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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2)

동래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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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宋萬弑閔公
나라 남궁장만南宮長萬송 민공宋 閔公시해弑害하다
[左傳]莊十二年이라 하고 遇仇牧于門하야 하고 遇大宰督于東宮之西하야 又殺之하고
장공莊公 12년, 송만宋萬몽택蒙澤에서 송 민공宋 閔公시해弑害하였다. 그리고 돌아와 문에서 구목仇牧을 만나 쳐 죽이고 동궁東宮 서쪽에서 태재 독太宰 督을 만나 또 쳐 죽이고,
자유子游를 임금으로 세웠다. 그러자 여러 공자公子들은 로 도망가고, 공자 어열公子 御說으로 도망하니, 남궁우南宮牛맹획猛獲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박읍亳邑을 포위하였다.
〈冬 十月及戴武宣穆莊之族으로 以曹師伐之하야 殺南宮牛于師하고 殺子游于宋하고하다
겨울 10월에 숙대심叔大心대공戴公무공武公선공宣公목공穆公장공莊公종족宗族들과 함께 조국曹國의 군대를 거느리고 송만宋萬을 공격하여, 남궁우南宮牛전장戰場에서 죽이고 공자 유公子 游나라 도성都城에서 죽이고서 환공桓公을 임금으로 세웠다.
猛獲奔衛하고 南宮萬奔陳할새 하다〉 宋人請猛獲于衛한대 衛人欲勿與어늘
그러자 맹획은 나라로 도망가고 남궁만南宮萬나라로 도망갔는데, 그는 도망갈 때 승거乘車에 그 어미를 태우고 하루 만에 나라에 당도하였다. 송인宋人이 맹획을 돌려달라고 나라에 요청하니 위인衛人이 주려 하지 않았다.
曰 不可하다 天下之惡一也 惡於宋而保於我하면 保之何補리오 得一夫而失一國하고 라하니
그러자 석기자石祈子가 말하기를 “요청을 거절해서는 안 됩니다. 악행惡行을 미워하는 것은 천하의 어느 나라이고 똑같은데, 나라에서 악행을 저지른 자를 우리나라가 보호保護한다면, 보호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한 사람을 얻고 한 나라를 잃는 것이며, 악인惡人을 돕고 우호국友好國을 버리는 것이니,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衛人歸之하다 亦請南宮萬于陳以賂한대 陳人使婦人飮之酒하고 而以犀革裹之러니 比及宋 手足皆見이라 하다
위인衛人은 맹획을 나라로 돌려보냈다. 나라는 다시 나라에 남궁만을 돌려달라고 요청하며 뇌물을 보내니, 진인陳人부인婦人(여자)을 시켜 남궁만에게 취하도록 술을 먹이게 하고는 그를 무소 가죽으로 싸서 나라로 보냈는데, 나라에 당도할 때쯤에는 손발이 모두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송인宋人은 이들을 죽여 모두 젓을 담갔다.
[主意]公孫述以「拘」而失馬援之心하고 宋閔公以「縱」而召宋萬之怨하니 皆無鼓舞豪傑之術故也 善鼓舞豪傑者 必有漢高祖而後可니라
공손술公孫述구근拘謹(예의에 얽매어 언행을 삼감)으로 인해 마원馬援의 마음을 잃었고, 송 민공宋 閔公은 방종으로 인해 송만宋萬의 원한을 불렀으니, 이는 모두 호걸豪傑고무鼓舞(격려해 환심을 삼)시키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능히 호걸을 고무시키려면 반드시 한 고조漢 高祖와 같은 재능이 있은 뒤에야 가능하다.
末段引文武周公以至誠待將帥하야 議論愈高하니 「拘」「縱」二字 是骨子니라
끝단락에 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지성至誠으로 장수들을 대우한 것을 인용하여 의론이 더욱 고상하니, ‘’와 ‘’ 두 글자는 바로 이 글의 핵심이다.
