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飛燕姊娣者
는 成陽侯趙臨之女
요 孝成皇帝之寵姬也
라 飛燕初生
에 父母不舉
호되 三日不死
어늘 乃収養之
라 成帝常微行出
이러니 過河陽主
注+① 外戚傳河陽作陽阿, 說者以河陽爲後人所改, 然五行志及荀悅漢紀, 亦俱作河陽.할새 樂作
이라
上見飛燕而悦之
하여 召入宫
하여 大幸
이라 有女弟
어늘 復召入
하여 俱爲婕妤
하니 貴傾後宫
이라 乃封父臨爲成陽侯
하고 有頃
에 立飛燕爲皇后
하고 其
爲昭儀
라
飛燕爲后而寵衰
나 昭儀寵無比
라 居昭陽舎
하여 其中廷彤朱
하고 殿上漆
注+① 廷與庭同, 彤朱, 以赤色飾地, 卽丹墀也. 殿上以髤漆爲飾.注+② 【校注】 漢書漆上有髤字.하며 砌皆銅沓
注+③ 注+④ 【校正】 紹蘭案漢書外戚傳作切皆銅沓冒, 師古以切爲門限, 沓爲冒其頭是也. 說文木部 “榍, 限也, 从木屑聲.” 尸部 “屑, 動作切切也.” 齒部 “𪙌, 齒差也, 从齒屑聲, 讀若切.” 爾雅釋器 “骨謂之切.” 釋文 “切本或作𪙌”, 是古音屑, 近切. 故漢書假切爲榍, 謂門閑也. 金部 “錔以金有所冒也.” 沓卽錔之省文. 切爲門限, 故可以銅沓爲冒, 若階砌, 則不得言冒矣. 且下文白玉階, 別爲一事, 更知切非階砌. 廣雅云“限謂之丞秩, 戺橉砌也. 砌卽切之俗體.” 是亦以切爲門限也. 沓有合訓, 但銅沓冒, 取從上冒合爲義, 非合縫之謂.하고 黄金塗
하고 白玉階
注+⑤ 殿上之階, 以白玉爲文, 復說上事也.注+⑥ 【校正】 紹蘭按外戚傳“切皆銅沓冒, 黃金塗”, 師古曰 “塗以金塗銅上也.” 然則傳謂以銅沓冒切上, 又以黃金塗銅沓上也. 霍光傳云 “作乘輿輦, 加畫繡絪馮, 黃金塗, 韋絮薦輪.”- 藿夫人傳畧同. - 廁黃金塗於絪馮薦輪之間, 則塗非路可知. 故如湻曰“絪, 亦茵, 馮, 所以馮者也, 以黃金塗飾之”, 師古曰“以繡爲茵馮, 而黃金塗輿輦也”, 皆不以塗爲路. 說文金部“錯, 金涂也.” 涂, 卽塗之正字, 明塗爲塗飾之塗, 非塗路之塗矣. 黃金塗, 今俗云鍍金是.하며 壁往往爲黄金釭
注+⑦ 【校注】 漢書壁下有帶字.하고 函藍田璧
하고 明珠翠羽飾之
注+⑧ 釭, 車轂中鐵也. 壁中橫木如帶, 以黃金飾其外如釭形, 因謂之釭. 故服虔注曰 “釭, 壁中之橫帶也.” 緣服此注有帶字, 而流俗傳寫漢書, 遂衍作壁帶, 誤矣. 函, 猶銜也, 釭, 作圜孔, 於中銜美璧爲飾. 玉字衍也. 其旁又以明珠翠羽連綴爲飾.하니 後宫未嘗有焉
이라
姊娣専寵하되 而悉無子라 嬌媚不遜하고 嫉妒後宫이라
帝幸許美人
하여 有子
하니 昭儀聞之
하고 謂帝曰 常紿我従中宫来
注+① 紿, 欺誑也. 中宮, 皇后宮也.러니 今許美人子何従生
고하고 懟
하여 手自捯
注+② 懟, 怨也. 捯與擣同, 手椎也. 外戚傳懟下有以字, 此脫去之.하고 以頭撃柱
하고 従
上自投地
하여 涕泣不食曰 今當安置我
오 我欲歸爾
라
帝曰 我欲語之
어늘 反怒爲
아하고 亦不食
이라 昭儀曰 陛下自如是
하고 不食謂何
注+③ 如是, 指許美人事也. 言陛下自己要如是耳, 不食亦何謂也. 如是之如, 外戚傳作知字, 誤.注+④ 【校注】 漢書如作知, 當絶句, 是字續下讀.오 陛下常言約不負汝
