末喜者
는 夏桀之妃也
注+① 末喜, 或作妺嬉. 後漢書注引作“桀妃有施氏女也”, 此脫.注+② 【校正】 瑞辰案路史“復伐蒙山, 得妺喜焉”, 注引列女傳以爲“有施得之”.라 美於色
호되 薄於德
하고 亂孼無道
라 女子行
이나 丈夫心
하여 佩劍帶冠
이라
桀旣棄禮義
하고 淫於婦人
하여 求美女
注+③ 【校注】 初學記樂部上․太平御覽樂部七作“四方美人”.하여 積之於後宮
이라 收倡優侏儒狎徒能爲奇偉戲者
注+④ 【集注】 梁云 “初學記能作而, 古能而通用.” 道管案荀子非相篇 “足以爲奇偉偃卻之屬, 夫是之謂姦人之雄.”하여 聚之於旁
注+⑤ 【校注】 太平御覽作房.이라 造爛漫之樂
注+⑥ 爛漫, 言其聲之流浪靡曼也.하여 日夜與末喜及宮女飮酒
를 無有休時
라
置末喜於膝上하고 聽用其言일새 昏亂失道하고 驕奢自恣라
爲酒池
하니 可以運舟
라 一鼓而牛飮者三千人
注+⑦ 韓詩外傳曰 “桀爲酒池, 可以運舟, 糟邱足以望十里.” 或曰 “牛飮者, 以鼻飮也.”이라 䩭其頭
注+⑧ 【校注】 瑞辰案路史注引作“絡其頭”.而飮之於酒池
注+⑨ 䩭, 猶羈也. 羈者, 絡其頭也.한대 醉而溺死者
면 末喜笑之
하여 以爲樂
이라
龍逢進諫曰 君無道
하니 必亡矣
注+① 韓詩外傳載關龍逢進諫曰 “古之人君, 身行禮義, 愛民節財, 故國安而身壽. 今君用財若無窮, 殺人若恐弗勝. 君若弗革, 天殃必降, 而誅必至矣. 君其革之.”로소이다 桀曰 日有亡乎
아 日亡而我亡
注+② 【集注】 尙書大傳桀云:“天之有日, 猶吾之有民, 日有亡哉? 日亡吾亦亡矣.”이라하고 不聽
하고 以爲妖言而殺之
라
造瓊室瑤臺
하여 以臨雲雨
注+③ 以臨雲雨, 言其高也. 瓊․瑤, 皆美玉以爲飾也. 後漢書注引瓊作琁.하여 殫財盡幣
로되 意尙不饜
이라
召湯
하여 囚之於夏臺
라가 已而釋之
하니 諸侯大叛
이라 於是湯受命而伐之
하여 戰於鳴條
注+④ 太平御覽引趙大家注曰 “鳴條, 南夷地名.” 今按史記集解引鄭注與曹注同.라 桀師不戰
이어늘 湯遂放桀
하니 與末喜嬖妾同舟
하여 流於海
라가 死於南巢之山
注+⑤ 淮南子云 “同舟浮江, 奔南巢之山而死”, 此作‘流於海’誤.이라
말희末喜는
하夏 걸왕桀王의
비妃이다.
注+① ‘말희末喜’는 어떤 곳에는 ‘말희妺嬉’로 되어 있다. ≪후한서後漢書≫ 주注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걸왕桀王의 비妃이니 유시씨有施氏의 딸이다.’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빠졌다.注+② 【교정校正】 마서신馬瑞辰이 상고해보건대, ≪노사路史≫에 “다시 몽산蒙山을 정벌하여 말희妺喜를 얻었다.”라고 하였는데, 그 주注에 ≪열녀전列女傳≫을 인용하여 “유시국有施國에서 말희妺喜를 얻었다.”라고 하였다. 얼굴은 아름다웠으나
덕德이 부족하고 음란하며
무도無道하였다. 여자의 몸이었으나 장부의 마음을 품고서 칼을 차고 관을 썼다.
걸왕은 이미
예의禮義를 버리고
부인婦人에게 빠져
미녀美女를 구하여
注+③ 【교주校注】 ≪초학기初學記≫ 〈악부樂部 상上〉과 ≪태평어람太平御覽≫ 〈악부樂部7〉에는 ‘사방미인四方美人’으로 되어 있다. 후궁後宮을 채웠다.
