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揚子法言(1)

양자법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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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或問 司馬子長有言曰 五經 不如老子之約也 當年不能極其變하고 終身不能究其業 注+司馬子長有言曰……終身不能究其業:祕曰 “司馬遷以‘儒者, 以六藝爲法, 六藝經傳, 以千萬數, 累世不能明其學, 當年不能究其禮. 故曰 「」’. 言道家, 以旨約而易操, 事小而功多, 是謂不如老子之約也. 班固曰 ‘.’”이라하니라
혹자가 물었다. “사마자장司馬子長(사마천司馬遷)의 말에 ‘오경五經은 《노자老子》의 간략함만 못하니, 배울 당시에는 그 변화를 다 알 수가 없고, 종신토록 배워도 학업을 마칠 수가 없다.’라고 했습니다.”注+오비吳祕가 말하였다. “사마천司馬遷이 ‘유자儒者육예六藝(육경六經)를 으로 삼는데, 육예六藝경전經傳천만千萬으로 헤아릴 정도로 많아서 여러 대가 지나도 학문을 밝힐 수가 없고 당년에 그 를 끝까지 연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마담司馬談이〉 「유자는 박학하기는 하지만 요령이 부족하고, 수고롭지만 효과는 적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도가道家는 뜻이 간략하여 잡아 지키기가 쉽고 일은 적게 하면서 공은 많다는 말이다. 이것은 〈유학儒學이〉 노자老子의 간략함만 못함을 이른 것이다. 반고班固는 ‘대도大道를 논할 때에 황로黃老(황제黃帝노자老子)를 앞에 두고 육경六經을 뒤에 두었으니, 이는 가리워진 바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曰 若是則周公惑, 孔子賊 注+若是則周公惑孔子賊:祕曰 “果如是言, 則周孔非惑則賊矣.”이라 古者之學 耕且養하여 三年通一經 注+古者之學……三年通一經:無訓解故. ○光曰 “李本, 無經字, 今從宋吳本.”이어늘
양자揚子가 말하였다. “과연 이 말대로라면 주공周公공자孔子는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해친 것이다.注+오비吳祕가 말하였다. “과연 이 말대로라면 주공周公공자孔子는 사람들을 미혹시킨 것이 아니면 해친 것이다.” 옛날에 〈오경五經을〉 배우는 사람들은 농사지으면서 식구들을 부양하였고 3년 걸려서 한 가지 경서에 통달하여 〈경문經文을 음미하였을 뿐이다.〉注+훈해訓解가 없기 때문이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이궤본李軌本에는 ‘’자가 없으나 지금 송함본宋咸本오비본吳祕本을 따랐다.”
今之學也 非獨爲之華藻也 又從而繡其鞶帨하니 惡在老不老也 注+今之學也……惡在老不老也:鞶, 大帶也. 帨, 佩巾也. 衣有華藻文繡, 書有經傳訓解也. 文繡之衣, 分明易察, 訓解之書, 灼然易曉. ○祕曰 “鞶, 大帶也. 帨, 佩巾也. 所以備物而爲飾也. 言古之學者, 存其大體, 所以易也. 今之學者, 有經傳章句, 如華藻繡鞶帨, 其文彌繁, 所以難也. 安在老易而不老難哉. .’ , , 至十萬言, 但說曰若稽古, 三萬言.’” ○光曰 “鞶音盤, 帨音稅, 惡音烏. 鞶帨已是外飾, 又從而繡之, 言章句華多實少.”리오
그런데 오늘날에 〈오경五經을〉 배우는 사람들은 〈경전經傳훈해訓解를 다는 것이〉 비유하면 의복을 화려하게 꾸밀 뿐만 아니라 허리띠와 수건에까지 수를 놓는 것과 같다. 〈이것은 배우는 방법이 잘못된 것이니,〉 어찌 《노자老子》가 간략하냐 간략하지 않으냐에 달려 있는 것이겠는가.”注+은 큰 띠이다. 는 차는 수건이다. 옷에는 화려한 문식과 아름다운 가 있고, 책에는 경전經傳훈해訓解가 있다. 화려하게 수놓은 의복衣服은 분명하여 살피기가 쉽고, 훈해訓解가 있는 책은 분명하여 깨닫기가 쉽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은 큰 띠이고, 는 차는 수건이니, 기물을 갖추어 문식하는 것이다. 옛날의 배우는 자들은 대체大體를 보존하였으니 이 때문에 쉬웠고, 지금의 배우는 자들은 경전經傳장구章句가 있는 것이, 의복을 화려하게 꾸미고 큰 띠와 차는 수건에 화려하게 수를 놓은 것과 같아서 그 문식이 더욱 번다하니, 이 때문에 어렵다는 말이다. 