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僖二十六年
이라 하니 楚人讓之
한대 對曰
에 鬼神弗赦
ㄹ새 하니라
注
[主意]謂夔子不敢祀祝融與鬻熊이 禮也라 楚特假此以爲興兵之端이로되 而夔子又以忿怒之辭答之하니 所以取亡이라
以君子之言
이라도 借小人之口發之
면 則天下見其邪而不見其正
注+以君子之言……則天下見其邪而不見其正:小人心邪故邪이요
以小人之言
이라도 借君子之口發之
면 則天下見其正而不見其邪
注+以小人之言……則天下見其正而不見其邪:君子心正故也 曰 正人說邪法 邪法悉歸正 邪人說正法 正法悉歸邪 正是此意라
是故
注+是故:此下引事 發明上文大誥之篇
注+大誥之篇:周公東征作大誥入於王莽之筆
하니 則爲姦說
注+入於王莽之筆 則爲姦說:王莽 篡漢之賊臣 亦作大誥 以喩群下 引此以證君子之言 借小人之口發之하고 陽虎之語
注+陽虎之語:陽虎 季氏之叛臣 言編於孟氏之書
하니 則爲格言
注+編於孟氏之書 則爲格言:孟子引此言 以答滕文公 盖陽虎恐爲仁之害於富 孟子恐爲富之害於仁 所以不同 引此以証小人之言 借君子之口發之이라
是非變其言也
注+是非變其言也:其言則同요 氣變則言隨之變也
注+氣變則言隨之變也:此是一篇主意 君子之氣溫厚 小人之氣忿戾ㄹ새니라 於此有木焉
注+於此有木焉:上文說氣 故又引木爲喩하니
柯幹固未嘗改也
注+柯幹固未嘗改也:猶言未甞變로되 春氣至
注+春氣至:猶溫厚之氣면 則枯者榮
하고 衰者盛
하고 陳者新
하고 悴者澤
注+則枯者榮……悴者澤:猶邪化爲正하며
秋氣至
注+秋氣至:猶忿戾之氣면 則榮者枯
하고 盛者衰
하고 新者陳
하고 澤者悴
注+則榮者枯……澤者悴:猶正化爲邪하니 氣也者
는 潛乎柯幹之中
하야 而浮乎柯幹之外者也
注+氣也者……而浮乎柯幹之外者也:所以氣變而木亦變라
惟言亦然
注+惟言亦然:氣變而言亦變하야 溫厚之氣加焉
注+溫厚之氣加焉:君子 以溫厚之氣 發而爲言이면 凡勁暴粗厲之言
이 皆變而爲溫厚
注+凡勁暴粗厲之言 皆變而爲溫厚:所以見其正 而不見其邪하고
忿戾之氣加焉
注+忿戾之氣加焉:小人 以忿戾之氣 發而爲言이면 凡溫醇和易之言
이 皆變而爲忿戾
注+凡溫醇和易之言 皆變而爲忿戾:所以見其邪 而不見其正라 不動一辭
하고 不移一字
注+不動一辭 不移一字:同是此言로되 而善惡相去若天淵然
注+而善惡相去若天淵然:君子之善如天 小人之惡如地하니
是孰使之然哉
注+是孰使之然哉:設問 言何以變아 氣也
라 氣可以奪言
이나 言不可以奪氣
注+氣可以奪言 言不可以奪氣:答云 氣變則言亦隨之而變也라 故君子之學
은 治氣而不治言
注+故君子之學 治氣而不治言:緫結上文 辭簡意盡이라
夔子之對楚問
注+夔子之對楚問:入本題事은 正也
注+正也:祝融鬻熊 禮不當祀故也나 其激楚怒而見滅者
는 以氣之忿而奪言之正也