注+警蹕 天子出入之儀 之待注+隗囂據隴右 以馬援爲將軍 時公孫述僭位於蜀隗囂 使援往觀之 援與述同里相善 以爲旣至當握手歡如平生 而述盛陳陛衛 以延援入 援歸謂囂曰 子陽井底蛙耳 而妄自尊大 不如專意東方 ○此言公孫述以拘而失豪傑之心 迎笑 光武之待馬援也
대전大殿 뜰에 창을 든 시위무사侍衛武士를 세워놓고, 사람들의 통행을 금지한 것은注+경필警蹕천자天子가 출입할 때 행하는 의식이다. 공손술公孫述마원馬援을 맞이할 때와 보낼 때의 광경이고,注+외효隗囂농서隴西 지역을 점거하고 마원馬援유덕장군緌徳將軍으로 삼았다. 이때 공손술公孫述이 황제를 참위僭位하고 외효를 부르니 외효가 마원을 사자使者로 보내어 그를 만나보게 하였다. 마원은 본래 공손술과 한 마을 사람으로 서로 사이가 좋았으므로 자기가 가면 손을 잡고 평소처럼 즐거워할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공손술은 궁전 뜰에 호위무사를 세워놓고서 마원을 맞아 들였다. 마원은 돌아와서 외효에게 “자양子陽(공손술의 )은 우물 안 개구리일 뿐입니다. 함부로 잘난 체하니 동방東方(광무제光武帝)에 전념하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공손술이 구근拘謹으로써 호걸의 마음을 잃었음을 말한 것이다. 간소한 차림으로 웃으면서 맞이한 것은 광무제光武帝가 마원을 접대할 때의 모습이다.
以述之肅으로 反取井蛙之譏하고 光武之嫚으로 而援委心焉注+建武四年 囂使援奉書洛陽 援至 引見 世祖岸幘迎笑曰 卿遨遊二帝間 今見卿 使人大慙 援謝曰 當今之世 非但君擇臣 臣亦擇君矣 臣與公孫述同縣 少相善 臣前至蜀 述陛戟而後進臣 臣今遠來 陛下何知非刺客姦人 而簡易若是 帝復笑曰 卿非刺客 顧說客耳 援曰 天下反覆 盜名字者不可勝數 今見陛下 恢廓大度 同符高祖 乃知帝王自有眞也 見東漢本傳하니 然則樸樕小禮注+樸樕 小貌 果非所以待豪傑耶注+結上文意
공손술의 엄숙嚴肅은 도리어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마원의 조롱을 받았고, 광무제의 간만簡慢은 끝내 마원으로 하여금 충성을 바치게 하였으니,注+건무建武 4년에 외효隗囂마원馬援을 사신으로 보내어 낙양洛陽(광무제光武帝)에 편지를 올리게 하였다. 마원이 당도하자 접견할 때 세조世祖(광무제)는 두건을 쓰고 웃음으로 맞이하면서 “이 두 황제(공손술과 자기) 사이를 왕래하니, 지금 을 만나니 크게 부끄럽다.”라고 하였다.
마원이 감사를 표하고 말하기를 “지금 세상에는 임금이 신하를 선택할 뿐만 아니라 신하도 임금을 선택합니다. 은 공손술과 동향同鄕 사람으로 젊어서부터 서로 사이가 좋았습니다. 신이 전에 에 갔을 때에 공손술은 뜰에 창을 든 무사武士를 세운 뒤에야 신을 진입進入하게 하였습니다. 신이 지금 먼 곳에서 왔으니, 폐하陛下께서는 신이 자객刺客이나 간인姦人이 아닌 줄을 어찌 아시고서 이처럼 방비를 설치하지 않으신 것입니까?”라고 하자, 광무제는 다시 웃으며 “경은 자객이 아니라 세객說客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마원이 “천하에 세상을 뒤엎고 명자名字(황제皇帝명호名號)를 훔친 자가 이루 셀 수 없이 많은데, 지금 폐하를 뵙건대 넓고 큰 도량이 고조高祖(유방劉邦)와 같으시니, 이제야 제왕帝王은 본래 진명眞命(하늘이 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 보인다.
그렇다면 자잘하고 작은 예절禮節注+복속樸樕은 작은 모양이다. 과연 호걸豪傑을 대우하는 방법이 아니란 말인가?注+윗글의 뜻을 맺은 것이다.
