먹을 것도 구할 수 없어서 참새 새끼를 잡아먹으며 연명하더니
注+③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조대가曹大家의 주注를 인용하여 이르기를 “구鷇는 참새 새끼이다. 태어나서 먹이를 받아먹는 것을 ‘구鷇’라 이른다.” 하였다. 3개월 남짓 만에 드디어 사구궁에서 굶어 죽었다.
≪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라고 하였으니,
불선不善이 안으로부터 나옴을 말한 것이다.
신령하게 조趙나라 무령왕武靈王과 감오感悟하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