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 文七年
이라 狄侵我西鄙
어늘 公使告於晉
하니 하다
酆舒問於賈季曰 趙衰趙盾孰賢고 對曰 趙衰는 冬日之日也요 趙盾은 夏日之日也라 註云 冬日可愛하고 夏日可畏라
天下之物은 不可以疑心觀也라 萬物錯陳於吾前한 鳧短鶴長과 繩直鉤曲과 堯仁桀暴와 夷廉跖貪은 區別彙分하야 本無可惑이로되 疑心一加면 則視鳧如鶴하고 視繩如鉤하고 視堯如桀하고 視夷如跖하니 是非物之罪也라
以疑先物일새 所見固非其正也라 內疑未解면 外觀必蔽니 不求之於心而求之於目이면 難矣哉라
此猶非其難也라 物未嘗眩吾어늘 而吾則疑物也는 吾先以疑待物일새 而物之似復適投吾之所疑니 以我之疑로 觀物之似라
賈季之仇趙盾은 古今莫不聞이라 言發於仇讐之口면 人固先以疑心聽之矣라
使季譽盾之淸耶면 人必曰 陽譽其淸而陰譏其陋也리라 使季譽盾之剛耶면 人必曰陽譽其剛而陰譏其狼也리라
季以公心譽之로되 人以疑心聽之는 言在此而意亦在彼ㄹ새니라
雖其辭坦明易直하야 無疑可指라도 且猶揣摩猜度하야 靡所不至어든 況所譽之言에 未免於可疑耶아
冬日
은 人所愛也
요 夏日
은 人所畏也
라 季目衰以冬
하고 而目盾以夏
하니 吾不知季以衰勝盾
아 抑以盾勝衰耶
아 是殆未可知也
라
以盾之威爲可畏耶아 抑以盾之虐爲可畏耶아 是殆未可知也라
一言而挾勝負之兩意하고 一字而具威虐之兩端하니 苟季素與盾無間然之隙이면 則人固未敢以毁盾疑也라
今季與盾其仇若此하고 其語又若此하니 以前之仇驗後之語면 雖有知者觀之라도 亦必斷然謂之毁盾矣리라
信如是면 則季之毁는 非似也眞也며 人之觀季는 非疑也明也라
吾何以知季之非毁盾耶
아 幽囚野死之謗
이 不出於康衢之間
하고 而出於秦漢之後
注+幽囚野死之謗……而出於秦漢之後:하니 盖以秦漢之心
으로 而量唐虞之心
이라 信乎其可疑也
로라
癰疽瘠環之謗
이 不出於洙泗之濱
하고 而出於戰國之末
注+癰疽瘠環之謗……而出於戰國之末:하니 盖以戰國之心
으로 而量仲尼之心
이라 信乎其可疑也
로라
持後世之心而觀古人之迹이면 盖無適而非可疑者니 豈獨賈季事哉리오
兄弟鬩於墻
이나 外禦其侮
라하니 古之人未嘗以私鬪忘其家也
나 自後
之心而量之
면 未必不疑其匿怨也
요
人之行不以所惡廢鄕이니 古之人未嘗以私惡忘其鄕也나 自後世之心量之면 未必不疑其矯情也리라
季盾易班之仇는 私仇耳니 百年父母之邦을 豈以一盾而大棄之耶아 盾所以敢使季責酆舒者는 知其怨盾而不怨晉也요 季所以肯對酆舒而譽盾者도 亦主晉而不主盾也라
盾以晉使之
하고 而
以盾使之
며 季子亦爲晉言之
요 而不爲盾言之
를 烏可以後世淺心量之乎
아
以冬擬衰하고 以夏擬盾하니 其迹似優衰而劣盾也나 其心則爲戎狄은 難以愛懷하고 易以威服이라하야 欲酆舒知盾之威不可犯이니 非如衰之猶可狎也라 張盾之威는 所以張晉之威니 所謂實與而文不與也라
馬援未嘗尊高帝而卑光武
나 激言之者
는 所以使隗囂知光武細謹之不可欺
注+馬援……不可欺:見本傳요 賈季未嘗優趙衰而劣趙盾
이나 激言之者
는 所以使酆舒知趙盾威靈之不可犯
이라 馬援嘗與光武有睚眦之隙
하니 則世又
以疑季者疑援矣
리라
풍서酆舒가 가계賈季에게 조최趙衰와 조돈趙盾의 사람됨을 묻다
傳
문공文公 7년, 적인狄人이 우리나라 서쪽 변경邊境을 침범侵犯하자 공公이 사신使臣을 보내어 진晉나라에 고告하니, 조선자趙宣子가 사신을 보내어 가계賈季를 통해 풍서酆舒에게 안부를 묻고 또 노魯나라 침범侵犯한 것을 꾸짖었다.