英雄豪悍之士注+英雄 有智者 豪悍 有力者 하야 注+此等人本不爲法度所拘하니 爲君者 亦當以度外待之注+亦不可拘之以法度하야
영웅英雄(재지才智가 뛰어난 사람)과 호한豪悍(호방豪放하고 용력勇力이 강한 사람)은注+영웅英雄은 지혜가 있는 자이고, 호한豪悍용력勇力이 있는 자이다. 마음이 넓고 자유분방하여 법도에 구애되지 않으니,注+이런 사람은 본래 법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임금도 법도를 무시하고 대우하여야 한다.注+〈임금도〉 법도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注+崖岸者 江河之際 邊幅者 布帛之兩旁 破之削之 皆示不拘法度之意하고 拊背握手하야 以結其情注+示其親密之情하고 箕踞盛氣하야 以折其驕注+箕踞 謂踞坐如箕也 此以消其驕慢之氣하며
엄숙한 태도와 점잖은 모습을 버리고注+애안崖岸강하江河양안兩岸이고, 변폭邊幅포백布帛의 양단이다. 이것을 파기破棄하고 삭제削除한다는 것은 법도에 구애받지 않는 뜻을 보인 것이다. 그 등을 두드리고 그 손을 잡으면서 그와 교분交分을 맺고,注+친밀한 정을 보인 것이다. 오만하게 다리를 뻗고 앉아 크게 노한 기색을 보여 그의 교만한 기세를 꺾기도 하고,注+기거箕踞는 키처럼 길게 다리를 뻗고 앉는 것이니, 이는 상대의 교만한 기운을 꺾으려는 것이다.
嘲誚謔浪하야 以盡其歡注+嘲誚 譏罵也 謔浪 戱語也 此以盡其歡悅之意하고 慷慨歌呼하야 注+示其不相疑忌之心然後 足以注+然後 豪傑肯爲效死이니
비웃으며 욕하고 방탕하게 농담하여 그를 즐겁게 하기도 하고,注+조초嘲誚는 비난하고 욕하는 것이며, 학랑謔浪은 농담하는 말이니, 이는 기쁘고 즐거워하는 뜻을 다하려는 것이다. 분개하며 노래를 불러 진심을 보이기도 한注+서로 의심하고 꺼리지 않는 마음을 보인 것이다. 뒤에야, 그로 하여금 목숨 바쳐 나에게 충성하게 할 수 있다.注+그런 뒤에야 호걸豪傑이 나에게 목숨을 바치려 할 것이라는 말이다.
是非樂放肆也 待豪傑者法當如是也注+以上是說得豪傑之法不在乎拘而出乎縱 然未曾說出此篇主意ㄹ새니라
이는 방자함을 즐겨서가 아니라 호걸豪傑을 대우하는 방법이 이와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注+이상以上호걸豪傑을 설득하는 방법이 ‘’에 있지 않고 ‘’에서 나오는 것임을 말하였다. 그러나 아직 본편의 주의主意를 말한 것은 아니다.
南宮萬之勇 聞於諸侯注+南宮姓 萬名 ○入本題로되 注+惟不拘以法度 故以戱言而靳侮之 詳見題 豈非欲略去細謹하야 自謂得待豪傑之法耶注+推原閔公之心 必以萬爲豪傑之士 故其待之如此
남궁만南宮萬은 용맹하기로 제후에 소문난 사람이었으되,注+남궁南宮이고, 이름은 이다. ○〈여기부터〉 본편의 일로 들어간다. 송 민공宋 閔公조롱嘲弄하며 모욕한 것은注+법도에 구애받지 않았기 때문에 농담하고 조롱하며 모욕한 것이니, 본편의 제목題目 밑의 에 자세히 보인다. 어찌 작은 예절을 모두 버리는 것이 호걸豪傑을 대우하는 방법에 맞는다고 여겨서가 아니겠는가?注+민공閔公의 마음을 추원推原(추구推究)해보면 민공은 틀림없이 송만宋萬을 호걸스러운 사람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대우한 것이다.
