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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1)

동래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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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백鄭伯환왕桓王조현朝見하다
【左傳】隱六年이라 鄭伯如周하니
은공隱公 6년, 정백鄭伯나라에 갔으니, 비로소 환왕桓王조현朝見한 것이다.
王不禮焉이어늘 周桓公言於王曰 하니 善鄭以勸來者라도 況不禮焉이리잇가
환왕이 그를 예우하지 않자, 환공桓公이 환왕께 말하기를 “우리 주나라가 동천東遷할 때에 나라와 나라에 의지하였으니, 정나라를 잘 대우해서 오지 않는 제후들을 권장하더라도 오히려 오지 않을까 두려운데, 하물며 예우하지 않는 데이겠습니까?
鄭不來矣리이다
정나라는 앞으로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君子之論事 必使事爲吾用이요 而不使吾爲事所用이라
군자君子가 일을 논함에는 반드시 일이 나의 쓰임이 되게 하고 내가 일의 쓰임이 되게 하지 않는다.
古今之事 所當論者不勝其多也어늘 苟見事之難者 亦從而謂之難하고 見事之易者 亦從而謂之易하며 甚者反遷就吾說하야 以就其事 豈非爲事所用乎
고금古今의 일 중에 논해야 할 일이 이루 셀 수 없이 많은데, 어려운 일을 보면 따라서 어렵다고 하고 쉬운 일을 보면 따라서 쉽다고 하며, 심한 경우 나의 논리를 바꾸어 그 일에 맞춘다면 이것이 어찌 일의 쓰임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所貴乎立論者 蓋欲發未明之理 非徒議已見之迹也
논리論理를 세우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아마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치를 드러내 밝히고자 하고, 이미 드러난 자취만을 논의論議할 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若止論已見之迹이면 是猶言火之熱 言水之寒 言鹽之鹹 言梅之酸이라
이미 드러난 자취만을 논할 뿐이라면 이는 불을 뜨겁다고 하고, 물을 차갑다고 하고, 소금을 짜다고 하고, 매실을 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天下之人知之於吾說乎
이는 천하의 사람이 다 아는 일이니, 어찌 나의 말을 빌릴 필요가 있겠는가?
惟君子之立論 信己而不信人하고 信心而不信目이라
군자가 논리를 세움에는 자신의 관점觀點을 믿고 남의 관점을 믿지 않으며, 심중心中의 생각을 믿고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않는다.
故能用事而不用於事니라
그러므로 내가 일을 이용하고 일에 이용되지 않을 수 있다.
見在此之事 則得在彼之理하고 見在前之事 則得在後之理하니 衆人徒知是事 而君子獨知事外之理焉이라
여기에 있는 일을 보면 저기에 있는 이치를 알고, 앞에 있는 일을 보면 뒤에 있는 이치를 알 수 있으니, 사람들은 이 일만 알 뿐이지만 군자는 유독 일 밖의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試擧一二以明之하노라
한번 한두 가지 예를 들어 증명해보겠다.
春秋之初 鄭之事周 其叛服不一하니 人之論者亦不一이라
춘추시대 초기에 나라가 나라를 섬길 때 배반하기도 하고 복종하기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사람들의 논평 또한 각각 같지 않았다.
然皆隨事立論이요 鮮有得事外之理者니라
그러나 모두 일에 따라 논리를 세웠을 뿐이고, 일 밖의 이치를 안 사람은 드물었다.
鄭伯朝周 威王不禮之하다
정백鄭伯주왕周王조현朝見할 때 환왕桓王이 예우하지 않았다.
衆人之說 不過以王不禮之爲非하니 此左氏之所已言也
이에 대하여 사람들의 논설은 이 예우하지 않은 것을 잘못이라고 하는 데 불과하였으니, 이는 좌씨左氏가 이미 말한 바이다.
君子論之 則以爲王綱旣墜하니 傲固招禍 卑亦納侮
군자君子가 논하였다면 “왕실의 기강이 이미 실추되었으니, 주왕周王이 오만하면 진실로 화를 부르고, 몸을 낮추어도 모욕을 받았을 것이다.
