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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1)

동래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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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2 隱公辭宋使
【左傳】隱五年이라 宋人取邾田하니 邾人告於鄭曰 請君釋憾於宋이시면 하리이다
鄭人伐宋하야 入其하야 以報하다
宋人使來이어늘
이라하니 公怒하야 乃止하고 辭使者曰 君命寡人하야 同恤社稷之難일새 今問諸使者하니 曰師未及國이라하니 非寡人之所敢知也로다
始吾讀之徒 駕其詭辯하야 玩時君於股掌之上하야
驟使之喜하고 驟使之怒하며 驟使之憂하고 驟使之樂하야
指川爲陸이면 亦從而謂之陸이라하고 指虎爲羊이면 亦從而謂之羊이라하야
雖有耳目鼻口 不得自用하고 而聽辯士之所用하며 하고 俯仰弔賀하야 反晦明於呼吸하고 變寒暑於須臾하고 其三寸之舌 實百萬生靈之司命也라가
及精思而博考之然後 知詭辯初不足恃 彼戰國策所載 特幸而成功者耳
姑以兩端明之하노라
趙魏攻韓華陽 韓告急於秦이나 秦不救韓하니
穰侯曰 事急乎 陳筮曰 未急也라하니 穰侯怒曰 冠蓋相望하야 告敝邑甚急이러니 公來言未急 何也 陳筮曰 彼韓急則將變而他從이리라
以未急故復來耳
穰侯曰 公無見王이라
請今發兵救韓하리라하고 八日而敗趙魏於華陽之下하니라
是說也 世皆以爲工也
鄭伐宋하야 入其郛하니 宋人使來告於魯隱公하다
公聞其入郛也하고 將救之하야 問於使者曰 師何及 對曰 未及國이라하니
公怒하야 乃止하고 辭使者曰 君命寡人하야 同恤社稷之難일새 今問諸使者하니 曰 師未及國이라하니
非寡人之所敢知也라하다
世皆以爲拙也
吾以爲陳筮之言未急 宋使之言未及國 其說初無異者로되
陳筮幸而遇穰侯之聽이라 故人以其說爲工하고 宋使不幸而遇隱公之怒 故人以其說爲拙이라
陳筮 得其時者也 非智也 宋使 失其時者也 非愚也
使陳筮而遇隱公則爲愚 使宋使而遇穰侯則爲智리라
愚智初無定名이요 工拙初無定論이라
以是而推之 凡戰國之策士所以能動時君之聽者 皆出於幸而已 豈區區之說 眞足恃哉
杜預謂宋使忿隱公知而故問이라하니 是大不然이라
宋使以鄭師之伐告急於魯하니 魯隱公問鄭師之所及遠近 此人情之常也
雖聞其入郛 然問諸道路 不如問其使者之爲審하니 則知而復問 亦人情之常也
況宋使之所指 專在於鄭師하니 隱公其可捨鄭師而問他事乎
是則師何及之語 隱公之所當問也 宋使之所當答也
彼使苟非狂惑喪心이면 何自而起其怒乎
其所以發未及國之言 蓋亦如陳筮之謀하야 欲以激魯侯之救耳어늘
不意逢隱公之暴怒하야 不得嗣進其說하고 遂至於辱命而歸하니 是以知詭辯之果不足恃也
自陳筮言之 則回穰侯不救之心하니 其說似有功하고 自宋使言之 則沮隱公欲救之意하니 其說深可罪
利害禍福 特繫乎所逢之時耳어늘 後世徒見戰國策所載百發百中하고 遂以爲正論 不如詭辯하고 君子不如策士라하니 殊不知戰國策之書策士之所作也
書出於策士之手하니 必不自揚策士之非리라
其一時之謀議 成者則載之하고 敗者則刪之하며 中者則載之하고 失者則刪之리니 如陳筮之徒 幸而有功 則大書特書하야 以示後世하고 如宋使之徒 敗人之事 不載於書 亦不知其幾何矣
惟合戰國策而觀之然後 知策士之謀 得不償失하고 利不償害하야 初不能使人之必聽也로라
吾故表而出之하야 以爲策士之戒하노라


은공隱公나라 사신使臣의 요청을 사절하다
은공隱公 5년, 송인宋人나라 땅을 탈취하니, 주인邾人나라에 고하기를 “임금께서 나라에 원한을 갚고자 하신다면 저희 나라가 향도嚮導가 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정인鄭人주왕周王의 군대를 이끌고 나라 군대와 연합하여 나라를 공격하여 외곽까지 침입해 지난번 동문東門 전쟁의 원한을 갚았다.
송인이 사신을 보내 구원병을 요청하는 명을 고하였다.
