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姬者
는 楚白公勝之妻也
라 白公死
어늘 其妻紡績不嫁
러라 吳王聞其美且有行
하고 使大夫持金百鎰白璧一雙以
焉
하고 以輜輧三十乘迎之
하여 將以爲夫人
이라
大夫致幣
하니 白妻辭之曰 白公
時
에 妾幸得充後宮
하여 執箕帚
하고 掌衣履
하고 拂枕席
하다가 託爲妃匹
이니이다 白公不幸而死
하니 妾願守其墳
하여 以終天年
이어늘
今王賜金璧之娉과 夫人之位하니 非愚妾之所聞也니이다 且夫棄義從欲者는 汚也요 見利忘死者는 貪也니 夫貪汚之人을 王何以爲哉리잇고
妾聞之호니 忠臣은 不借人以力하고 貞女는 不假人以色이라하니 豈獨事生若此哉리잇고 於死者亦然이니이다
妾旣不仁하여 不能從死어늘 今又去而嫁면 不亦太甚乎잇가하고 遂辭娉而不行하다
吳王賢其守節有義
하여 號曰
注+① 楚當在貞姬之上, 傳寫者誤倒其文耳. 藝文類聚引不誤.라하다
君子謂 貞姬廉潔而誠信이라하니라 夫任重而道遠이라 仁以爲己任이니 不亦重乎아 死而後已니 不亦遠乎아 詩云 彼美孟姜이여 德音不忘이로다하니 此之謂也라
美其嘉
注+① 績疑當作蹟, 字形之誤. 蹟與迹同.이로다
정희貞姬는
초楚나라
백공白公 승勝의 아내이다.
백공白公이 죽자, 그 아내는 길쌈으로 〈생계를 잇고〉
개가改嫁하지 않았다.
오吳나라 왕이 그녀가 용모가 아름답고 행실이 훌륭하다는 소문을 듣고는
대부大夫로 하여금 황금 100
과 백옥 한 쌍을 가지고 가서
빙문聘問하게 하고,
30
승乘으로 맞이하여 장차 그녀를 부인으로 삼으려 하였다.
대부가 예물을 바치자, 백공의 아내가 거절하며 말하기를 “백공이 살아계실 때 제가 다행히 후궁後宮으로 들어가 쓰레받기와 비를 잡고 옷과 신을 맡고 베개와 자리를 털다가 이로 인해 그의 정식 부인이 되었습니다.백공이 불행하게도 돌아가시고 말았으니 첩은 그의 무덤이나 지키면서 타고난 수명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지금 왕께서 황금과 백옥으로 빙문하고 부인의 자리를 내리시니, 어리석은 제가 들을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의義를 버리고 욕심을 쫓는 것은 더러운 것이고, 이利를 보고 죽음을 잊는 것은 탐욕스러운 것이니, 탐욕스럽고 더러운 사람을 왕께서 어디에 쓰겠습니까.
제가 듣건대, 충신忠臣은 다른 임금에게 힘을 빌려주지 않고, 정녀貞女는 다른 남자에게 미색美色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어찌 유독 살아 있는 사람만 이와 같이 섬겨야 할 뿐이겠습니까. 죽은 사람에게도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미 어질지 못하여 따라 죽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그를 버리고 개가한다면 또한 너무 심하지 않겠습니까.” 하고는, 마침내 빙문을 사양하고 가지 않았다.
오吳나라 왕이 그녀의
정절貞節을 지키고
의義가 있는 것을 훌륭하게 여겨 ‘
초정희楚貞姬’라 일컬었다.
注+① ‘초楚’는 응당 ‘정희貞姬’의 위에 있어야 하니, 전사傳寫한 자가 잘못하여 그 글을 도치倒置시킨 것일 뿐이다.
군자가 말하기를 “
정희貞姬는 청렴하고 결백하며 지성스럽고 미쁘다.”라고 하였다. 무릇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초백정희楚白貞姬
아름다운 행적을 찬미하였다네
注+① ‘적績’은 아마도 응당 ‘적蹟’이 되어야 할 듯하니, 자형字形이 비슷해서 생긴 오자이다. ‘적蹟’은 ‘적迹’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