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孔子는 習周公者也요 顔淵은 習孔子者也라
羿, 逢蒙
이 分其弓
하고 良
이 捨其策
하고 般
이 投其斧而習諸
면 孰曰非也
注+孔子……孰曰非也:咸曰 “言孔不習周, 顔不習孔, 亦猶夫羿棄弓, 良去策, 般擲斧而習之也, 誰曰非乎. 言實非也.” ○祕曰 “, 業射者也. , 業御者也. , 業巧者也. 聖人, 使射御工巧, 各捨其業而時習之, 誰其非之.” ○光曰 “音義曰 ‘逢, 薄紅切. 般, 音班.’ 按他書, 逢蒙或作蠭蒙, 宜讀如字. 三子, 皆以其術, 名於世, 則其才, 必有過人者. 鄕使捨其術而習聖人之道, 烏有不可也.”리오
或曰 此名也
注+此名也:咸曰 “周‧孔‧顔之名.”요 彼名也
注+彼名也:咸曰 “羿‧逢蒙‧良‧般之名.”니 處一焉而已矣
注+處一焉而已矣:咸曰 “或人見揚子幷論周‧孔‧良‧般, 疑其名等如一. 故揚答以下文.” ○祕曰 “或人謂有道之名, 有藝之名, 有名無二.”라
曰 川有瀆
하고 山有嶽
하니 高而且大者
는 衆人所不能踰也
注+川有瀆……衆人所不能踰也:言諸賢之有妙藝, 猶百川之有, 衆山之有, 而川可度, 嶽可登, 高而且大者, 惟聖人之道, 如天不可升也. ○咸曰 “觀正文之意, 當云‘高而且大者, 衆人所不能踰也.’ 脫其不字矣. 何以之. 或人問 ‘般‧羿‧周‧孔之名如一.’ 揚以‘川有瀆, 山有嶽’而對之, 是謂般‧羿之徒, 猶川山, 周‧孔之道, 猶嶽瀆, 自然小大不同, 高低有異矣. 故下篇亦云 ‘.’ 由是詳之, 揚之旨, 皆以嶽瀆比聖人明矣. 註不能辨, 但依誤文以爲之解, 反謂‘聖人之道, 如天不可升.’ 且正文安有如天之說哉. 儻謂揚此文, 以嶽瀆爲易踰, 不足方聖人, 則下文, 以仲尼比四瀆爲非矣. 揚豈首尾自相反如是邪.” ○祕曰 “周‧孔‧顔子之道, 如山川之有嶽瀆, 豈曰處一而已. 羿‧逢蒙‧良‧般之藝, 如山川高而且大者甚, 衆人所能踰也.” ○光曰 “.’ 今從之.”니라
공자孔子는 주공周公을 배운 자이고, 안연顔淵은 공자孔子를 배운 자이다.
〈활의 명수인〉
예羿와
봉몽逢蒙이 활을 버리고, 〈훌륭한 마부인〉
왕량王良이 채찍을 버리고, 〈솜씨 좋은 목수인〉
공수반公輸般이 도끼를 내던지고, 〈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의 도를〉 배운다면 누가 그르다고 하겠는가.
注+송함宋咸이 말하였다. “공자孔子가 주공周公을 배우지 않고 안자顔子가 공자孔子를 배우지 않는 것은 또한 예羿가 활을 버리고, 왕량王良이 채찍을 버리고, 공수반公輸般이 도끼를 내던지고 이것(주공과 공자의 도)을 배우는 것과 같으니, ‘누가 그르다고 하겠느냐’는 것은 실제로는 그름을 말한 것이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예와 봉몽은 활쏘기를 업으로 삼은 자이고, 왕량은 수레 모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자이고, 공수반은 기술을 업으로 삼은 자이다. 성인聖人(공자孔子)은 가르침에 종류種類(신분의 귀천)를 구분함이 없었으니, 가령 활 쏘는 자와 수레 모는 자와 기술이 정교한 자가 각각 자신의 업業을 버리고 이것(성인聖人의 도)을 수시로 배운다면 누가 그르다고 하겠는가.”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음의音義》에 ‘봉逢은 박薄과 홍紅의 반절反切이고, 반般은 음音이 반班이다.’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다른 책에는 ‘봉몽逢蒙’이 혹 ‘방몽蠭蒙’으로 되어 있으니, 마땅히 본음대로 읽어야 한다. 세 사람은 모두 기술로써 세상에 이름이 났으니, 그 재주가 반드시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자이다. 가령 자신의 기예를 버리고 성인聖人의 도道를 배운다면 어찌 불가할 것이 있겠는가.”
