班婕妤者
는 左曹越騎班况之女
요 漢孝成皇帝之婕妤也
라 賢才通辯
이라 始選入後宫爲
使
注+① 小當作少, 少使位第十一等.라가 俄而大幸
하여 爲婕妤
라
成帝遊於後庭
에 嘗欲與婕妤同輦
이어늘 辭曰 觀古圖畫
하니 賢聖之君
은 皆有名臣在側
하고 三代之末主
라야 乃有
注+① 【校注】 漢書作嬖女.라 今欲同輦
하니 得無似之乎
아하니 上善其言而止
라
太后聞而喜曰 古有樊姬
러니 今有班婕妤
라하니라 毎誦詩及窈窕徳
女師之篇
注+② 家, 漢書作象, 此字形之誤. 窈窕․德象․女師, 皆古詩篇名, 不知出何書.에 必三復之
하며 毎進見上疏
에 依古禮
러라
自鴻嘉之後로 成帝稍隆於女寵이라 婕妤進侍者李平이러니 平得幸하여 立爲婕妤라 帝曰 始衛皇后도 亦従微起라하고 乃賜平姓曰衛하니 所謂衛婕妤也라
其後
에 趙飛燕姊
有寵
注+① 妹當作娣, 外戚傳作弟. 驕妒二字下文方見, 疑此衍也.하여 譖訴婕妤云 挟邪詛呪
라한대
考問班婕妤
注+② 呪俗祝字也. 婕妤二字應作重文, 此脫.하니 曰 妾聞死生有命
하고 富貴在天
이라하니 修正尚未蒙福
이어든 爲邪欲以何望
이리오
且使鬼神有知인댄 不受不臣之訴요 如其無知인댄 訴之何益이리오 故弗爲也라 上善其對而憐閔之하여 賜黄金百斤이라
時飛燕驕妒하니 婕妤恐久見危하여 求供養皇太后於長信宫한대 上許焉이라 婕妤退處東宫하여 作賦自傷曰
承祖考之遺徳兮
여 荷性命之俶靈
注+① 俶, 善也. 經傳假借作淑耳. 見說文解字.이로다
揚光烈之翕赫兮
여 奉隆寵於
成
注+② 層, 外戚傳作增, 增成漢宮名.이로다
毎寤寐而累息兮
여 申佩離以自思
注+③ 離與縭同. 詩曰 “親結其縭.”로다
悲晨婦之作戒兮
注+④ 婦人專男子之事, 比於牝鷄晨鳴也.여 哀褒
之
注+⑤ 艶, 外戚傳作閻, 是也. 谷永傳閻妻驕扇, 說者謂是魯詩也. 毛詩作艶妻, 此疑据毛詩改耳. 尤, 尤物也.로다
美皇英之女
兮
注+⑥ 女尼․據切, 舜當從外戚傳作虞. 女虞, 與下句母周相比對也.여 榮任姒之母周
로다
雖愚陋其靡及
注+⑦ 靡及, 言不及古人也. 乎當作兮, 字形之誤耳.여 敢舎心而忘玆
리오
歴年歲而悼懼兮
여 閔繁華之不滋
注+⑧ 繁與蕃同. 滋, 生也. 此言己生子不成, 比於蕃華易落也.로다
痛陽祿與柘觀兮
여 仍
而離災
注+⑨ 觀, 外戚傳作館. 陽祿柘館, 俱離宮名. 生子於此, 仍失之也. 褓當作緥, 襁緥小兒衣也. 離, 遭也.로다
白日忽以移光兮
注+⑩ 【校注】 以, 漢書作已.여 遂奄莫而昧幽
注+⑪ 奄, 外戚傳作晻, 晻, 不明也. 與昧幽義複, 作奄爲長. 奄猶忽也, 莫讀爲暮, 奄暮, 忽然晩暮也.로다
重曰
注+① 重猶亂也. 亂者, 理其繁辭, 重者, 申其餘意.
