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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1)

열녀전보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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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周室三母
三母者 太姜太任太姒
太姜者 王季之母 有呂氏之女注+① 北堂書抄引女下有也字, 此脫.注+② 【集注】 梁云 “台舊誤呂, 從史記集解․類聚后妃部․御覽皇親部校改. 台與邰同.” 道管案呂亦姜姓. 太王娶以爲妃注+③ 後漢書注引此下有賢而有色四字.하여 生太伯仲雍王季 貞順率導하여 靡有過失注+④ 後漢書注引作化導三子, 皆成賢德. 史記正義引作率導諸子, 至于成童, 靡有過失.이라 太王謀事注+⑤ 後漢書注引作太王有事, 必諮謀焉.遷徙 必與太姜注+⑥ 【集注】 王云 “後漢書注引作太王有事, 必諮謀焉.” 梁云 “史記正義引有色而貞順, 率導諸子, 至於成童, 靡有過失. 太王謀事, 必於太姜, 遷徙必與. 後漢書崔琦傳注․類聚․御覽引賢而有色, 化導三子, 皆成賢德, 類聚下又有詩曰爰及姜女聿來胥宇此之謂也十四字.”이라
君子謂太姜廣於德敎라하니라
太任者 文王之母 摯任氏中女也 王季娶爲妃 太任之性 端一誠莊注+① 後漢書注引一作懿, 史記正義引作壹, 此作一非.하여 惟德之行이러니
及其有娠注+② 後漢書注及史記正義, 俱引娠作身.하여 目不視惡色하며 耳不聽淫聲注+③ 【校注】 後漢書注․太平御覽人事部一作惡聲.하며 口不出敖言注+④ 【校注】 太平御覽作放言, 大戴禮保傅篇注․太平御覽人事部一作惡言.하여 能以胎敎注+⑤ 【集注】 大戴禮保傅 “胎敎之道, 書之玉版, 藏之金匱.”러니 溲於豕牢注+⑥ 【校注】 國語韋昭注云 “溲, 便也. 豕牢, 厠也.”라가
而生文王이라 文王生而明聖하여 太任敎之以一而識百이러니 注+⑦ 【校注】 四字舊脫, 從太平御覽校補. 司馬溫公家範, 文王生而明聖, 卒爲周宗, 本此.
君子謂太任爲能胎敎라하니라
古者 婦人妊子 寢不側하며 坐不邊注+① 【校注】 大戴禮․賈子胎敎篇作差.하며 立不蹕注+② 邊, 垂也. 蹕, 跛也.注+③ 【校注】 賈子作跛.하며 不食邪味注+④ 【校注】 一本作食不.하며 割不正이어든 不食하며 席不正이어든 不坐하며 目不視邪色하며 耳不聽于淫聲注+⑤ 【校注】 大戴禮注․溫公家範․朱子小學立敎篇引皆無兩於字.하며 夜則令瞽誦詩하며 道正事하더니라
如此 則生子 形容端正하며 才德必過人矣리라 故妊子之時 必愼所感이니 感於善則善하고 感於惡則惡이라
人生而肖萬物者 皆其母感於物이라 故形音肖之 文王母可謂知肖化矣注+⑥ 【集注】 說文 “肖, 骨肉相似也. 不似其先, 故曰不肖也.”로다
太姒者注+① 後漢書注引者下有文王之妃四字, 此脫. 武王之母 禹後有莘姒氏之女注+② 史記正義引女下有也字, 此脫. 又有在郃之陽․在渭之涘二句. 仁而明道러니 文王嘉之하여 親迎于渭할새 造舟爲梁이라 及入하여 太姒思媚太姜太任하여 旦夕勤勞하여 以進婦道注+③ 進, 猶盡也.