라하더니 今許美人有子
라 竟負約
이니 謂何
오
帝曰 約以趙氏
하노니 故不立許氏
하여 使天下無出趙氏之上者
니 無憂也
라하고 乃詔許
人
注+⑤ 氏夫人三字, 蓋美人二字之誤, 衍.하여 令殺所生児
하여 革篋盛緘之
注+⑥ 外戚傳革作葦, 二字形近. 疑作革是也. 緘, 束也.하고 帝與昭儀共視
하고 復緘
하여 封以御史中丞印
하고 出埋獄垣下
라
中宫史曹宫
은 字偉能
이니 御幸生子
注+⑦ 【校注】 漢書“曹宮以元延元年十月乳, 許美人以二年十一月乳”, 與此傳先後不同.라 帝復用昭儀之言
하여 勿問男女殺之
어늘 宫未殺
하니 昭儀怒
라 掖庭獄丞籍武
가 因中黄門奏事曰 陛下無繼嗣
하니 子無貴賤
하고 唯留意
하소서
帝不聴하고 時児生八九日이어늘 遂取去殺之라 昭儀與偉能書及藥하여 令自死하니
偉能得書曰 果欲姊娣擅天下
로다 且我児
上有壮髮
이 似元帝
注+⑧ 額, 當作頟. 壯髮者, 頟上髮多覆下, 故曰壯也.러니 今児安在
오 巳殺之乎
注+⑨ 【校注】 漢書作危殺之矣, 疑已是危字脫壞也.아하고 乃飲藥死
라
自後御幸有子者는 輒死어나 或飲藥自墮하니 由是使成帝無嗣라 成帝既崩에 援立外藩이나 仍不繁育이라
君子謂趙昭儀之凶嬖는 與褒姒同行하고 成帝之惑亂은 與周幽王同風이라
詩云 池之竭矣
에 不云自濱
注+① 濱, 毛詩作頻, 卽瀕字之省耳. 瀕, 古濱字也. 瀕, 水厓也.注+② 【校注】 毛詩作瀕, 此與鄭箋改字, 合.이라하고 泉之竭矣
에 不云自中
이라하니 成帝之時
에 舅氏擅外
하고 趙氏專内
하니 其自竭極
이 盖亦池泉之勢也
라
조비연趙飛燕 자매姉妹는
후侯 조림趙臨의 딸이요,
효성황제孝成皇帝의 총애를 받은 여인이다. 조비연이 처음 태어났을 때 부모가 기르려 하지 않았으나 3일이 지나도록 죽지 않자 거두어 길렀다.
성제成帝가 늘
미복微服 차림으로 밖에 나가곤 하였는데
공주公主의 집에 들렀을 적에
注+①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 ‘하양河陽’이 ‘양아陽阿’로 되어 있는데, 설명하는 자가 ‘하양河陽은 후인後人들이 고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서≫ 〈오행지五行志〉와 순열荀悅의 ≪한기漢紀≫에도 모두 ‘하양河陽’으로 되어 있다. 공주가
가무歌舞를 바쳤다.
성제가 무녀舞女 중에서 조비연을 보고 기뻐하여 궁宫으로 불러들여 크게 사랑하였다. 조비연에게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녀를 다시 불러 들여 모두 첩여婕妤를 삼으니, 존귀尊貴함이 후궁後宮에 있는 비빈妃嬪들이 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성제가 이에 그녀들의 아버지 조림을 봉하여 성양후로 삼고, 얼마 후 조비연을 세워 황후皇后로 삼고, 그 동생을 소의昭儀로 삼았다.
조비연趙飛燕은
황후皇后가 된 이후에
성제成帝의 총애가 쇠하였으나
소의昭儀는 비할 데 없는 총애를 받았다.
