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揚子法言(1)

양자법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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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법언(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2. 人之性也 善惡混 注+人之性也 善惡混:混, 雜也. 荀子以爲人性惡, 孟子以爲人性善, 揚子以爲人性雜. 三子取譬雖異, 然大同儒敎, 立言尋流, 厥義兼通耳. . 揚子之言, 該兩家之論反覆, 於是俱暢. ○祕曰 “天命之謂性, 性命之初, 善惡兼全. 故赤子之生, 七情未著, 而先有號笑喜怒, 喜怒者, 善惡之端也. 是正性與善惡相混.”하여 修其善則爲善人하고 修其惡則爲惡人 注+修其善則爲善人 修其惡則爲惡人:所謂混也. ○咸曰 “.’ 又曰 ‘.’ 考聖人之言, 則是人有上中下三品矣. 上焉者善, 下焉者惡, 中焉者可上可下, 善惡混也. 故賈誼新書, 亦於人主, 分三等曰 ‘.’ 今揚子之意, 謂孟子已言人性善, 是論上品矣, 荀子已言人性惡, 是論下品矣. 而未及中品, 故於此謂人之性善惡混. 又曰 ‘修其善則爲善人, 修其惡則爲惡人.’ 觀其文, 是止言中品之性, 明矣, 非謂人皆然也. 得非夫子所謂中人以上可以語上, 中人以下不可以語上者邪. 得非賈誼所謂可以引之而上, 亦可以引之而下者邪. 故三子言性, 各擧其品, 敎亦備矣.” ○祕曰 “習與性成.” ○光曰 “孟子以爲‘人性善, 其不善者, 外物誘之也’, 荀子以爲‘人性惡, 其善者, 聖人敎之也’, 是皆得其一偏而遺其本實. 夫性者, 人之所受於天以生者也, 善與惡, 必兼有之, 猶陰之與陽也. 是故, 雖聖人, 不能無惡, 雖愚人, 不能無善, 其所受多少之間則殊矣. 善至多而惡至少則爲聖人, 惡至多而善至少則爲愚人, 善惡相半則爲中人. 聖人之惡不能勝其善, 愚人之善不能勝其惡, 不勝則從而亡矣. 故曰 ‘惟上智與下愚不移.’ 雖然, 不學則善日消而惡日滋, 學焉則惡日消而善日滋. 故曰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必曰‘聖人無惡’, 則安用學矣. 必曰‘愚人無善’, 則安用敎矣. 譬之於田, 稻粱藜莠, 相與竝生, 善治田者, 薅其藜莠而養其稻粱, 不善治田者, 反之, 善治性者, 長其善而去其惡, 不善治性者, 反之. 孟子以爲‘仁義禮智皆出乎性者也’, 是豈可謂之不然乎. 然殊不知暴慢貪惑, 亦出乎性也. 是信稻粱之生於田, 而不信藜莠之亦生於田也. .’ 是豈可謂之不然乎. 然殊不知慈愛羞惡之心, 亦生而有也. 是信藜莠之生於田, 而不信稻粱之亦生於田也. 故揚子以人之性善惡混, 混者, 善惡雜處於心之謂也, 顧人所擇而修之何如耳. 修其善則爲善人, 修其惡則爲惡人, 斯理也, 豈不曉然明白矣哉. 如孟子之言, 所謂長善者也, 如荀子之言, 所謂去惡者也, 揚子則兼之矣. , 亦非知揚子者也.”이니라
사람의 본성에는 이 섞여 있어서注+은 섞여 있는 것이다. 순자荀子는 사람의 본성이 하다고 하였고, 맹자孟子는 사람의 본성이 하다고 하였는데, 오직 양자揚子는 사람의 본성은 이 섞여 있다고 하였다. 세 사람이 비유를 취한 것은 비록 다르지만 크게는 같은 유학儒學의 가르침이니, 입언立言한 뜻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뜻이 모두 통한다. 성인聖人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광인狂人이 되고 광인狂人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聖人이 된다. 양자揚子의 말은 두 대가大家(순자荀子맹자孟子)의 의론을 갖추어 고심하였으므로 여기에 함께 진술하였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천명天命이라 하니, 성명性命의 시초에는 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적자赤子가 태어나 아직 칠정七情이 드러나기 이전에 먼저 울고 웃고 기뻐하고 노여워함이 있으니, 기쁨과 노여움은 선악善惡의 단서이다. 이것이 바로 선악善惡이 서로 뒤섞여 있는 것이다.”, 선을 닦으면 선한 사람이 되고 악을 닦으면 악한 사람이 된다.注+이른바 〈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송함宋咸이 말하였다. “공자孔子께서 ‘중등 이상의 사람에게는 높은 차원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지만, 중등 이하의 사람에게는 높은 차원의 이야기를 해줄 수가 없다.’라고 하였고, 또 ‘상지上智하우下愚는 변화시킬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성인聖人의 말씀을 살펴보면 사람에게는 의 3이 있다. 상품인 자는 선하고, 하품인 자는 악하고, 중품인 자는 올라가 상품이 될 수도 있고 내려가 하품이 될 수도 있으니, 선과 악이 섞여 있다. 그러므로 가의賈誼의 《신서新書》에도 군주에 대해 3으로 나누어서 ‘상주上主가 있고 중주中主가 있고 하주下主가 있다. 