太姒號曰文母하니 文王治外하고 文母治內 太姒生十男注+④ 十男之次管叔敍周公下, 與孟子及史記世家不合. 又成叔武․霍叔處, 此復互易其名, 疑誤.하니 長伯邑考 次武王發이요 次周公旦이요 次管叔鮮이요 次蔡叔度 次曹叔振鐸이요 次霍叔武 次成叔處 次康叔封이요 次聃季載注+⑤ 【集注】 梁云 “白虎通義姓名章引詩傳, 霍叔武․成叔處互易, 聃作南, 其餘序次, 與此同, 蓋本魯詩說. 史記管蔡世家, 成叔名武第七, 霍叔名處第八. 案成․霍之名, 當從史記. 漢書人表同.” 道管案漢書自同史記, 此傳實本詩傳, 蓋兩說也. 左傳郕居霍前, 而管․蔡․郕․霍皆居前, 亦不盡可據.
太姒敎誨十子 自少及長 未嘗見邪僻之事注+⑥ 【集注】 史記正義引此句, 下有言常以正道持之也八字.러니 及其長하여 文王繼而敎之하여 卒成武王周公之德注+⑦ 【校注】 明刻本, 此下多二百二十六字, 後人羼入.이라
君子謂太姒仁明而有德이라하니라 詩曰 大邦有子하니 俔天之妹로다 文定厥祥하시고 親迎于渭하사 造舟爲梁하시니 不顯其光가하고
又曰 太姒嗣徽音하시니 則百斯男이삿다하니 此之謂也
頌曰
周室三母
太姜任姒로다
文武之興
蓋由斯起로다
太姒最賢하니
號曰文母로다
三姑之德
亦甚大矣로다


1-6 나라 왕실의 세 어머니
세 어머니는 태강太姜태임太任태사太姒이다.
태강太姜의 어머니이고, 의 딸이다.注+① ≪북당서초北堂書鈔≫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 아래에 ‘’자가 있는데, 여기에는 빠졌다.注+② 【집주集注가 상고해보건대, ‘’ 또한 강성姜姓이다. 이 태강에게 장가들어 를 삼아注+③ ≪후한서後漢書≫ 〈최기전崔琦傳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이 아래에 ‘현명하면서도 아름다웠다.[현이유색賢而有色]’는 4자가 있다. 왕계王季를 낳았다. 태강은 사람됨이 정정貞靜하고 화순和順하였으며 자식들을 솔선해서 훈도하여 과실이 없게 하였다.注+④ ≪후한서≫ 〈최기전〉 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세 아들을 교화하고 인도하여 모두 현덕賢德을 이루게 하였다.[화도삼자化導三子 개성현덕皆成賢德]’로 되어 있다. ≪사기정의史記正義≫ 〈주본기周本紀〉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아들들을 솔선해서 훈도하여 성동成童에 이르러 과실이 없게 하였다.[솔도제자率導諸子 지우성동至于成童 미유과실靡有過失]’로 되어 있다. 태왕이 일을 계획하거나注+⑤ ≪후한서≫ 〈최기전〉 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태왕太王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태강太姜에게〉 방책을 물었다.[태왕유사太王有事 필자모언必諮謀焉]’로 되어 있다. 부족을 거느리고 사는 곳을 옮길 때에 반드시 태강과 상의하였다.注+⑥ 【집주集注왕조원王照圓이 이르기를 “≪후한서≫ 〈최기전〉 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태왕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태강에게〉 방책을 물었다.’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양단梁端이 이르기를 “≪사기정의≫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아름다우면서도 정정貞靜하고 화순和順하며 아들들을 솔선하여 훈도해서 성동成童에 이르러 과실이 없게 하였다. 태왕은 일을 계획할 때에 반드시 태강과 상의하였고 부족을 거느리고 사는 곳을 옮길 때에 반드시 태강과 함께 하였다.’라고 하였다. ≪후한서≫ 〈최기전〉의 와 ≪예문유취≫와 ≪태평어람≫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현명하면서도 아름다웠으며 세 아들을 교화하고 훈도하여 모두 현덕賢德을 이루었다.’라고 하였고, ≪예문유취≫에는 이 아래에 또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시왈詩曰 원급강녀爰及姜女 율래서우聿來胥宇 차지위야此之謂也]’라는 14자가 있다.”라고 하였다.
