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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4)

동래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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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박의(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1-01 晉侯秦伯圍鄭
【左傳】 僖三十年이라 晉侯秦伯圍鄭하다 佚之狐言於鄭伯曰 國危矣니이다 若使燭之武見秦君이면 師必退하리이다 公從之하다
辭曰 臣之壯也에도 猶不如人이러니 今老矣 無能爲也已니이다 公曰 吾不能早用子라가 今急而求子하니 是寡人之過也 然鄭亡이면 子亦有不利焉하리라
許之하고 縋而出하야 見秦伯曰 秦晉圍鄭하니 鄭旣知亡矣니이다 若亡鄭而有益於君이면 敢以煩執事릿가
越國以鄙遠 君知其難也 焉用亡鄭以陪隣이닛가 隣之厚 君之薄也 하야 이면 君亦無所害리이다
러니 君之所知也니이다
夫晉何厭之有잇가 하리니 若不闕秦이면 將焉取之릿가 이니 하소서
秦伯說하야 與鄭人盟하고 使杞子逢孫楊孫戍之하고 乃還하다
子犯請擊之한대 이요 失其所與 不知 以亂易整 不武 吾其還也리라하다
天下之事 有非出於人情之常者 其終必不能安이라 受施者致其報하고 施者享其報 人情之常也 居施者之地而爲報者之事 非人情之常也 矯也니라
其所以矯情而爲之者 抑有說矣
彼徒見夫有德於人者 責報則兩傷하고 忘報則兩全也하고는 遂以謂忘報者 猶足以全其恩이온 況吾度越常情之外하야 居施者之地하야 而爲報者之事 其恩厚豈有涯哉리오 抑不知君子不盡人之歡하고 亦不盡己之歡하며 不竭人之忠하고 亦不竭己之忠하야 人與己無二情也니라
人受施於我 其報猶有時而厭이온 況我有施於人하고 反僕僕然爲報者之事 是果人情之所安乎
惟其不出於吾情之所安이면 雖矯而行之하고 激而爲之라도 矯者怠하고 激者衰 則吾情終有時而不能繼矣리라
恩之而不能繼 則釁隙生焉이니 曾不如相忘者之爲安也 常理之外 不可加一毫之理 常情之外 不可加一毫之情이라
是故過厚者必薄하고 過親者必疏하며 過愛者必憎하고 過喜者必怒 情豈有過而不反者哉
盖嘗觀秦穆晉文之爭端然後 知常情之果不可加也로라 晉文以一亡公子而列於五覇하니 揆厥本原이면 果誰之力耶
流離之時 使無秦穆이면 則爲尫爲瘠하고 爲僵爲殍 使無秦穆이면 則爲灰爲燼하고 爲煙爲埃리라
始拔之於尫瘠僵殍之中하고 終脫之於灰燼煙埃之外하야 使襲先祀하고 使君萬民하고 使專土疆하고 使擅利勢하니 一身之間 自冕及舃 皆秦穆所致也
有丘山之施로되 而不受涓滴之報하니 在秦穆旣爲盛德矣어늘 今秦穆非特不責報於晉이라 乃反致其報於晉하야 務欲加於常情하야 以結晉之歡焉이라
嗚呼 情果可加 則聖人已先加之矣리라 聖人所不能加 而秦穆則欲加之하니 豈自以爲勝於聖人耶
秦穆始欲加聖人之所不能加 終則自不能繼而怨随之하니 隙開於鄭之圍而成於이라
或者咎秦穆與晉俱圍鄭 反背晉而 吾謂是固秦穆之罪 然其禍源正不在是하니라
一室之人 同盤而食에도 辛甘酸鹹所嗜猶雜然而不齊어든 況二國竝立이나 形異勢異하고 利異害異ㄹ새 秦穆乃以秦徇晉하야 無役不會하고 無盟不同이라
挾未報之德이오도 矯情屈意하야 反若受役於晉者하니 是安可久耶리오 釁隙不發於今이면 必發於後리라 燭之武之說 三大夫之戍 特釁隙之迹이요 而非其端也
晉人初受秦穆生全之際 懷恩未報하야 方以爲我負秦이러니 習見秦穆服從之久 少有不合이면 遽以爲秦負我하니라
是秦穆之以恩召怨 固可責이어니와 晉人之以恩爲怨 尤可責也 以恩爲怨 少知自愛者皆恥之하니 獨秦穆之失 不得不發之以告學者焉이로라
露之濡 根莖苗節無不沾하고 雨之降 丘陵原隰無不被하니 天之恩物至矣 然日出陽升이면 則天不知有露也하고 雲歸空霽 則天不知有雨也
種一草하고 植一木하고 幸而滋榮하야 則朝環夕繞하야 認以爲己恩하야 爬搔培壅 未必不反爲物之害者 其秦穆類耶


진후晉侯진백秦伯나라를 포위하다
희공僖公 30년, 가을에 진후晉侯진백秦伯나라를 포위하였다. 〈나라 대부大夫일지호佚之狐정백鄭伯에게 말하였다.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그러나 촉지무燭之武를 보내어 진군秦君을 만나게 한다면 저들의 군대가 반드시 물러갈 것입니다.” 이 이 말을 따랐다.