注+以氣之忿而奪言之正也:其氣忿戾 故其言粗暴也라
夔子不祀祝融與鬻熊
이 禮也
注+夔子不祀祝融與鬻熊 禮也:祝融 高辛氏之父 正楚之遠祖也 鬻熊 祝融之十二世孫 夔 楚之別封 於禮不得而祀也라 衛祖康叔
注+衛祖康叔:康叔 周文王之子 衛始封之君하고 不敢祀后稷
注+不敢祀后稷:后稷 周之先祖 衛不得而祀也하며
魯祖周公
注+魯祖周公:周公 亦文王之子 魯始封之君하고 不敢祀公劉
注+不敢祀公劉:公劉 后稷之後 魯不得而祀也는 非所以爲罪也
注+非所以爲罪也:未聞以魯衛不祀后稷公劉爲罪也라 此固先儒之所已論也
注+此固先儒之所已論也:以見夔不祀祝融鬻熊 皆非其罪也라 然夔子之言則是
注+然夔子之言則是:不祀爲是나 言之所出則非
注+言之所出則非:答云 因熊摯有疾 不爲鬼神所祐 遂失楚國 故不祀焉 其言忿戾不遜라
治言而不治氣
注+治言而不治氣:此句主意 以斷夔子之罪면 雖有正禮大義
注+雖有正禮大義:夔只當祀熊摯 如衛祖康叔 魯祖周公 故云 正禮大義라도 反爲忿戾之所敗
注+反爲忿戾之所敗:忿戾之氣 奪其正大之言하야 不足以解紛
注+不足以解紛:楚人初借事 以爲用兵之端하고 而反以速禍
注+而反以速禍:以忿戾之言 速敗亡之禍니 豈不甚可惜哉
注+豈不甚可惜哉:惜其一言而喪邦也아
夔之不當祀祝融鬻熊은 楚固知之라 知之而且問者는 特假以爲發兵之端耳니 在常情不得不忿也라
忿心旣生에 言亦隨厲라 故其對楚之辭에 則曰 我先王熊摯有疾에 鬼神弗赦하야 而自竄於夔하야
吾是以失楚하니 又何祀焉가하니 忿戾之氣가 殆如矛㦸傷人하야 至今讀者猶爲之變容이온 況仇敵乎아
使夔有君子라도 亦必以不當祀爲對나 然其言之所自出則異矣리라
惟其空國無君子라 故蔽於私忿하야 徒能爲不當祀之對요 而弗暇思不當祀之由하야
反追咎失楚
하고 讐鬼神之不祐
하니 何其悖耶
아 嗚呼
라 祖可讐
면 是天可讐也
라 果如夔子之言
이면 則石厚之子可以廢碏之祀
注+石厚之子可以廢碏之祀:요
而日磾之孫盖有不入敬侯之廟者矣
注+日磾(제)之孫盖有不入敬侯之廟者矣:리라 夔之始所以不祀者
에 曷嘗有是意耶
아
人情固有自譽而以惡爲美者矣나 未有自誣而以美爲惡者也라
夔之祀典이 本出於禮어늘 今務快其忿하야 甘自處於悖逆而忘其守禮之初心하니 忿戾之移人可畏哉ㄴ저
忿楚子而上及吾祖하니 何怒之遷也오 怒止於楚면 其可自附於不遷怒乎아
曰 未也라 所謂遷怒者는 非待怒室及市然後謂之遷也요 非待怒甲及乙然後謂之遷也라
怒在於彼라가 遷之於我면 是之謂遷이라 怒在於彼而遷之於我는 是猶奪人之酖而自飮이니 其不裂腹潰腸者幾希리라
傳
僖公 26년, 夔子가 祝融과 鬻熊의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楚人이 이를 꾸짖자 대답하였다. “우리 先王 熊摯께 병이 있을 때 〈鬼神에게 祈禱하였으나〉 귀신이 용서하지 않았으므로 스스로 夔로 오셨다.