然終召萬之怨하야 至於見弑하니 何也注+設疑問難 謂光武以放肆而得馬援之心 閔公以放肆而致宋萬之禍其故何也 袒裼暴虎注+袒裼 去衣也注+言有馮婦之力 然後可以袒裼而搏虎 馮婦事見孟子 虎以喩豪傑 怯夫而試馮婦之術注+怯夫以喩閔公 言閔公無駕馭豪傑之術 而效人之放肆이면 適足以劘虎牙耳注+怯夫暴虎爲虎所食 猶閔公侮宋萬 爲萬所弑也 至此方見主意니라
그러나 끝내 남궁만의 원한을 불러 시해弑害되는 데 이른 것은 어째서인가?注+광무제光武帝방사放肆마원馬援의 마음을 얻었고, 송 민공宋 閔公방사放肆송만宋萬의 화를 초래했으니, 그 까닭이 무엇이냐고 의문문의 형식으로 반론한 것이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는 것은注+단석袒裼은 옷을 벗는 것이다. 반드시 풍부馮婦인 뒤에야 가능하니,注+풍부馮婦의 힘이 있은 뒤에야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풍부馮婦의 일은 ≪맹자孟子≫에 보인다. 호랑이는 호걸豪傑을 비유한 것이다. 겁 많은 사내가 풍부馮婦의 방법을 시험하고자 한다면注+겁부怯夫송 민공宋 閔公을 비유한 것이다. 민공閔公호걸豪傑을 통제할 방법도 없으면서 남의 방사放赦함만을 본받았다는 말이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말 뿐이다.注+겁부怯夫가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다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힌 것이, 민공閔公송만宋萬을 모욕했다가 송만에게 시해당한 것과 같다. 이 문장에서야 주의主意가 드러났다.
古之嫚侮者 莫如漢高帝注+引高帝嫚侮豪傑事爲證 高帝之嫚侮 豈徒然哉注+高帝自有駕馭豪傑之術 故能嫚侮리오 踞洗以挫黥布하고 隨以王者之注+隨何說九江王黥布歸漢 旣至 漢王方踞牀洗足 召布入見 布大怒 悔來 欲自殺 及出就舍 帳御飮食從官 皆如漢王居 布又大喜過望 出漢黥布傳하며
옛날에 남을 경멸해 모욕하기로 유명했던 사람으로는 한 고제漢 高帝보다 더한 사람이 없었다.注+고제高帝호걸豪傑을 경멸하고 모욕한 일을 인용하여 증거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고제가 경멸해 모욕한 것이 어찌 이유가 없었겠는가?注+고제高帝는 스스로 호걸豪傑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기 때문에 경멸하고 모욕하였다는 것이다. 걸상에 걸터앉아 발을 씻기면서 경포黥布를 접견하여 경포의 기세를 꺾고는 즉시 왕자王者공장供帳으로 대우하였고,注+수하隨何구강왕 경포九江王 黥布를 설득하여 나라로 귀순歸順하게 하였다. 경포가 오자, 한왕漢王침상寢牀에 걸터앉자 발을 씻으면서 경포를 불러 들어와 알현謁見하게 하니, 경포는 크게 노하여 귀순해 온 것을 후회하고서 자살하려 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관사館舍로 가서 보니 장막과 기용器用과 음식과 시종하는 관리가 모두 한왕漢王의 거처와 동일하였다. 그러자 경포는 또 기대 밖이라고 크게 기뻐하였다. ≪한서漢書≫ 〈경포전黥布傳〉에 나온다.
嫚罵以挫趙將하고 隨以千戶之侯封注+高祖令周昌選趙壯士可令將者 白見四人 上嫚罵曰 豎子能爲將乎 四人慙 皆伏地 封各千戶 以爲將 出本紀하니라 用不測之辱注+如踞跣嫚罵之類하고 用不測之恩注+如王者供帳千戶封侯之類하야
나라 장수將帥들을 경멸해 꾸짖어 그들의 기세를 꺾고는 즉시 천호千戶하였다.注+고조高祖주창周昌에게 명하여 나라 장사壯士 중에 장수將帥가 될 만한 자를 선발하게 하니, 〈주창이 네 사람을 선발하고서 고조에게〉 이 네 사람을 불러보라고 아뢰었다. 고조가 〈이 네 사람을 만나볼 때〉 경멸해 꾸짖기를 “이런 풋내기가 어찌 장수가 될 수 있겠느냐?”라고 하니, 네 사람은 부끄러워하며 모두 땅에 엎드렸다. 그러나 이들에게 각각 천호千戶씩을 봉해주고서 장수로 삼았다. ≪한서 고제본기漢書 高帝本紀 예상 밖의 모욕을 주고는注+걸상에 걸터앉아 발을 씻기게 하고, 〈장사壯士들을〉 경멸하고 모욕한 일을 이른다. 예상 밖의 은혜를 입힌 것이,注+한왕漢王처럼 구강왕 경포九江王 黥布에게 공장供帳을 내리고, 〈장사壯士들을〉 천호千戶한 것을 이른다.