은공은 정군鄭軍이 외곽까지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는 송나라를 구원하려고 하여 사신에게 “정나라 군대가 어디까지 왔는가?”라고 묻자, 사신이 “아직 도성都城까지 오지는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은공은 노하여 구원하려던 계획을 중지하고서 사신에게 말하기를 “귀국貴國의 임금께서 과인에게 명하여 사직社稷의 어려움을 함께 근심하자고 하시기에 지금 내가 사신에게 사정을 물었더니, ‘정나라 군대가 아직 도성까지 오지는 않았다.’라고 하니, 이는 과인이 감히 알 바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처음 내가 《전국책戰國策》을 읽을 때에,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장의張儀, 소진蘇秦, 순우곤淳于髡, 공손연公孫衍 등이 궤변詭辯을 구사하여 당시의 군주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놀면서
갑자기 기뻐하게 하기도 하고 갑자기 노하게 하기도 하며, 갑자기 근심하게 하기도 하고 갑자기 즐거워하게 하기도 하여,
내를 가리켜 뭍이라고 하면 임금도 따라서 뭍이라고 하고 호랑이를 가리켜 양이라고 하면 임금도 따라서 양이라고 하였다.
비록 귀‧눈‧코‧입이 있으나 스스로 사용하지 못하고 오직 변사辯士가 조종하는 대로 따르며, 변사가 손뼉을 치면서 기쁨을 드러내기도 하고 팔을 걷어붙이고서 격분을 표하기도 하며, 고개 숙여 위로하기도 하고 고개 들어 축하하기도 하여, 순식간에 임금의 침울한 기색을 명랑한 기색으로 돌리기도 하고 잠깐 동안에 두려운 마음을 즐거운 마음으로 변화시키기도 한 것을 보고서, 변사들의 세치 혀가 실로 백만 생민生民의 목숨을 좌우한다고 여겼다.
그러다 다시 정밀히 살피고 널리 고찰한 뒤에 궤변은 애당초 믿을 만한 것이 못 되고, 저 《전국책戰國策》에 실린 일들은 단지 요행으로 성공한 것일 뿐임을 깨달았다.
나는 우선 두 가지 일로써 요행이었음을 증명해보겠다.
나라와 나라가 나라 화양성華陽城을 공격하니 나라는 나라에 위급한 사정을 알리고서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나라가 구원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나라는 진서陳筮나라로 보내어 양후穰侯를 만나보게 하였다.
양후가 “사태가 위급한가요?”라고 묻자, 진서가 “아직 위급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양후가 노하여 말하기를 “귀국貴國이 계속 우리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자기 나라가 매우 위급하다고 고했었는데, 은 와서 아직 위급하지는 않다고 하는 것은 어째서요?”라고 하자, 진서가 대답하기를 “저 나라가 위급하였다면 아마 마음을 바꾸어 다른 나라에 붙었을 것입니다.
아직 위급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다시 온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양후는 “공은 우리 을 만나 뵐 것이 없습니다.
내가 곧 군대를 일으켜 나라를 구원하겠습니다.”라고 하고서, 출병出兵하여 8일 만에 화양성 아래에서 나라와 나라 군대를 패배시켰다.
진서의 이 말을 세상 사람들은 모두 공교롭다고 한다.
나라가 나라를 공격하여 나라 외곽外郭까지 쳐들어가니, 송인宋人(宋君)이 사신을 보내어 은공隱公에게 위급함을 고하였다.
은공은 정군鄭軍이 외곽까지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서 송나라를 구원하려고 하여 사신에게 “정나라 군대가 어디까지 쳐들어왔는가?”라고 묻자, 사신이 “아직 도성까지 오지는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은공은 노하여 구원하려던 계획을 중지하고서 사신에게 말하기를 “귀국貴國의 임금께서 과인에게 명하여 사직의 어려움을 함께 근심하자고 하시기에 지금 내가 사신에게 사정을 물었더니, ‘정나라 군대가 아직 도성까지 오지는 않았다.’라고 하니,
이는 과인이 감히 알 바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사신의 이 말을〉 세상 사람들은 모두 졸렬하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진서陳筮가 ‘아직 위급하지 않다.’고 한 말과 송사宋使가 ‘아직 도성까지 이르지는 않았다.’고 한 말이 애당초 다른 것이 없었으되,
진서의 말은 양후穰侯가 들어주는 행운을 만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말을 공교롭다고 하고, 송사의 말은 은공隱公이 노하는 불행을 만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말을 졸렬하다고 한 것이다.
진서는 때를 만난 사람이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요, 송사는 때를 만나지 못한 사람이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가령 진서가 은공을 만났다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송사가 양후를 만났다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은 애당초 정해진 명칭이 아니고, 공교로움과 졸렬함은 애당초 정해진 결론이 아니다.
이로써 추론하면 전국시대戰國時代책사策士들이 당시의 임금을 감동시켜 자기의 말을 따르게 한 것은 모두 요행에서 나온 것일 뿐이니, 어찌 저들의 하찮은 말이 참으로 믿을 만해서였겠는가.
두예杜預는 “송사宋使은공隱公이 알면서도 고의故意로 묻는 것을 분하게 여겨 〈군색한 말로 책망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크게 옳지 않다.
송사宋使정군鄭軍의 공격으로 인하여 나라에 위급함을 고하고서 구원을 청하기 위해 왔으니, 은공隱公이 ‘정군이 어디까지 왔느냐.’고 물은 것은 사람의 상정常情이다.