《노자老子》처럼 하면 쉽고 《노자老子》처럼 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반고班固가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농사짓고 또 식구들을 부양하면서 3년에 한 가지 경서에 통달하여 대체大體를 보존하고 경문經文을 음미하였을 뿐이다. 이 때문에 걸린 날짜는 적고 을 쌓은 것은 많아서 30세가 되면 오경五經이 확립되었다. 후세後世에는 이 이미 너무 괴리되어 널리 배운 자는 또 많이 듣고서 그 중에 의심스러운 것을 빼놓는 의리義理를 생각하지 않고 세세한 의리를 만들어 다른 사람의 힐난을 피하기를 힘쓰며, 견강부회한 말과 교묘한 말로 문자의 형체를 파괴하여 다섯 글자를 해설한 글이 2, 3만 자에 이르렀다.’라고 하였고, 《환담신론桓譚新論》에 ‘진근군秦近君이 〈요전堯典〉의 편목篇目 두 글자를 기록한 말이 10만 자에 이르렀고, 단지 「왈약계고曰若稽古」를 설명한 것만도 3만 자였다.’라고 하였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은 음이 이고, 는 음이 이고, 는 음이 이다. 가 이미 외식外飾인데 또 이어서 수를 놓기까지 하였으니, 장구章句가 화려함이 많고 실제가 적음을 말한 것이다.”
或曰 學者之說可約邪 注+學者之說可約邪:疾夫說學繁多, 故欲約省之也. 曰 可約하니 解科 注+可約 解科:言自可令約省爾, 但當使得其義旨, 不失其科條. ○祕曰 “可以約解科之章句, 令不繁.” ○光曰 “解科闕.”니라
혹자가 말하였다. “학자들의 〈번다한〉 학설을 요약할 수 있습니까?”注+학설이 번다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요약하여 줄이고자 한 것이다. 양자揚子가 말하였다. “요약할 수 있다. 본지本旨를 얻어 과조科條(조리條理)를 잃지 않으면 된다.”注+본래 간략히 줄일 수 있으니, 다만 본지本旨를 얻어 과조科條(조리條理)를 잃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비吳祕가 말하였다. “조리가 분명한 장구章句를 요약하여 번다하지 않게 할 수 있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였다. “해과解科는 〈뜻을 알 수 없어〉 주석注釋하지 않았다.”
역주
역주1 博而寡要 勞而少功 : 司馬遷의 부친인 司馬談이 지은 〈論六家要旨〉에 儒家에 대해 논하기를 “儒者는 박학하지만 요령이 적고 수고롭지만 효과가 적으니 그 일을 다 따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君臣‧父子의 禮와 夫婦‧長幼의 구별 같은 것은 바꿀 수 없는 진리이다.”라고 하였다.(《史記 卷130 太史公自序》)
역주2 論大道……此其所蔽也 : 《漢書》 〈司馬遷傳〉의 贊에 “또 〈太史 司馬遷은〉 성인에 대한 是非의 판단이 자못 그릇되어 대도를 논할 때에는 黃老를 앞에 두고 六經을 뒤에 두었으며, 유협을 서술할 때에는 處士를 물리치고 奸雄을 내세웠으며, 화식을 서술할 때에는 형세와 이익을 숭상하고 빈천을 부끄럽게 여겼으니, 이는 가리워진 바가 있는 것이다.[又其是非頗繆於聖人 論大道則先黃老而後六經 序遊俠則退處士而進姦雄 述貨殖則崇勢利而羞賤貧 此其所蔽也]”라고 하였다.
역주3 (服) : 저본에는 있으나, 四部叢刊本에 근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4 班固曰……至於二三萬言 : 《漢書》 〈藝文志〉에 보인다.
역주5 桓譚新論云 秦近君 : 四庫全書薈要本의 注에 “‘秦近君’은 《尙書正義》 및 각종 서적을 살펴보건대 대부분 ‘秦延君’으로 되어 있다. 許愼의 《說文解字》 〈敍〉를 살펴봄에 講學大夫 秦近이 있으니, 桓譚의 이른바 秦近君은 의심컨대 곧 이 사람을 가리키는 듯하다.”라고 하였다.
역주6 能記堯典篇目兩字之說 : ‘能記’의 ‘記’는 《漢書》 〈藝文志〉와 四庫全書本 《經義考》에는 ‘說’로, 《文心彫龍》 〈論說〉에는 ‘注’로 되어 있으나,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어 저본을 그대로 따랐다.

양자법언(1) 책은 2019.06.07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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