풍서酆舒가 가계賈季에게 “조최趙衰와 조돈趙盾 중에 누가 더 현명賢明한가?”라고 묻자, 가계賈季는 “조최趙衰는 겨울 햇볕이고 조돈趙盾은 여름 햇볕이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대하여 두예杜預의〉 주註에 “겨울 햇볕은 사랑스럽고 여름 햇볕은 두렵다.”라고 하였다.
천하天下의 사물事物은 의심을 가지고 보아서는 안 된다. 내 눈앞에 복잡하게 벌여 있는 다리가 짧은 오리, 다리가 긴 두루미, 똑바른 먹줄, 구부정한 낚싯줄, 당요唐堯의 인애仁愛, 하걸夏桀의 포학, 백이伯夷의 청렴, 도척盜跖의 탐욕 등 온갖 사물은 각각 종류별로 구분되어 본래 의혹될 것이 없으되,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오리가 두루미로 보이고, 먹줄이 낚싯줄로 보이며, 당요唐堯가 하걸夏桀로 보이고 백이伯夷가 도척盜跖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사물의 죄가 아니다.
사물을 보기에 앞서 먼저 의심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정확하지 않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내심內心의 의혹이 풀리지 않으면 외부의 사물을 관찰함에 반드시 가림이 있으니, 마음으로 관찰하기를 구하지 않고 눈으로 관찰하기를 구한다면 〈사물의 진상을 관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물이 내 눈을 현혹시키지 않는데도 내가 사물을 의심하는 것은 내가 먼저 의심을 가지고 사물을 대하였기 때문에 사물이 내가 의심했던 것과 유사한 형태로 보인 것이니, 이는 나의 의심을 가지고 사물의 유사한 것을 본 것이다.
이것이 천하에 〈진가眞假를〉 변별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가계賈季가 조돈趙盾을 원수로 대한 일은 고금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논평하는 말이 원수의 입에서 나오면 사람들은 당연히 의심을 먼저 갖고 들을 것이다.
가령 가계賈季가 조돈趙盾의 청렴함을 칭찬하였다면 사람들은 반드시 “겉으로는 그의 청렴함을 칭찬하였으나 사실은 그의 비루함을 비웃은 것이다.”라고 하고, 가령 가계賈季가 조돈趙盾의 강직함을 칭찬하였다면 사람들은 반드시 “겉으로는 그의 강직함을 칭찬하였으나 속으로는 그의 잔인함을 비웃은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가계賈季가 공심公心으로 조돈趙盾을 칭찬했더라도 사람들이 의심을 갖고 듣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생각은 여기에 있는데 듣는 사람의 마음은 저기에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품평하는 말이 평탄하고 솔직하여 지적할 만한 의심스러운 곳이 없어도 〈듣는 자들은〉 오히려 온갖 방법을 다해 짐작하고 추측하는데, 하물며 칭찬하는 말을 〈듣고서〉 의심스러움이 있음에랴!
겨울 햇볕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바이고 여름 햇볕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바이다. 가계賈季는 조최趙衰를 겨울 햇볕으로 지목하고 조돈趙盾을 여름 햇볕으로 지목하였으니, 나는 가계賈季가, 조최趙衰가 조돈趙盾보다 낫다고 여긴 것인지, 아니면 조돈趙盾이 조최趙衰보다 낫다고 여긴 것인지 모르겠으니, 이는 〈의심스러워〉 알 수가 없다.
조돈趙盾의 위엄이 두려워할 만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조돈趙盾의 포학暴虐이 두려워할 만하다는 것인지 모르겠으니, 이는 〈의심스러워〉 알 수가 없다.
한마디 말에 승勝과 부負(포褒와 폄貶) 두 가지 뜻을 포함하고 한 글자에 위威와 학虐 두 가지를 뜻을 갖추었으니, 만약 가계賈季가 평소 조돈趙盾과의 사이에 틈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응당 감히 조돈趙盾을 헐뜯었다고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가계賈季와 조돈趙盾 사이의 원한이 이와 같고 그 평어評語 또한 이와 같으니, 전일의 원한을 가지고 후일의 평어를 험증驗證해보면 비록 지혜로운 자가 보더라도 반드시 단연코 조돈趙盾을 헐뜯은 것이라고 할 것이다.
과연 이와 같다면 가계賈季의 헐뜯음은 유사한 것이 아니라 진실된 것이며, 사람들이 가계賈季의 〈태도를〉 관찰하는 것은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인증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가지고
가계賈季가
조돈趙盾을 헐뜯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가?