廣屋
兮幨帷晻
注+② 外戚傳作廣室陰兮帷幄暗, 此蔭誤從草耳. 晻與暗同.하고 房櫳虗兮風冷冷
이로다
感帷裳兮發
羅
하니 紛悴憏兮紈素聲
注+③ 帷裳, 裳正幅也. 紅羅, 當作綺羅. 此與外戚傳俱誤作紅耳. 悴憏與萃蔡同. 外戚傳作綷縩, 文選琴賦注, 又引翠粲, 俱新衣聲也. 紈亦素也, 齊人工作之.이로다
神眇眇兮密靖處
注+④ 【校注】 靖, 漢書作靚.하니 君不御兮誰爲荣
이리오
俯視兮丹墀
하니 思君兮履綦
注+⑤ 綦音其, 履飾也.로다
仰視兮雲屋
하니 雙涕
兮横流
注+⑥ 外戚傳無下字.로다
己獨嚮兮髙明
注+⑦ 【校注】 嚮, 漢書作亨.하니 處生民兮極休
로다
勉娱精兮極樂
注+⑧ 【校注】 娱, 漢書作虞.하여 與福禄兮無期
로다
綠衣
白華
注+⑨ 外戚傳衣下有兮字, 此脫.는 自古兮有之
로다
至成帝崩하여 婕妤充奉園陵이러니 薨에 因葬園中이라
君子謂班婕妤辭同輦之言
은 盖宣后之志也
요 進李平於同列
은 樊姬之徳也
요 释詛祝之譛
은 定姜之知也
요 求供養於東宫
은 寡
之行也
注+① 寡李未詳.注+② 【校正】 紹蘭案李當爲孝, 字之誤也. 寡孝卽陳寡孝婦, 專心養姑, 班婕妤求供養皇太后於長信宮, 其事正同. 故云寡孝之行也.요 及其作賦
하여는 哀而不傷
하며 歸命不怨
이라
詩云 有斐君子
注+③ 【校注】 斐, 毛詩作匪.여 如切如磋
하며 如琢如磨
로다 瑟兮僩兮
며 赫兮喧兮
니 有斐君子
여 終不可諼兮
라하니 其班婕妤之謂也
로다
반첩여班婕妤는
반황班况의 딸이요,
한漢 효성황제孝成皇帝의
첩여婕妤로 어질고 재능 있고
변론辯論에 능통하였다. 처음에
후궁後宫에 뽑혀 들어와
소사少使가 되었다가
注+① ‘소小’는 응당 ‘소少’가 되어야 하니, 소사少使는 지위地位가 제11등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총애를 받아
첩여婕妤가 되었다.
성제成帝가
왕궁王宮의
후원後苑에서 노닐 적에 일찍이 반첩여와
연거輦車를 함께 타고자 하였다. 반첩여가 사양하여 말하기를 “
고대古代의
도화圖畫를 보니
현성賢聖한 임금은 모두
명신名臣이 곁에 있었고,
에 이르러서야 총애하는 여인이 곁에 있었습니다.
注+① 【교주校注】 〈‘여폐女嬖’는〉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 ‘폐녀嬖女’로 되어 있다. 지금 연거를 함께 타고자 하니 저들과 비슷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니, 성제가 그 말을 훌륭하게 여겨 그만두었다.
태후太后가 이 일을 듣고 기뻐하여 말하기를 “옛적에
가 있었는데, 지금은 반첩여가 있다.”라고 하였다. 반첩여는 매양 ≪
시경詩經≫과 〈
요조窈窕〉, 〈
덕상徳象〉, 〈
여사女師〉
편篇을
송독誦讀할 때마다
注+② ‘가家’는 ≪한서≫에 ‘상象’으로 되어 있으니, 이는 자형字形이 비슷해서 생긴 오자이다. 〈요조窈窕〉와 〈덕상德象〉과 〈여사女師〉는 모두 고시古詩의 편명인데, 어느 책에 나오는지 알지 못하겠다. 반드시 세 번 반복하였으며, 매양 나아가 성제를 뵙고
소장疏章을 올릴 때마다
고례古禮에 의거하였다.
