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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女傳補注(2)

열녀전보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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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王孫氏母
王孫氏之母者 齊大夫王孫賈之母也 賈年十五 事齊閔王이라 國亂하여 閔王出見弑로되 國人不討賊이라
王孫母謂賈曰 汝朝出而晚来 則吾倚門而望汝注+① 【集注】 齊策兩望字下, 無汝字.하고 汝暮出而不還이면 則吾倚閭而望汝러니 今汝事王이라가 王出走어시늘 汝不知其處하니 汝尚何歸乎
王孫賈乃入市中하여 而令百姓曰 淖齒亂齊國하여 弑閔王하니 欲與我誅之者 袒右注+ 右, 右臂也. 言袒出右臂, 以爲表識. 戰國策有其事. 漢書曰“爲劉氏左袒”, 本此也.注+③ 【校正】 紹蘭案說文人部“但, 裼也”, 但裼, 卽戰國策․韓非子所謂徒裼袒右之袒. 但爲正字, 袒則假借字. 衣部“袒, 衣縫解也”, 卽內則所謂衣裳綻裂. 袒綻古今字, 與但裼之義不同.하라한대 市人従者四百人이어늘 與之誅淖齒注+④ 【校注】 漢書顏師古注曰 “淖音女․敎反, 字或作卓.”하여 刺而殺之
君子謂王孫母義而能教로다 詩云 教誨爾子하여 式榖似之라하니 此之謂也


8-4 왕손씨王孫氏의 어머니
왕손씨王孫氏의 어머니는 나라 대부大夫 왕손가王孫賈의 어머니이다. 왕손가가 나이 15살에 을 섬겼다. 제나라에 난리가 일어나 민왕이 달아나던 도중에 시해를 당하였으나 나라 사람들이 민왕을 시해한 자를 토벌하지 않았다.
왕손가의 어머니가 왕손가에게 이르기를 “네가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오면 나는 대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렸고,注+① 【집주集注】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에는 두 ‘’자 아래에 ‘’자가 없다. 네가 저녁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마을 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렸다. 네가 이제 왕을 섬기다가 왕이 패주하였는데, 너는 그 계신 곳을 알지 못하니, 너는 어찌 그러고서도 돌아왔느냐?”라고 하였다.
왕손가가 이에 저자 가운데로 들어가 백성들에게 호령號令하기를 나와 함께 요치를 주벌하고자 하는 자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 보이시오.”注+은 옷의 솔기를 푸는 것이고, 는 오른팔이니, 옷의 솔기를 풀어 오른팔을 드러내어 표시를 하는 것을 말한다. ≪전국책≫에 이 일이 실려 있다. ≪한서漢書≫에 말하기를 라고 한 것은 여기에 근본한 것이다.注+③ 【교정校正은 상고하건대, ≪설문해자說文解字≫ 〈인부人部〉에 “‘’은 이다.”라고 하였으니, 단석但裼은 곧 ≪전국책≫과 ≪한비자韓非子≫에 이른바 라고 할 때의 이다. ‘’이 정자正字이고 ‘’은 가차자假借字이다. ≪설문해자≫ 〈의부衣部〉에 “‘’은 옷의 솔기를 푸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곧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이른바 이라는 것이다. 고자古字금자今字이니, 단석但裼의 뜻과 같지 않다.라고 하였다. 저자 사람들 중에 따르는 자가 4백 인이었으므로, 왕손가는 이들과 함께 요치를 주벌하여注+④ 【교주校注】 ≪한서≫ 안사고顏師古 에 말하기를 “‘’의 독음은 반절反切이고, 글자는 혹 ‘’으로도 쓴다.”라고 하였다. 찔러 죽였다.
왕손씨모王孫氏母왕손씨모王孫氏母
군자君子가 이르기를 “왕손가王孫賈의 어머니는 의롭고 아들을 잘 가르쳤도다.”라고 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역주
역주1 齊 閔王 : 戰國時代 齊나라 임금으로, 田氏이고 이름은 地이다. 宣王의 아들로, 湣王 또는 愍王이라고도 한다.
역주2 淖齒가……시해하였으니 : 淖齒는 楚나라의 公族이다. 齊 閔王 17년에 燕나라 장수 樂毅가 燕․秦․趙․魏․韓 다섯 나라의 군사를 거느리고 齊나라를 공격하여 70여 성을 함락하자 민왕이 달아났다. 楚 頃襄王이 淖齒를 파견하여 병사를 거느리고 齊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이에 민왕이 요치를 相國으로 임명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요치가 민왕을 협박하여 鼓里에서 죽였다.
역주3 劉氏를……드러내라 : 左袒은 ‘좌측 어깨의 맨살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같은 편이 되어 生死를 같이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漢나라 高后 8년 呂后가 죽은 뒤에, 右丞相 陳平과 太尉 周勃이 呂氏들을 숙청하려고 모의하고 나서, 주발이 北軍에게 호령하기를 “여씨를 위하는 자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劉氏를 위하는 자는 왼쪽 어깨를 드러내라.[爲呂氏右袒 爲劉氏左袒]”라고 하였는데, 軍中이 모두 좌단을 하니, 주발이 마침내 북군을 이끌고 여씨를 제거하고 한나라를 안정시켰다.(≪漢書≫ 卷3 〈高后紀〉)
역주4 王紹蘭 : 1760~1835. 淸나라 학자로, 자는 畹馨, 호는 南陔 또는 思維居士이다. 저서에 ≪儀禮圖≫, ≪周人禮說≫, ≪周人經說≫, ≪說文集注≫, ≪讀書雜記≫ 등이 있다.
역주5 徒裼袒右 : ≪戰國策≫과 ≪韓非子≫에는 ‘頓足徒裼’으로 되어 있다. ≪戰國策≫ 〈秦策一 張儀說秦王〉과 ≪韓非子≫ 卷1 〈初見〉에 “전쟁이라는 말만 들으면 맨발로 쫓아 나가 맨몸으로 시퍼런 칼날에 대들며, 숯불을 밟아 나라를 위해 죽기를 결심한 자들이 전부입니다.[聞戰 頓足徒裼 犯白刃 蹈煨炭 斷死於前者比是也]”라고 하였다.
역주6 衣裳綻裂 : ≪禮記≫ 〈內則〉에 “부모의 침과 콧물을 보이지 않게 하며, 관과 띠에 때가 끼었거든 잿물을 타서 빨기를 청하며, 의상에 때가 끼었거든 잿물을 타서 빨기를 청하며, 의상이 터지고 찢어졌거든 바늘에 실을 꿰어 깁고 꿰매기를 청한다.[父母唾洟 不見 冠帶垢 和灰請漱 衣裳垢 和灰請澣 衣裳綻裂 紉箴請補綴]”라고 하였다.
역주7 袒右……袒衣縫解也 : 원 표제어는 “袒右 補注 袒衣縫解也”로 ‘袒右’에 대한 王照圓의 補注(위의 원주 ②) “袒 衣縫解也”에 대한 校正이다.
역주8 네……하라 : ≪詩經≫ 〈小雅 小宛〉에 보인다.

열녀전보주(2)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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