如夷王下堂見諸侯하야 禮雖卑而周益衰注+하고
이를테면 이왕夷王을 내려가 제후諸侯접견接見하여 예를 행한 것이 비록 겸비謙卑하였으나 나라는 더욱 쇠약해졌고注+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에 보인다.,
襄王從晉文之召하야 禮雖卑而晉益僭注+하니
양왕襄王 문공文公의 부름을 받아들여 예를 행한 것이 비록 겸비하였으나 나라는 더욱 참람하였으니注+희공僖公 28년에 보인다.,
是知威王之失 不專在於不禮鄭伯이요 而在於不能振王綱이라
이로써 환왕桓王의 잘못이 정백鄭伯을 예우하지 않은 데 있지 않고 왕실의 기강을 진작시키지 못한 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을 것이다.
此事外之理 左氏之所未言也
이는 일 밖의 이치로 좌씨左氏가 말하지 않은 바이다.
周鄭交惡하다
나라와 나라가 서로 미워하였다.
衆人之說 不過以畀虢公之政하니 此左氏之所已言也
이에 대하여 사람들의 논설은 괵공虢公에게 정권을 주려 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는 데 불과했으니, 이는 좌씨左氏가 이미 말한 바이다.
君子論之 則以爲王者之於諸侯 有畏之之迹則驕하고 無畏之之迹則服이라
군자君子가 논하였다면 “왕자王者제후諸侯를 두려워하는 흔적이 있으면 제후는 교만해지고, 두려워하는 흔적이 없으면 제후는 복종한다.
在平王世 將用虢公而不敢用하고 反與鄭交質注+隱二年하니 鄭知周畏之
평왕平王왕위王位에 있을 때 괵공을 등용하고자 하였으나 감히 등용하지 못하고 도리어 나라와 인질을 교환하였으니注+은공隱公 2년에 보인다., 정백鄭伯주왕周王이 자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故於將用虢公之初 凌犯王室하고 蹂踐麥禾하야 略無所憚하고 在威王世 將用虢公而卽用之하고 未嘗猶豫하니 鄭伯知周不畏之
그러므로 괵공을 등용한 초기에 정백이 왕실王室을 능멸하여 조금도 기탄忌憚하지 않고 주나라의 보리와 벼를 유린하였고, 환왕桓王이 왕위에 있을 때 괵공을 등용하고자 하여 즉시 등용하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으니, 정백은 주왕이 자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故於旣用虢公之後 奉承王命하야 朝會征討 初不敢違하니 是知周鄭交惡 不在於用虢公이요 而在於畏鄭이라
그러므로 괵공을 등용한 뒤에 정백이 왕명王命을 받들어 조회하고 정토征討하는 일을 감히 어기지 못하였으니, 이로써 주나라와 정나라가 서로 미워한 것은 괵공을 등용한 데 있지 않고 정나라를 두려워한 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을 것이다.
此事外之理 左氏之所未言也
이는 일 밖의 이치로 좌씨가 말하지 않은 바이다.
이라가 由是失鄭하다
환왕桓王정백鄭伯에게 소분생蘇忿生토지土地를 주었다가 이로 인해 나라를 잃었다.
衆人之說 不過謂有錫田之名而無錫田之實이라하니 此左氏之所已言也
이에 대하여 사람들의 논설은 “토지를 주었다는 허명虛名만 있고 토지를 준 실상이 없다.”고 하는 데 불과하였으니, 이는 좌씨左氏가 이미 말한 바이다.
君子論之 則以爲蘇忿生旣叛하니 其田非周之所有어늘 與之以虛名하니 固足以起鄭之怨이라
군자가 논하였다면 “소분생이 이미 배반하였으니 그 토지는 나라의 소유가 아닌데도 허명으로 주었으니, 진실로 나라의 원망을 사기에 충분하였다.
然蘇忿生者 王室之卿士이니 蘇忿生之田 王室之田이라
그러나 소분생은 왕실의 경사卿士이니 소분생의 토지는 왕실의 토지이다.
叛臣盜據王之土地어늘 王不能自取하고 反假他人以取之하니 安得不取輕於鄭乎
반란을 일으킨 신하가 왕의 토지를 강점强占하였는데도 왕은 스스로 회수하지 못하고 도리어 타인의 힘을 빌려 회수하려 하였으니, 어찌 정나라에게 경시輕視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是知鄭之叛周 不專在於怨周하고 而在於輕周
이로써 정나라가 나라를 배반한 것이 전적으로 주나라를 원망하는 데 있지 않고 주나라를 경시하는 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을 것이다.
此事外之理 左氏之所未言也
이는 일 밖의 이치로 좌씨가 말하지 않은 바이다.