당요唐堯가
수금囚禁되고
우순虞舜이
야외野外에 죽었다는 비방이
강구康衢 사이(
요순堯舜이 살던 시대)에 나오지 않고
진秦․
한漢 이후에 나왔으니,
注+기록이 ≪禮記≫ 〈檀弓〉에 보인다. 이는
진秦․
한인漢人의 마음으로
당우唐虞(
요순堯舜)의 마음을 헤아린 것이니 참으로 의심할 만하다.
〈
공자孔子가〉
옹저癰疽와
척환瘠環을 주인으로 삼았다는 비방이
수수洙水와
사수泗水의 물가(
공자孔子가 살던 시대)에서 나오지 않고
전국시대戰國時代 말엽에 나왔으니,
注+≪孟子≫ 〈萬章〉에 보인다. 이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사람의 마음으로
중니仲尼의 마음을 헤아린 것이니 참으로 의심할 만하다.
후세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옛사람의 사적事迹을 관찰하면 가는 곳마다 의심되지 않는 곳이 없으니 어찌 유독 가계賈季의 사적뿐이겠는가?
〈≪시경詩經≫ 〈소아小雅 상체常棣〉에〉 “형제가 집안에서 싸우더라도 밖에서 오는 모욕은 〈합심해〉 막는다.”고 하였으니, 옛사람은 〈형제간에〉 사사로운 일로 싸우더라도 그 집안을 잊지 않은 것인데, 이를 후세 사람의 마음으로 헤아려보면 반드시 그 원한(형제간의 원한)을 숨기고 있다고 의심하지 않음이 없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애공哀公 8년에〉 “사람은 고국故國을 떠났어도 원한으로 인해 고향故鄕(고국故國)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옛사람은 사사로운 원한이 떠나더라도 그 고향을 잊지 않은 것인데, 이를 후세 사람의 마음으로 헤아려보면 반드시 감정을 숨기고 태연한 척[교정矯情] 하였다고 의심하지 않음이 없다.
가계賈季가 조돈趙盾과 반차班次가 바뀐 데 대한 원한은 개인의 원한일 뿐이니, 장구長久[백년百年]히 살아온 부모의 나라[고국故國]를 어찌 한 조돈趙盾 때문에 버려서야 되겠는가. 조돈趙盾이 감히 가계賈季를 사신으로 보내어 풍서酆舒를 꾸짖게 한 것은 가계賈季가 조돈趙盾을 원망하지만 진晉나라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가계賈季가 풍서酆舒에게 긍정적으로 대답하면서 조돈趙盾을 칭찬한 것 또한 진晉나라를 중시하고 조돈趙盾을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돈趙盾이 진晉나라 명의名義로 가계賈季를 사신으로 보낸 것이고 조돈趙盾의 명의로 보낸 것이 아니며, 가계賈季도 진晉나라를 위해 그리 말한 것이고 조돈趙盾을 위해 그리 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후세 사람의 좁은 마음으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조최趙衰를 겨울 햇볕에 비유하고 조돈趙盾을 여름 햇볕에 비유하였으니, 정황으로 보면 조최趙衰를 우월하게 여기고 조돈趙盾을 저열하게 여긴 것 같다. 그러나 그(가계賈季)의 마음은 융적戎狄은 은애恩愛로 감싸기 어렵고 위엄으로 복종시키기 쉽다고 여겨, 풍서酆舒로 하여금 조돈趙盾의 위엄은 침범할 수 없으니 조최趙衰처럼 친근히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알게 하려 한 것이다. 조돈趙盾의 위엄을 널리 알린[張揚] 것은 진晉나라의 위엄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니, 이른바 ‘실질적으로는 칭찬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칭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마원馬援이
한漢 고제高帝를
존숭尊崇하고
광무제光武帝를
경시輕視한 적이 없었으나 이렇게 격렬하게 말한 것은
외효隗囂로 하여금
광무제光武帝는 세심하고
근엄謹嚴하여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고,
注+≪後漢書≫ 〈馬援列傳〉에 보인다. 가계賈季가
조최趙衰를 우월하게 여기고
조돈趙盾을 저열하게 여긴 적이 없으나 이렇게 격렬하게 말한 것은
풍서酆舒로 하여금
조돈趙盾의 위세와 명성을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마원馬援은 일찍이
광무제光武帝와 작은 원한이 있었으니
세인世人들은 또
가계賈季를 의심하는 마음으로
마원馬援을 의심할 것이다.
漢光武帝眞像
고인古人의 마음이 없이 급히 고인의 서적만을 보고자 한다면 일어나는 의심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