태왕비태강太王妃太姜태왕비태강太王妃太姜
군자가 이르기를 “태강太姜덕교德敎를 널리 펼쳤다.”라고 하였다.
태임太任문왕文王의 어머니이고, 의 둘째 딸이다. 왕계王季가 태임에게 장가들어 를 삼았다. 태임의 성품이 단정하고 한결같으며 성실하고 장중하여注+① ≪후한서後漢書≫ 〈최기전崔琦傳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이 ‘’로 되어 있고, ≪사기정의史記正義≫ 〈주본기周本紀〉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로 되어 있으니, 여기에 ‘’로 되어 있는 것은 잘못이다. 오직 을 행하였다.
문왕을 잉태하기에 이르러注+② ≪후한서≫ 〈최기전〉의 및 ≪사기정의≫ 〈주본기〉에는 모두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 ‘’이 ‘’으로 되어 있다. 눈으로는 나쁜 색깔을 보지 않았으며, 귀로는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았으며,注+③ 【교주校注】 〈‘음성淫聲’은〉 ≪후한서≫ 〈최기전〉 와 ≪태평어람太平御覽≫ 〈인사부人事部 1〉에는 ‘악성惡聲’으로 되어 있다. 입으로는 오만한 말을 내지 않아注+④ 【교주校注】 〈‘오언敖言’은〉 ≪태평어람≫ 〈황친부皇親部〉에는 ‘방언放言’으로 되어 있고, 보부편保傅篇〉의 와 ≪태평어람≫ 〈인사부 1〉에는 ‘악언惡言’으로 되어 있다. 태교胎敎를 잘하더니注+⑤ 【집주集注】 ≪대대례≫ 〈보부〉에 “태교胎敎의 도리는 옥판玉版에 적고 금궤金匱에 보관하였다.”라고 하였다. 측간에서 소변을 보다가注+⑥ 【교주校注 에 이르기를 “는 소변이고, 시뢰豕牢는 측간이다.”라고 하였다. 문왕을 낳았다.
문왕은 태어나면서 총명聰明하고 현성賢聖하여 태임이 하나를 가르치면 백을 알더니 마침내 나라의 조종祖宗이 되었다.注+⑦ 【교주校注】 4자는 구본舊本에 빠졌는데, ≪태평어람≫을 따라 교감 보충하였다. 에 ‘문왕文王은 태어나면서 총명聰明하고 현성賢聖하여 마침내 나라의 조종祖宗이 되었다.’고 한 것은 여기에 근본한 것이다.
군자가 이르기를 “태임太任이 태교를 잘하였다.”라고 하였다.
옛날에 부인이 아이를 임신하였을 적에 잠잘 때에는 옆으로 눕지 않으며, 앉을 때에는 모로 앉지 않으며,注+① 【교주校注】 〈‘’은〉 ≪대대례大戴禮≫와 태교편胎敎篇〉에는 ‘’로 되어 있다. 설 때에는 한 쪽 발로 서지 않았다.注+② ‘’은 가장자리라는 뜻이고, ‘’은 한쪽 발로 선다는 뜻이다.注+③ 【교주校注】 〈‘’은〉 ≪가자≫에는 ‘’로 되어 있다. 부정한 맛을 먹지 않으며,注+④ 【교주校注】 〈‘불식不食’은〉 어떤 본에는 ‘식부食不’로 되어 있다. 고기를 썬 것이 바르지 않거든 먹지 않으며, 자리가 바르지 않거든 앉지 않으며, 눈으로는 부정한 색을 보지 않으며, 귀로는 부정한 소리를 듣지 않으며,注+⑤ 【교주校注】 ≪대대례≫ 사마온공司馬溫公의 ≪가범家範≫과 주자朱子의 ≪소학小學≫ 〈입교편立敎篇〉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모두 두 ‘’자가 없다. 밤이면 악사樂師인 봉사로 하여금 를 외우며 바른 일을 말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하면 아이를 낳음에 용모가 단정하며, 재덕才德이 필시 보통사람보다 뛰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를 임신하였을 때에 반드시 감화되는 바를 삼가야 하니, 에 감화되면 선하게 되고 에 감화되면 악하게 된다.