연간 이후로
성제成帝가 점점 총애하는 여자에게 깊이 빠지게 되었다.
반첩여班婕妤가
시녀侍女 이평李平을 성제에게 바쳤는데, 이평이 총애를 받아
첩여婕妤에 책봉되었다. 성제가 말하기를 “처음에
도 미천한 집안 출신이었다.”라고 하였다. 이에 이평에게
위성衛姓을 하사하니, 이가 바로 이른바
위첩여衛婕妤이다.
그 뒤에
조비연趙飛燕 자매가 총애를 받아
注+① ‘매妹’는 응당 ‘제娣’가 되어야 하니,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는 ‘제弟’로 되어 있다. ‘교투驕妒’ 2자는 아래 문장에 비로소 보이니, 아마 이곳은 연자衍字인 듯하다. 반첩여班婕妤를
참소譖訴하여 이르기를 “반첩여는 마음에 간사함을 품고 사람에게
재화災禍를 내려달라고
신神에게 저주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성제成帝가 반첩여를
심문審問하니,
注+② ‘주呪’는 ‘축祝’의 속자俗字이다. ‘첩여婕妤’ 2자는 응당 글자가 중복되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빠졌다. 반첩여가 답하기를 “
첩妾은
고 들었습니다. 몸을 닦아 행실을 바르게 해도 오히려
복福을 받지 못하는데, 사특한 욕심을 부려서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게다가 귀신이 지각知覺이 있다면 신하의 직분을 다하지 않는 사람의 하소연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만일 지각이 없다면 하소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첩妾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성제가 그 대답을 훌륭하게 여기고 불쌍히 여겨 황금黄金 백근百斤을 하사하였다.
이때
조비연趙飛燕이 교만과 질투를 부리자
반첩여班婕妤가 시일이 오래가면 자신이
위해危害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에서
황태후皇太后를 봉양하겠다고 청하였는데,
성제成帝가 허락하였다. 반첩여가 물러나
에 거처하면서
부賦를 지어 스스로 상심하였다.
부賦는 다음과 같다.
조상이 남긴 덕을 이어받아, 착하고 어진 품성을 지녔도다.
注+① ‘숙俶’은 ‘선善’이니, 경전經傳에 가차假借하여 ‘숙淑’으로 썼을 뿐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보인다.
미천한 몸으로 궁궐에 올라, 후궁後宮의 아래 반열을 채웠도다.
성황聖皇의 후한 은혜를 입으니, 일월日月이 환하고 밝음과 같았도다.
성조聖朝의
흥성興盛함을 널리 떨치고,
에서 두터운 총애를 받들었도다.
注+② ‘층層’은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는 ‘증增’으로 되어 있다. ‘증성增成’은 한漢나라의 궁궐 이름이다.
이미 분수에 넘치는 총애를 받았으니, 아름다운 때를 기쁘게 여기노라.
매양 자나 깨나 길이 탄식하며, 거듭 향주머니를 차고 스스로 그리워하도다.
注+③ ‘이離’는 ‘리縭’와 같다.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라고 하였다.
를 펼쳐놓고 경계로 삼고,
를 돌아보며
시詩를 물었노라.
비탄悲嘆하고,
注+④ 부인婦人이 남자男子의 일을 오로지 하니,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가
미인美人임을
애통哀痛해하노라.
注+⑤ ‘염艶’은 ≪한서≫ 〈외척전〉에 ‘염閻’으로 되어 있으니, 옳다. 〈곡영전谷永傳〉에 ‘염처閻妻가 교만 방자함을 부린다.’라고 하였는데, 설명하는 자가 ‘이는 ≪노시魯詩≫이다.’라고 하였다. ≪모시毛詩≫에 로 되어 있으니, 이곳에는 아마 ≪모시毛詩≫에 의거하여 고친 듯하다. ‘우尤’는 절세미인絶世美人이다.
