楚狂接輿之妻也
注+① 【校注】 高士傳 “楚人陸通字接輿.”라 接輿躬耕以爲食
注+② 【校注】 水經潕水注引尸子曰 “楚狂接輿耕於方城.”이러니 楚王使使者持金百鎰
注+③ 二十兩爲一鎰.車二駟
하여 往聘迎之
라 曰王願請先生治
南
注+④ 【集注】 梁云 “韓詩外傳作河南. 下同.”이러이다 接輿笑而不應
하니 使者遂不得與語而去
라
妻從市來曰 先生
而爲義
注+① 以當作少, 字形之誤. 見韓詩外傳.러니 豈將老而遺之哉
아 門外車跡
注+② 【校注】 韓詩外傳跡作軼, 與轍同. 車軼見莊子人間世.이 何其深也
오 接輿曰 王不知吾不肖也
하여 欲使我治(淮)[河]南
하여 遣使者持金駟來聘
이라
其妻曰 得無許之乎아 接輿曰 夫富貴者는 人之所欲也어늘 子何惡我許之矣오
妻曰 義士非禮不動하고 不爲貧而易操하며 不爲賤而改行하나니 妾事先生에 躬耕以爲食하고 親績以爲衣호되 食飽衣暖하고 據義而動하니 其樂亦自足矣어늘
若受人重祿
하고 乘人堅良
注+③ 車堅馬良也.하고 食人肥鮮
이면 而將何以待之
리오 接輿曰 吾不許也
라
妻曰 君使不從
이면 非忠也
요 從之又違
면 非義也
注+④ 韓詩外傳作從之是遺義也, 此或誤衍.니 不如去之
라하고 夫負釜甑
하며 妻戴紝器
하고 變名易姓而遠徙
하니 莫知所之
라
君子謂接輿妻爲樂道而遠害
로다하니라 夫安貧賤而不怠於道者
는 唯至德者能之
라 詩曰 肅肅兔罝
여 椓之丁丁
이로다하니 言不怠於道也
注+① 此亦安貧賤而自食其力者, 故引之以譬況.라
초楚나라
광인狂人 접여接輿의 아내이다.
注+① 【교주校注】 ≪고사전高士傳≫에 “초楚나라 사람 육통陸通의 자字가 접여接輿이다.”라고 하였다. 접여는 몸소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다.
注+② 【교주校注】 ≪수경水經≫ 〈무수潕水〉 주注에 ≪시자尸子≫를 인용하여 “초楚나라 광인狂人 접여接輿가 방성方城에서 경작하였다.”라고 하였다. 초楚나라 왕이
사자使者에게
금金 100
일鎰과
注+③ 20냥兩이 1일鎰이다. 말 4필이 끄는 수레 2대를 가지고 가서 접여를 초빙해오도록 하였다. 〈사자가〉 말하기를 “왕께서는 선생이
하남河南을 다스려주기를 원합니다.”
注+④ 【집주集注】 양단梁端이 이르기를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하남河南’으로 되어 있다. 아래도 같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접여가 웃기만하고 응답하지 않으니, 사자는 결국 말을 나누지 못하고 떠났다.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선생은 젊어서는
의義를 행하였는데
注+① ‘이以’는 응당 ‘소少’자가 되어야 하니, 자형字形이 비슷해서 생긴 오자誤字이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보인다. 어찌 늙어가면서 그
의義를 버리려 하십니까? 문밖에 수레바퀴 자국이
注+② 【교주校注】 ≪한시외전≫에 ‘적跡’이 ‘일軼’로 되어 있으니, ‘철轍’과 같다. 어찌 저리 깊게 패였습니까?”라고 하니,
접여接輿가 말하기를 “왕이 내가
불초不肖한 줄 모르고서 나에게
하남河南을 다스리게 하고자 하여
사자使者를 보내 금과 수레를 가지고 와서 초빙하게 하였소.”라고 하였다.
그 아내가 말하기를 “허락하지 않았겠지요?”라고 하니, 접여가 말하기를 “무릇 부유하고 존귀한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원하는 것인데
라고 하였다.
아내가 말하기를 “의로운 선비는 예禮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으며, 가난 때문에 지조를 바꾸지 않으며, 비천卑賤 때문에 행실을 고치지 않습니다. 첩妾이 선생을 섬김에 몸소 농사지어서 음식을 장만하고 손수 베를 짜서 옷을 지어 드렸으나 음식이 배부르고 옷이 따뜻하며 의義에 의거하여 행동하였으니, 그 즐거움이 또한 스스로 만족스러웠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주는 후한 녹을 받고 다른 사람이 주는 튼튼하고 좋은 수레를 타고
注+③ 수레가 견고하고 말이 좋은 것이다. 다른 사람이 주는 맛난 음식을 먹는다면 장차 무엇으로 그에 보답하겠습니까.”라고 하니, 접여가 말하기를 “내 허락하지 않았소.”라고 하였다.
아내가 말하기를 “임금이 명하는데 따르지 않으면
불충不忠이요 명을 따르다가 또 어기면
불의不義니,
注+④ ≪한시외전≫에 ‘임금의 명을 따르면 이는 의義를 버리는 것입니다.’로 되어 있으니, 여기에는 혹 잘못 연문衍文이 된 듯하다. 이곳을 떠나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남편은 솥과 시루를 등에 지고 아내는 베틀을 머리에 이고 이름과 성을 바꾸고서 멀리 이사하였으니, 그 누구도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였다.
군자君子가 이르기를 “
접여接輿의 아내는
도道를 즐기고
해害를 멀리하였다.”라고 하였다. 무릇
빈천貧賤을 편안히 여기면서도
도道에 게으르지 않는 것은 오직 지극한
덕德을 갖춘 자만이 할 수 있다. ≪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라고 하였으니,
도道에 게으르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注+① 이 또한 빈천貧賤을 편안히 여기면서 제 힘으로 먹고 사는 자이기 때문에 인용하여 비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