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御史大夫張湯之母也라 湯以文法으로 事漢孝武帝하여 爲御史大夫한대 好勝陵人하니 母數責怒나 性不能悛改라
後果爲丞相嚴青翟
注+① 【校注】 莊靑翟, 漢避明帝諱改嚴.及三長史
注+② 【校注】 朱買臣․王朝․邊通.所怨
이어늘 會趙王上書言湯罪
라 廷尉
注+③ 湯雖有罪, 身未被繫, 繫字誤也. 漢書但云事下廷尉.하니 丞相及三長史共致其罪
한대 遂自殺
이라
昆弟諸子欲厚葬之
어늘 母曰 湯爲天子大臣
하여 被惡言而死
하니 亦何厚葬
注+① 葬下疑脫爲字. 漢書作何厚葬爲.注+② 【校注】 史記何厚葬乎, 漢書乎作爲, 此疑脫一字.이리오하고 載以牛車
하고 有棺而無槨
이라
天子聞之曰 非此母면 不生此子라하고 乃盡案誅三長史하니 丞相嚴青翟自殺이라
君子謂張湯母能克己하여 感悟時主로다 詩云 彼美孟姜이여 徳音不忘이라하니 此之謂也라
한漢나라
의 어머니이다. 장탕은
법령法令에 밝음으로
한漢 를 섬겨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었는데, 이기기를 좋아하고 남을 업신여겼다. 어머니가 자주 꾸짖고 성내었으나 본성이 고쳐지지 않았다.
뒤에 과연
승상丞相 엄청적嚴青翟과
注+① 【교주校注】 장청적莊靑翟이니, 한漢나라에서 명제明帝의 휘諱를 피하여 엄嚴으로 고쳤다. 세 명의
에게
注+② 【교주校注】 과 왕조王朝와 이다. 원망을 샀는데, 마침
조왕趙王이 글을 올려 장탕의 죄를 말하였다. 효무제가 그 일을
에 회부하니
注+③ 장탕張湯이 비록 죄를 지었지만 몸이 구금拘禁을 당하지는 않았으니, ‘계繫’자는 오자이다. ≪한서漢書≫에는 다만 ‘사건을 정위廷尉에 회부하였다.’라고만 하였다. 승상과 세 명의 장사가 함께 장탕의 죄를 나열하여 모함하였는데, 장탕이 결국 자살하였다.
장탕張湯의 형제와 아들들이 후하게 장례지내고자 하였는데, 어머니가 말하기를 “장탕이
천자天子의
대신大臣으로 악독한 참언에 무함을 당하여 죽었는데 또한 어찌 후하게 장례지내겠는가.”
注+① ‘장葬’ 아래에 아마 ‘위爲’자가 빠진 듯하다. ≪한서漢書≫에는 ‘하후장위何厚葬爲’로 되어 있다.注+② 【교주校注】 ≪사기史記≫에는 ‘하후장호何厚葬乎’로 되어 있고, ≪한서≫에는 ‘호乎’가 ‘위爲’로 되어 있으니, 이곳에 아마 1자가 빠진 듯하다.라고 하고, 소가 끄는 수레에 장탕의 시체를 싣고 매장할 때에
내관內棺만 쓰고
외곽外槨은 쓰지 못하게 하였다.
천자가 이 소식을 듣고 말하기를 “이러한 어머니가 아니면 이러한 아들을 낳지 못하리라.”라고 하고, 이에 사건의 경위를 철저히 조사하여 세 명의 장사長史를 주살하니, 승상丞相 엄청적嚴青翟은 자살하였다.
군자君子가 이르기를 “
장탕張湯의 어머니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여 당시의 군주를 감동시켜 깨닫게 하였도다.”라고 하였다.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