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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2)

열녀전보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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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代趙夫人
代趙夫人者 趙簡子之女 襄子之姊 代王之夫人也 簡子旣葬하고 襄子未除服 登夏屋注+① 地字誤. 史記世家作北.하여 代王하여 使廚人으로 以食代王注+② 斗, 史記作枓. 枓, 勺也. 說者謂 “形方有柄, 取斟水器.”及從者하고 行斟 陰令宰人各으로斗擊殺代王及從注+③ 史記集解, 各一作雒, 蓋宰人名也. 史記, 枓上無一字, 此衍.하다兵平代地하고 而迎其姊趙夫人하다
夫人曰 吾受先君之命하여 事代注+① 之字衍.注+② 【校注】 一本無之字. 今十有餘年矣 代無大故로대 而主君殘之注+③ 大夫君曰主. 殘, 戕殺之也.
今代已亡하니 吾將奚歸리오 且吾聞之호니 婦人義無二夫注+④ 【校注】 之, 舊誤執. 從太平御覽人事部十二校改.라하니 吾豈有二夫哉리오 欲迎我何之
以弟慢夫注+⑤ 太平御覽引注云 “謂慢棄, 不爲立節.” 非義也 以夫怨弟 非仁也 吾不敢怨이어니와 然亦不歸라하고 遂泣而呼天하고 自殺於靡笄之地注+⑥ 靡, 與摩同. 史記作“摩笄自殺, 代人憐之, 所死地, 名之爲靡笄之山”.하니 代人皆懷之러라
君子謂 趙夫人 善處夫婦之間이라하니라 詩云 不僭不賊이면 鮮不爲則이라하니 此之謂也
頌曰
惟趙襄子
代夫人弟로다
襲滅代王하고
迎取其姊하니
姊引義理하여
稱引節禮注+① 【校注】 引, 一本作說.로다
不歸不怨하고
遂留野死注+② 【集注】 祭法, 舜勤事而野死.로다