소양궁昭陽宮에 살면서 정원 가운데를 붉은색으로 칠하고
전각殿閣 위에는 옻칠을 하였으며,
注+① ‘정廷’은 ‘정庭’과 같다. ‘동주彤朱’는 붉은 색으로 땅을 장식하는 것이니, 바로 단지丹墀이다. 전殿 위에는 옻칠로 꾸민 것이다.注+② 【교주校注】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는 ‘칠漆’ 위에 ‘휴髤’자가 있다. 섬돌에는 모두
동銅으로 이어 붙이고
注+③ ‘체砌’는 섬돌이다. ≪한서≫ 〈외척전〉에는 ‘절切’로 되어 있다. ‘답沓’은 합함이니, 동銅으로 그 섬돌의 틈새를 이어 붙이는 것이다.注+④ 【교정校正】 왕소란王紹蘭은 상고하건대, ≪한서≫ 〈외척전〉에는 ‘절개동답모切皆銅沓冒’로 되어 있는데, 안사고顏師古가 절切을 문지방이라 하고 답沓을 그 머리를 덮어씌우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옳다. ≪설문해자說文解字≫ 〈목부木部〉에 “설榍은 문지방이니, 목木을 따르고 설屑은 독음이다.”라고 하였다. 〈시부尸部〉에 “설屑은 동작動作이 급박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치부齒部〉에 “𪙌은 이가 어긋난 것이다. 치齒를 따르고 설屑은 독음이니, 절切과 같이 읽는다.”라고 하였다. ≪이아爾雅≫ 〈석기釋器〉에 “골骨을 다루는 것을 절切이라 이른다.”라고 하였고, ≪이아주소爾雅注疏≫에 인용된 ≪경전석문經典釋文≫에 “절切은 판본에 따라 혹 ‘𪙌’로 되어 있기도 하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고음古音이 설屑로 절切에 가깝다. 그러므로 ≪한서≫에서 절切을 가차하여 설榍로 삼아 문지방을 일컬은 것이다. ≪설문해자≫ 〈금부金部〉에 “탑錔은 금으로 덮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답沓은 곧 탑錔의 생략한 글자이다. 절切이 문지방이기 때문에 동답銅沓으로 덮개를 만들 수 있는 것이지, 만약 섬돌이라면 모冒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아래 글의 ‘백옥계白玉階’는 별도의 한 가지 일이니, ‘절切’이 섬돌이 아님을 더욱 알 수 있다. ≪광아廣雅≫에 이르기를 “한限을 승질丞秩이라 이르니, 사린체戺橉砌이다. 체砌는 바로 절切의 속체俗體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또한 절切을 문지방으로 여긴 것이다. 답沓에는 합한다는 뜻이 있으나 ‘동답모銅沓冒’는 위에서 모합冒合하는 것을 취하여 뜻을 삼은 것이지 합봉合縫을 이르는 것은 아니다. 정원 가운데의 길을 황금으로 장식하고 섬돌을
백옥白玉으로 만들었으며,
注+⑤ ‘도塗’는 길이다. 정원 가운데의 길을 황금으로 장식하고 전殿 위의 계단을 백옥白玉으로 장식함을 말한 것이니, 위의 일을 다시 말한 것이다.注+⑥ 【교정校正】 왕소란王紹蘭은 상고하건대, ≪한서≫ 〈외척전〉에 “섬돌은 모두 동銅으로 머리를 덮어씌우고 그 위에 황금으로 바른다.”라고 하였는데,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도塗는 황금으로 동銅 위에 바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전傳은 동답銅沓으로 섬돌 위를 덮어씌우고 또 황금으로 동답銅沓 위에 바르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한서≫ 〈곽광전霍光傳〉에 이르기를 “황제皇帝와 제후諸侯가 타는 수레를 만들어 수레의 좌석과 식목軾木에 수놓은 천을 깔고, 황금으로 수레를 장식하고, 소가죽과 솜으로 수레바퀴를 감쌌다.”라고 하였다. -〈곽부인전藿夫人傳〉에도 대략 같다.- 수레의 좌석과 식목과 수레바퀴를 감쌌다는 말 사이에 ‘황금으로 장식한다.[황김도黃金塗]’를 끼워 넣었으니 도塗가 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여순如湻이 말하기를 “인絪은 또한 자리이고, 빙馮은 기대는 곳이니, 황금으로 장식하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비단을 수레의 좌석과 식목에 깔고 황금으로 수레를 장식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모두 도塗를 길로 여기지 않았다. ≪설문해자≫ 〈금부金部〉에 “착錯은 금으로 바르는 것이다.