注+造語有工 言高帝之寵辱豪傑 猶炎暑之時 忽降霜雪 隆冬之際 忽震雷霆也하야 豪傑하야 莫知端倪注+使豪傑之士 由其術中而不能自知하니 此高帝所以能注+此段發盡主意 言有此鼓舞之術 然後能嫚侮豪傑而無禍니라
마치 한창 무더운 여름철에 서리와 눈이 내리고, 곤충昆蟲동면冬眠하는 겨울철에 벼락이 치는 것과 같아,注+조어력造語力이 뛰어나다. 고제高帝호걸豪傑을 총애하고 모욕하는 것이 무더운 여름에 갑자기 서리와 눈이 내리고, 엄동설한에 갑자기 번개와 벼락이 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호걸豪傑들을 어리둥절하게 하여 그 속셈을 알지 못하게 하였으니,注+호걸豪傑들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자기의 술수에 떨어지게 한 것이다. 이것이 고제가 한 세상의 호걸을 고무鼓舞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注+이 단락은 주의主意를 다 말하였다. 이런 고무의 술책이 있은 뒤에야 호걸을 경멸하고 모욕하더라도 화가 없을 수 있다는 말이다.
無鼓舞豪傑之術注+反說하고 則爲公孫述注+失馬援之心이요 則爲宋閔公注+致宋萬之弑 ○以拘縱二字 斷二事極當 應在結尾이니 何往而不敗哉注+述以拘亡國 閔以縱殺身리오
만약 호걸을 고무할 술책術策도 없으면서注+반론反論하는 말이다. 구근拘謹하였다면 공손술公孫述이 되었을 것이고,注+마원馬援의 마음을 잃었다는 말이다. 방종하였다면 송 민공宋 閔公이 되었을 것이니,注+송만宋萬의 시해를 초래했다는 말이다. ○로 두 사람의 일을 논단論斷한 것이 매우 합당하다. 이 말의 응대는 결미結尾에 있다. 어찌 가는 곳마다 실패하지 않았겠는가?注+공손술公孫述이 ‘’ 때문에 나라를 잃고, 송 민공宋 閔公이 ‘’ 때문에 죽게 되었음을 이른다.
此不足論也注+又轉上意 若高帝鼓舞豪傑之術이라야 其至矣乎ㄴ저 曰未也 術必有時而窮注+後抑하니라
아! 이들(송 민공宋 閔公공손술公孫述)은 논할 가치도 없고,注+또 윗글의 뜻을 전환하였다. 호걸豪傑고무鼓舞술책術策고제高帝 같아야 지극하다 하겠으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제의 술책이 때로 곤궁한 경우가 있었다.注+〈이 문장은〉 문장 뒤에서 억제하는 수법을 사용하였다.
高帝嫚侮之患 卒見於暮年注+雖得豪傑之用 亦致諸將之爭 此高帝之術窮也하니 此所以厭拔劍擊柱之爭하야 而俯就叔孫通之儀也注+니라
고제가 남을 멸시하여 모욕한 후환後患이 마침내 만년晩年에 나타났으니,注+비록 호걸豪傑을 등용하는 계책을 얻었다 하더라도 여러 장수들의 다툼을 초래하였으니, 이것이 고제高帝의 수법이 궁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장군들이 술에 취해 칼을 뽑아 궁전의 기둥을 치며 공을 다투는 것에 싫증이 나서, 숙손통叔孫通조의朝儀를 받아들이게 된 까닭이다.注+한 고조漢 高祖황제皇帝가 된 초기에 나라 때의 까다로운 의법儀法을 다 없애고 간단하게 법을 제정하였으므로, 신하들 중에 술에 취해 공을 다투면서 고함을 치고 칼을 뽑아 기둥을 치는 자까지 있었다. 숙손통叔孫通이 “나라의 여러 유생儒生들과 제자弟子를 불러 함께 조의朝儀를 정하겠습니다.”라 하였다.