威王奪鄭伯政하고 率諸侯伐鄭이라가 反爲所敗하니라
환왕桓王정백鄭伯의 정권을 빼앗고 제후를 거느리고 나라를 토벌하였다가 도리어 패배를 당하였다.
衆人之說 不過謂不當奪鄭伯之政이라하니 此左氏之所已言也
이에 대하여 사람들의 논설은 “정백의 정권을 빼앗은 것이 부당하였다.”라고 하는 데 불과했으니, 이는 좌씨左氏가 이미 말한 바이다.
君子論之 則以爲鄭伯之政 在所當奪이나 特威王不能正其名耳
군자가 논하였다면 “정백의 정권은 당연히 빼앗아야 할 바였으나, 단지 환왕이 정당한 명분으로 빼앗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之時하야 以廢祀而討之 其名豈不正乎 當鄭伯之時하야 以專地而討之 其名豈不正乎
정백이 멋대로 태산泰山의 제사를 폐지하였을 때에 제사를 폐지한 것을 죄목罪目으로 삼아 토벌하였다면 그 명분名分이 어찌 바르지 않았겠으며, 정백鄭伯팽지祊地옥벽玉璧을 얹어 허전許田과 바꾸었을 때에 땅을 마음대로 바꾼 것을 죄목으로 삼아 토벌하였다면 그 명분이 어찌 바르지 않았겠는가?
使於是時討之 其名正하고 其義順하야 鄭將覆亡之不리라
가령 이때에 토벌하였다면 그 명분이 바르고 도의道義에 부합하여 정나라는 멸망을 구제하기에도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威王當其時而不能討하고 遷延數年이라가 乃無故而奪其政하고 伐其國하니 宜鄭之不服也
그런데 환왕은 이때에 토벌하지 못하고 몇 해를 끌다가 까닭 없이 그 정권을 빼앗고 그 나라를 토벌하였으니, 정나라가 복종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是知威王之致敗 不在於奪鄭伯政이요 而在於奪之非其時
이로써 환왕이 실패失敗에 이른 것은 정백의 정권을 빼앗은 데 있지 않고 제때에 빼앗지 않은 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을 것이다.
此事外之理 左氏之所未言也
이는 일 밖의 이치로 좌씨가 말하지 않은 바이다.
鄭旣敗王師하고 乃斂兵而止하니라
정백鄭伯환왕桓王의 군대를 패배시킨 뒤에 군대를 거두어 추격을 멈추었다.
衆人之說 不過謂라하니 此左氏之所已言也
이에 대하여 사람들의 논설은 “정백이 구차하게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구제하고자 한 것이다.”라고 한 데 불과하였으니, 이는 좌씨左氏가 이미 말한 바이다.
君子論之 則以爲鄭伯未勝則使祝聃射王하니 其事甚悖하고 旣勝則使祭足勞王하니 其辭甚恭이라
군자가 논하였다면 “정백이 승전勝戰하기 전에는 축담祝聃에게 을 쏘게 하였으니 그 일(행위)이 매우 패란悖亂하였고, 승전한 뒤에는 채족祭足을 보내어 을 위로하게 하였으니 그 언사言辭가 매우 공손하였다.
其前之悖 蓋出於眞情하니 欲以取一時之勝이요 其後之恭 蓋出於矯情하니 欲以避天下之責이라
그가 승전하기 전에 패란했던 것은 진정眞情에서 나온 것으로 아마 한때의 승리를 취하고자해서였을 것이고, 그가 승전한 뒤에 공손했던 것은 가식假飾에서 나온 것으로 아마 천하의 질책을 피하고자 해서였을 것이다.
雖杜預亦信以爲志在苟免而不悟하니 是鄭伯不惟能欺當時 其遺姦餘詐 猶能欺千餘年之杜預하니 可謂險矣로다
비록 두예杜預도 ‘정백의 뜻이 화란을 면하는 데 있었다.’고 믿고서 그 간계를 깨닫지 못하였으니, 이는 정백이 당시 사람들을 속였을 뿐만 아니라 그 간사姦詐한 행위가 오히려 천여 년 뒤의 두예까지 능히 속인 것이니, 그 마음씨가 참으로 음험하다 하겠다.
