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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1)

열녀전보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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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齊靈仲子
齊靈仲子者之女注+① 侯當作公. 宋國子姓公爵也. 齊靈公之夫人也 靈公娶於魯러니 聲姬生子光하니 以爲太子注+② 聲姬, 顏懿姬之姪也. 懿姬無子, 故以聲姬子爲太子.注+③ 【校注】 左傳 “齊侯娶于魯, 曰顔懿姬, 無子. 其姪鬷聲姬生光, 以爲大子.” 此節其文而有誤脫.하다 夫人仲子與其娣戎子 皆嬖於公이라 仲子生子牙 戎子請以牙爲太子代光하니 公許之하다
仲子曰 不可하니이다이니 不祥이요 諸侯之難注+① 聞當作間, 字形之誤. 見左傅.이니 失謀니이다 夫光之立也하여 列於諸侯矣어늘 今無故而廢之 是專絀諸侯注+② 絀左傳作黜, 古字通也. 而以難犯不祥也悔之리이다 在我而已注+③ 心當作必. 悔之下脫公曰二字. 見左傳.
仲子曰 妾非讓也 禍之萌也注+④ 誠當作識. 或作誡, 俱字形之誤.일새니이다하고 하고 遂逐太子光하고 而立牙爲太子하고 高厚爲傅하다
靈公疾 注+① 高厚當作崔杼之誤. 見左傳.하고 及公薨하야 崔杼立光而殺高厚하니 以不用仲子之言으로 禍至於此
君子謂 仲子明於事理라하니라 詩云 聽用我謀 庶無大悔리라하니 仲子之謂也
頌曰
齊靈仲子
仁智顯明이로다
靈公立牙하고
廢姬子光하니
仲子强諫하야
棄適不祥이라
公旣不聽이러니
果有禍殃이로다


3-8 의 부인 중자仲子
제령중자齊靈仲子나라 임금의 딸이자注+① ‘’는 응당 ‘’이 되어야 한다. 송나라는 성이 이고 작위爵位이다. 영공靈公의 부인이다. 처음에 영공은 나라에서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성희聲姬가 아들 을 낳자 그를 태자太子로 삼았다.注+성희聲姬안의희顏懿姬의 질녀이다. 의희懿姬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성희의 아들을 태자로 삼은 것이다.注+③ 【교주校注 여기에서는 그 문장을 산절刪節하였는데 오탈誤脫이 있다.
그러자 중자가 말하기를 “안 됩니다. 상도常道를 폐하는 것이니 상서롭지 못하고, 제후를 범하는 어려운 일이니注+① ‘’은 응당 ‘’이 되어야 하니, 자형字形이 비슷해서 생긴 오자이다. 잘못된 계책입니다. 무릇 이 이미 태자太子가 되어 제후諸侯회맹會盟에 참여하였는데, 지금 까닭 없이 그를 폐한다면 이는 멋대로 행동하여 제후諸侯들을 멸시하는 것이고,注+② ‘’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로 되어 있다. 고자古字에 통용하였다. 이루기 어려운 일로 상서롭지 못함을 범하는 것이니, 주군께서는 반드시 후회하실 것입니다.” 하였으나, 영공은 “나에게 달렸을 따름이오.”注+③ ‘’은 응당 ‘’이 되어야 한다. ‘회지悔之’ 아래에 ‘공왈公曰’ 두 글자가 빠졌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이에 중자가 “이 책임을 미루려는 것이 아니라, 재앙의 싹임을 알아서입니다.”注+④ ‘’은 응당 ‘’이 되어야 한다. 혹 ‘’로 되어 있기도 하는데, 모두 자형字形이 비슷해서 생긴 오자이다.라고 하며 죽기를 무릅쓰고 간쟁하였으나, 영공은 끝내 듣지 않고 마침내 태자 을 축출하고 를 세워 태자로 삼고
영공이 병이 들자 가 몰래 을 맞이해 왔으며,注+① ‘고후高厚’는 응당 ‘최저崔杼’의 오류로 봐야 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보인다. 중자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화가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군자가 말하기를 “중자仲子는 사리에 밝았다.”라고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중자를 두고 한 말이다.
제령중자齊靈仲子제령중자齊靈仲子
은 다음과 같다.
제나라 영공의 부인 중자는
어질고 지혜로우며 현명하였도다
영공이 를 세우고
성희의 아들 을 폐하려 하자
중자는 힘을 다해 간하여
적자를 폐하면 상서롭지 못하다 하였다오
영공이 말을 듣지 않더니
과연 재앙을 만나고 말았도다