사람이 태어남에 만물을 닮는 것은 모두 그 어머니가 만물에 감화되는 것이 〈태아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습과 음성이 만물을 닮게 되는 것이다. 문왕文王의 어머니는 태교로 태아가 닮아서 변화되는 도리를 알았다고 이를 만하다.注+⑥ 【집주集注】 ≪설문해자說文解字≫에 “골육骨肉이 서로 비슷한 것이다. 그 선조와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불초不肖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태사太姒注+① ≪후한서後漢書≫ 〈최기전崔琦傳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 아래에 ‘문왕의 비[문왕지비文王之妃]’라는 4자가 있는데, 여기에는 빠졌다.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어머니이니, 임금의 후예인 유신有莘 사씨姒氏의 딸이다.注+② ≪사기정의史記正義≫ 〈관채세가管蔡世家〉의 이 구절을 인용한 곳에는 ‘’ 아래에 ‘’자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빠졌다. 또 라는 두 구가 있다. 어질고 도리에 밝았는데 문왕이 이를 아름답게 여겨 위수渭水 가에서 친영親迎할 적에 배를 나란히 대어 다리를 만들었다. 태사가 그 집안에 들어오기에 이르러 시할머니 태강太姜과 시어머니 태임太任을 사랑하여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힘써 부도婦道를 다하였다.注+③ ‘’은 다함과 같다.
태사는 〈문덕文德을 갖춘 어머니라는 뜻에서〉 문모文母라 불렸으니, 문왕은 밖을 다스리고 문모文母는 안을 다스렸다. 태사는 열 명의 아들을 낳았으니,注+성숙成叔 곽숙霍叔 는 여기에 다시 그 이름을 서로 바꾸었으니, 잘못된 듯하다. 장남은 백읍伯邑 요, 다음은 무왕武王 이요, 다음은 주공周公 이요, 다음은 관숙管叔 이요, 다음은 채숙蔡叔 요, 다음은 조숙曹叔 진탁振鐸이요, 다음은 곽숙霍叔 요, 다음은 성숙成叔 요, 다음은 강숙康叔 이요, 다음은 담계聃季 이다.注+⑤ 【집주集注양단梁端이 이르기를 “성명장姓名章〉에 ≪시전詩傳≫을 인용하되 곽숙霍叔 성숙成叔 서차序次를 바꾸었고, ‘’은 ‘’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 서차는 이 과 같으니, 아마 ≪노시魯詩≫의 에 근본한 듯하다. ≪사기≫ 〈관채세가〉에는 성숙成叔의 이름은 이며 일곱째이고, 곽숙霍叔의 이름은 이며 여덟째로 되어 있다. 상고해보건대, 성숙成叔곽숙霍叔의 이름은 응당 ≪사기≫를 따라야 한다. ≪한서漢書≫ 〈고금인표古今人表〉에도 같다.”라고 하였다. 내(소도관蕭道管)가 상고해보건대, ≪한서≫는 자연 ≪사기≫와 같고, 이 은 실로 ≪시전≫에 근본하였으니, 이는 두 가지 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성숙郕叔곽숙霍叔의 앞에 있고, 관숙管叔채숙蔡叔성숙郕叔곽숙霍叔이 모두 조숙曹叔의 앞에 있으니, 또한 다 근거로 삼을 만하지는 않다.
