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昭王讌遊
할새 蔡姬在左
하고 越姬
注+① 藝文類聚引右作乘.러니 駟以馳逐
이라가 遂登
之臺
하여 以望雲夢之囿
注+② 附社, 臺名也. 文選“楚襄王與宋玉, 遊於雲夢之臺.” 注引漢書音義張揖曰 “雲夢, 楚藪也. 在南郡華容縣, 其中有臺館.”하고 觀士大夫逐者
하다
注+① 驩, 與歡同, 喜樂也.에 乃顧謂二姬曰 樂乎
아 蔡姬對曰 樂
이니이다 王曰 吾願與子生若此
하고 死又若此
하노라
蔡姬曰 昔弊邑寡君
이 固以其黎民之役
으로 事君王之馬
이라 故
로 以婢子之身
으로 爲
어늘 今乃
하니 固願生俱樂
하고 死同
하노이다 王顧謂史
호대 書之
하라 蔡姬許從孤死矣
라하다
乃復謂越姬한대 越姬對曰 樂則樂矣어니와 然而不可久也니이다 王曰 吾願與子生若此하고 死若此하니 其不可得乎아
越姬對曰 昔吾先君莊王淫樂하여 三年不聽政事라가 終而能改하여 卒覇天下하니이다
妾以君王爲能法吾先君
하여 將改斯樂而勤於政也
러니 今則不然
하고 而要婢子以死
하니 其可得乎
잇가 且君王以束帛乘馬
로 取婢子於弊邑
한대 寡君受之太廟也
注+① 昏禮, 自納采以下, 壹受之於廟.에 不約死
로이다
妾聞之諸姑호니 婦人以死彰君之善하고 益君之寵이어니와 不聞其以苟從其闇死爲榮하니 妾不敢聞命이니이다 於是에 王寤하여 敬越姬之言이나 而猶親嬖蔡姬也러라
居二十五年
에 王救陳
할새 二姬從
이라 王病在軍中
이어늘 有赤雲夾日如飛
注+① 烏當作鳥. 見左傳.注+② 【校注】 渚宮舊事同. 後漢書皇后紀上注引及左傳ㆍ說苑君道篇竝作鳥.라 王問
하니 史曰 是害王身
이나 然可以移於
이라
將相聞之
하고 將請以身禱於神
하니 王曰 將相之於孤
에 猶股肱也
니 今移禍焉
인들 庸爲去是身乎
注+③ 庸, 豈也. 言移禍於股肱, 不得爲病去身也.아하고 不
하다
越姬曰 大哉
라 君王之德
이여 是
로 妾願從王矣
니이다 昔日之遊
는 淫樂也
라 是以
로 不敢許
어니와 及君王復於禮
하얀 國人皆將爲君王死
하니 而況於妾乎
잇가 請願先驅狐狸於地下
하노이다
王曰 昔之遊樂
은 吾戲耳
니 若將必死
면 是彰孤之不德也
라 越姬曰 昔日
에 妾雖口不言
이나 心旣許之矣
니이다 妾聞
호니 信者
는 不負其心
하고 義者
는 不虛設其事
라하니 妾死王之義
요 不死王之
也
니이다하고 遂自殺
注+① 【校注】 餘杭嚴氏杰曰 “左傳, 白公勝之亂, 劫惠王, 如高府, 圉公陽穴宮, 負王以如昭夫人之宮. 杜注云 ‘夫人, 王母越女.’ 據此, 不得云死於昭王之前矣.”하다
王病甚에 讓位於三弟로대 三弟不聽하다 王薨於軍中하다 蔡姬竟不能死러라
王弟子閭
가 與子西子期
로 謀曰 母信者
니 其子必仁
이라하고 乃伏師閉壁
注+① 壁, 壁壘也. 伏師閉壁, 爲王薨故, 恐爲敵所乘.하고 迎越姬之子熊章立
하니 是爲惠王
이라 然後
에 罷兵
하고 歸葬昭王
이러라
君子謂 越姬는 信能死義라하니라 詩曰 德音莫違인댄 及爾同死호리라하니 越姬之謂也라
초楚 소왕昭王의 희첩
월희越姬는
월왕越王 의 딸이자 초 소왕의
희첩姬妾이다. 소왕이 연회를 베풀며 놀 적에
채희蔡姬는 왼쪽에 있고 월희는 오른쪽에 있었는데,
注+① 소왕이 직접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달리며 짐승을 쫓다가 마침내
부사附社의
대臺에 올라
운몽雲夢의
원림園林을 바라보며
注+② ‘부사附社’는 대명臺名이다. 사대부士大夫들이 말을 타고 짐승을 쫓아 달리는 것을 구경하였다.