역주
역주1 齊 靈公 : 春秋時代 齊나라 임금으로, 姜姓 呂氏이고 이름은 环이다.
역주2 春秋左氏傳에는……하였다 : ≪春秋左氏傳≫ 襄公 19년 조에 보인다. 이에 대한 杜預의 注에 “兄의 자식을 姪이라 한다. 顔과 鬷은 모두 두 姬女의 母姓이므로 인하여 호로 삼은 것이다. 懿와 聲은 모두 諡이다.[兄子曰姪 顔鬷皆二姬母姓 因以爲號 懿聲皆諡]”라고 하였다.
역주3 부인……하였다 : ≪春秋左氏傳≫ 襄公 19년 조에는 “子姓을 가진 여러 첩들 중에 仲子와 戎子가 있었는데 융자가 총애를 받으니, 중자는 아들 牙를 낳자 융자에게 맡겼다. 융자가 齊侯에게 牙를 태자로 삼기를 청하니 이를 허락하였다.[諸子仲子戎子 戎子嬖 仲子生牙 屬諸戎子 戎子請以爲大子 許之]”라고 하였다.
역주4 (侯)[公] : 저본에는 ‘侯’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公’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春秋左氏傳에 보인다 : ≪春秋左氏傳≫ 襄公 19년 조에 “제후를 범하는 것이니 성공하기 어렵습니다.[間諸侯 難]”라고 하였다.
역주6 高厚 : 齊나라의 卿相이다.
역주7 마침내……삼았다 : ≪春秋左氏傳≫ 襄公 19년 조에는 “마침내 태자 光을 동쪽 邊邑으로 보내고, 牙를 태자로 삼고서 高厚를 牙의 太傅로, 夙沙衛를 少傅로 삼았다.[遂東大子光 使高厚傅牙 以爲大子 夙沙衛爲少傅]”라고 하였다.
역주8 廢常 : ≪春秋左氏傳≫ 襄公 19년 조의 杜預의 注에 “嫡子를 세우는 常道를 폐기하는 것이다.[廢立嫡之常]”라고 하였다.
역주9 (聞)[間] : 저본에는 ‘聞’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間’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心)[必] : 저본에는 ‘心’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必’로 바로잡았다.
역주11 [公曰] : 저본에는 ‘公曰’이 없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2 (誠)[識] : 저본에는 ‘誠’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識’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3 仲子曰……公終不聽 : ≪春秋左氏傳≫에는 없다.
역주14 崔杼 : 齊나라의 大夫로, 姜姓 崔氏이고 이름이 杼이다. 崔子 또는 崔武子라고도 한다.
역주15 영공이……죽였으니 : ≪春秋左氏傳≫ 襄公 19년 조에는 “齊侯가 病을 앓자, 崔杼가 은밀히 光을 맞이해 와서 齊侯의 병이 위독하자 그를 다시 태자로 세웠다. 光이 戎子를 죽여 그 시체를 조정에 진열하였으니 禮가 아니다. 부인에게는 시행하는 刑律이 없고, 비록 死刑에 처한다 하더라도 그 시체를 시장이나 조정에 진열하지 않는다. 여름 5월 그믐 임진일에 齊 靈公이 졸하니, 莊公(光)이 즉위하였다. 句瀆의 언덕에서 公子 牙를 逮捕하였다. 장공이 夙沙衛가 자기를 廢黜되게 하였다고 여기니, 숙사위는 高唐으로 달아나 배반하였다.……가을 8월에 제나라 최저가 灑藍에서 高厚를 죽이고서 그의 家産을 겸병하였다. 經에 ‘제나라가 그 대부를 죽였다.’고 기록하였으니, 이는 고후가 임금의 昏謬한 명을 따랐기 때문이다.[齊侯疾 崔杼微逆光 疾病而立之 光殺戎子 尸諸朝 非禮也 婦人無刑 雖有刑 不在朝市 夏五月壬辰晦 齊靈公卒 莊公卽位 執公子牙於句瀆之丘 以夙沙衛易己 衛奔高唐以叛……秋八月 齊崔杼殺高厚於灑藍 而兼其室 書曰齊殺其大夫 從君於昏也]”라고 하였다.
역주16 (高厚)[崔杼] : 저본에는 ‘高厚’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崔杼’로 바로잡았다.
역주17 : ≪春秋左氏傳≫에는 ‘逆’으로 되어 있다.
역주18 내……없으리라 : ≪詩經≫ 〈大雅 抑〉에 보인다.

열녀전보주(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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