高帝豈不欲早用叔孫通之儀哉注+設問高帝初年 何不用此朝儀리오 彼見其所謂儀者 注+禮文非悉難行하야 決非武夫悍將所能堪注+武夫悍將 樂於放肆 不能受此拘束이니
고제인들 어찌 일찍부터 숙손통의 조의를 쓰고 싶지 않았으랴만,注+고제高帝가 처음에 어찌 이런 조의朝儀를 쓰려 하지 않았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고제가 보기에 ‘조의朝儀’란 것이 사람을 속박하고 까다롭고 좀스러워서,注+모든 예법禮法이 행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결코 무장武將들이 감당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注+무장武將들은 방사放肆를 좋아하니 이런 구속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天下未定而遽行之注+設使早用此儀 必失豪傑之心注+必如公孫述之於馬援이라 故寧蔑棄禮法而不顧注+言帝所以盡去禮文而爲簡易하니 殊不知名敎之中 自有樂地注+出晉樂廣傳 至此方斷以正意니라 豈叔孫輩所能測哉注+叔孫通雖號儒者 亦未能知此理
천하가 평정되기도 전에 서둘러 시행하면注+‘가령 때 이르게 이런 이치를 쓴다면’의 뜻이다. 반드시 호걸들의 마음을 잃을 것으로 여겼다.注+반드시 공손술公孫述마원馬援을 대우한 것과 같은 결과일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호걸들의 마음을 잃기보다〉 차라리 예법禮法을 버리고 돌아보지 않은 것이니,注+이것이 고제高帝예법禮法을 다 제거하고 간단하게 한 이유라는 말이다. 이는 명교名敎(명분을 중시하는 예교禮敎) 가운데 절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 것이다.注+진서晉書≫ 〈악광전樂廣傳〉에 나온다. 이 문장에 이르러 바야흐로 정의正意로 결단하였다. 어찌 숙손통 등이 헤아릴 수 있는 바였겠는가?注+숙손통叔孫通이 비록 유자儒者로 불리는 자라 할지라도 이런 이치를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之詩注+文武歌采薇以遣將帥 歌出車以勞還役 周公作東山以勞東征之士 雨雪寒燠注+如言雨雪載塗 歲亦莫止 春日遲遲之類 草木禽獸注+如言蜾之實 倉庚 伊威 蟰蛸之類 僕馬衣裳注+如言 僕夫況瘁 四牡業(二)[業]
制彼裳衣之類
室家婚姻注+如言靡室靡家親結其縭之類 曲盡人情注+曲盡將帥士卒人情 昵昵如兒女語注+視將帥如家人하니
채미采薇〉‧〈출거出車〉‧〈동산東山注+문왕文王무왕武王이 〈채미采薇〉를 노래하며 장수를 파견하였고, 〈출거出車〉를 노래하며 돌아온 군대를 위로하였으며, 주공周公이 〈동산東山〉을 지어 동정東征에서 돌아온 군대를 위로하였다. 비와 눈, 추위와 더위,注+시경詩經≫ 〈출거出車〉의 “우설재도雨雪載塗(눈이 내려 질척거리네)”, 〈채미采薇〉의 “세역막지歲亦莫止(해가 저물리로다)”, 〈출거〉의 “춘일지지春日遲遲(봄날이 더디고 더디네)”라고 말하는 유와 같다. 풀과 나무, 새와 짐승,注+시경詩經≫ 〈동산東山〉의 “과라지실蜾臝之實(하늘다리의 열매여)”, “창경우비倉庚于飛(꾀꼬리 날음이여)”의 창경倉庚, “이위재실伊威在室(쥐며느리가 방에 있으며)”의 이위伊威, “소소재호蠨蛸在戶(갈거미가 문에 있으며)의 소소蟰蛸”를 말하는 유와 같다. 마부馬夫와 말, 상의와 하의,注+시경詩經≫ 〈출거出車〉의 “복부황췌僕夫况瘁(마부도 이에 파리하도다)”, 〈채미采薇〉의 “사모업업四牡業業(네 마리 수말이 건장하며)”, 〈동산東山〉의 “제피상의制彼裳衣(저 치마와 옷을 만들어)”라고 말하는 유와 같다. 실가室家혼인婚姻에 대한 말은注+시경詩經≫ 〈채미采薇〉의 “미실미가靡室靡家(방에 있지 못하고 집에 있지 못함이)”, 〈동산東山〉의 “친결기리親結其縭(어머니가 그 손수건을 매어주니)”라고 말하는 유와 같다. 사람의 감정을 자세히 표현한 것이注+장수將帥사졸士卒의 감정을 자세히 표현했다는 말이다. 마치 여아女兒의 말같이 친절하니,注+장수將帥 대하기를 집안 식구처럼 했다는 말이다.