우리가 이 때문에 楚나라를 잃었는데 또 무엇 때문에 그 제사를 지내겠는가?” 가을에 楚나라 成得臣과 鬪宜申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夔나라를 討滅하고서 夔子를 잡아 가지고 돌아왔다.
注
이 글에서 말하였다. “夔子가 감히 祝融과 鬻熊의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은 禮이다. 楚나라는 다만 이것을 빌려 전쟁을 일으킬 단서로 삼고자 했을 뿐인데 夔子는 더욱 분노가 담긴 辭命으로 답변했으니, 이 때문에 멸망을 초래한 것이다.”
君子의 말일지라도
小人의 입을 빌려 발언하면 천하 사람들은 그 간사함만 볼 수 있고 바름은 볼 수 없으며,
注+小人의 마음은 간사하기 때문에 〈천하 사람들이〉 간사하게 여기는 것이다.
小人의 말일지라도
君子의 입을 빌려 발언하면 천하 사람들은 그 바름만 볼 수 있고 간사함은 볼 수 없다.
注+君子의 마음은 바르기 때문이다. ≪金剛經註≫에 말하기를 “바른 사람은 간사한 법을 말해도 간사한 법이 모두 바름에 귀결되고, 간사한 사람은 바른 법을 말해도 바른 법이 모두 간사함에 귀결된다.”라고 하였으니 바로 이런 뜻이다.
그러므로
注+이 이하의 글은 일을 인용하여 윗글의 뜻을 밝혔다. ≪
書經≫ 〈
周書 大誥〉
篇이
注+周公이 東征한 뒤에 〈大誥〉를 지었다. 王莽의 붓에 들어가니 간사한 말이 되었고,
注+王莽은 漢나라를 찬탈한 逆賊인데 또한 〈大誥〉를 지어 여러 신하들을 깨우쳤다. 이것을 인용하여 君子의 말이 小人의 입을 빌려 발언된 것을 증명한 것이다. 陽虎의 말이
注+陽虎는 季氏를 배반한 가신인데, “富者 되는 일을 하면 仁하지 못하고, 仁을 하면 富者가 못 된다.”라고 말하였다. 孟子의 책에 편입되니
格言이 되었다.
注+孟子가 이 말을 인용하여 滕 文公에게 대답한 것이다. 대체로 陽虎는 仁을 함이 富者 되는 일에 해 될까 두려워한 것이고, 孟子는 富者 되는 일을 함이 仁에 해 될까 두려워한 것이니, 〈군자와 소인이〉 같지 않은 이유이다. 이것을 인용하여 小人의 말이 君子의 입을 빌려 발언된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는 그 말이 변한 것이 아니라
注+그 말은 같다는 말이다. 기운이 변하면 말도 따라서 변하기 때문이다.
注+이는 이 한 편의 主意이다. 君子의 기운은 溫厚하고, 小人의 기운은 忿怒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注+윗글에서 기운을 설명했기 때문에 또 ‘나무’를 인용하여 비유한 것이다.
가지와 줄기가 본래 바뀐 적이 없는데도
注+변한 적이 없다는 말과 같다. 봄의 기운이 이르면
注+온후한 기운과 같다. 말랐던 것이 무성해지고 쇠퇴했던 것이 왕성해지고 묵은 것이 새로워지고 초췌한 것이 윤택해지며,
注+간사함이 변화하여 바름이 됨과 같다.
가을 기운이 이르면
注+분노하는 기운과 같다. 무성했던 것이 말라 시들고 왕성하던 것이 쇠퇴하고 새로웠던 것이 묵은 것이 되고 윤택하던 것이 초췌해지니,
注+바름이 변화하여 간사함이 됨과 같다. 기운이라는 것은 가지와 줄기 속에 잠복하여 가지와 줄기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注+이 때문에 기운이 변하면 나무도 변하는 것이다.