5-7 나라 임금의 조부인趙夫人
나라 임금의 조부인趙夫人의 딸이자 의 누나이며 대나라 왕의 부인夫人이다. 간자簡子가 죽어 장례를 치른 뒤, 아들 양자襄子상복喪服을 벗기도 전에 북쪽으로 하옥산夏屋山에 올라가注+① ‘’자는 오자誤字이다. ≪사기史記43 〈조세가趙世家〉에는 ‘’으로 되어 있다. 대나라 왕을 유인하여 주인廚人으로 하여금 국자를 잡고 대나라 왕과注+② ‘’는 ≪사기史記≫에는 ‘’로 되어 있다. ‘주’는 구기[]이니, 설명하는 자가 이르기를 “모양은 방형方形이고 자루가 있으며 물을 담아 따르는 기구이다.”라고 하였다. 종자從者들을 접대하게 하고는, 술을 돌린 뒤 몰래 재인宰人 으로 하여금 국자로 대나라 왕과 종자들을 격살擊殺하게 하였다.注+③ ≪사기집해史記集解≫에 “‘’은 어떤 판본에는 ‘’으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재인宰人의 이름이다. ≪사기史記≫에는 ‘’ 위에 ‘’자가 없다. 여기의 ‘’은 연자衍字이다. 이어 군사를 일으켜 대나라 땅을 평정하고 자신의 누나인 조부인을 맞이하였다.
그러자 부인夫人이 말하기를 “내가 선군先君의 명을 받아 나라 을 섬긴 지가注+① ‘’자는 연자衍字이다.注+② 【교주校注】 어떤 판본에는 ‘’자가 없다. 지금 십여 년이 되었네. 대나라에 중대한 죄악이 없는데도 이 대나라 왕을 살해하였네.注+을 ‘’라 한다. ‘’는 장살戕殺함이다.
지금 대나라가 이미 멸망하였으니, 내 장차 어디로 돌아가겠는가. 그리고 내가 듣건대, 부인婦人의 의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내 어찌 두 남편을 섬기겠는가.注+④ 【교주校注】 ‘’는 구본舊本에는 ‘’으로 잘못되어 있다. ≪태평어람太平御覽≫ 〈인사부人事部 82 정녀하貞女下〉에 따라 교감校勘 개정改正하였다. 나를 맞이하여 어디로 가려 하는가.
아우 때문에 남편을 경시하는 것은注+⑤ ≪태평어람≫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의 라고 하였다. 의가 아니고, 남편 때문에 아우를 원망하는 것은 이 아니네. 나는 감히 원망하지도 않겠지만 또한 돌아가지도 않겠네.” 하고는, 마침내 울면서 하늘을 부르짖고 마계靡笄 땅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注+⑥ ‘’는 ‘’와 같다. ≪사기史記≫에는 “비녀를 갈아 목을 찔러 자살하니, 나라 사람들이 이를 가련하게 여겨 부인이 자살한 곳을 이름하여 마계산靡笄山이라 하였다.”로 되어 있다. 대나라 사람들이 모두 부인을 그리워하였다.
대조부인代趙夫人대조부인代趙夫人
군자가 이르기를 “조부인趙夫人은 부부간의 도리에 잘 처신하였다.”라고 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은 다음과 같다.
조양자趙襄子
대부인代夫人의 아우라네
대왕代王을 습격하여 멸망시키고
누나를 맞이하여 데려가려 하니
누나가 의리를 내세우며
절조와 예의를 설파하였다오注+① 【교주校注】 ‘’은 어떤 판본에는 ‘’로 되어 있다.
돌아가지도 원망하지도 않고
끝내 머물러 들에서 목숨을 끊었다네注+② 【집주集注】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임금은 백성들의 일에 부지런히 힘쓰시다가 들에서 돌아가셨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趙簡子 : 春秋時代 晉나라의 大夫 趙鞅으로, 諡號가 簡이다. 趙孟이라고도 한다.
역주2 趙襄子 : 春秋時代 晉나라의 大夫 趙無恤로, 諡號가 襄이다. 조간자의 아들이다.
역주3 (地)[北] : 저본에는 ‘地’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北’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 ≪史記≫에는 ‘請’으로 되어 있다.
역주5 持斗 : ≪史記≫에는 ‘操銅枓’로 되어 있다.
역주6 (一) : 저본에는 ‘一’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7 : ≪史記≫에는 ‘官’으로 되어 있다.
역주8 : ≪史記≫에는 ‘興’으로 되어 있다.
역주9 主君 : 임금이나 卿大夫에 대한 칭호로, 여기서는 大夫 趙襄子를 가리킨다.
역주10 大夫인 君 : 大夫로서 家臣을 둔 사람을 가리킨다. 참고로 ≪禮記集説≫ 〈喪大記〉에 “大夫인 君은 문밖에서 맞이하지 않는다.[大夫君 不迎于門外]”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陳澔의 注에 “대부의 신하는 자신의 대부를 ‘君’이라 한다. 그러므로 ‘大夫君’이라 한 것이다.[大夫之臣 亦以大夫爲君 故曰大夫君也]”라고 하였다.
역주11 경시하여……말이다 : ≪太平御覽≫ 卷441 〈人事部 82 貞女下〉의 ‘以弟慢夫 非義’에 대한 注에 보인다.
역주12 (之) : 저본에는 ‘之’가 있으나, 王照圓의 注와 ≪御定内則衍義≫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13 (執)[之] : 저본에는 ‘執’으로 되어 있으나, ≪列女傳校注≫, ≪列女傳集注≫, ≪太平御覽≫ 등에 의거하여 ‘之’로 바로잡았다.
역주14 [八] : 저본에는 ‘八’이 없으나, ≪太平御覽≫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5 : ‘靡’는 音이 ‘마’로, 靡, 摩, 磨 세 자는 古字에 통용하였다.
역주16 어그러지지……것이다 : ≪詩經≫ 〈大雅 抑〉에 보인다.
역주17 (民)[衆] : ≪列女傳集注≫에는 ‘民’으로 되어 있으나, ≪禮記≫에 의거하여 ‘衆’으로 바로잡았다.

열녀전보주(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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