晉 文公晉 文公
〈그러자 촉지무燭之武가〉 사양하였다. “장년壯年 때에도 오히려 남만 못하였는데, 이제는 늙었으니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말하였다. “내 일찍이 그대를 등용登用하지 않았다가 이제 나라가 위급하게 되어 그대에게 요구하니 이는 과인寡人의 잘못이다. 그러나 나라가 망한다면 그대 또한 이롭지 못함이 있을 것이다.”
촉지무燭之武정백鄭伯의 요청을〉 허락許諾하고서 밤에 밧줄을 타고 성 밖으로 나가서 진백秦伯을 만나 말하였다. “진군秦軍진군晉軍나라를 포위하였으니 나라가 망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라를 멸망시켜 께 이익이 된다면 무엇 때문에 감히 이 일로 집사執事를 번거롭게 하겠습니까?
다른 나라를 넘어 먼 곳을 본국本國변읍邊邑으로 삼기 어렵다는 것은 께서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나라를 멸망시켜 이웃 나라에게 영토를 보태어주려 하십니까? 이웃 나라의 땅이 많아지는 것은[] 임금님의 땅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라를 그대로 놓아두고서 동도東道의 주인으로 삼아 사신使臣이 왕래할 때에 부족한 물자와 유숙留宿사관舍館을 제공하게 한다면 께서도 해로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께서 진군晉君(혜공惠公)에게 은혜를 베푸셨을 적에 진군晉君 등의 을 〈에 드리기로〉 약속하고서 아침에 하수河水를 건너 〈나라로 들어가자〉 저녁에 을 쌓은 일은 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나라가 언제 만족한 적이 있었습니까? 동쪽으로 나라를 강토疆土로 삼은 뒤에는 또 서쪽으로 강토을 넓히려 할 것이니, 나라의 땅을 침탈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디에서 땅을 취하겠습니까? 나라를 해치고 나라를 이롭게 하는 일이니 께서는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들은 진백秦伯은 기뻐하여 정인鄭人결맹結盟하고서 기자杞子봉손逢孫양손楊孫에게 나라를 지키게 하고 돌아갔다.
나라〉 자범子犯진군秦軍을 공격하기를 청하니 문공文公이 말하였다. “안 된다. 저 사람[부인夫人]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내가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람의 도움으로 인해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는데 도리어 그 사람을 패배敗北시키는 것은 불인不仁이고, 우방友邦을 잃는 것은 부지不知며, 으로 안정을 바꾸는 것은 부무不武니, 나는 돌아갈 것이다.”
천하의 일은 사람의 상정常情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그 뒤끝이 반드시 편안하지 못하다. 은혜를 입은 자는 힘을 다해 보답하고, 은혜를 베푼 자는 보답을 받아 누리는 것이 사람의 상정이니, 은혜를 베푼 자가 은혜를 갚는 자의 일을 하는 것은 상정이 아니라 상정을 어김이다.
〈은혜를 베푼 자가〉 상정을 어겨가면서 〈은혜를 갚는 자의〉 일을 하는 까닭에 대해 한번 해설解說해보겠다.
사람들은 한갓 남에게 은덕을 베푼 자가 보답을 요구하면 양쪽의 은정恩情이 손상되고 보답받기를 잊으면 양쪽의 은정이 온전한 것만을 보고서, 드디어 “보답받기를 잊는 것도 오히려 양쪽의 은정을 보전할 수 있는데, 하물며 내가 상정을 초월해 은혜를 베푼 자의 위치에서 은혜를 갚는 자의 일을 한다면 그 은정의 두터움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라고만 생각하고, 군자는 남이 나에게 환심을 다하기를 바라지 않고 나 또한 남에게 환심을 다하지 않으며, 남이 나에게 충성을 다하기를 바라지 않고 나 또한 남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아서, 나와 남을 대함에 다른 마음이 없다는 것은 모른다.