혹자가 말하였다. “이것(주공과 공자와 안연의
도道에 정통한 것)도 명예이고
注+송함宋咸이 말하였다.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와 안자顔子의 명예이다.” 저것(예와 봉몽과 왕량과 공수반의
기예技藝에 정통한 것)도 명예이니
注+송함宋咸이 말하였다. “예羿와 봉몽逢蒙과 왕량王良과 공수반公輸般의 명예이다.”, 이것이나 저것이나 명예가 있기는 똑같습니다.”
注+송함宋咸이 말하였다. “혹자는 양자揚子가 주공周公과 공자孔子, 왕량王良과 공수반公輸般을 나란히 논한 것을 보고 이들의 명예가 똑같다고 의심하였다. 그러므로 양자揚子가 아랫글로써 답한 것이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혹자는 도道로 명예가 있든 기예技藝로 명예가 있든 명예가 있음에는 다를 것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양자揚子가 말하였다. “내에는 〈내 중에 큰 내인〉
사독四瀆이 있고 산에는 〈산 중에 높은 산인〉
오악五嶽이 있으니, 높으면서도 큰 것(주공과 공자의 도)은
중인衆人이 뛰어넘을 수가 없다.”
注+여러 현자가 교묘한 기예를 가지고 있는 것은 온갖 내 중에 사독四瀆이 있고 여러 산山 중에 오악五嶽이 있는 것과 같지만 내는 건널 수가 있고 산은 올라갈 수가 있다. 그러나 높으면서도 큰 것은 오직 성인聖人의 도道이니 하늘과 같아서 올라갈 수가 없다. ○송함宋咸이 말하였다. “정문正文의 뜻을 살펴보면 마땅히 ‘높으면서도 큰 것은 중인衆人이 넘을 수 없다.’라고 해야 하니, ‘불不’자가 빠졌다. 어떻게 이것을 알 수 있는가. 혹자가 ‘공수반과 예, 주공과 공자의 명성이 똑같습니까?’라고 묻자, 양자揚子가 ‘천川 가운데에 사독四瀆이 있고 산山 가운데에 오악五嶽이 있는 것과 같다.’라고 대답하였으니, 이는 공수반과 예의 무리는 천川과 산山 같고 주공과 공자의 도道는 오악五嶽과 사독四瀆 같아서, 자연히 대소大小가 같지 않고 고저高低에 차이가 있음을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하편下篇에 또 ‘중니仲尼의 도道는 사독四瀆과 같다.’라고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건대, 양자揚子의 뜻은 모두 오악五嶽과 사독四瀆으로 성인聖人을 견주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궤李軌의〉 주註에서 이를 잘 분별하지 않고 다만 잘못된 글자를 따라 그대로 해석하여, 도리어 ‘성인의 도道는 하늘과 같아서 올라갈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정문正文의 어디에 하늘과 같다는 말이 있는가. 만일 양자揚子가 이 글에서 오악五嶽과 사독四瀆을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면 〈오악五嶽과 사독四瀆은〉 성인聖人을 견주기에 부족하니, 하문下文에서 중니仲尼를 사독四瀆에 견준 것은 잘못이다. 양자揚子의 말이 앞뒤가 스스로 상반相反됨이 어찌 이와 같겠는가.”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주공과 공자와 안자의 도道는 산과 내 가운데 오악五嶽과 사독四瀆이 있는 것과 같으니, 어찌 명예가 있는 것은 똑같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예와 봉몽과 왕량과 공수반의 기예가 산과 내처럼 매우 높으면서도 크지만 이것은 중인衆人이 넘을 수 있는 것이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오비본吳祕本과 송함본宋咸本에는 ‘중인소능유衆人所能踰’로 되어 있다. 《음의音義》에 ‘속본俗本에는 「불不」자가 빠졌으나 제본諸本에는 모두 있다.’라고 하였으니, 지금 이것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