文武周公之待將帥 開心見誠 蓋如此注+此聖人待將帥之道以誠而不以術也 初未嘗如陋儒之拘注+未嘗如叔孫通之用朝儀 亦不至如後世之縱也注+亦未嘗如漢高帝之嫚罵光武之簡易也
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장수將帥들을 대우함에 있어 마음을 열고 정성을 보인 것이 대체로 이와 같았고,注+이는 성인聖人장수將帥들을 성심으로 대하고 권모술수를 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애당초 고루한 유생儒生(숙손통叔孫通)처럼 예의에 구속되지도 않았고,注+일찍이 숙손통叔孫通처럼 조의朝儀를 쓴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또 후세 사람(한 고조漢 高祖)처럼 방종에 이르지도 않았다.注+또한 일찍이 한 고제漢 高帝처럼 거만하게 욕하거나, 광무제光武帝처럼 간이簡易하게 대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高帝明達하야 最易告語注+言高帝天資明達易爲進說어늘 惜乎 無以是詩曉之注+但惜當時無人以文武周公之詩而曉喩之
고제高帝는 사리에 밝고 통달하여 간언諫言을 올리기가 가장 쉬웠는데,注+고제高帝는 타고난 자질이 사리에 밝고 통달하여 간언諫言을 올리기가 쉽다는 말이다. 애석하게도 이 를 인용해 깨우친 사람이 없었다.注+다만 당시에 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의 시를 가지고 깨우쳐준 사람이 없었음을 애석하게 여기는 말이다.
역주
역주1 宋萬弑閔公于蒙澤 : 蒙澤은 宋나라 땅이다. 宋萬은 바로 南宮長萬이다.
역주2 批而殺之 : 宋萬이 힘이 세었기 때문에 손으로 仇牧을 쳐서 죽였다는 말이다.
역주3 子游 : 宋나라 公子이다.
역주4 群公子奔蕭 公子御說(열)奔亳 : 蕭는 宋나라 邑으로, 지금의 沛國 蕭縣이다. 亳도 宋나라 邑으로, 蒙縣 서북에 亳城이 있다.
역주5 南宮牛猛獲帥師圍亳 : 牛는 長萬의 아들이고, 猛獲은 長萬의 黨이다.
역주6 蕭叔大心 : 宋나라 蕭邑의 大夫로 이름이 叔이고 字가 大心이다.
역주7 桓公 : 御說이다.
역주8 以乘車輦其母 一日而至 : 乘車는 兵車가 아니다. 사람이 끄는 것을 ‘輦’이라 한다. 宋나라에서 陳나라까지의 거리가 260리인데, 하루 만에 당도하였다는 것은 長萬의 힘이 세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역주9 石祈子 : 衛나라 대부이다.
역주10 與惡而棄好 非謀也 : 宋과 衛는 본래 同盟한 友好國이다.
역주11 宋人皆醢之 : 醢는 肉醬이다. 猛獲도 함께 젓을 담갔기 때문에 ‘皆(모두)’라고 한 것이다.
역주12 陛戟警蹕 : 陛戟은 궁전의 뜰에 창을 든 호위무사를 세워놓는 것이고, 警蹕은 帝王이 출입할 때 지나는 길에 사람의 통행을 금지하는 것인데, ≪後漢書≫ 〈馬援傳〉에 의하면, 陛戟은 馬援을 맞이할 때의 일이고, 警蹕은 公孫述이 宮 밖까지 나가서 마원을 객관으로 보낼 때의 일이다.
역주13 公孫述 : 前漢 哀帝 때 淸水縣의 長으로, 王莽의 簒逆으로 천하가 혼란에 빠져 각처에 호걸이 봉기하자, 군대를 일으켜 益州를 차지하고는 天子를 僭稱하였다. 뒤에 光武帝가 항복을 권유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고 반항하다가, 끝내 광무제의 討伐軍에 의해 刺殺되었다. ≪後漢書 隗囂公孫述列傳≫
역주14 馬援 : 王莽이 패망한 뒤에 隗囂에게 의탁하였다가 뒤에 光武帝에게 귀순하여, 伏波將軍에 除授되었다. 그 뒤 외효를 격파하고 交阯를 討平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後漢書 馬援列傳≫
역주15 (緩得)[緌德] : 저본에 ‘緩得’로 되어있으나, ≪後漢書≫에 의거하여 ‘緌德’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6 岸幘 : 頭巾을 밀어 젖혀 이마를 드러냄이니, 곧 격식을 차리지 않는 소탈한 태도를 이른다.
