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揚子法言(1)

양자법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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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법언(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1. 或問經之艱易 注+或問經之艱易:光曰 “易, 移豉切.”한대 曰 存亡이니라
혹자가 경전經典 공부의 어려움과 쉬움에 대해서 물으니注+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반절反切이다.”, 양자揚子가 말하였다. “〈경전經典 공부의 어려움과 쉬움은〉 경문經文이 남아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或人不諭한대 曰 其存則易 注+其(人)[文]存則易:咸曰 “請益可了, 故易.” ○祕曰 “若孔子在, 三千之徒, 竝授其義.”하고 亡則艱 注+亡則艱:咸曰 “思益各異故艱.” ○祕曰 “若七十子喪而大義乖.” ○光曰 “人當作文, 字之誤也. 秦火之餘, 六經殘缺, 雖聖賢治之, 亦未易悉通.”이라
혹자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자, 양자揚子가 말하였다. “경문經文이 남아 있으면 쉽고注+송함宋咸이 말하였다. “더 배우기를 청하여 마칠 수 있기 때문에 쉽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만약 공자孔子가 살아 계신다면 3천 명의 문도가 모두 그 를 전수받았을 것이다.”, 경문經文이 없으면 어렵다.注+송함宋咸이 말하였다. “생각이 더욱 각각 다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공문孔門의〉 70제자가 죽은 뒤로 〈제경諸經의〉 대의大義가 어긋난 것과 같은 것이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은 마땅히 ‘’이 되어야 하니, 글자가 잘못된 것이다. 나라의 분서갱유를 겪은 뒤에 육경六經잔결殘缺되었으니, 비록 성현聖賢이 연구한다 하더라도 다 통달하기가 쉽지 않다.”
之於樂也 其庶矣乎 注+延陵季子之於樂也 其庶矣乎:祕曰 “春秋襄二十九年, 吳公子札來聘, 請觀周樂.” ○光曰 “聞其聲詩, 知其國之興衰, 庶幾可謂知樂矣.”인저 如樂弛 雖札이라도 末如之何矣 注+如樂弛……末如之何矣:光曰 “末, 無也. 若其聲詩家已廢亡, 雖札, 亦不能知也.”
예컨대 연릉계자延陵季子는 음악에 대한 조예가 거의 에 가까웠다.注+오비吳祕가 말하였다. “《춘추春秋양공襄公 29년에 나라 공자公子 계찰季札내빙來聘하여 나라 악무樂舞를 보기를 청하였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연릉계자延陵季子성시聲詩(악가樂歌)를 듣고서 그 나라의 흥함과 쇠함을 알았으니 거의 음악을 알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만약 당시의 음악이 파괴되어 전해진 것이 없다면 아무리 계찰季札이라도 어찌할 수가 없을 것이다.注+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은 없음이다. 만약 성시가聲詩家가 이미 폐하여 없어졌다면 비록 계찰季札이라도 알 수가 없다.”
如周之禮樂庶事之備也하여 每可以爲不難矣 注+如周之禮樂……每可以爲不難矣:祕曰 “魯得用天子禮樂, 盡在魯.” ○光曰 “監於二代, 曲爲之制, 事爲之防, 學者習之, 固無難矣.”어니와 如秦之禮樂庶事之不備也하여 每可以爲難矣 注+如秦之禮樂……每可以爲難矣:祕曰 “秦燔滅文章, 以愚黔首, 禮樂弛廢, 雖季子, 何由知之.” ○光曰 “秦訕笑三代之禮樂, 屛而去之, 自爲苟簡之制. 後之學者, 求先王之禮樂於散亡之餘, 誠亦難矣.”니라
예컨대 나라는 예악禮樂과 관계된 모든 일이 완비되어 있어서 매양 〈예악을 거행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여겼지만注+오비吳祕가 말하였다. “나라가 천자天子예악禮樂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나라의 예악禮樂이〉 모두 나라에 있었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나라는〉 이대二代를 거울로 삼아 세밀하게 제도를 만들고 일을 방비하였기 때문에 배우는 자들이 〈나라의 예악을〉 익히는 데 진실로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나라는 예악禮樂과 관계된 모든 일이 완비되어 있지 않아서 매양 〈예악을 거행하는 것을〉 어렵게 여겼다.”注+오비吳祕가 말하였다. “나라가 문장文章을 불태워 없앰으로써 백성들을 어리석게 만들고 예악禮樂이 파괴되었으니, 비록 계자季子라 한들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나라가 삼대三代예악禮樂을 헐뜯고 비웃어 이를 물리쳐 없애버리고는 스스로 구차하고 간략한 제도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후대의 배우는 자들이 예악이 흩어지고 없어진 나머지에서 선왕先王예악禮樂을 구하였으니, 참으로 또한 어려웠다.”
역주
역주1 (人)[文] : 저본에는 ‘人’으로 되어 있으나, 兪樾의 《諸子平議》에 “살펴보건대 司馬光이 ‘人은 마땅히 文이 되어야 하니, 글자가 잘못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下文으로 징험해 보건대 司馬光의 설이 옳다.”라고 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文’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延陵季子 : 季子는 춘추시대 吳王 壽夢의 少子로 이름은 季札이다. 封邑이 延陵에 있었기 때문에 延陵季子라고 칭하였다.

양자법언(1) 책은 2019.06.07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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