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은공隱公 3년, 정鄭 무공武公과 정鄭 장공莊公이 대代를 이어 평왕平王의 경사卿士가 되었는데, 평왕이 장공莊公에게 주었던 정권政權을 나누어 괵공虢公에게 주려 하자, 정백鄭伯(莊公)이 평왕을 원망하니, 평왕은 “그럴 뜻이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주周나라와 정鄭나라가 인질人質을 교환하여 왕자王子 호狐(평왕의 아들)가 정鄭나라의 인질이 되고, 정鄭나라 공자公子 홀忽(정 장공의 아들)이 주周나라의 인질이 되었다.
평왕이 죽은 뒤에 주인周人이 괵공虢公에게 정권을 맡기려 하니, 4월에 정鄭나라 채족祭足이 군대를 이끌고 가서 온현溫縣의 보리를 취하고, 가을에 또 성주成周(洛陽)의 벼를 취하니, 주나라와 정나라가 서로 미워하였다.
이에 대해 군자는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믿음이 중심中心에서 나오지 않으면 인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서로의 처지를 밝게 살피고 광명光明한 마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일을 처리하고 예禮로써 서로 단속한다면 비록 인질이 없다 하더라도 누가 그 사이를 이간할 수 있겠는가.
진실로 마음이 공명公明하고 진실하다면 간계소지澗谿沼沚의 수초水草와, 빈번온조蘋蘩蘊藻 등의 야채野菜와, 광거기부筐筥錡釜 등의 용기用器와 황오행로潢汙行潦의 물도 모두 귀신에게 제물祭物로 바칠 수 있고 왕공에게 올릴 수 있는데, 하물며 군자가 두 나라 사이에 신의信義를 맺어 예禮로써 행한다면 또 인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시경詩經》의 풍風에는 〈채번采蘩〉‧〈채빈采蘋〉이 있고, 아雅에는 〈행위行葦〉‧〈형작泂酌〉이 있으니, 이는 모두 충신忠信을 밝힌 시詩이다.”
오랑캐가 왕이 있는 줄 모르는 것은 근심할 게 못 되고
注+융적戎狄이 중국을 능멸하는 것은 바로 저들 본래의 행태行態이다., 도적이 왕이 있는 줄 모르는 것도 근심할 게 못 되고, 제후가 왕이 있는 줄 모르는 것 또한 근심할 게 못 되지만
注+제후 중에도 왕을 무시하는 자가 있다., 명색이 군자라는 자들까지도 왕이 있는 줄 몰랐으니
注+군자는 명분에 매우 밝아서 융적戎狄이나 제후와는 달라야 하는데, 지금 그들 또한 ‘주정周鄭’을 두 나라라고 하였다., 온 천하에 왕실이 있는 줄 아는 자가 누구이겠는가?
注+이것은 주周나라가 천자임을 아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