역주17 磊落軼蕩 : 磊落은 마음이 넓음이고, 軼蕩은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분방함이다.
역주18 出於法度之外 : 법도 밖으로 벗어난다는 말로, 곧 법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역주19 〈邊〉 : 저본에 1字 공란으로 되어있는데, ‘邊’자인 듯하므로 ‘邊’자를 보충하여 ‘邊際(兩岸)’로 번역하였다.
역주20 破崖岸 削邊幅 : 崖岸은 높은 절벽이니 엄숙한 禮의 뜻으로 쓰이고, 邊幅은 布帛의 幅面을 이르니 格式의 뜻으로 쓰인다. 破와 削은 破棄하고 削除함이니, 곧 예의나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임의롭게 대함이다.
역주21 出肺肝相示 : 肺와 肝을 내보인다는 말로 眞心을 보임을 이른다.
역주22 得其死命 : 死命은 生命을 바침이니, 곧 목숨 바쳐 나에게 충성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역주23 宋閔公靳侮之者 : 靳侮는 조롱하며 侮辱함이다. 莊公 11년에 있었던 乘丘의 戰爭 때 魯軍이 南宮長萬을 사로잡았다가 宋나라의 요청으로 그를 돌려보내니, 宋 閔公이 그에게 “과거에는 내가 그대를 尊敬하였으나, 지금은 그대가 魯나라의 포로이니 나는 그대를 존경하지 않는다.”라고 조롱하여 모욕한 일을 이른다. 南宮長萬은 이 말로 인해 宋公에게 怨恨을 품고서 장공 12년에 閔公을 시해하였다.
역주24 袒裼暴虎 馮婦而後可 : 袒裼은 소매를 걷어붙임이고, 暴虎는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음이다. 이런 일은 馮婦 같은 勇力이 있은 뒤에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馮婦는 晉나라 사람으로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勇士이다. ≪孟子 盡心 下≫
역주25 供帳 : 宴會 때 提供하는 帷帳을 이르는데, 여기서는 유장뿐 아니라 의복‧음식까지 모두 포함해 말한 것이다.
역주26 降霜霰於炎蒸之時 轟雷霆於閉蟄之際 : 여름에 서리가 내리는 것이 뜻밖이고, 겨울에 벼락이 치는 것이 뜻밖이듯이, 高祖가 은총을 내리고 모욕을 보인 것이 뜻밖이라는 말이다.
역주27 顚倒 : 혼란함이다.
역주28 鼓舞一世 : 한 시대의 영웅을 鼓舞함이다. 鼓舞는 상대를 격려하여 환심을 삼이다.
역주29 : 拘謹의 뜻으로 예의나 법도에 얽매어 언행을 삼감이니, 곧 公孫述이 馬援을 만날 때 법도에 맞게 儀式을 갖춘 것을 이른다.
역주30 : 예의를 무시하고 함부로 행동함이니, 곧 漢 高祖가 여자에게 발을 씻기면서 黥布를 접견하고, 趙나라 장사들을 모욕한 것을 이른다.
역주31 高帝初去秦儀法……共起朝儀 : ≪史記≫ 〈叔孫通列傳〉에 보인다.
역주32 拘綴苛碎 : 拘綴은 얽맴이고, 苛碎는 까다롭고 좀스러움이다.
역주33 采薇出車東山 : 〈采薇〉와 〈出車〉는 ≪詩經≫ 〈小雅〉의 편명이고, 〈東山〉은 ≪시경≫ 〈豳風〉의 편명인데, 〈채미〉는 文王이 玁狁을 막기 위해 戍軍을 보내면서 부른 詩歌이고, 〈출거〉는 수자리에서 돌아온 군대를 위로한 시이며, 〈동산〉은 周公이 3년 만에 東征에서 돌아와서 군대를 위로한 시이다.
역주34 (羸)[臝] : 저본에는 ‘羸’로 되어있으나, ≪詩經≫에 의거하여 ‘臝’로 바로잡았다.
역주35 : (二)[業]:저본에 ‘二’로 되어있으나, ≪詩經≫에 의거하여 ‘業’으로 바로잡았다.

동래박의(2) 책은 2019.1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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