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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2)

열녀전보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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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楚昭越姬
昭王讌遊할새 蔡姬在左하고 越姬注+① 藝文類聚引右作乘.러니 駟以馳逐이라가 遂登之臺하여 以望雲夢之囿注+② 附社, 臺名也. 文選“楚襄王與宋玉, 遊於雲夢之臺.” 注引漢書音義張揖曰 “雲夢, 楚藪也. 在南郡華容縣, 其中有臺館.”하고 觀士大夫逐者하다
注+① 驩, 與歡同, 喜樂也. 乃顧謂二姬曰 樂乎 蔡姬對曰 樂이니이다 王曰 吾願與子生若此하고 死又若此하노라
蔡姬曰 昔弊邑寡君 固以其黎民之役으로 事君王之馬이라 以婢子之身으로어늘 今乃하니 固願生俱樂하고 死同하노이다 王顧謂史호대 書之하라 蔡姬許從孤死矣라하다
乃復謂越姬한대 越姬對曰 樂則樂矣어니와 然而不可久也니이다 王曰 吾願與子生若此하고 死若此하니 其不可得乎
越姬對曰 昔吾先君莊王淫樂하여 三年不聽政事라가 終而能改하여 卒覇天下하니이다
妾以君王爲能法吾先君하여 將改斯樂而勤於政也러니 今則不然하고 而要婢子以死하니 其可得乎잇가 且君王以束帛乘馬 取婢子於弊邑한대 寡君受之太廟也注+① 昏禮, 自納采以下, 壹受之於廟. 不約死로이다
妾聞之諸姑호니 婦人以死彰君之善하고 益君之寵이어니와 不聞其以苟從其闇死爲榮하니 妾不敢聞命이니이다 於是 王寤하여 敬越姬之言이나 而猶親嬖蔡姬也러라
居二十五年 王救陳할새 二姬從이라 王病在軍中이어늘 有赤雲夾日如飛注+① 烏當作鳥. 見左傳.注+② 【校注】 渚宮舊事同. 後漢書皇后紀上注引及左傳ㆍ說苑君道篇竝作鳥. 王問하니 史曰 是害王身이나 然可以移於이라
將相聞之하고 將請以身禱於神하니 王曰 將相之於孤 猶股肱也 今移禍焉인들 庸爲去是身乎注+③ 庸, 豈也. 言移禍於股肱, 不得爲病去身也.아하고하다
越姬曰 大哉 君王之德이여 妾願從王矣니이다 昔日之遊 淫樂也 是以 不敢許어니와 及君王復於禮하얀 國人皆將爲君王死하니 而況於妾乎잇가 請願先驅狐狸於地下하노이다
王曰 昔之遊樂 吾戲耳 若將必死 是彰孤之不德也 越姬曰 昔日 妾雖口不言이나 心旣許之矣니이다 妾聞호니 信者 不負其心하고 義者 不虛設其事라하니 妾死王之義 不死王之니이다하고 遂自殺注+① 【校注】 餘杭嚴氏杰曰 “左傳, 白公勝之亂, 劫惠王, 如高府, 圉公陽穴宮, 負王以如昭夫人之宮. 杜注云 ‘夫人, 王母越女.’ 據此, 不得云死於昭王之前矣.”하다
王病甚 讓位於三弟로대 三弟不聽하다 王薨於軍中하다 蔡姬竟不能死러라
王弟子閭 與子西子期 謀曰 母信者 其子必仁이라하고 乃伏師閉壁注+① 壁, 壁壘也. 伏師閉壁, 爲王薨故, 恐爲敵所乘.하고 迎越姬之子熊章立하니 是爲惠王이라 然後 罷兵하고 歸葬昭王이러라
君子謂 越姬 信能死義라하니라 詩曰 德音莫違인댄 及爾同死호리라하니 越姬之謂也
頌曰
楚昭遊樂
要姬從死로다
蔡姬許王이나
越姬執禮로다
終獨死節하니
群臣嘉美로다
維斯兩姬
其德不比로다


5-4 의 희첩 월희越姬
소왕昭王의 희첩 월희越姬월왕越王 의 딸이자 초 소왕의 희첩姬妾이다. 소왕이 연회를 베풀며 놀 적에 채희蔡姬는 왼쪽에 있고 월희는 오른쪽에 있었는데,注+ 소왕이 직접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달리며 짐승을 쫓다가 마침내 부사附社에 올라 운몽雲夢원림園林을 바라보며注+② ‘부사附社’는 대명臺名이다. 사대부士大夫들이 말을 타고 짐승을 쫓아 달리는 것을 구경하였다.