남이 나에게 은혜를 입었을 때에 은혜를 갚는 일이 오히려 싫어질 때가 있을 것인데, 하물며 내가 남에게 은혜를 베풀고서 도리어 수고롭게 은혜를 갚는 자의 일을 한다면 이것이 과연 인정에 편안한 바이겠는가?
오직 내 마음의 편안한 바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비록 상정을 어겨가며 행하고 억지로 하더라도, 상정을 어기는 일이 게을러지고 억지로 하려는 마음이 쇠하게 되니, 그렇게 되면 나의 마음도 끝내 계속할 수 없는 때가 있을 것이다.
은혜를 베풀되 그 일을 계속하지 못하면 틈이 생기니, 보답받기를 잊는 것이 편안함만 못하다. 상리常理(통상의 도리) 이외에 터럭만큼의 도리를 추가해서도 안 되고 상정常情 이외에 터럭만큼의 정을 추가해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지나친 은혜는 반드시 박하게 되고 지나친 친밀은 반드시 소원하게 되며, 지나친 사랑은 반드시 미워하게 되고 지나친 기쁨은 반드시 노하게 되니, 인정人情이 어찌 지나치면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오지 않음이 있겠는가?
내 일찍이 목공穆公 문공文公쟁단爭端(분쟁의 실마리)을 관찰한 뒤에 상정常情 〈이외의 은혜를〉 과연 추가해서는 안 됨을 알았다. 문공文公은 한낱 망명한 공자公子로서 다섯 패자覇者에 끼었으니, 그 근본을 헤아려보면 과연 누구의 힘이었는가?
난을 피해 돌아다닐 때에 만약 목공穆公의 도움이 없었다면 쇠약하고 초췌하여 주려 죽은 송장이 되었을 것이고, 여생呂甥극예郤芮가 난을 일으키려 할 때에 만약 목공穆公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에 타죽어 재가 되거나 먼지가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쇠약하고 초췌하여 주려 죽은 송장이 되는 데서 구제하고, 뒤에는 불타 죽어 재나 먼지가 되는 데서 벗어나게 하여, 문공文公으로 하여금 선군先君의 제사를 물려받게 하고 만민萬民의 군주가 되게 하고, 일국의 영토를 전유專有하게 하고 이익과 권세를 독점하게 하니, 그 몸에 착용한 면류관冕旒冠으로부터 석리舃履(신발)에 이르기까지 모두 목공穆公이 〈 문공文公을 위해〉 준비한 것들이다.
태산 같은 은혜를 베풀고도 작은 보답도 받지 않았으니 목공穆公의 〈입장에서 말하면〉 이미 은덕이 성대했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 목공穆公나라에 보답을 요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정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하여, 상정常情 〈이외의 은혜를〉 추가하여 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고자 힘썼다.
아! 상정常情 〈이외의 은혜를〉 과연 추가해도 되는 것이라면 성인께서 이미 먼저 추가하셨을 것이다. 성인께서도 추가할 수 없었던 것을 목공穆公이 추가하고자 하였으니, 어찌 자신이 성인보다 낫다고 여긴 것이 아니겠는가?
목공穆公이 처음에는 성인도 추가할 수 없었던 것을 추가하려 하였으나, 끝내는 스스로 그 일을 계속하지 못해 나라의 원노怨怒가 뒤따랐다. 〈나라의〉 틈은 〈양국이 공동으로〉 나라를 포위할 때에 시작되어 효산殽山의 전투에서 형성되었다.
나는 이로 인해 처음에 〈상정常情 이외의 은혜를〉 추가한 것이 바로 뒤에 〈은혜를〉 손상시킨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이는, 목공穆公나라와 함께 나라를 포위하기로 약속해놓고서 도리어 나라를 배반하고 나라를 지켜준 것에 허물을 돌린다. 나는 이 일이 본래 목공穆公의 죄이기는 하지만 〈양국이 서로 원수로 보게 된〉 의 근원은 여기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집에 사는 사람이 한 상에서 밥을 먹어도 맵고 달고 시고 짠 것을 좋아하는 식성이 오히려 각각 달라 같지 않은데, 하물며 두 나라가 동시에 나란히 섰으나 형세와 이해가 달랐기 때문에 목공穆公은 이에 나라로써 나라에 굴종屈從하여 나라의 전역戰役에 참가하지 않은 적이 없고 나라의 회맹會盟에 동참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라가 은덕을 보답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품고 있으면서도 감정을 숨기고 뜻을 굽히고서 도리어 나라의 부림을 받는 것처럼 행동하였으니, 이런 일을 어찌 오래 지속할 수 있겠는가? 〈두 나라 사이의〉 틈이 오늘 발생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뒤에 발생했을 것이다. 촉지무燭之武유세遊說와 세 대부大夫수위戍衛는 서로 틈이 발생한 흔적일 뿐, 그 발단發端이 아니다.
