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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2)

열녀전보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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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 更始夫人
漢更始韓夫人者 更始皇帝劉聖公之夫人也 佞諂邪媚하며 嗜酒無禮 王莾之末 更始以新市平林下江之衆起하여 自立爲更始將軍하고 兵威日盛일새 遂自立爲帝하여 以紹漢統이라
及申屠建討莽하여 首詣宛注+① 首上脫傳字, 見後漢書.하여 更始視之曰 不如此 當與霍光等이라
韓夫人曰 不如此 帝那得之잇가하니 其佞巧得更始意如此러라
更始既墮於政事注+② 【校注】 墮, 一本作惰.하고 而韓夫人嗜酒淫色注+③ 【集注】 梁云 “北堂書鈔后妃部作淫遊.” 道管案詩關雎序云 “不淫其色.”하여 日與更始沈湎注+④ 【校注】 飽舊誤飮, 從北堂書鈔校改.하며 乃令侍中으로 於幃幕之内 詐爲更始하여 與群臣語하니 群臣知非更始聲하고 莫不怨恨이라
奏事注+⑤ 後漢書尙書作常侍, 此疑誤. 韓夫人曰 帝方對我飲樂이어늘 正用是時来奏事아하니
由是 綱紀不攝하고 諸侯離畔하여 赤眉入關호되 不能制하니 乃將妻子하고 奉天子璽綬하여 降於赤眉라가 爲赤眉所殺이라
詩云 彼昬不知 一醉日富注+① 【校注】 一毛詩作壹.라하니 其更始與韓夫人之謂也


8-17 의 부인
경시제更始帝한씨부인韓氏夫人경시황제更始皇帝 유성공劉聖公부인夫人이다. 그녀는 아첨하고 사특하며 술을 좋아하고 무례無禮하였다. 처음 왕망王莾의 통치 말년에 경시제가 를 거느리고 봉기해서 스스로 경시장군更始將軍이 되었고, 병사들의 위세가 날로 강성해지자 드디어 스스로 황제가 되어 나라의 왕통王統을 이었다.
왕망王莽을 토벌하여 왕망의 수급首級에 전달해 오기에 이르러,注+① ‘’ 위에 ‘’자가 빠졌으니, ≪후한서後漢書≫에 보인다. 경시제更始帝가 이를 보고 말하기를 “왕망이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응당 곽광霍光동렬同列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한씨부인韓氏夫人이 말하기를 “만약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황제께서 어찌 제위帝位를 차지하였겠습니까.”라고 하였으니, 그녀가 아첨하고 교묘하여 경시제의 환심歡心을 사는 것이 이와 같았다.
경시제는 이미 정사政事에 태만하고注+② 【교주校注】 ‘’는 어떤 본에는 ‘’로 되어 있다. 한씨부인은 술을 좋아하고 음란에 빠져注+③ 【집주集注양단梁端이 이르기를 “≪북당서초北堂書鈔≫ 〈후비부后妃部〉에 〈‘음색淫色’은〉 ‘음유淫遊’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내(소도관蕭道管)가 살펴보건대, ≪시경詩經≫ 〈관저關雎〉의 〈모서毛序〉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다. 날마다 경시제와 술에 흠뻑 취하였으며,注+④ 【교주校注】 ‘’는 구본舊本에 ‘’으로 잘못되어 있었는데, ≪북당서초≫를 따라 교정하였다. 이에 으로 하여금 장막 안에서 거짓으로 경시제인 체하여 신하들과 말하게 하였다. 신하들이 경시제의 음성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원한을 갖지 않는 이가 없었다.
상시常侍정사政事상주上奏하면注+⑤ ≪후한서≫에는 ‘상서尙書’가 ‘상시常侍’로 되어 있으니, 이곳의 ‘상서尙書’는 아마 오자인 듯하다. 한씨부인이 말하기를 “황제皇帝께서 막 나와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거늘 꼭 이럴 때에 와서 정사를 아뢰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기강紀綱을 유지하지 못하고 제후諸侯들이 배반하여 에 들어왔는데도 제어하지 못하니, 이에 경시제가 처자妻子를 데리고 천자의 옥새 끈을 받들어 적미군에게 항복하였다가 적미군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注+① 【교주校注】 ‘’은 ≪모시毛詩≫에 ‘’로 되어있다.라고 하였으니, 경시제更始帝한씨부인韓氏夫人을 두고 이른 말이다.