한참을 즐거워하다가注+① ‘’은 ‘’과 같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함이다. 두 첩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즐거운가?” 하니, 채희蔡姬가 대답하기를 “즐겁습니다.” 하였다. 소왕이 말하기를 “내 너와 함께 살아서도 이와 같고 죽어서도 이와 같기를 원하노라.” 하니,
채희가 말하기를 “옛날에 저희 나라 임금은 진실로 자기 백성들의 요역徭役을 사용하여 군왕의 말발굽을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소첩의 몸을 뇌물이나 노리개 감으로 삼아 군왕께 바친 것인데, 지금 마침내 비빈妃嬪의 대열에 나란히 끼었으니, 진실로 살아서 함께 즐기고 한 때에 죽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소왕이 사관史官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기록하라. 채희가 나를 따라 죽겠다고 허락하였다.”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월희越姬에게 말하니, 월희가 대답하기를 “즐겁기는 즐겁습니다만, 오래도록 누릴 수는 없습니다.” 하였다. 소왕昭王이 말하기를 “내 너와 함께 살아서도 이와 같고 죽어서도 이와 같기를 원하는데, 안 된다는 것이냐?” 하니,
월희가 대답하기를 “옛날에 우리 선군先君 께서는 지나치게 즐기면서 3년 동안이나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다가 마침내 고치신 뒤 결국 천하에 패자覇者가 되었습니다.
첩은 군왕께서 능히 우리 선군先君을 본받아 장차 이러한 즐거움을 고치고 정사에 부지런히 힘쓰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하지도 않고 저에게 죽음까지 요구하시니, 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군왕께서 한 묶음의 비단과 네 필의 말을 예물禮物로 보내어 저를 우리나라에서 데리고 왔는데, 우리 임금께서 태묘太廟에서 예물을 받을 때注+ 죽음을 약속하지는 않았습니다.
첩은 고모들에게 부인婦人은 죽음으로 임금의 선을 드러내고 임금의 총애를 더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몽매한 죽음에 구차히 따라 죽는 것으로 영예를 삼는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 첩은 감히 명을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그제야 소왕이 깨달아 월희의 말을 공경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채희를 더 가까이하고 총애하였다.
초소월희楚昭越姬초소월희楚昭越姬
25년이 지난 뒤 소왕昭王나라를 구원하러 출정하였을 때 두 첩도 따라갔다. 소왕이 병으로 군중軍中에 있었는데 붉은 구름이 해를 끼고 있는 형상이 마치 날아가는 새 같았다.注+① ‘’는 응당 ‘’가 되어야 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보인다.注+② 【교주校注】 ≪저궁구사渚宮舊事≫에는 같다. 및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설원說苑≫ 〈군도편君道篇〉에는 모두 ‘’로 되어 있다. 소왕이 나라 태사太史에게 물으니, 태사가 말하기를 “이는 왕의 신상에 재앙이 닥친다는 징조입니다. 그러나 장군이나 재상에게 옮겨가게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장군과 재상이 이를 듣고 장차 자신들의 몸으로 재앙이 옮겨오도록 에게 기도할 것을 청하려 하니,
소왕이 말하기를 “장군과 재상은 나에게 팔다리와도 같으니, 지금 재앙을 〈팔다리로〉 옮긴들 어찌 이 몸에서 사라지겠는가.”注+③ ‘’은 ‘어찌’이다. 재앙을 팔다리로 옮긴들 병이 몸에서 떠나가지 않는다는 말이다.라고 하며 듣지 않았다.
월희越姬가 말하기를 “훌륭하십니다, 군왕의 덕이여! 이에 첩은 군왕을 따르고자 합니다. 옛날의 놀이는 지나친 향락이었기 때문에 감히 허락하지 못하였습니다만, 군왕께서 로 돌아오심에 미쳐서는 나라 사람들이 모두 군왕을 위해 죽으려 하니, 하물며 첩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청컨대 제가 하였다.
소왕이 말하기를 “옛날에 놀며 즐기던 때의 일은 나의 장난이었을 뿐이오. 그대가 장차 기어이 죽는다면 이는 나의 부덕을 드러내는 것이오.” 하니, 월희가 말하기를 “지난 날 첩이 비록 입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는 이미 죽음을 허락하였습니다. 첩이 듣건대, 미더운 자는 그 마음을 저버리지 않고 의로운 자는 그 일을 헛되이 베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첩은 왕의 의로움을 위해 죽는 것이지 왕의 총애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注+① 【교주校注여항餘杭 엄씨嚴氏 이 말하기를 이에 대한 두예杜預에 ‘소부인昭夫人혜왕惠王의 어머니로, 나라 여자女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의거하면 〈월희越姬가〉 소왕昭王보다 먼저 죽었다고 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소왕昭王이 병이 위중해지자 세 아우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는데, 세 아우들이 듣지 않았다. 소왕이 군중軍中에서 죽었다. 채희蔡姬는 끝내 따라 죽지 않았다.