이
순舜임금의 아내임을 아름답게 여기고,
注+⑥ ‘여女’는 이尼․거據의 반절反切이다. ‘순舜’은 응당 ≪한서≫ 〈외척전〉에 ‘우虞’로 되어 있는 것을 따라야 한다. ‘여우女虞’는 아래 구의 ‘모주母周’와 서로 대구가 된다. 가
주周나라의 어머니임을 영화롭게 여기노라.
내 어리석고 비루하여 그들에게 미칠 수 없으나,
注+⑦ ‘미급靡及’은 고인古人에게 미치지 못함을 말한다. ‘호乎’는 응당 ‘혜兮’자가 되어야 하니, 자형字形이 비슷해서 생긴 오자이다. 감히
방심放心하여 이들을 잊으리오.
세월이 지나면서 마음이 두려우니, 활짝 핀 꽃이 생장하지 못함이
애련哀憐하도다.
注+⑧ ‘번繁’은 ‘번蕃’과 같고, ‘자滋’는 생장함이다. 이는 자신이 낳은 아들이 성장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니, 활짝 핀 꽃이 쉬이 떨어짐에 비유한 것이다.
에서
비통悲痛해하노니,
강보襁褓에 쌓인 아들이 연이어 재앙을 만났도다.
注+⑨ ‘관觀’은 ≪한서≫ 〈외척전〉에 ‘관館’으로 되어 있다. 양록陽祿과 자관柘館은 모두 이궁離宮의 이름이다. 이곳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연이어 잃은 것이다. ‘보褓’는 응당 ‘보緥’가 되어야 하니, 강보襁緥는 어린아이의 옷이다. 이離는 만남이다.
어찌 첩妾이 재앙을 일으켰으리오마는, 천명天命을 어이할 수 없도다.
대낮의 해가 홀연 서쪽으로 옮겨가,
注+⑩ 【교주校注】 ‘이以’는 ≪한서≫ 〈외척전〉에 ‘이已’로 되어 있다. 끝내 홀연 저녁이 되어 어두워졌도다.
注+⑪ ‘엄奄’은 ≪한서≫ 〈외척전〉에 ‘엄晻’으로 되어 있으니, ‘엄晻’은 밝지 않은 것이다. ‘매유昧幽’와 뜻이 중복되니, ‘엄奄’으로 쓰는 것이 좋다. ‘엄奄’은 홀연과 같고, ‘막莫’는 ‘모暮’로 읽으니, 엄모奄暮는 홀연히 저녁이 된 것이다.
오히려 천지 같은 황제의 후덕厚徳을 입어, 폄적貶謫되어 죄에 빠지지는 않았도다.
동궁東宫에서 황태후皇太后의 봉양을 받들어, 장신궁長信宮의 말석末席에 의탁하였도다.
휘장 사이에서 물 뿌리고 쓰는 일을 하면서, 종신토록 이곳에 머물기를 기약하였도다.
산기슭에 유골이 묻혀, 송백松栢의 짙은 그늘에 의지하길 원하노라.
다시 다음과 같이 읊었다.
注+① ‘중重’은 ‘난亂’과 같다. ‘난亂’이라는 것은 그 번거로운 말을 정리하는 것이고, ‘중重’이라는 것은 그 남은 뜻을 거듭 펴는 것이다.
깊은 궁궐에 들어가 그윽하고 맑으나, 정문은 닫히고 작은 문은 빗장 걸렸도다.
화려한 궁전에 먼지 앉고 옥 계단에 이끼 끼며, 뜰 가운데 더부룩하게 푸른 풀 났도다.
넓은 궁궐 그늘져 휘장은 어둡고,
注+②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는 ‘광실음혜유악암廣室陰兮帷幄暗’으로 되어 있으니, 여기의 ‘음蔭’은 잘못 ‘초草’를 따른 것뿐이다. ‘엄晻’은 ‘암暗’과 같다. 방의 창살 듬성하여 바람이 냉랭하도다.
치마가 나부낌에 비단이 펄럭이니, 어지러이 스치는 흰 비단소리로다.