상주上主는 이끌어서 올라가게 할 수는 있지만 이끌어서 내려가게 할 수는 없고, 하주下主는 이끌어서 내려가게 할 수는 있지만 이끌어서 올라가게 할 수는 없으며, 중주中主는 이끌어서 올라가게 할 수도 있고 이끌어서 내려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상주上主이 바로 이러한 군주이다. 하우夏禹후직后稷과 함께 선을 행하려고 하면 선을 행하였고, 환도驩兜가 요‧순을 이끌어서 악을 하려고 하면 그들을 주벌하였다. 그러므로 요‧순과 함께 선을 행할 수는 있고 함께 악을 행할 수는 없다. 하주下主가 바로 이러한 군주이다. 비렴飛廉악래惡來와 함께 악을 행하려고 하면 악을 행하였고, 비간比干용봉龍逢이 걸‧주를 이끌어서 선을 행하려고 하면 그들을 주벌하였다. 그러므로 걸‧주와 함께 악을 행할 수는 있고 함께 선을 행할 수는 없다. 중주中主제 환공齊 桓公이 바로 이러한 군주이다. 관중管仲습붕隰朋을 얻었을 때에는 패자霸者가 되었고 수초竪貂자아子牙를 등용했을 때에는 어지러워졌다.’라고 하였다. 지금 양자揚子의 생각에는, 맹자孟子가 이미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고 말한 것은 상품上品을 논한 것이고, 순자荀子가 이미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고 말한 것은 하품下品을 논한 것이다. 그러나 중품中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사람의 본성은 이 섞여 있다고 말한 것이다. 양자揚子가 또 ‘선을 닦으면 선인善人이 되고 악을 닦으면 악인惡人이 된다.’고 하였으니, 그 글을 보면 이는 다만 중품中品에 대해서 말한 것이 분명하고, 사람들이 모두 다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어찌 부자夫子의 이른바 ‘중등 이상의 사람에게는 높은 차원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지만, 중등 이하의 사람에게는 높은 차원의 이야기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아니겠으며, 어찌 가의賈誼의 이른바 ‘이끌어서 올라가게 할 수 있고 또한 이끌어서 내려오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세 사람(양웅揚雄, 공자孔子, 가의賈誼)이 에 대해 말할 적에 각각 그 품등을 들었으니, 가르침이 또한 구비되었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습관이 천성天性처럼 되는 것이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맹자孟子가 ‘사람의 본성은 선하니, 불선한 것은 외물外物이 유혹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순자荀子가 ‘사람의 본성은 악하니, 선한 것은 성인聖人이 가르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모두 그 한쪽만 얻고 그 본질은 빠뜨린 것이다. 은 사람이 하늘에서 받아서 태어난 것이다. 을 반드시 겸하여 가지고 있음은 의 관계와 같다. 이 때문에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이 없을 수 없고 비록 우인愚人이라도 이 없을 수 없으나 받은 은 다르다. 이 지극히 많고 이 지극히 적으면 성인聖人이 되고, 이 지극히 많고 이 지극히 적으면 우인愚人이 되고, 이 서로 반반이면 중인中人이 된다. 성인聖人은 그 을 이길 수 없고 우인愚人은 그 을 이길 수 없으니, 이기지 못하면 이로 말미암아 없어진다. 그러므로 ‘오직 상지上智하우下愚는 변화시킬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배우지 않으면 이 날로 사라지고 이 날로 불어나며, 배우면 악이 날로 사라지고 선이 날로 불어난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광인狂人이 되고 광인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이 된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성인聖人은 악이 없다.’고 한다면 배움을 어디에 쓰겠으며, 반드시 ‘우인愚人은 선이 없다.’고 한다면 가르침을 어디에 쓰겠는가. 이를 밭에 비유하면 도량稻粱(벼와 기장)과 여유藜莠(질려蒺藜와 가라지)가 서로 함께 나란히 자라는데, 밭을 잘 가꾸는 자는 여유藜莠를 뽑아버리고 도량稻粱을 기르며, 밭을 잘 가꾸지 못하는 자는 이와 반대로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본성을 잘 다스리는 자는 을 기르고 을 제거하며, 본성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이와 반대로 한다. 맹자孟子는 모두 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였으니, 어찌 그렇지 않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포만暴慢(사납고 거만함)과 탐혹貪惑(탐욕과 미혹)도 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니, 이는 도량稻粱이 밭에서 자란다는 사실만 믿고 여유藜莠도 밭에서 자란다는 사실은 믿지 않는 것이다. 