태사가 열 아들을 가르칠 적에 어려서부터 장성하기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사벽邪僻한 일을 본 적이 없었다.注+⑥ 【집주集注】 ≪사기정의≫ 〈관채세가〉에 이 구절을 인용한 곳 아래에는 ‘말할 때 항상 정도를 견지하였다.[언상이정도지지야言常以正道持之也]’라는 8자가 있다. 아들들이 장성하기에 이르러서는 문왕이 이어 가르쳐서 마침내 무왕과 주공의 을 성취시켰다.注+⑦ 【교주校注나라의 각본刻本에는 이 아래에 226자가 더 많으니, 후인들이 뒤섞어 넣은 것이다.
또 말하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은 다음과 같다.
왕실의 세 어머니는
태강太姜태임太妊태사太姒로다
문왕文王무왕武王의 흥기는
이들을 말미암아 일어났도다
태사가 가장 현명하니
문모文母라 불리었도다
세 어머니의 덕이
또한 매우 위대하였도다


역주
역주1 王季 : 季歴을 가리킨다. 周나라의 시조인 太王 古公亶父의 아들이자 文王의 아버지이다. 손자 武王이 季歷을 王季로 追尊하였다.
역주2 有呂氏 : 옛 나라 이름으로, 姜姓이다. 四嶽의 후예라고 전해지는데 지금의 河南省 南陽 서쪽에 있었다.
역주3 梁端이……하였다 : 양단은 淸나라 학자인 汪遠孫(1789~1835)의 아내로, 字는 無非이다. 위의 내용은 양단이 저술한 ≪列女傳校注≫에 나온다.
역주4 蕭道管 : 1859~1907. 侯官 사람으로, 자는 君佩 또는 道安이다. 詩文에 능하고 考證學을 좋아하였으며, 만년에는 心과 理를 궁구하는데 힘썼다. 저서에 ≪說文重文管見≫, ≪列女傳集解≫, ≪列女傳集注≫, ≪蕭閑堂札記≫ 등이 있다.
역주5 太王 : 古公亶父이다. 后稷의 후예로 文王의 조부이다. 처음에 豳에 살았는데 戎狄의 침범을 받음으로 인해 그곳을 떠나 岐山 아래 周原으로 옮겨 거주하였다. 武王이 古公亶父를 추존하여 ‘太王’이라 하였다.
역주6 太伯과 中雍 : 古公亶父의 큰아들과 둘째 아들이다. 막내아들인 季歷의 아들 昌이 태어났을 때 여러 가지 吉兆가 나타났다. 이에 古公亶父는 季歷이 자신의 뒤를 잇기를 원하였고, 이를 헤아린 큰아들 太伯과 둘째 아들 中雍은 남쪽 荊蠻 땅으로 나가 吳나라를 창건하였다.
역주7 이에……보시니라 : ≪詩經≫ 〈大雅 綿〉에 “古公亶父가 아침에 말을 달려와서, 서쪽 물가를 따라 岐山 아래에 이르시니, 이에 姜女와 더불어 와서 집터를 보시니라.[古公亶父 來朝走馬 率西水滸 至于岐下 爰及姜女 聿來胥宇]”라고 하였다.
역주8 摯任氏 : 고대 나라이름으로 任姓이다. 商나라의 속국으로, 일설에 지금의 河南省 汝寧縣에 있었다고 한다.
역주9 大戴禮 : 前漢의 戴德이 지은 책이다. 古禮 204편을 85편으로 줄여 지었다. 지금의 ≪禮記≫는 그의 從姪 戴聖이 지은 〈小戴禮〉를 일컫는다.
역주10 國語 : 戰國時代에 左丘明이 지은 책이다. 春秋時代 周, 魯, 齊, 晉, 鄭, 楚, 吳, 越 8國의 역사책으로 21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주11 韋昭 : 204~273. 三國時代 吳나라의 정치가이자 저명한 史學者이다. 자는 弘嗣이다. 尙書郞을 역임했고, 高陵亭侯에 봉해졌다. ≪吳書≫의 편찬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國語≫에 대한 주석은 후대의 연구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三國志≫에서는 晉 文帝 司馬昭의 諱를 피해 韋曜라는 이름으로 바꿔 썼다.