말도 그러해서
注+기운이 변하면 말도 변함을 이른다. 온후한 기운이 더해지면
注+君子는 온후한 기운을 발하여 말을 한다는 것이다. 강포하고 거친 말들이 모두 변하여 온후하게 되고,
注+이는 그 바름만 보고 그 간사함은 보지 못한 이유이다.
忿戾(난폭)의 기운이 더해지면
注+소인은 분노한 기운을 발하여 말을 한다는 것이다. 온순하고 화평한 말들이 모두 변하여 난폭하게 된다.
注+이는 그 간사함만 보고 그 바름을 보지 못한 이유이다. 한마디 말도 변동하지 않고 한 글자도 바꾸지 않았으되
注+똑같이 이 말이라는 말이다. 善과
惡의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멀다.
注+군자의 善은 하늘과 같고, 소인의 惡은 땅과 같다는 말이다.
이는 무엇이 그렇게 만든 것인가?
注+가설하여 물은 것으로, 왜 변하느냐는 말이다. 기운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기운이 언어를 변화시킬 수는 있으나 언어가 기운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注+기운이 변하면 말도 따라서 변한다고 대답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학문은 기운을 다스리고 말을 다스리지 않는다.
注+윗글을 총결하였다. 말이 간단하나 뜻이 극진하다.
夔子가
楚子의
責問에 답한 말은
注+여기부터 본편의 일로 들어간다. 바른말이었으나,
注+祝融과 鬻熊은 禮로 볼 때 제사 지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楚나라의 부아를 질러서 멸망을 당한 것은 기운이 분노하여 말의 바름을 잃었기 때문이다.
注+분노하는 기운이기 때문에 그 말이 조악하다는 것이다.
夔子가
祝融과
鬻熊의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이
禮에 맞는다.
注+祝融은 高辛氏의 아버지이니 바로 楚나라의 먼 조상이고, 鬻熊은 祝融의 12세손이다. 夔는 楚나라가 別封한 나라이니 禮로 볼 때 제사 지낼 수 없다는 말이다. 衛나라가
康叔을 시조로 삼아 제사하고
注+康叔은 周 文王의 아들로 衛나라에 처음 봉해진 임금이다. 감히
后稷까지 거슬러 올라가 제사 지내지 않았으며,
注+后稷은 周나라의 先祖이니 衛나라에서 제사 지낼 수 없다는 말이다.
魯나라가
周公을 시조로 삼아 제사하고
注+周公도 文王의 아들이니 魯나라에 처음 봉해진 임금이다. 감히
公劉까지 거슬러 올라가 제사 지내지 않은 것은
注+公劉는 后稷의 후손이니 魯나라에서 제사 지낼 수 없다는 말이다. 죄가 되는 것이 아니다.
注+魯나라가 公劉의 제사를 지내지 않고 衛나라가 后稷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죄가 된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래
先儒가 이미 논한 바이다.
注+夔나라가 祝融과 鬻熊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모두 그 죄가 아님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夔子의 말은 옳으나
注+제사 지내지 않음이 옳다는 말이다. 말을 하는 방법은 옳지 않았다.
注+〈夔子가〉 대답하기를 “熊摯가 병이 들었을 때 鬼神이 도와주지 않아 마침내 楚나라를 잃었으므로 제사 지내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그 말이 분노에 차 있고 겸손하지 못한 것이다.
말만을 다스리고 기운을 다스리지 않으면
注+이 구절이 主意이니 夔子의 죄를 단언한 것이다. 비록 〈그 말 속에〉 바른 예와 큰 의리가 담겼다 하더라도
注+夔나라가 단지 熊摯의 제사만을 지내야 하는 것은 마치 衛나라의 조상이 康叔이고 魯나라의 조상이 周公인 것과 같기 때문에 ‘바른 예법과 큰 의리’라고 말한 것이다. 도리어 난폭한 기운에 밀리어
注+분노의 기운이 그 바르고 큰 말을 바꿔놓았다는 말이다. 분란은 해결하지 못하고
注+楚人은 애초에 이 일을 빌려 군대를 일으키는 단서로 삼고자 했다는 말이다. 도리어 화를 부를 것이니
注+분노의 말로 패망의 화를 불렀다는 말이다. 어찌 매우 애석하지 않은가?