역주
역주1 更始帝 : 淮陽王 劉玄으로, 字는 聖公이다. 劉氏 皇族의 먼 支孫이며, 後漢 光武帝 劉秀의 族兄이다.
역주2 新市……무리 : 新莽 말년에 綠林軍이 봉기하였을 때의 세 부대이다. 新莽 天鳳 4년에 王匡과 王鳳 등이 무리를 모아 봉기하여 綠林山을 근거지로 하여 ‘綠林軍’이라 하였다. 新莽 地皇 3년에 綠林軍이 둘로 나뉘었는데, 王常과 成丹이 南郡으로 진격하여 ‘下江兵’이라 하였고, 新市 사람 王匡과 王鳳 등이 북쪽으로 南陽에 들어가서 ‘新市兵’이라 하였고, 平林 사람 陳牧과 廖湛 등이 봉기하여 ‘平林兵’이라 하여 王匡과 호응하였다. 이들이 함께 劉玄을 皇帝로 추대하였다. 綠林山은 지금의 湖北省 當陽 東北쪽이고, 新市는 지금의 湖北省 京山縣 東北쪽이고, 南陽은 지금의 河南省 南陽이고, 南郡은 지금의 湖北省 江陵이고, 平林은 지금의 湖北省 隨縣 東北쪽이다.
역주3 申屠建 : 綠林軍의 將領으로, 西屛대장을 역임하였고, 군대를 거느리고 長安을 점령하였다. 후에 平氏王에 봉해졌다.
역주4 宛城 : 宛은 지명으로, 지금의 河南省 南陽이다. 更始帝가 일찍이 이곳에 도읍을 정하였다.
역주5 女色에……않는다 : ≪詩經≫ 〈關雎〉의 〈毛序〉에 “周南․召南은 시작을 바루는 道요 王化의 基本이다. 이 때문에 〈關雎〉는 淑女를 얻어 君子에 짝함을 즐거워하고 賢者를 등용함을 걱정하여 女色에 빠지지 아니하여 窈窕淑女를 서글퍼하고 賢才를 생각하여 善을 상하려는 마음이 없으니, 이것이 〈關雎〉의 의의이다.[周南召南 正始之道 王化之基 是以關雎 樂得淑女以配君子 憂在進賢 不淫其色 哀窈窕 思賢才 而無傷善之心焉 是關雎之義也]”라고 하였다.
역주6 侍中 : 官名이다. 황제의 좌우에서 侍從하며 雜事를 다스리고 宮廷에 출입하였다.
역주7 赤眉軍 : 新莽 天鳳 5년에 樊崇이 莒縣 일대에서 봉기하여 무리 수 만 명을 모아 붉은 색으로 눈썹을 칠하여 자신들의 표지로 삼았으므로 이렇게 일컬었다. 莒縣은 지금의 山東에 속한다.
역주8 : 長安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관문인 函谷關을 말한다. 지금의 河南省 靈寶 동북에 있다.
역주9 [傳] : 저본에는 ‘傳’이 없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0 [莽] : 저본에는 ‘莽’이 없으나, ≪後漢書≫ 권11 〈劉玄傳〉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1 [若] : 저본에는 ‘若’이 없으나, ≪後漢書≫ 권11 〈劉玄傳〉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2 : ≪列女傳校注≫와 ≪列女傳集注≫에는 모두 ‘飽’로 되어 있다.
역주13 (尚書)[常侍] : 저본에는 ‘尚書’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常侍’로 바로잡았다.
역주14 저……심해지도다 : ≪詩經≫ 〈小雅 小宛〉에 보인다.

열녀전보주(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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