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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3)

동래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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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박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4-04 晉文請隧 啓南陽 圍陽樊 圍原 問守原
[左傳]僖二十五年이라 하야 三月甲辰 하야 하고 左師逆王하다
四月丁巳 王入于王城하야 取太叔于溫하야 하다 戊午 晉侯朝王하니 하다
與之陽樊溫原欑茅之田하니 晉於是 하다 陽樊不服이어늘 圍之한대
呼 曰 德以柔中國하고 刑以威四夷 宜吾不敢服也 하다
晉侯圍原할새 命三日之糧이러니 原不降이어늘 命去之하다 諜出曰 原將降矣라하니 軍吏曰 請待之하소서
公曰 信 國之寶也 民之所庇也 라하고 退一舍而原降하다
遷原伯貫于冀하고 趙衰爲原大夫하다 晉侯 問原守於寺人한대
[主意]謂形勢猶身也 德猶氣也 未有身不存而氣能獨存者 婁敬謂周之衰 非德之薄이요 乃形勢之弱이라하니 固爲妄論이라
而襄王不許晉文之請隧하고 寧割地以與之하니 意謂可恃者在德이요 而不在形勢
則是不能守身而徒欲守氣 無是理也 此篇議論精當하야 可以破이라
言周秦之強弱者 必歸之形勢注+言周秦之強弱者 必歸之形勢:周衰由形勢之弱 秦盛由形勢之強하니 其說盖始於婁敬注+其說盖始於婁敬:婁敬 漢高祖時人이라
敬之言曰 周公營成周注+周公營成周:昔周公經營遷都之地都雒注+都雒:與洛同 定都洛邑 今東京洛関是也 以爲有德易以興하고 無德易以亡注+以爲有德易(이)以興 無德易以亡:此一句 婁敬所引周公營洛之議이니 不欲阻險令後世驕奢以虐民也注+不欲阻險令後世驕奢以虐民也:此婁敬釋上二句意 謂洛無險阻 使子孫畏懼而修德恤民
及周之衰하야 天下莫朝注+及周之衰 天下莫朝:諸侯不復朝周로되 周不能制注+周不能制:不能制諸侯하니 非德薄注+非德薄:非是周之無德이요 形勢弱也注+形勢弱也:由洛邑無險阻故也
秦地被山帶河注+秦地被山帶河:秦都關中 有山河之險하야 四塞以爲固注+四塞以爲固:四面阨塞以爲險固하니 此所謂天府注+此所謂天府:以其勢如登天 故號天府 婁敬之言止此
論周秦之形勢者 皆宗於敬注+論周秦之形勢者 皆宗於敬:後世論者 以敬之言爲主 下文乃貶敬之言誤이나 吾獨謂敬所見者 特平王之周耳注+吾獨謂敬所見者 特平王之周耳:婁敬不知平王東遷之後 始居洛邑 曷嘗見文武成康之周哉注+曷嘗見文武成康之周哉:文王都豐 武王都鎬 成王雖營洛邑 第於此受諸侯朝會 復歸于豐 未甞居洛邑也
敬以周之形勢爲弱하고 秦之形勢爲強하니 抑不知敬之所謂秦乃文武成康之周也注+抑不知敬之所謂秦乃文武成康之周也:見婁敬之說誤 文武成康之世 岐豐乃周之都注+文武成康之世 岐豐乃周之都:其地正在關中
如敬之言被山帶河四塞以爲固者注+如敬之言被山帶河四塞以爲固者:亦指關中而言 盖皆周之形勢 當是時하야 安得有所謂秦者耶注+當是時 安得有所謂秦者耶:秦西戎之裔 當時未得關中之地
迨至平王東遷注+迨至平王東遷:因犬戎之亂 東遷于洛하야 輕捐岐豐之地以封秦注+輕捐岐豐之地以封秦:以文武成康之都 畀之秦國하야
遂成秦之強注+遂成秦之強:秦自是始強하니 是秦非能自強也 得周之形勢而強也注+是秦非能自強也 得周之形勢而強也:辨論分曉