소왕의 아우 자려子閭자서子西, 자기子期와 더불어 상의하여 말하기를 “어머니가 미더운 사람이니, 그 자식이 반드시 어질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군사를 배치하고 를 닫은 뒤注+① ‘’은 벽루壁壘이다. 군사를 배치하고 벽루壁壘를 닫은 것은 왕의 죽음으로 인해 적에게 공격을 받을까 염려해서이다. 월희의 아들 웅장熊章을 맞이하여 세우니, 이가 바로 혜왕惠王이다.
군자가 이르기를 “월희越姬는 진실로 능히 에 죽었다.”라고 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월희를 두고 한 말이다.
은 다음과 같다.
나라 소왕昭王이 놀며 즐길 때
두 첩에게 따라 죽기를 바랐다네
채희蔡姬는 왕에게 허락하였으나
월희越姬를 고집하였다오
끝내 홀로 절의에 죽으니
신하들이 아름답게 여겼도다
채희와 월희 이 두 첩은
그 덕이 서로 같지 않도다


역주
역주1 楚 昭王 : 春秋時代 楚나라 임금으로, 熊氏이고 이름은 壬이다. 平王의 아들이자 共王의 손자이다.
역주2 句踐 : 春秋時代 越나라 임금으로, 성은 姒이다. 숙적인 吳王 夫差에게 패한 뒤, 臥薪嘗膽 끝에 결국 夫差를 꺾고 설욕하였다.
역주3 藝文類聚의……있다 : ≪藝文類聚≫ 卷28 〈人部 12 遊覽〉에 보인다.
역주4 文選에……하였다 : ≪文選≫ 권19 〈髙唐賦〉에 대한 唐나라 李善의 注에 보인다.
역주5 楚昭越姬者……楚昭王之姬也 : ≪渚宮舊事≫에는 ‘越姒者 越王勾踐之女 昭王聘爲妃’로 되어 있다.
역주6 參右 : ≪太平御覽≫에는 ‘驂乘’으로 되어 있고, ≪藝文類聚≫에는 ‘參乘’으로 되어 있다.
역주7 王親乘 : ≪太平御覽≫에는 없다.
역주8 附社 : ≪太平御覽≫에는 ‘附燕莊’으로 되어 있고, ≪藝文類聚≫에는 ‘附莊’으로 되어 있다.
역주9 旣驩 : ≪渚宮舊事≫에는 ‘王歡’으로 되어 있다.
역주10 : ≪渚宮舊事≫에는 이 뒤에 ‘猶以爲未足’이 더 있다.
역주11 苞苴玩好 : ‘苞苴’는 생선이나 고기를 싸는 꾸러미로 뇌물을 뜻하고, ‘玩好’는 진주와 옥 같은 玩賞用 奇珍異寶로 노리개를 가리킨다.
역주12 比於妃嬪 : ≪渚宮舊事≫에는 ‘比好妃嬪 列於後宫’으로 되어 있다.
역주13 : ≪渚宮舊事≫에는 이 뒤에 ‘豈敢有貳哉’가 더 있다.
역주14 莊王 : 春秋時代 楚나라 임금으로, 羋姓, 熊氏이고 이름은 旅이다.
역주15 昏禮에……받는다 : 昏禮의 納采, 問名, 納吉, 納徵, 請期, 親迎 등 이른바 六禮를 모두 太廟에서 고하고 행한다는 말이다. ‘納采’는 남자 측에서 여자 측에 求婚의 禮物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역주16 後漢書……인용문 : ≪後漢書≫ 卷10上 〈皇后紀 第10上 鄧皇后紀〉의 注에 보인다.
역주17 소왕이……않았다 : ≪春秋左氏傳≫ 哀公 6년 조에 “이해에 한 떼의 붉은 새 모양을 한 彩雲이 태양을 끼고 사흘 동안 비상하였다. 楚子가 사람을 보내어 周나라 太史에게 물으니, 주나라 태사가 말하기를 ‘그 應驗이 아마도 왕의 身上에 당도할 것이다. 그러나 禳祭를 지낸다면 그 화를 令尹이나 司馬에게로 옮겨가게 할 수 있다.’ 하였다. 昭王이 말하기를 ‘腹心의 병을 제거하려고 그 병을 股肱에게 옮겨놓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나에게 大過가 없다면 하늘이 어찌 나를 夭死시킬 것이며, 罪가 있어 받는 罰이라면 또 어찌 남에게 옮겨가게 할 수 있겠는가?’ 하고서, 끝내 양제를 지내지 않았다.[是歲也 有雲如衆赤鳥 夾日以飛三日 楚子使問諸周太史 周太史曰 其當王身乎 若禜之 可移於令尹司馬 王曰 除腹心之疾 而寘諸股肱 何益 不穀不有大過 天其夭諸 有罪受罰 又焉移之 遂弗禜]”라고 하였다.