盜賊以盜賊自處 其情猶可恕어니와 盜賊以君子自處 其情尤可誅 是知論鄭伯者 不當信其苟免之言이요 而當疾其詐爲苟免之言이라
도적이 도적으로 자처하는 것은 그 정상이 오히려 용서할 만하지만, 도적이 군자君子로 자처하는 것은 그 정상이 더욱 질책할 만하니, 이로써 정백을 논하는 자들은 ‘구차하게 화란을 면하고자 하였다.’는 정백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되고, 그가 ‘구차하게 화란을 면하고자 하였다.’고 거짓말을 한 것을 미워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을 것이다.
此事外之理 左氏之所未言也
이는 일 밖의 이치로 좌씨가 말하지 않은 바이다.
大抵論事之體 與敍事之體不同하니 敍事者 載其實하고 論事者 推其理니라
대체로 논사문論事文의 체제는 서사문敍事文의 체제와 같지 않으니, 서사문은 사실을 기재하고, 논사문은 사리事理추구推究해 밝힌다.
彼方冊之所載 旣序其事之實矣어늘 論者又從而述其事하고 曾不能推事外之理 是與序事者無以異也 非所謂論事也
전적典籍에 실린 기록에 이미 그 사실을 서술하였는데, 논사자論事者가 또 뒤따라 그 사실만을 서술하고 일 밖의 이치를 조금도 추구해 밝히지 않는다면, 이는 서사문과 다를 것이 없으니 이른바 ‘논사문’이 아니다.
況方冊旣已序之하니 何待吾復爲贅辭以序之리오
더구나 전적에 이미 〈그 일을〉 서술하였으니, 내가 다시 쓸데없는 말로 서술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雖削吾之論이라도 於彼之事
그렇다면 비록 나의 논문을 없애더라도 그 일에 어찌 손익損益이 되겠는가?
是吾之論 反待彼之事而立이어니와 而彼之事 不待吾之論而明也
나의 논문은 도리어 저 일로 인하여 성립되지만, 저 사리事理는 나의 논문論文으로 인하여 밝혀지지 않는다.
故善論者 하고 不善論者 論隨於事하며
그러므로 논사論事를 잘하는 사람은 논리論理로 삼고 사실事實으로 삼으며, 논사論事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事實로 삼고 논리를 으로 삼는다.
善論者 하고 不善論者 論資於事니라
논사論事를 잘하는 사람은 일을 논문論文에 이용하고, 논사論事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논문을 일을 서술하는 데 이용한다.
苟論資於事 是論反爲事之累也 尙何以操筆爲哉
만약 논문을 일을 서술하는 데 이용한다면 이런 논문은 도리어 일에 해가 되니, 무엇 때문에 붓을 잡고 논문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
역주
역주1 [역주] 鄭伯朝威王 : 威王은 桓王이다. 宋나라 欽宗의 이름이 桓이므로 ‘桓’을 避諱하여 ‘威’자로 바꿔 쓴 것이다. 저본에는 제목 아래에 《春秋左氏傳》을 인용하지 않고 다만 ‘註見隱公六年(註가 은공 6년에 보인다)’이라고 하였는데,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역자가 인용문을 찾아 넣었다.
역주2 [역주] 始朝桓王也 : 桓王이 즉위한 뒤 周와 鄭이 서로 미워하여 관계가 좋지 않았으므로 이때에 와서야 비로소 朝見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로소[始]’라고 말한 것이다.
역주3 [역주] 我周之東遷 晉鄭焉依 : 周 桓公은 周公 黑肩이다. 周는 그의 采地인데, 扶風 雍縣 동북에 周城이 있다. 幽王이 犬戎에게 살해되자 平王이 東遷하였는데, 그때 晉 文侯와 鄭 武公이 王室을 보좌하였다. 그러므로 “晉나라와 鄭나라에 의지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역주4 [역주] 猶懼不蔇 : 蔇는 이르는 것이다. 후대하여 鄭나라를 잘 어루만져서 諸侯들이 來朝하도록 권장하여도 제후들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는 말이다.
역주5 [역주] (暇)[假] : 저본에는 ‘暇’로 되어 있으나, 사고전서본에 의거하여 ‘假’로 바로잡았다.
역주6 [역주] 史記 本紀 : 夷王이 堂을 내려가 제후를 접견한 일이 《史記》 〈周本紀〉에 보인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보이지 않고 ‘懿王之時 王室遂微’란 말만 보이는데, 懿王은 夷王의 아버지이다.
역주7 [역주] 僖二十八年 :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晉侯가 王을 불러 諸侯를 거느리고 朝見하고서, 王에게 사냥하게 한 일’을 이른다.