[착錯 금도야金涂也]”라고 하였다. ‘도涂’는 곧 ‘도塗’의 정자正字이니, 도塗가 도식塗飾의 도塗이지 도로塗路의 도塗가 아님이 분명하다. ‘황김도黃金塗’는 지금 세상에서 ‘도금鍍金’이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벽에는 곳곳에 황금으로 수레바퀴 통처럼 둥근 모양을 만들고
注+⑦ 【교주校注】 ≪한서≫ 〈외척전〉에는 ‘벽壁’ 아래에 ‘대帶’자가 있다. 그 가운데
의
벽숙璧玊을 박아 넣고 그 곁에
명주明珠와
를 연이어 장식하였으니,
注+⑧ ‘강釭’은 수레바퀴통의 쇠이다. 벽 가운데 띠처럼 가로 댄 나무에 황금으로 그 바깥을 장식한 것이 수레바퀴통의 쇠 모양과 같으니, 이로 인하여 ‘강釭’이라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복건服虔의 주注에 말하기를 “강釭은 벽 가운데 가로 댄 띠이다.”라고 하였다. 복건服虔의 이 주注로 인하여 ‘대帶’자가 있게 되었는데, 세상에서 ≪한서≫를 전사傳寫하면서 드디어 ‘대帶’자를 덧붙여 ‘벽대壁帶’가 된 것이니, 잘못된 것이다. 함函은 머금음과 같고, 강釭은 둥근 구멍을 만드는 것이니, 그 가운데에 아름다운 옥을 박아 넣어 장식을 한 것이다. ‘옥玉’자는 연자衍字이다. 그 곁에 또 명주明珠와 취우翠羽를 연이어서 장식한 것이다. 후궁後宫에서는 일찍이 없었던 일이었다.
자매가 성제의 총애를 독차지하였으나 모두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교태를 부려 공손하지 않았고 후궁後宮의 다른 비빈妃嬪들을 질투하였다.
성제成帝가
허미인許美人을 총애하여 아들을 낳으니,
소의昭儀가 이 소식을 듣고 성제에게 말하기를 “항상 나를 속여
에서 오는 것이라 하더니,
注+① ‘태紿’는 속임이다. ‘중궁中宮’은 황후궁皇后宮이다. 지금 허미인의 자식은 어디에서 생긴 것입니까?”라고 하고, 원망하면서 손으로 자신을 때리고
注+② ‘대懟’는 원망함이다. ‘도捯’는 ‘도擣’와 같으니, 손으로 침이다.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는 ‘대懟’ 아래에 ‘이以’자가 있는데, 여기에는 빠졌다. 머리로 기둥을 들이받고 침상 위에서 스스로 바닥으로 떨어져 울며 먹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지금 나를 어떻게 처리하려 하십니까? 나는 죽어 버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성제成帝가 말하기를 “내 이 일을 너에게 말하려 하였거늘 도리어 화를 낸단 말이냐.”라고 하고, 또한 먹지 않았다. 소의가 말하기를 “
폐하陛下께서 스스로 이렇게 해놓고서는 왜 드시지 않는단 말입니까?
注+③ ‘여시如是’는 허미인許美人의 일을 가리킨다. “폐하陛下 자신이 이와 같이 하려 해놓고 먹지 않는 것은 또한 무엇 때문입니까?”라는 말이다. ‘여시如是’의 ‘여如’가 ≪한서≫ 〈외척전〉에는 ‘지知’자로 되어 있는데, 오자이다.注+④ 【교주校注】 ≪한서≫ 〈외척전〉에는 ‘여如’가 ‘지知’로 되어 있으니, 응당 구句를 끊고, ‘시是’자는 아래로 이어 읽어야 한다. 폐하께서 항상 ‘약속하노니 너를 저버리지 않겠다.’라고 하시더니, 지금 허미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결국 약속을 저버렸으니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성제가 말하기를 “
조씨趙氏와 약속하노니, 결단코
허씨許氏를
황후皇后로 세우지 않아서 천하에 조씨보다 높은 자가 없게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라고 하였다. 이에 허미인에게 조서를 내려
注+⑤ ‘씨부인氏夫人’ 3자는 아마 ‘미인美人’ 2자의 오자일 것이니, 연자衍字이다. 그녀가 낳은 아이를 죽여 가죽 상자에 담아 묶게 하였다.