역주18 (烏)[鳥] : 저본에는 ‘烏’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鳥’로 바로잡았다.
역주19 周史 : ≪說苑≫에는 ‘太史州黎’로 되어 있다.
역주20 將相 : ≪春秋左氏傳≫, ≪渚宮舊事≫, ≪太平御覽≫, ≪說苑≫ 등에는 모두 ‘令尹司馬’로 되어 있다.
역주21 : ≪渚宮舊事≫에는 이 뒤에 ‘蔡姬曰人實欲之 何爲不使’가 더 있다.
역주22 먼저……원합니다 : 남을 위해 목숨을 바쳐 먼저 죽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역주23 春秋左氏傳에……하였는데 : ≪春秋左氏傳≫ 哀公 16년 조에 “白公이 子閭를 왕으로 세우고자 하자, 자려가 반대하니 드디어 무기로 협박하였다. 자려가 말하기를 ‘王孫께서 만약 초나라를 안정시키고 왕실을 바로잡은 뒤에 나를 비호한다면 이는 나의 바람이니 감히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까마는, 만약 오로지 私利만을 꾀하여 왕실을 傾覆시고 초나라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나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따르지 않겠습니다.’ 하니, 백공이 드디어 자려를 죽이고, 惠王을 데리고 高府로 갔다. 石乞이 고부의 문을 지키니, 圉公陽이 宮中에 굴을 파고서 혜왕을 업고 昭夫人의 궁으로 갔다.[白公欲以子閭爲王 子閭不可 遂劫以兵 子閭曰 王孫若安靖楚國 匡正王室 而後庇焉 啓之願也 敢不聽從 若將專利以傾王室 不顧楚國 有死不能 遂殺之 而以王如高府 石乞尹門 圉公陽穴宮 負王以如昭夫人之宮]”라고 하였다.
역주24 : ≪渚宮舊事≫에는 ‘於’로 되어 있다.
역주25 : ≪渚宮舊事≫에는 이 아래 ‘內’가 더 있다.
역주26 [昭] : ≪列女傳校注≫에는 ‘昭’가 없으나, ≪春秋左氏傳≫ 杜預의 注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7 壁壘 : 軍營을 에워싼 담장을 말한다.
역주28 昭王이……치렀다 : ≪春秋左氏傳≫ 哀公 6년 조에 “가을 7월에 楚子가 城父에 주둔하여 陳나라를 구원하려 할 때 出戰에 대해 점을 치니 불길하고, 退軍에 대해 점을 치니 역시 불길하자, 昭王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죽음이 있을 뿐이다. 재차 패배하는 것은 楚軍에게는 죽는 것만 못하고, 盟邦을 버리고 원수를 피해 도망가는 것도 죽는 것만 못하다. 죽기는 일반이니 원수와 싸우다가 죽겠다.’고 하고서 公子 申에게 명하여 王位를 계승하게 하자, 申이 그 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公子 結에게 명하니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公子 啓에게 명하니, 다섯 차례 사양한 뒤에 허락하였다. 전쟁하려 할 때 소왕이 병을 앓았다. 庚寅日에 소왕이 大冥을 공격하고서 城父에서 卒하였다. 子閭가 王位를 辭退하며 말하기를 ‘군왕께서 당신의 아들을 놓아두고 다른 사람에게 왕위를 사양하셨으니, 신하들이 어찌 감히 임금을 잊을 수 있겠는가. 임금의 명을 따르는 것이 順理이고, 임금의 아들을 嗣王으로 세우는 것도 順理이니, 두 順理 중에 한 가지도 잃을 수 없다.’ 하고서, 子西, 子期와 상의하여 은밀히 군대를 보내고 도로를 봉쇄한 다음 越女의 아들 章을 맞이해 와 그를 임금으로 세운 뒤에 還軍하였다.[秋七月 楚子在城父 將救陳 卜戰不吉 卜退不吉 王曰 然則死也 再敗楚師不如死 棄盟逃讐亦不如死 死一也 其死讐乎 命公子申爲王 不可 則命公子結 亦不可 則命公子啓 五辭而後許 將戰 王有疾 庚寅 昭王攻大冥 卒于城父 子閭退曰 君王舍其子而讓 群臣敢忘君乎 從君之命 順也 立君之子 亦順也 二順不可失也 與子西子期謀 潛師閉塗 逆越女之子章 立之而後還]”라고 하였다. ‘公子 申’은 子西이고 ‘公子 結’은 子期이고 ‘公子 啓’는 子閭이다.
역주29 德音이……함께하리라 : ≪詩經≫ 〈邶風 谷風〉에 보인다.

열녀전보주(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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