와
와
중에서
기이奇異한 공연을 할 수 있는 자를 거두어
注+④ 【집주集注】 양단梁端이 이르기를 “≪초학기≫에는 ‘능能’자가 ‘이而’자로 되어 있는데, 옛적에 ‘능能’자와 ‘이而’자는 통용하였다.”라고 하였다. 내(소도관蕭道管)가 상고해보건대, ≪순자荀子≫ 〈비상편非相篇〉에 “기이하고 오만한 무리가 되기에 충분하니, 이를 일러 간특한 사람의 영웅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곁에 모았다.
注+⑤ 【교주校注】 〈‘방旁’은〉 ≪태평어람≫에 ‘방房’으로 되어 있다. 그들에게 난잡하고 경박한 음악을 만들어 연주하게 하고는
注+⑥ 난만爛漫은 그 소리가 방종하고 경박함을 말한다. 밤낮으로 말희 및
궁녀宮女들과 술 마시기를 쉬는 때가 없었다.
말희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그의 말을 들어 주느라 혼매昏昧하고 착란錯亂하여 도리를 잃었으며 교만驕慢하고 사치奢侈하여 방자하였다.
술로 못을 만드니 배를 띄울 만하였는데, 한 번 북을 울리면
자가 삼천 명이었다.
注+⑦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말하기를 “걸桀이 술로 못을 만드니 배를 띄울 만하였고, 술지게미가 쌓여 만들어진 언덕은 10리 밖까지 볼 수 있을 정도였다.”라고 하였다. 혹자가 말하기를 “우음牛飮이라는 것은 코로 술을 마시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들의 머리에
注+⑧ 【교주校注】 마서신馬瑞辰이 상고하건대, ≪노사≫의 주注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그 머리를 잡아매다.’로 되어 있다. 굴레를 씌워 술로 채워진 못에 들어가 마시게 하였는데
注+⑨ ‘연䩭’는 ‘기羈’와 같다. 기羈라는 것은 그 머리를 잡아매는 것이다. 취하여 빠져 죽는 자가 있으면 말희가 웃으면서 즐거워하였다.
이 간언을 올리기를 “임금이
무도無道하니 나라가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注+① ≪한시외전韓詩外傳≫에 관룡봉關龍逢이 간언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옛적의 임금은 몸소 예禮와 의義를 행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재물을 아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편안하고 자신은 장수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임금께서는 무궁한 것처럼 재물을 쓰고 이루 다 죽이지 못할까 두려운 듯이 사람을 죽이니, 임금께서 만약 고치지 않는다면 하늘의 재앙이 반드시 내릴 것이고 주벌이 반드시 이를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고치소서.” 걸왕桀王이 말하기를 “태양이 없었던 적이 있느냐? 태양이 없어져야 내가 망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注+② 【집주集注】 ≪상서대전尙書大傳≫에 걸왕桀王이 이르기를 “하늘에 태양이 있는 것이 나에게 백성이 있는 것과 같으니, 태양이 없어지겠는가? 태양이 없어져야 나 또한 망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용봉의 간언을 듣지 않고, 요망한 말을 한다고 하여 그를 죽였다.
걸왕은 옥으로 장식한 집과 누대를 지으면서 크고 높게 올리게 하여
注+③ ‘운우雲雨에 임한다’는 것은 그 높음을 말한 것이다. ‘경瓊’과 ‘요瑤’는 모두 아름다운 옥으로 장식하는 것이다. ≪후한서後漢書≫ 주注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경瓊’이 ‘선琁’으로 되어 있다. 재물을 탕진하였는데도 마음에 오히려 만족할 줄 몰랐다.
탕湯을 불러
에 가두었다가 얼마 뒤에 풀어주니, 제후들이 크게 반기를 들었다. 이에
걸왕을 토벌하기 위해
에서 전투를 벌였다.
注+④ ≪태평어람太平御覽≫에 조대가曹大家의 주注를 인용하여 말하기를 “명조鳴條는 남이南夷의 지명地名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상고하건대, ≪사기집해史記集解≫의 정현鄭玄 주注와 조대가曹大家 주注를 인용한 곳에도 같다. 걸왕의 군사들이 아예 싸우려 하지 않으니 탕이 드디어 걸왕을 추방하였다. 걸왕이
말희末喜와 애첩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흘러갔다가
의
산山에서 죽었다.
注+⑤ ≪회남자淮南子≫에 이르기를 “함께 배를 타고 강江에 떠서 남소南巢의 산으로 달아나 죽었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에 ‘바다로 흘러갔다.’로 되어 있는 것은 오류이다.
≪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간악하고 무도한 짓을 행하여
注+① ‘궤軌’는 ‘궤宄’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