注+⑥ ≪한서≫ 〈외척전〉에는 ‘혁革’이 ‘위葦’로 되어 있으니, 두 자는 자형이 비슷하다. 아마 ‘혁革’으로 된 것이 옳을 것이다. ‘함緘’은 묶음이다. 성제가 소의와 함께 열어 확인하고 다시 묶어서
어사중승御史中丞의
인印으로
봉封한 다음, 가지고 나가 감옥 담장 아래에 묻었다.
조궁曹宫은
자字가
위능偉能이니, 성제의 총애를 받아 아들을 낳았다.
注+⑦ 【교주校注】 ≪한서≫ 〈외척전〉에 “조궁曹宮은 원연元延 원년元年(B.C. 12) 10월에 아이를 낳았고, 허미인許美人은 2년 11월에 아이를 낳았다.”라고 하였으니, 이 전傳과 선후先後가 같지 않다. 성제가 다시 소의의 말을 따라 아들인지 딸인지 묻지도 않고 죽이게 하였는데, 조궁이 아이를 죽이지 않자 소의가 노하였다.
의
적무籍武가
을 통해 이 일에 대해
상주上奏하기를 “
폐하陛下께서는
후사後嗣가 없으니 자식은
귀천貴賤을 따지지 말고 소중히 여기소서.”라고 하였다.
성제가 이 말을 듣지 않고, 당시 아이가 태어난 지 8, 9일 되었는데 곧장 데리고 가서 죽이게 하였다. 소의가 위능에게 서신書信과 독약을 보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위능이 서신을 받고 말하기를 “과연
조씨趙氏 자매가 천하를 독차지하고자 하는구나. 또 내 아이는 이마 위에 아래로 늘어진 머리카락이
선제先帝인
원제元帝와 닮았는데,
注+⑧ ‘액額’은 응당 ‘액頟’이 되어야 한다. ‘장발壯髮’이라는 것은 이마 위의 머리털이 아래를 많이 가리기 때문에 ‘장壯’이라 한 것이다. 지금 아이는 어디에 있는가? 이미 죽였느냐?”
注+⑨ 【교주校注】 ≪한서≫ 〈외척전〉에는 ‘위살지의危殺之矣’로 되어 있으니, 아마 ‘이已’는 바로 ‘위危’자의 획이 빠지고 문드러진 듯하다.라고 하고, 이에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이후로부터
성제成帝의 사랑을 받아 아이를 낳은 자는 그때마다 죽이거나 혹 약을 먹여 스스로 낙태하게 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성제는 후사가 없게 되었다. 성제가 이미
붕어崩御하자
을 찾아 황제의 자리에 세웠으나 여전히
후대後代를 길러내지 못하였다.
군자君子가 이르기를 “
조소의趙昭儀의 흉악함과 총애를 받음은
과 습성이 같다.”라고 하였다.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못이 마를 때에는 물가에서부터 마른다고 말하지 않으며,
注+① ‘빈濱’은 ≪모시毛詩≫에 ‘빈頻’으로 되어 있으니, 곧 ‘빈瀕’자를 생략한 것일 뿐이다. ‘빈瀕’은 옛날의 ‘빈濱’자이니, ‘빈瀕’은 물가이다.注+② 【교주校注】 〈‘빈濱’은〉 ≪모시毛詩≫에 ‘빈瀕’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과 정현鄭玄의 전주箋注에 글자를 고친 것이 합치된다. 샘물이 마를 때에는 가운데에서부터 마른다고 말하지 않는구나.”라고 하였으니, 성제 때에
이 조정에서 권력을 마음대로 하였고,
조씨趙氏가 궁 안에서 총애를 오로지 하였으니,
한漢나라
왕조王朝가 극도로 쇠퇴한 것이 대체로 또한 못과 샘물이 마르는 형상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