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趙夫人者
는 趙簡子之女
요 襄子之姊
요 代王之夫人也
라 簡子旣葬
하고 襄子未除服
에 登夏屋
注+① 地字誤. 史記世家作北.하여 代王
하여 使廚人
으로 以食代王
注+② 斗, 史記作枓. 枓, 勺也. 說者謂 “形方有柄, 取斟水器.”及從者
하고 行斟
에 陰令宰人各
으로 以
斗擊殺代王及從
注+③ 史記集解, 各一作雒, 蓋宰人名也. 史記, 枓上無一字, 此衍.하다 因
兵平代地
하고 而迎其姊趙夫人
하다
夫人曰 吾受先君之命
하여 事代
王
注+① 之字衍.注+② 【校注】 一本無之字.이 今十有餘年矣
라 代無大故
로대 而主君殘之
注+③ 大夫君曰主. 殘, 戕殺之也.라
今代已亡
하니 吾將奚歸
리오 且吾聞之
호니 婦人
義無二夫
注+④ 【校注】 之, 舊誤執. 從太平御覽人事部十二校改.라하니 吾豈有二夫哉
리오 欲迎我何之
오
以弟慢夫
注+⑤ 太平御覽引注云 “謂慢棄, 不爲立節.”는 非義也
요 以夫怨弟
는 非仁也
니 吾不敢怨
이어니와 然亦不歸
라하고 遂泣而呼天
하고 自殺於靡
笄之地
注+⑥ 靡, 與摩同. 史記作“摩笄自殺, 代人憐之, 所死地, 名之爲靡笄之山”.하니 代人皆懷之
러라
君子謂 趙夫人은 善處夫婦之間이라하니라 詩云 不僭不賊이면 鮮不爲則이라하니 此之謂也라
遂留野死
注+② 【集注】 祭法, 舜勤事而野死.로다
대代나라 임금의
조부인趙夫人은
의 딸이자
의 누나이며 대나라 왕의
부인夫人이다.
간자簡子가 죽어 장례를 치른 뒤, 아들
양자襄子가
상복喪服을 벗기도 전에 북쪽으로
하옥산夏屋山에 올라가
注+① ‘지地’자는 오자誤字이다. ≪사기史記≫ 권卷43 〈조세가趙世家〉에는 ‘북北’으로 되어 있다. 대나라 왕을 유인하여
주인廚人으로 하여금 국자를 잡고 대나라 왕과
注+② ‘두斗’는 ≪사기史記≫에는 ‘두枓’로 되어 있다. ‘주’는 구기[작勺]이니, 설명하는 자가 이르기를 “모양은 방형方形이고 자루가 있으며 물을 담아 따르는 기구이다.”라고 하였다. 종자從者들을 접대하게 하고는, 술을 돌린 뒤 몰래
재인宰人 각各으로 하여금 국자로 대나라 왕과 종자들을
격살擊殺하게 하였다.
注+③ ≪사기집해史記集解≫에 “‘각各’은 어떤 판본에는 ‘락雒’으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재인宰人의 이름이다. ≪사기史記≫에는 ‘두枓’ 위에 ‘일一’자가 없다. 여기의 ‘일一’은 연자衍字이다. 이어 군사를 일으켜 대나라 땅을 평정하고 자신의 누나인 조부인을 맞이하였다.
그러자
부인夫人이 말하기를 “내가
선군先君의 명을 받아
대代나라
왕王을 섬긴 지가
注+① ‘지之’자는 연자衍字이다.注+② 【교주校注】 어떤 판본에는 ‘지之’자가 없다. 지금 십여 년이 되었네. 대나라에 중대한 죄악이 없는데도
이 대나라 왕을 살해하였네.
注+③ 을 ‘주主’라 한다. ‘잔殘’는 장살戕殺함이다.
지금 대나라가 이미 멸망하였으니, 내 장차 어디로 돌아가겠는가. 그리고 내가 듣건대,
부인婦人의 의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내 어찌 두 남편을 섬기겠는가.
注+④ 【교주校注】 ‘지之’는 구본舊本에는 ‘집執’으로 잘못되어 있다. ≪태평어람太平御覽≫ 〈인사부人事部 82 정녀하貞女下〉에 따라 교감校勘 개정改正하였다. 나를 맞이하여 어디로 가려 하는가.
아우 때문에 남편을 경시하는 것은
注+⑤ ≪태평어람≫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의 주注에 라고 하였다. 의가 아니고, 남편 때문에 아우를 원망하는 것은
인仁이 아니네. 나는 감히 원망하지도 않겠지만 또한 돌아가지도 않겠네.” 하고는, 마침내 울면서 하늘을 부르짖고
마계靡笄 땅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注+⑥ ‘미靡’는 ‘마摩’와 같다. ≪사기史記≫에는 “비녀를 갈아 목을 찔러 자살하니, 대代나라 사람들이 이를 가련하게 여겨 부인이 자살한 곳을 이름하여 마계산靡笄山이라 하였다.”로 되어 있다. 대나라 사람들이 모두 부인을 그리워하였다.
대조부인代趙夫人
군자가 이르기를 “
조부인趙夫人은 부부간의 도리에 잘 처신하였다.”라고 하였다.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절조와 예의를 설파하였다오
注+① 【교주校注】 ‘인引’은 어떤 판본에는 ‘설說’로 되어 있다.
끝내 머물러 들에서 목숨을 끊었다네
注+② 【집주集注】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순舜임금은 백성들의 일에 부지런히 힘쓰시다가 들에서 돌아가셨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