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환공桓公 16년, 당초에 위衛 선공宣公이 이강夷姜과 간음姦淫하여 급자急子를 낳고서 선공宣公은 이 급자急子를 우공자右公子에게 부탁하였다.
얼마의 세월이 지난 뒤에 급자急子를 위하여 제齊나라에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는데, 그 여자의 미모美貌가 뛰어나자 선공宣公은 그 여자를 자기의 아내로 맞이하여 수壽와 삭朔을 낳았는데, 선공은 수壽를 좌공자左公子에게 부탁하였다.
선공의 사랑을 잃은 이강夷姜은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선강宣姜이 공자公子 삭朔과 함께 급자急子를 무함誣陷하니 선공은 급자를 제齊나라에 사신使臣으로 보내고 자객刺客을 시켜 신莘에서 기다리다가 그를 죽이게 하고자 하였다.
수자壽子가 이 음모陰謀를 급자에게 알리면서 다른 나라로 도망가라고 권하니, 급자가 반대하며 말하기를 “아버지의 명命을 버리면 어찌 자식이라 할 수 있는가.
천하에 아비 없는 나라가 있다면 그곳으로 도망가겠다.”라고 하였다.
출발에 임하여 수자壽子가 급자急子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하고는 자신이 급자急子의 기旗를 수레에 싣고 먼저 가니 자객이 그를 죽였다.
뒤에 급자急子가 도착하여 자객에게 말하기를 “나를 죽이라고 요구한 것인데 이 수자壽子에게 무슨 죄가 있어 죽였느냐.
너희들은 나를 죽이라.”라고 하니, 자객이 또 급자急子를 죽였다.
그 때문에 두 공자公子가 혜공惠公(公子 삭朔)에게 원한怨恨을 품었다.
11월에 좌공자左公子 설洩과 우공자右公子 직職이 공자公子 검모黔牟를 임금으로 세우니 혜공惠公이 제齊나라로 도망하였다.
傳
장공莊公 6년, 여름에 위후衛侯가 들어와서 공자公子 검모黔牟를 주周나라로, 영궤寗跪를 진秦나라로 추방하고, 좌공자左公子 설洩과 우공자右公子 직職을 죽이고서 즉위하였다.
군자君子는 두 공자公子가 검모黔牟를 세운 것에 대해 본말本末을 헤아리지 못한 처사處事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평론하였다.
“자신의 위치를 공고鞏固히 하기 위해 임금을 세우는 자는 반드시 그 사람의 본말本末을 헤아린 뒤에 적당한 방법을 찾아 적당한 시기에 그를 임금으로 세운다.
그 사람의 본本을 알 수 없으면 그 사람을 세우기 위해 계획하지 않고, 본本이 지엽枝葉을 무성茂盛하게 하지 못할 것을 알면 억지로 세우지 않는다.
《시경詩經》에 ‘뿌리가 견고하기 때문에 가지가 무성하여 백세토록 쇠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注
화평和平한 기운은 상서祥瑞를 부르고 사악邪惡한 기운은 재이災異를 부르는 것이 천리天理인데, 어진 두 아들이 음란한 궁중宮中에 태어난 것으로 보아 더욱 천리는 민멸泯滅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음란한 선공宣公에게 어진 두 아들이 있었으니, 어찌 사악한 기운이 도리어 상서를 부른 것이 아닌가?
대체로 두 아들은 군자가 보면 이른바 ‘상서’이지만, 위인衛人이 보면 이른바 ‘재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