역주12 司馬溫公의 家範 : 司馬溫公은 北宋 中期의 명재상인 司馬光으로, 자는 君實, 호는 迂夫, 시호는 文正이며 사후에 太師溫國公에 追贈되었기 때문에 司馬溫公으로 불린다. 神宗이 王安石을 발탁하여 新法을 단행하게 하자, 이에 반대하였다. ≪家範≫은 맨 앞에 ≪周易≫ 〈家人卦〉의 爻辭와 여러 經의 말을 節錄해서 綱領을 만들고, 그 뒤에 ‘治家’로부터 ‘乳母’에 이르기까지 19편으로 나누었다. 모두 史書에서 법칙이 될 만한 것을 採錄하고 또 간간이 論說을 붙였다. 朱熹의 ≪小學≫과 뜻이 대략 비슷하다.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밖의 저서에 ≪資治通鑑≫, ≪涑水紀聞≫, ≪司馬文正公集≫ 등이 있다.
역주13 [卒爲周宗] : 저본에는 ‘卒爲周宗’이 없으나, ≪列女傳校注≫와 ≪列女傳集注≫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4 賈子 : 漢나라 賈誼(B.C. 200~B.C. 168)가 지은 ≪新書≫를 말한다. 原本은 58篇인데, 3篇이 逸失되었다. 대부분 ≪漢書≫ 〈賈誼傳〉의 글을 단락을 나누고 차례를 바꾸어 標題를 붙였다. 아마 舊本이 殘缺되어 好事者가 本傳에 실린 글을 가져다 나누어 今本을 만든 듯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漢書≫에 실리지 않은 내용이 있다.
역주15 : ≪列女傳校注≫와 ≪列女傳集注≫에는 모두 ‘於’로 되어 있다. 아래도 같다.
역주16 郃水의……있다 : ≪詩經≫ 〈大雅 大明〉에 “하늘의 굽어보심이 아래에 계셔, 天命이 이미 모인지라, 文王의 초년에, 하늘이 배필을 내리시니, 洽水의 남쪽에 있으며, 渭水의 가에 있어, 文王이 嘉禮할 때에, 큰 나라에서 따님을 두셨도다.[天監在下 有命旣集 文王初載 天作之合 在洽之陽 在渭之涘 文王嘉止 大邦有子]”라고 하였다.
역주17 열……않는다 : 이 傳에서는 주공이 셋째 아들, 관숙이 넷째 아들로 되어 있으나, ≪孟子≫ 〈公孫丑 下〉와 ≪史記≫ 〈管蔡世家〉에는 관숙이 셋째 아들, 주공이 넷째 아들로 되어 있으므로 이른 말이다.
역주18 白虎通義 : 後漢 章帝(재위 75~88) 때에 白虎觀에서 유생과 박사들을 불러모아 五經의 異同을 講論하게 한 것을 班固 등이 편찬한 책이다. 총 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白虎通德論≫ 또는 ≪白虎通≫이라고도 한다.
역주19 [文王之妃] : 저본에는 ‘文王之妃’가 없으나, ≪後漢書≫ 〈崔琦傳〉의 注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0 [也] : 저본에는 ‘也’가 없으나, ≪史記正義≫ 〈管蔡世家〉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1 (魯)[曹] : 저본에는 ‘魯’로 되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曹’로 바로잡았다.
역주22 큰……아니할까 : ≪詩經≫ 〈大雅 大明〉에 보인다.
역주23 태사가……되도다 : ≪詩經≫ 〈大雅 思齊〉에 “엄숙한 太妊이, 文王의 어머니이시니, 周姜을 사랑하사, 京室의 며느리가 되시더니, 太姒가 그 아름다움을 이으시니, 아들이 백 명이나 되도다.[思齊太任 文王之母 思媚周姜 京室之婦 太姒嗣音 則百斯男]”라고 하였다.

열녀전보주(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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