역주8 [역주] 威王與鄭伯蘇忿生之田 : 周 桓王이 정나라의 鄔‧劉‧蔿‧邘 땅을 탈취하고, 대신 蘇忿生의 땅인 溫‧原‧絺‧樊‧隰郕‧欑茅‧向‧盟‧州‧陘‧隤‧懷를 정나라에 주었다. 이 일에 대하여 당시 君子들은 “환왕이, 소분생이 배반하였으므로 자기도 이미 소유할 수 없는 땅을 정나라에 주었으니, 정나라가 來朝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隱公 11년》
역주9 [역주] 鄭伯擅釋太山之祀 : 隱公 8년에 鄭伯이 泰山의 제사를 폐지하고 周公의 제사를 지내겠다고 하며 태산 밑에 있는 祊田을 許田과 바꾸자고 요청한 일을 이른다. 팽전은 周 宣王이 그 아우 鄭 桓公에게 주어, 天子가 泰山에 제사 지낼 때 그 제사를 돕는 湯沐邑으로 삼게 한 땅으로 魯나라 領土 內에 있었고, 허전은 周 成王이 洛陽에 王城을 建造하고서 遷都할 뜻이 있었으므로 周公 旦에게 주어, 魯君이 朝會 왔을 때에 朝宿邑으로 삼게 한 땅으로 鄭나라 가까이에 있었다. 탕목읍은 그 땅에서 거두는 조세로 목욕 등의 비용에 충당하는 邑으로 제후의 私有 領地이고, 조숙읍은 來朝하는 제후의 宿泊 등의 비용으로 쓰게 하기 위하여 천자가 下賜하는 采地이다. 이때 周王이 태산의 제사를 폐한 지가 이미 오래이므로 탕목읍은 의미가 없어졌을 뿐 아니라 정나라와 거리가 매우 멀고, 또 노나라가 허전에 있는 주공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정나라는 자기들이 주공을 제사 지내겠다는 핑계로 멀리 있는 팽전을 가까이에 있는 허전과 交換하고자 하였다.
역주10 [역주] 以璧假許田 : 隱公 8년에 鄭나라가 周公의 제사를 지내겠다는 핑계로 祊田과 許田의 교환을 요구하였으나 결말이 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桓公 원년에 鄭나라는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여 魯나라에게 추가로 璧을 주고서 팽전을 허전과 교환하였다. 실제로는 交換한 것인데, ‘璧을 주고서 빌렸다’고 한 것은, 天子로부터 下賜받아 대대로 물려온 허전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史官이 ‘바꾸었다’고 기록하지 않고 마치 정나라가 璧을 노나라에 바치고서 허전을 잠시 빌린 것처럼 말을 만든 것이다. 璧을 준 것은 팽전은 작고 허전은 커서 맞바꿀 경우, 魯나라가 손해이므로 벽을 더 얹어 준 것이다.
역주11 [역주] (假)[暇] : 저본에는 ‘假’로 되어 있으나, 사고전서본에 의거하여 ‘暇’로 바로잡았다.
역주12 [역주] 鄭伯苟欲自救 : 桓公 5년에 鄭나라 군대가 합세하여 周王의 군대를 공격하니 주왕의 군대가 大敗하였다. 祝聃이 주왕에게 활을 쏘아 어깨에 부상을 입혔으나, 주왕은 그래도 군대를 잘 지휘하였다. 축담이 추격하기를 청하니, 鄭 莊公은 “군자는 남보다 올라가기를 바라지 않는데, 하물며 감히 천자를 능멸할 수 있겠는가. 구차하게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구제하여[苟自救也]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이것으로 만족한다.”라고 하였다. 밤에 鄭伯이 祭足을 보내 주왕을 위로하고 또 그 左右에게도 問候하게 하였다.
역주13 [역주] 豈能有所損益乎 : 事實만을 서술하고 事理를 糾明하지 못한 論文이라면 그런 논문이 없다 하여 그 일의 가치가 떨어지지도 않고, 그런 논문이 있다 하여 그 일의 가치가 올라가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역주14 [역주] 事隨於論 : 隨는 隨從이니, 일을 論理에 隨從시킨다는 말로 論理를 主로 삼고, 일을 從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역주15 [역주] 事資於論 : 資에는 取用 또는 利用의 訓이 있으니, 일을 論理를 展開하는 데 利用한다는 뜻이다.

동래박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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