정군이 외곽外郭까지 들어왔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길 가는 사람에게 묻는 것이 사신에게 묻는 것만큼 자세하지 못하니 〈이미 소문을 들어〉 알았더라도 다시 묻는 것 또한 사람의 상정이다.
더구나 송사가 사명使命을 받고 온 뜻이 오로지 정군의 침공에 있었으니, 은공이 어찌 정군의 일을 놓아두고 다른 일을 묻겠는가?
그렇다면 ‘정군이 어디까지 왔느냐.’는 말은 은공이 당연히 물을 바이고, 송사가 당연히 대답할 바이다.
저 송사가 미쳐서 실성한 사람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은공이 분노하게 하였겠는가?
송사가 ‘아직 도성까지 이르지는 않았다.’고 말을 한 것은 아마도 또한 진서陳筮의 계략처럼 하여 노후魯侯를 자극하여 구원하게 하고자 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은공의 폭노暴怒를 만나 그 말을 계속 올리지 못하고 드디어 사명使命을 욕되게 하고 돌아가는 데 이르렀으니, 이로 인해 궤변詭辯은 과연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알겠다.
진서陳筮로 말하면 구원하지 않으려는 양후穰侯의 마음을 돌려놓았으니 그 말이 공이 있는 것 같고, 송사宋使로 말하면 구원하려는 은공隱公의 뜻을 저지하였으니 그 말이 매우 큰 죄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이해利害화복禍福은 어떤 때를 만나느냐에 달렸을 뿐인데, 후세 사람들은 단지 《전국책戰國策》에 실린 변사辯士들의 계모計謀백발백중百發百中한 것만 보고서 드디어 정론正論궤변詭辯만 못하다 하고 군자君子책사策士만 못하다 하니, 이는 자못 《전국책》의 글이 책사가 쓴 것인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글이 책사의 손에서 나왔으니 반드시 스스로 책사의 잘못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한때의 계모 중에 성공한 것은 기재하고 실패한 것은 삭제하였을 것이며, 적중한 것은 기재하고 실패한 것은 삭제하였을 것이니, 요행으로 성공한 진서의 일 같은 것은 대서특서大書特書하여 후세에 보이고, 남의 일을 망친 송사의 일 같은 것은 책에 기재하지 않은 것이 또한 얼마나 많을지 알 수 없다.
《전국책》에 실린 일들을 종합해본 뒤에, 책사의 계모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고 이익보다 손해가 많아서, 애당초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믿고 따르게 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나는 그 일을 드러내어 책사의 경계로 삼노라.


역주
역주1 [역주] 敝邑爲道 : 敝邑은 邾人이 스스로 자기 나라를 이른 것이다. 道는 嚮導이다. 隱公 4년에 두 차례 侵攻당한 원한을 풀려고 한 것이다.
역주2 [역주] 以王師會之 : 鄭 莊公이 아직도 周王의 卿이었기 때문에 周나라의 군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역주3 [역주] 郛 : 郛는 外郭이다.
역주4 [역주] 東門之役 : 東門의 전쟁은 隱公 4년에 있었다.
역주5 [역주] 告命 : 告命은 策書이다. 魯나라에 와서 공격받고 있음을 고한 것이다.
역주6 [역주] 隱五年……非寡人之所敢知也 : 이 일이 隱公 7년에 은공이 邾나라를 친 배경이다.
역주7 [역주] 未及國 : 杜預의 注에 “使者는 隱公이 알고 있으면서 故意로 묻는 것을 분하게 여겨 군색한 말로 책망한 것이다.” 하였다.
역주8 [역주] 戰國策 : 戰國時代 辯士들이 各國을 돌아다니며 遊說한 謀策을 나라별로 나누어 수록한 책으로 모두 33권인데, 作者는 未詳이다. 戰國은 春秋時代가 끝나고 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하기 이전까지의 240년 동안을 이른다.
역주9 [역주] 儀秦髡衍 : 楚‧燕‧齊‧韓‧魏‧趙의 六國을 설득하여 秦나라를 섬기도록 한 連橫策으로 秦나라의 승상이 된 張儀, 六國을 설득하여 聯合해서 秦나라에 抗拒하도록 한 合縱策으로 六國의 승상이 된 蘇秦, 齊나라의 辯士 淳于髡, 秦나라를 위해 소진의 합종책을 깨뜨린 辯士 公孫衍을 이른다.
역주10 [역주] 抵掌扼腕 : 抵掌은 대화 중에 기쁜 마음이 드러나 손뼉을 치는 모습이며, 扼腕은 분노하여 팔을 걷어붙이는 행동이다.
역주11 [역주] (然)[吾] : 저본에는 ‘然’으로 되어 있으나, 사고전서본에 의거하여 ‘吾’로 바로잡았다.
역주12 [역주] 陳筮見穰侯 : 陳筮가 穰侯를 만나 주고받은 말과, 秦나라가 구원한 일은 《史記》 〈韓世家〉에 보인다. 양후는 魏冉의 封號이다. 穰邑에 봉해졌기 때문에 양후라 한 것이다. 秦 昭王의 母后인 宣太后의 아비 다른 동생으로 秦나라의 實權者였다.

동래박의(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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