秦得周之形勢하야 以無道行之注+秦得周之形勢 以無道行之:恃形勢而恣爲無道로되 猶足以雄視諸侯注+猶足以雄視諸侯:遂爲諸侯之雄하고 幷呑天下注+幷呑天下:幷呑六國而有天下
況文武成康注+況文武成康:何況周之四君有道 本之以盛德注+本之以盛德:有德以爲之氣하고 輔之以形勢注+輔之以形勢:有形勢以爲之身體하니 其孰能禦之耶注+其孰能禦之耶:此所以爲成周之盛
是天下形勢之強者 莫周若也注+是天下形勢之強者 莫周若也:周雖有德 何甞不藉形勢어늘 敬何所見而遽以弱名周耶注+敬何所見而遽以弱名周耶:婁敬謂周形勢弱者誤矣
吾故曰 敬所見者 平王之周 而未見文武成康之周也라호라 敬論周之形勢旣謬注+敬論周之形勢旣謬:謬 誤 如前所云하고 其論周之德益謬注+其論周之德益謬:如後所云로다
形勢與德 夫豈二物注+形勢與德 夫豈二物:二者相依而存이리오 形勢 猶身也 猶氣也注+形勢猶身也 德猶氣也:無氣則身亡 無身則氣散
人未有恃氣之充하고 而置身於易死之地者 亦未有恃德之盛하고 而置國於易亡之地者注+亦未有恃德之盛 而置國於易亡之地者:必有德以守其形勢 必有形勢以用其德 後世所謂在德不在險者 盖一偏之論也
王者之興 其德必有以先天下하고 其形勢亦必有以先天下注+王者之興……其形勢亦必有以先天下:二者皆不可無하니 文武成康之德 天下莫如也注+文武成康之德 天下莫如也:此德之先天下
岐豐伊雒之形勢 天下亦莫如也注+岐豐伊雒之形勢 天下亦莫如也:此形勢之先天下 兩盡其極하야 而未嘗有所隆殺也 君子無所不用其極者
隆其德而殺其形勢注+隆其德而殺其形勢:如婁敬所謂營洛之議是 是有時而不用其極矣 烏得爲王者之道耶注+烏得爲王者之道耶:王者豈恃德之盛而置國於易亡之地 陋矣哉 敬之論也注+陋矣哉 敬之論也:以上皆責婁敬之謬論
非特敬爲然注+非特敬爲然:此下轉責襄王不當割地與晉이요 雖周之子孫 莫不皆然注+雖周之子孫 莫不皆然:亦如婁敬所見이라 晉文公旣定子帶之難注+晉文公旣定子帶之難:初王子帶召狄伐周 襄王出適鄭 晉文公殺子帶而納襄王하고 請隧以自寵注+請隧以自寵:鑿隧道以葬 王者之禮也 晉文以有大功於王室 故請用隧也하니
襄王弗許曰 王章也注+襄王弗許曰 王章也:襄王答言此隧是王室之典章 未有代德注+未有代德:晉未有德可以代周爲王而有二王注+而有二王:今葬禮用隧 是猶二王也 亦叔父之所惡也注+亦叔父之所惡(오)也:天子稱同姓諸侯曰 伯父叔父라하고 與之陽樊溫原櫕茅之田注+與之陽樊溫原櫕茅之田:襄王與晉文四邑之地 陽樊一也 溫二也 原三也 櫕茅四也하니라
襄王之意 以爲吾周之爲周 在德而不在形勢注+襄王之意……在德而不在形勢:襄王所見 正與婁敬同也하니 典章文物之制注+典章文物之制:國家所立法度 子孫當世守之 不可一毫之假人注+子孫當世守之 不可一毫之假人:如不許請隧之類이라
至於區區土壤注+至於區區土壤:土地則不必惜하얀 吾何愛而以犯強國之怒耶注+吾何愛而以犯強國之怒耶:寧割四邑 以與晉文 抑不知隧固王章也注+抑不知隧固王章也:此下責襄王割地之非 千里之畿甸亦王章也注+千里之畿甸亦王章也:王畿地方千里 亦是王室典章
襄王惜禮文하야 不以與晉注+襄王惜禮文 不以與晉:不許請隧하고 自謂能守王章注+自謂能守王章:所以守王室之典章이나 抑不知割地自削이면 則畿甸之王章旣不全矣注+抑不知割地自削 則畿甸之王章旣不全矣:王畿之地 日削日狹 是亦不能守王章也
惜其一而墮其注+惜其一而墮(휴)其(二)[一]:墮 音隳(휴) 惜隧葬而割地與人하니 烏在其能守王章耶注+烏在其能守王章耶:是守禮文之王章 而失畿甸之王章也 形勢 猶身也 猶氣也注+形勢猶身也 德猶氣也:應前主意
