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更始韓夫人者는 更始皇帝劉聖公之夫人也라 佞諂邪媚하며 嗜酒無禮라 初에 王莾之末에 更始以新市平林下江之衆起하여 自立爲更始將軍하고 兵威日盛일새 遂自立爲帝하여 以紹漢統이라
及申屠建討莽
하여 首詣宛
注+① 首上脫傳字, 見後漢書.하여 更始視之曰
不如此
면 當與霍光等
이라
韓夫人曰
不如此
면 帝那得之
잇가하니 其佞巧得更始意如此
러라
更始既墮於政事
注+② 【校注】 墮, 一本作惰.하고 而韓夫人嗜酒淫色
注+③ 【集注】 梁云 “北堂書鈔后妃部作淫遊.” 道管案詩關雎序云 “不淫其色.”하여 日與更始
로 醉
沈湎
注+④ 【校注】 飽舊誤飮, 從北堂書鈔校改.하며 乃令侍中
으로 於幃幕之内
에 詐爲更始
하여 與群臣語
하니 群臣知非更始聲
하고 莫不怨恨
이라
奏事
注+⑤ 後漢書尙書作常侍, 此疑誤.면 韓夫人曰 帝方對我飲樂
이어늘 正用是時来奏事
아하니
由是로 綱紀不攝하고 諸侯離畔하여 赤眉入關호되 不能制하니 乃將妻子하고 奉天子璽綬하여 降於赤眉라가 爲赤眉所殺이라
詩云 彼昬不知
는 一醉日富
注+① 【校注】 一毛詩作壹.라하니 其更始與韓夫人之謂也
라
한漢 경시제更始帝의
한씨부인韓氏夫人은
경시황제更始皇帝 유성공劉聖公의
부인夫人이다. 그녀는 아첨하고 사특하며 술을 좋아하고
무례無禮하였다. 처음
왕망王莾의 통치 말년에 경시제가
를 거느리고 봉기해서 스스로
경시장군更始將軍이 되었고, 병사들의 위세가 날로 강성해지자 드디어 스스로 황제가 되어
한漢나라의
왕통王統을 이었다.
이
왕망王莽을 토벌하여 왕망의
수급首級을
에 전달해 오기에 이르러,
注+① ‘수首’ 위에 ‘전傳’자가 빠졌으니, ≪후한서後漢書≫에 보인다. 경시제更始帝가 이를 보고 말하기를 “왕망이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응당
곽광霍光과
동렬同列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한씨부인韓氏夫人이 말하기를 “만약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황제께서 어찌 제위帝位를 차지하였겠습니까.”라고 하였으니, 그녀가 아첨하고 교묘하여 경시제의 환심歡心을 사는 것이 이와 같았다.
경시제는 이미
정사政事에 태만하고
注+② 【교주校注】 ‘타墮’는 어떤 본에는 ‘타惰’로 되어 있다. 한씨부인은 술을 좋아하고 음란에 빠져
注+③ 【집주集注】 양단梁端이 이르기를 “≪북당서초北堂書鈔≫ 〈후비부后妃部〉에 〈‘음색淫色’은〉 ‘음유淫遊’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내(소도관蕭道管)가 살펴보건대, ≪시경詩經≫ 〈관저關雎〉의 〈모서毛序〉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다. 날마다 경시제와 술에 흠뻑 취하였으며,
注+④ 【교주校注】 ‘포飽’는 구본舊本에 ‘음飮’으로 잘못되어 있었는데, ≪북당서초≫를 따라 교정하였다. 이에
으로 하여금 장막 안에서 거짓으로 경시제인 체하여 신하들과 말하게 하였다. 신하들이 경시제의 음성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원한을 갖지 않는 이가 없었다.
상시常侍가
정사政事를
상주上奏하면
注+⑤ ≪후한서≫에는 ‘상서尙書’가 ‘상시常侍’로 되어 있으니, 이곳의 ‘상서尙書’는 아마 오자인 듯하다. 한씨부인이 말하기를 “
황제皇帝께서 막 나와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거늘 꼭 이럴 때에 와서 정사를 아뢰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기강紀綱을 유지하지 못하고
제후諸侯들이 배반하여
이
에 들어왔는데도 제어하지 못하니, 이에 경시제가
처자妻子를 데리고 천자의 옥새 끈을 받들어 적미군에게 항복하였다가 적미군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注+① 【교주校注】 ‘일一’은 ≪모시毛詩≫에 ‘일壹’로 되어있다.라고 하였으니,
경시제更始帝와
한씨부인韓氏夫人을 두고 이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