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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2)

열녀전보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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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 趙悼倡后
倡后者注+① 史記集解徐廣引邯鄲之倡四字. 當在此下, 今脫去之. 이니 趙悼襄王之后也而亂一宗之族注+② 【校注】 日, 盧校改嫁.이러니 旣寡 悼襄王以其美而取之
李牧諫曰 不可 女之不正이면 國家所以覆而不安也 此女亂一宗이어늘 大王不畏乎잇가 王曰 亂與不亂 在寡人爲政이니라하고 遂娶之
悼襄王后生子嘉爲太子러니 倡后旣入爲姬 生子遷이라 倡后旣嬖幸於王 陰譖后及太子於王하고 使人犯太子而陷之於罪
王遂廢嘉而立遷하며 黜后而立倡姬爲后 及悼襄王薨하야 遷立하니 是爲幽閔王注+① 史記作幽繆王. 徐廣曰 “又云湣王, 湣卽閔耳.”이라
倡后淫佚不正하여 通於春平君注+① 春平君, 卽太子嘉也.하고 多受秦賂하여 而使王誅其良將武安君李牧注+② 【集注】 史記 “遷素無行, 信讒, 故誅其良將李牧.”이라 其後 秦兵徑入호되 莫能距하여 遷遂見虜於秦注+③ 【集注】 淮南子 “趙王遷流於房陵, 思故鄕, 作爲山水之謳.”하니
趙亡大夫注+④ 【集注】 案四字連讀, 猶言亡國之大夫也. 史記“秦旣虜遷, 趙之亡大夫共立嘉爲王”, 可證. 怨倡后之譖太子及殺李牧하여 乃殺倡后而滅其家하고 共立嘉於代 七年 不能勝秦하니 趙遂滅爲郡이라
詩云 人而無禮 不死胡俟注+① 胡, 毛詩作何.리오하니 此之謂也니라
頌曰
趙悼倡后
貪叨無足이로다
墮廢后適注+① 適與嫡同.하니
執詐不慤이로다
淫亂春平하니
窮意所欲이로다
受賂亡趙하니
身死滅注+② 國字失韻, 或改作族.이로다


7-15 도양왕悼襄王창후倡后
창후倡后注+① ≪사기집해史記集解≫에 서광徐廣이 ‘한단지창邯鄲之倡’ 4자를 인용하였다. 응당 이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금본今本에 빠졌다. 의 노래하고 춤추는 예인藝人으로 왕후王后이다. 그녀는 이전에 시집가서 한 종족宗族을 어지럽혔는데,注+② 【교주校注】 ‘’은 교주校注에 ‘’로 개정改定하였다. 이미 과부가 되자 도양왕이 그 미모美貌에 반해 자신의 부인으로 맞이하려 하였다.
이 간언하기를 “안 됩니다. 여자가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국가國家가 이 때문에 무너지고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이 여자가 한 종족을 어지럽혔는데 대왕大王께서는 두렵지 않으십니까?”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국가가 혼란해지고 혼란해지지 않는 것은 과인이 정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오.” 하고, 드디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처음에 도양왕悼襄王왕후王后가 아들 를 낳아 태자太子로 삼았는데, 창후倡后가 이미 궁중으로 들어와 가 되어서 아들 을 낳았다. 창후가 이미 왕에게 총애를 받자 왕후와 태자를 왕에게 몰래 참소하고, 사람을 시켜 태자를 충동하여 죄를 짓게 하였다.
이 드디어 태자 가를 폐하고 천을 태자로 삼았으며, 왕후를 내쫓고 창희를 왕후로 삼았다. 도양왕이 세상을 떠나기에 이르러 천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유민왕幽閔王이다.注+① ≪사기史記≫에 ‘유무왕幽繆王’으로 되어 있다. 서광徐廣이 말하기를 “또 민왕湣王이라고 이르니, ‘’은 바로 ‘’이다.” 하였다.
창후倡后는 음란하고 행실이 바르지 않아 춘평군春平君사통私通하였고,注+춘평군春平君은 바로 태자太子 이다. 나라의 뇌물을 많이 받고서 왕으로 하여금 훌륭한 장수 무안군武安君 이목李牧을 죽이게 하였다.注+② 【집주集注】 ≪사기史記≫ 〈조세가趙世家〉에 “조왕趙王 은 평소에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였고 참소를 믿었기 때문에 훌륭한 장수 이목李牧을 죽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후에 진나라 군대가 곧바로 쳐들어왔는데 막을 수 없어서 이 드디어 진나라에 포로로 잡혔다.注+③ 【집주集注】 ≪회남자淮南子≫ 〈태족훈泰足訓〉에 “조왕趙王 방릉房陵에 유배되어 고향故鄕을 그리워하여 산수山水의 노래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도망쳤던 나라의 대부大夫들이注+④ 【집주集注】 살펴보건대, 〈‘조망대부趙亡大夫’〉 4자는 이어서 읽어야 하니, ‘망국亡國의 대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기≫ 〈조세가〉에 “나라가 이미 을 포로로 잡자 도망쳤던 나라의 대부들이 함께 를 옹립하여 왕으로 삼았다.”라고 하였으니, 증거할 만하다. 창후가 태자를 참소하고 이목을 죽게 한 것을 원망하여 이에 창후를 죽이고 그 집안을 멸한 다음, 땅에서 함께 왕으로 옹립하였다. 7년 후에도 여전히 진나라를 이기지 못하니, 조나라가 드디어 멸망하여 진나라의 이 되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注+는 ≪모시毛詩≫에 ‘’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은 다음과 같다.
나라 도양왕悼襄王창후倡后
탐욕스러워 만족할 줄 몰랐도다
왕후王后태자太子폐출廢黜하였으니注+① ‘’은 ‘’과 같다.
간사함 부리고 성실치 않았도다
춘평군春平君과 음란한 짓 벌였으니
마음에 하고 싶은 바를 다하였도다
나라 뇌물 받고는 나라 멸망시켰으니
자신도 죽고 일족一族도 망하고 말았도다注+② ‘’자는 이 맞지 않으니, 혹 ‘’자로 고쳐야 할 듯하다.


역주
역주1 邯鄲 : 趙나라의 都城으로 지금의 河北省 邯鄲에 있었다.
역주2 悼襄王 : 戰國時代 趙나라 군주로, 이름은 偃이다.
역주3 盧文弨 : 淸代 經學家로, 자는 召弓, 호는 磯漁 또는 檠齋, 抱經, 弓父이다.
역주4 李牧 : 戰國時代 趙나라의 名將으로, 일찍이 匈奴의 침입을 막아내고 秦나라 군대를 대패시킨 공으로 武安君에 봉해졌다. 뒤에 趙王이 秦나라의 反間計에 걸려들어 李牧을 斬殺하였다.
역주5 [邯鄲之倡] : 저본에는 ‘邯鄲之倡’이 없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6 (日)[嫁] : 저본에는 ‘日’로 되어 있으나, ≪列女傳校注≫에 의거하여 ‘嫁’로 바로잡았다.
역주7 사람으로서……기다리는가 : ≪詩經≫ 〈鄘風 相鼠〉에 보인다.
역주8 (國)[族] : 저본에는 ‘國’으로 되어 있으나, 王照圓의 注에 의거하여 ‘族’으로 바로잡았다.

열녀전보주(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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