아! 문공文公이 처음 생명을 보전시켜준 목공穆公의 은혜를 입었을 즈음에는 입은 은혜를 갚지 못했다는 마음이 들어 자기가 나라를 저버린 것으로 여기더니, 목공穆公이 오랫동안 복종하는 것을 익히 본 뒤론 조금이라도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갑자기 나라가 자기를 저버린 것으로 여겼다.
이는 목공穆公이 은혜로써 원수를 부른 것이니 꾸짖는 것이 당연하지만 목공穆公이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이니 더욱 꾸짖을 만하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은 자중自重해야 함을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모두 부끄러워하니, 유독 〈잘 드러나지 않은〉 목공穆公의 잘못을 드러내어 배우는 자들에게 일러주지 않을 수가 없다.
이슬이 내리면 〈식물의〉 뿌리와 줄기, 싹과 마디가 촉촉이 젖지 않음이 없고, 비가 내리면 구릉과 평원이 〈비의 은택을〉 입지 않음이 없으니 하늘이 만물에게 은혜를 베풂이 지극하다 하겠다. 그러다가 태양이 떠오르면 하늘은 이슬이 있었던 것을 알지 못하고, 구름이 흩어져 하늘이 맑게 개면 하늘은 비가 있었던 것을 알지 못한다.
〈어떤 자가〉 화초花草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를 심고서 〈그것들이〉 잘 자라 번성하기를 바라 아침저녁으로 가서 주위를 빙빙 돌면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살피고서 살았으면〉 자기의 은혜로 여기고, 〈의심스러우면 껍질을〉 손톱으로 긁어 보고 지나치게 북을 주는 것이 도리어 그 식물을 해침이 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어찌 목공穆公의 행위와 유사하지 않은가?


역주
역주1 : 秦나라가 諸侯와 戰爭하려면 반드시 동쪽으로 나와야 하고, 동쪽으로 나오려면 반드시 鄭나라를 經過해야 하므로 鄭나라를 치지 말고 그대로 두고서 秦나라가 東方을 往來할 때 모든 便宜를 提供하는 主人으로 삼으라는 말이다.
역주2 : 乏은 부족[闕]이고 困은 피곤[憊]이니, 留宿할 舍館과 부족한 物資 및 糧食을 제공하게 하라는 말이다.〈附注〉
역주3 : 저본에는 ‘困乏’으로 되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乏困’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 賜는 은혜이다. 秦 穆公이 晉 惠公을 도와 晉나라로 들여보내어 임금으로 세워준 일을 말한다.
역주5 : 晉 惠公이 자신을 도와 晉나라의 임금으로 세워주면 秦나라에 焦․瑕 등 河外의 다섯 城을 주겠다고 약속한 일을 말한다.
역주6 : 版築은 築城이다. 晉 惠公이 秦나라의 도움으로 晉나라로 들어가서 임금이 된 뒤에는 약속을 저버리고서 秦나라를 防備하기 위해 성을 쌓은 일을 말한다.
역주7 : 封은 疆이고, 肆는 申(넓힘)이다.〈杜注〉 鄭나라를 擊滅하여 鄭나라의 땅을 晉나라의 東界로 삼은 뒤에는 또 서쪽으로 疆土를 넓히려 할 것이라는 말이다.〈附注〉
역주8 : 秦나라가 晉나라를 도와 鄭나라를 치는 것은 秦나라의 땅을 깎아서 晉나라를 이롭게 하는 결과가 된다는 말이다.
역주9 : 唯는 願의 뜻이다.
역주10 : 秦軍을 攻擊하자고 요청한 것이다. 夫人은 秦 穆公을 이름이다.〈杜注〉
역주11 : 晉 文公은 본래 秦 穆公의 도움으로 인해 晉나라를 얻었는데 지금 도리어 秦나라를 해치는 것은 仁者가 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附注〉
역주12 : 僖公 24년에 呂甥과 郤芮가 公宮에 불을 놓아 晉 文公을 태워 죽이려고 꾀한 일을 이른다.
역주13 : 僖公 33년 4월에 晉人이 돌아가는 秦軍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공격해 승리한 전쟁을 이른다.
역주14 : ‘加’는 秦․晉 두 나라가 연합하여 鄭나라를 포위했던 일을 가리키고, ‘損’은 훗날 두 나라가 서로 전쟁하게 된 일을 가리킨다.
역주15 : 저본에는 ‘成’으로 되어 있으나, 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戍’로 바로잡았다.

동래박의(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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