한참을 즐거워하다가
注+① ‘환驩’은 ‘환歡’과 같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함이다. 두 첩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즐거운가?” 하니,
채희蔡姬가 대답하기를 “즐겁습니다.” 하였다. 소왕이 말하기를 “내 너와 함께 살아서도 이와 같고 죽어서도 이와 같기를 원하노라.” 하니,
채희가 말하기를 “옛날에 저희 채蔡나라 임금은 진실로 자기 백성들의 요역徭役을 사용하여 군왕의 말발굽을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소첩의 몸을 뇌물이나 노리개 감으로 삼아 군왕께 바친 것인데, 지금 마침내 비빈妃嬪의 대열에 나란히 끼었으니, 진실로 살아서 함께 즐기고 한 때에 죽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소왕이 사관史官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기록하라. 채희가 나를 따라 죽겠다고 허락하였다.”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월희越姬에게 말하니, 월희가 대답하기를 “즐겁기는 즐겁습니다만, 오래도록 누릴 수는 없습니다.” 하였다. 소왕昭王이 말하기를 “내 너와 함께 살아서도 이와 같고 죽어서도 이와 같기를 원하는데, 안 된다는 것이냐?” 하니,
월희가 대답하기를 “옛날에 우리
선군先君 께서는 지나치게 즐기면서 3년 동안이나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다가 마침내 고치신 뒤 결국 천하에
패자覇者가 되었습니다.
첩은 군왕께서 능히 우리
선군先君을 본받아 장차 이러한 즐거움을 고치고 정사에 부지런히 힘쓰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하지도 않고 저에게 죽음까지 요구하시니, 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군왕께서 한 묶음의 비단과 네 필의 말을
예물禮物로 보내어 저를 우리나라에서 데리고 왔는데, 우리 임금께서
태묘太廟에서 예물을 받을 때
注+① 죽음을 약속하지는 않았습니다.
첩은 고모들에게
부인婦人은 죽음으로 임금의 선을 드러내고 임금의 총애를 더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몽매한 죽음에 구차히 따라 죽는 것으로 영예를 삼는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 첩은 감히 명을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그제야 소왕이 깨달아 월희의 말을 공경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채희를 더 가까이하고 총애하였다.
초소월희楚昭越姬
25년이 지난 뒤
소왕昭王이
진陳나라를 구원하러 출정하였을 때 두 첩도 따라갔다. 소왕이 병으로
군중軍中에 있었는데 붉은 구름이 해를 끼고 있는 형상이 마치 날아가는 새 같았다.
注+① ‘오烏’는 응당 ‘조鳥’가 되어야 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보인다.注+② 【교주校注】 ≪저궁구사渚宮舊事≫에는 같다. 및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설원說苑≫ 〈군도편君道篇〉에는 모두 ‘조鳥’로 되어 있다. 소왕이
주周나라
태사太史에게 물으니, 태사가 말하기를 “이는 왕의 신상에 재앙이 닥친다는 징조입니다. 그러나 장군이나 재상에게 옮겨가게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장군과 재상이 이를 듣고 장차 자신들의 몸으로 재앙이 옮겨오도록
신神에게 기도할 것을 청하려 하니,
월희越姬가 말하기를 “훌륭하십니다, 군왕의 덕이여! 이에 첩은 군왕을 따르고자 합니다. 옛날의 놀이는 지나친 향락이었기 때문에 감히 허락하지 못하였습니다만, 군왕께서
예禮로 돌아오심에 미쳐서는 나라 사람들이 모두 군왕을 위해 죽으려 하니, 하물며 첩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청컨대 제가
하였다.
소왕이 말하기를 “옛날에 놀며 즐기던 때의 일은 나의 장난이었을 뿐이오. 그대가 장차 기어이 죽는다면 이는 나의 부덕을 드러내는 것이오.” 하니, 월희가 말하기를 “지난 날 첩이 비록 입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는 이미 죽음을 허락하였습니다. 첩이 듣건대, 미더운 자는 그 마음을 저버리지 않고 의로운 자는 그 일을 헛되이 베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첩은 왕의 의로움을 위해 죽는 것이지 왕의 총애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注+① 【교주校注】 여항餘杭 엄씨嚴氏 걸杰이 말하기를 이에 대한 두예杜預의 주注에 ‘소부인昭夫人은 혜왕惠王의 어머니로, 월越나라 여자女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의거하면 〈월희越姬가〉 소왕昭王보다 먼저 죽었다고 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소왕昭王이 병이 위중해지자 세 아우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는데, 세 아우들이 듣지 않았다. 소왕이 군중軍中에서 죽었다. 채희蔡姬는 끝내 따라 죽지 않았다.
소왕의 아우
자려子閭가
자서子西,
자기子期와 더불어 상의하여 말하기를 “어머니가 미더운 사람이니, 그 자식이 반드시 어질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군사를 배치하고
를 닫은 뒤
注+① ‘벽壁’은 벽루壁壘이다. 군사를 배치하고 벽루壁壘를 닫은 것은 왕의 죽음으로 인해 적에게 공격을 받을까 염려해서이다. 월희의 아들
웅장熊章을 맞이하여 세우니, 이가 바로
혜왕惠王이다.
군자가 이르기를 “
월희越姬는 진실로 능히
의義에 죽었다.”라고 하였다.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월희를 두고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