注+③ ‘유상帷裳’은 치마의 정폭正幅이다. ‘홍라紅羅’는 응당 ‘기라綺羅’가 되어야 한다. 이곳과 ≪한서≫ 〈외척전〉에 모두 잘못 ‘홍紅’으로 되어 있다. ‘췌제悴憏’는 ‘췌채萃蔡’와 같다. ≪한서≫ 〈외척전〉에는 ‘최채綷縩’로 되어 있고, ≪문선文選≫ 〈금부琴賦〉 주注에는 또 ‘취찬翠粲’으로 인용하였으니, 모두 새 옷에서 나는 소리이다. ‘환紈’은 또한 흰 비단이니, 제인齊人이 만든 것이다.
외롭고 쓸쓸하여 고요히 지냄에,
注+④ 【교주校注】 ‘정靖’은 ≪한서≫ 〈외척전〉에는 ‘정靚’으로 되어 있다. 황제께서 오지 않으니 누가 영광을 누리리오.
고개 숙여 붉은 섬돌 바라보니, 황제의 신발 장식 생각나는도다.
注+⑤ ‘기綦’의 독음은 ‘기其’이니, 신발의 장식이다.
고개 들어
바라보니, 두 줄기 눈물이 줄줄 흐르는도다.
注+⑥ ≪한서≫ 〈외척전〉에는 ‘하下’자가 없다.
좌우를 돌아보니 모두 화락한 얼굴로, 술잔을 들어 근심을 풀고 있도다.
인생살이 한 세상이, 홀연히 뜬구름처럼 흘러가는도다.
나만 홀로
고명高明한
존귀尊貴를 누렸으니,
注+⑦ 【교주校注】 ‘향嚮’은 ≪한서≫ 〈외척전〉에는 ‘형亨’으로 되어 있다. 백성의 지극히 아름다움에 처하였도다.
마음을 즐기기에 힘써 즐거움 지극히 하여,
注+⑧ 【교주校注】 ‘오娱’는 ≪한서≫ 〈외척전〉에는 ‘우虞’로 되어 있다. 복록福祿이 한정 없기를 바라노라.
는 슬픔을 노래했으니,
注+⑨ ≪한서≫ 〈외척전〉에는 ‘의衣’ 아래에 ‘혜兮’자가 있는데, 이곳에는 빠졌다. 예로부터 이런 일은 있었도다.
성제成帝가
붕어崩御하자
반첩여班婕妤는
을 수호하는 데 충당되었는데, 반첩여가 죽자 인하여 원릉에 장사 지냈다.
군자君子가 이르기를 “
반첩여班婕妤가
연거輦車를 함께 타자는
성제成帝의 요구를 사양한 말은
의 뜻이요,
이평李平을 성제에게 바쳐 자신과 같은 반열에 오르게 한 일은
의
인덕仁徳이요, 저주의 참소를 푼 것은
의 지혜요,
동궁東宫에 물러나
황태후皇太后를
봉양奉養하는 일을 하기를 청한 것은
의 행실이다.
注+① ‘과리寡李’는 미상未詳이다.注+② 【교정校正】 왕소란王紹蘭은 상고해보건대, ‘이李’는 응당 ‘효孝’가 되어야 하니, 글자의 오류이다. ‘과효寡孝’는 바로 진현陳縣의 과부 효부孝婦이니, 마음을 오로지 하여 시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반첩여班婕妤가 장신궁長信宮에서 황태후皇太后를 봉양하겠다고 청하였으니, 그 일이 〈진현의 과부 효부와〉 정히 같기 때문에 ‘과효지행寡孝之行’이라고 한 것이다. 반첩여가
부賦를 짓기에 이르러서는
운명으로 돌리고 남을 원망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문채나는
군자君子여
注+③ 【교주校注】 비斐는 ≪모시毛詩≫에는 ‘비匪’로 되어 있다. 잘라놓은 듯하고 다듬어 놓은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고 갈아놓은 듯하도다.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점잖으니, 문채나는
군자君子여 끝내 잊을 수 없도다.”라고 하였으니, 아마 반첩여를 두고 이르는 말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