순자荀子쟁탈爭奪하고 잔적殘賊한 마음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니, 사법師法예의禮義로써 바로잡지 않으면 패란悖亂하여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어찌 그렇지 않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자애慈愛로운 마음과 수오羞惡하는 마음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니, 이는 여유藜莠가 밭에서 자란다는 사실만 믿고 도량稻粱도 밭에서 자란다는 사실은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자揚子가 ‘사람의 본성은 이 섞여 있다.’고 한 것이다. 섞여 있다는 것은 이 마음에 한데 섞여 있음을 이르니, 다만 사람이 택하여 닦기를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선을 닦으면 선인善人이 되고 악을 닦으면 악인惡人이 되니, 이 이치가 어찌 효연曉然히 명백하지 않겠는가. 맹자孟子의 말 같은 것은 이른바 선을 기르는 것이고, 순자荀子의 말 같은 것은 이른바 악을 제거하는 것인데, 양자揚子는 이를 겸하였다. 한문공韓文公(한유韓愈)이 양자揚子의 말을 풀이하여 ‘처음에는 선과 악이 섞여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선해졌다거나 악해졌다고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또한 양자揚子를 안 자가 아니다.”
氣也者適善惡之馬也歟 注+氣也者 所適善惡之馬也歟:御氣爲人, 若御馬涉道, 由通衢則迅利, 適惡路則駑蹇. ○祕曰 “人馭氣而行, 猶乘馬也. 善惡二途, 惟其所適.” ○光曰 “夢得曰 ‘志之所則氣隨之.’ 言不可不養以適正也. 乘而之善, 則爲忠爲義, 乘而之惡, 則爲慢爲暴.”인저
라는 것은 이나 으로 갈 때 타는 말과 같을 것이다.注+를 제어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말을 타고 길을 갈 때 사방으로 통하는 큰길을 따라가면 빠르고 편리하지만 나쁜 길로 가면 뒤처지고 느린 것과 같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사람이 를 제어하여 행동하는 것은 말을 타는 것과 같다. 두 가지 길이 있으니, 오직 가는 바에 달려 있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섭몽득葉夢得이 ‘가 이르는 곳에는 도 따라간다.’라고 하였으니, 를 길러서 바른 데로 가지 않아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를 타고서 선한 쪽으로 가면 이 되고 가 되며, 를 타고서 악한 쪽으로 가면 이 되고 가 된다.”
역주
역주1 (而)[惟] : 저본에는 ‘而’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에 근거하여 ‘惟’로 바로잡았다.
역주2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 《書經》 〈周書 多方〉에 보인다.
역주3 孔子云……不可以語上也 : 《論語》 〈雍也〉에 보인다.
역주4 上智與下愚不移 : 《論語》 〈陽貨〉에 보인다.
역주5 有上主……用竪貂子牙則亂 : 賈誼의 《新書》 〈連語〉에 보이는데, 다만 語句에 다소 차이가 있다.
역주6 荀子以爲爭奪殘賊之心……則悖亂而不治 : 이 내용은 《荀子》 〈性惡〉에 보이는데, 본서에 인용된 것과 字句가 다르다.
역주7 韓文公解揚子之言 以爲始也混 而今也善惡 : 韓愈의 〈原性〉에 “孟子는 性을 이야기하면서 사람의 性은 善하다고 했고, 荀子는 性을 이야기하면서 사람의 性은 惡하다고 했고, 揚雄은 性을 이야기하면서 사람의 性에는 善과 惡이 혼재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선했는데 악해졌다든가, 처음에는 악했는데 선해졌다든가, 처음에는 선과 악이 섞여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선해지거나 악해졌다든가, 이 모든 학설들은 中品만을 논하고 上品과 下品은 빠뜨린 것이니, 하나만 얻고 둘은 잃은 것이다.[孟子之言性曰 人之性善 荀子之言性曰 人之性惡 揚子之言性曰 人之性善惡混 夫始善而進惡 與始惡而進善 與始也混而今也善惡 皆擧其中而遺其上下者也 得其一而失其二者也]”라고 하였다.
역주8 [以] : 저본에는 없으나, 四部叢刊本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9 (生)[至] : 저본에는 ‘生’으로 되어 있으나, 汪榮寶의 《法言義疏》에는 ‘至’로 되어 있다. 이에 근거하여 ‘至’로 바로잡았다.

양자법언(1) 책은 2019.06.07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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