懷嬴者
는 秦穆公之女
요 晉惠公太子
之妃也
注+① 穆下脫公字, 子下脫圉字.라 圉質於秦
에 穆公以嬴妻之
러라
六年
에 圉將逃歸
할새 謂嬴氏曰 吾去國數年
이로대 子父之接忘
하고 而秦晉之
不加親也
注+① 友當爲交, 字形之誤.라 夫鳥飛反鄕
注+② 【集注】 禮三年問 “今是大鳥獸, 則失喪其群匹, 越月踰時焉, 則必反巡過其故鄕.”하고 狐死首邱
注+③ 首, 猶向也. 言死時必正向其故邱, 不忘本也.하나니 我其首晉而死
라 子其與我行乎
아
嬴氏對曰 子
는 晉太子也
로 辱於秦
하니 子之欲去
가 不亦宜乎
잇가 雖然
이나 寡君使
로 侍執巾櫛
은 以固子也
어늘 今吾不足以結子
면 是吾不肖也
요 從子而歸
면 是棄君也
요 言子之謀
면 是負妻之義也
라
三者無一可行하니 雖吾不從子也나 子行矣하소서 吾不敢泄言이어니와 亦不敢從也니이다 子圉遂逃歸하다
5-3 진晉나라 태자太子 어圉의 비妃 회영懷嬴
회영懷嬴은
의 딸이자
의
태자太子 어圉의
비妃이다.
注+① ‘목穆’ 아래에 ‘공公’자가 빠졌고, ‘자子’ 아래에 ‘어圉’자가 빠졌다. 어가
진秦나라에 볼모로 와 있을 때
목공穆公이
회영懷嬴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6년 뒤
어圉가 장차 도망하여 돌아가려고 할 적에,
영씨嬴氏에게 말하기를 “내가 고국을 떠나온 지 몇 해나 흘렀는데, 부자간의 만남도 단절되고
진秦나라와
진晉나라의 외교관계도 더 이상 친밀해지지 않고 있소.
注+① ‘우友’는 응당 ‘교交’가 되어야 하니, 자형字形이 비슷해서 생긴 오자이다. 무릇
注+② 【집주集注】 ≪예기禮記≫ 〈삼년문三年問〉에 “지금 큰 새와 짐승은 무리와 짝을 잃으면 한 달이 넘고 한 철이 넘어도 반드시 돌아와서 옛 고향을 지나간다.”라고 하였다. 注+③ ‘수首’는 ‘향向’과 같다. 죽을 때 반드시 똑바로 그 옛 언덕을 향한다는 말이니, 근본을 잊지 않는 것이다. 나도 그
진晉나라를 향해 죽고자 하오. 그대는 나와 함께 가시겠소?” 하였다.
영씨嬴氏가 대답하기를 “당신은 진晉나라 태자太子입니다. 진秦나라에서 굴욕을 당하고 계시니, 당신이 떠나고자 하는 것은 또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우리 임금께서 저로 하여금 수건과 빗을 들고 모시게 한 것은 당신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인데, 지금 제가 당신을 잡아두지 못하면 이는 제가 불초不肖한 것이요, 당신을 따라 돌아간다면 이는 임금을 버리는 것이며, 당신의 계획을 발설하면 이는 아내의 도리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태자 어는 마침내 도망하여 돌아갔다.
군자가 말하기를 “
회영懷嬴은 부부간의 도리에 잘 처신하였다.”라고 하였다.
진어회영晉圉懷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