注+한마디 말로 나라를 잃었음을 애석하게 여기는 말이다.
夔나라가 祝融과 鬻熊의 제사를 지내서는 안 된다는 것은 楚나라는 본디부터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물은 것은 다만 그것을 빌미로 군대를 일으킬 꼬투리로 삼고자 한 것일 뿐이니, 常情으로 볼 때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분한 마음이 생기자 말도 따라서 사나워졌다. 그러므로 楚나라에 대답하는 辭命에 “우리 先王 熊摯께 병이 있을 때 〈鬼神에게 祈禱하였으나〉 귀신이 용서하지 않았으므로 스스로 夔로 오셨다.
우리가 이 때문에 楚나라를 잃었는데 또 무엇 때문에 그 제사를 지내겠는가?”라고 하였으니, 난폭한 기운이 거의 창으로 사람을 찌르듯 하여 지금까지도 이 대목을 읽는 자들은 오히려 얼굴에 노기를 드러내는데 하물며 원수이겠는가?
가령 夔나라에 君子가 있었더라도 반드시 제사 지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방법은 달랐을 것이다.
오직 夔나라가 텅 비어 군자가 없었기 때문에, 사사로운 분노에 가려서 다만 제사 지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만으로 대답할 뿐, 제사 지내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므로 도리어
楚나라를 잃은 것을 추후에 허물하고 귀신이 돕지 않은 것을 원수로 여겼으니 어쩌면 그리도 사리에 어긋났는가? 아! 조상을 원수로 여긴다면 이는 하늘을 원수로 여기는 것이다. 과연
夔子의 말대로라면
石厚의 아들은
石碏의 제사를 폐지하고,
注+일이 ≪春秋左氏傳≫ 隱公 4년에 보인다.
金日磾의 자손은
敬侯(
金日磾)의 사당에 〈제사 지내기 위해〉 들어가지 않는 자가 있었을 것이다.
注+≪漢書≫ 〈金日磾傳〉에 보인다. 夔나라가 처음 제사 지내지 않은 이유에 어찌 이런 뜻이 있었겠는가?
사람의 常情은 본래 제가 한 일을 스스로 칭찬하여 악행을 미덕으로 만드는 자는 있지만, 스스로 무함하여 미덕을 악행으로 만드는 자는 없다.
夔나라의 祀典은 본래 禮에서 나온 것인데 지금 그 忿怨을 풀기를 힘써 스스로 기꺼이 도리에 거스르는 짓을 하고 禮를 지키는 초심을 잊었으니, 분노가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이 참으로 두렵다.
楚子에게 분노하여 위로 자기 조상에까지 미쳤으니 어찌하여 그렇게 분노를 옮겼는가? 분노가 楚나라에서 그치고 〈조상에 미치지 않았다면〉 스스로 ‘不遷怒(노여움을 옮기지 않음)’에 비유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른바 ‘遷怒(노여움을 옮김’)란 집에서 노한 것을 시장에서 화풀이한 뒤에야 그것을 ‘옮겼다’고 하는 것이 아니며, 甲에게 노한 것을 乙에게 화풀이한 뒤에야 그것을 ‘옮겼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노한 것을 나에게 옮기는 것을 일러 ‘옮김’이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노한 것을 나에게 옮기는 것은 마치 다른 사람의 짐독을 빼앗아 스스로 마시는 것과 같으니, 배가 찢어지고 창자가 녹아내리지 않을 자가 드물 것이다.
저 顔子의 ‘노여움을 옮기지 않은 것’은 과연 무엇이 사람들과 달랐는가? 이 또한 짐독을 뺏어 마시지 않은 지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