披其肩背하야 斷其手足하고 自謂能守氣者注+披其肩背……自謂能守氣者:喩襄王割地與人 形勢日蹙 而自謂所守在德 吾不信也注+吾不信也:支體廢而氣獨有 無此理也로라
嗚呼注+嗚呼:此下議論 愈見精采 周自平王捐岐豐以封秦注+周自平王捐岐豐以封秦:再敍起으로 旣失周之半矣注+旣失周之半矣:已失王畿千里之地
以破裂不全之周 兢兢自保注+以破裂不全之周 兢兢自保:保守見(현)存之地라도 猶恐難立注+猶恐難立:尙恐不能立國이어늘 豈容復有所侵削耶注+豈容復(부)有所侵削耶:地已狹小 豈容屢割
奈何子孫猶不知惜注+奈何子孫猶不知惜:深責周之子孫 今日割虎牢畀鄭注+今日割虎牢畀鄭:荘公二十一年 恵王與鄭公 以武公之略 自虎牢以東하고 明日割酒泉畀虢注+明日割酒泉畀虢:其年王巡虢守 與虢公酒泉하야
文武境土 歲朘月耗注+歲朘月耗:侵削不已하야 至襄王之時注+至襄王之時:襄王 恵王之子하얀 隣於亡矣注+隣於亡矣:地削兵少 近於滅亡어늘 又頓捐數邑於晉注+又頓捐數邑於晉:又割四邑 以賂晉文하니
猶棄粮於陳蔡之間注+猶棄粮於陳蔡之間:譬如孔子厄於陳蔡之間 粮已乏矣 하고 揮金於原曾之室注+揮金於原曾之室:譬如原憲曾參之室 貧已甚矣 이니 果何以堪乎注+果何以堪乎:引喩明切 周之堙替至此注+周之堙替至此:又轉責晉文之不仁 堙替削弱不振也하니 見之者皆爲之憫惻注+見之者皆爲之憫惻:周非無道而致削弱 誠可憫也이어늘
晉文乃忍於此時 多取其地以自肥注+晉文乃忍於此時 多取其地以自肥:受四邑而不辭하니 亦猶奪粮於陳蔡之間注+亦猶奪粮於陳蔡之間:粮已乏 而又攘奪之이요 攫金於原曾之室注+攫金於原曾之室:金已乏 而又攫取之이니 其亦不仁甚矣注+其亦不仁甚矣:貫穿上 譬喩極精巧로다
注+噫:承上文意 深責晉文 晉文獨非周之苗裔耶注+晉文獨非周之苗裔耶:晉始封之君唐叔虞 乃武王之子 成王之弟也 坐視宗國之危蹙注+坐視宗國之危蹙:勢危而地蹙하야 不能附益注+不能附益:不能爲周開拓土宇하고
反從而漁奪之注+反從而漁奪之:又因請隧 而取四邑之地하니 是而可忍이온 孰不可忍注+是而可忍 孰不可忍:此事尙忍爲之 何事不忍爲乎이리오 議者反屑屑然論其伐原之信注+伐原之信:見本題註 問守之非注+問守之非:見本題註 柳子厚守原議曰 晉文公旣受原於王 難其守 問寺人勃鞮 以畀趙衰 余謂守原政之大者也 所以承天子立伯功致命諸侯 不宜謀及媟近 以忝王命 媟近 謂寺人也하니 何其捨本而求末也注+議者反屑屑然論其伐原之信問守之非 何其捨本而求末也:左氏言其能示信 柳文貶其問寺人 而不知其侵削周地之罪 皆捨其本而論其末者也
晉文之不仁至是하니 固自不可以人理責이라 向使爲襄王者 知祖宗之地 尺寸不可以與人하야 以正義大法으로 明告於晉이면
晉雖強暴 未必敢遽加無道於周也 雖然注+雖然:結尾又論繁纓一事 極爲切當이나 仲叔于奚有功于衛注+仲叔于奚有功于衛:成公二年 衛人賞之以邑 辭 許之 曲縣者 軒縣也 繁纓者 馬飾也 二者 皆諸侯之制 縣 音玄 繁 步干反 賞之繁纓하니
夫子以爲不如多與之邑注+賞之繁纓 夫子以爲不如多與之邑:이라하시니 隧之於繁纓 不亦大乎注+隧之於繁纓 不亦大乎:隧葬 天子之禮 比之繁纓 事體尤大 襄王重隧而輕邑하니 適合夫子之訓注+襄王重隧而輕邑 適合夫子之訓:正與孔子不如多與之言 適相符合이라
夫子是則襄王亦是注+夫子是則襄王亦是:襄王不可責也하고 襄王非則夫子亦非注+襄王非則夫子亦非:夫子豈可責乎 必居一於此矣注+必居一於此矣:設此一說 反難極高리라
曰 不類注+曰 不類:斷曰一事本不相似 仲叔于奚 內臣也注+仲叔于奚 內臣也:是衛國之臣 雖多與之邑이라도 猶衛地也注+雖多與之邑 猶衛地也:以衛地與衛人 猶在境土之內어니와
晉文公 外臣也注+晉文公 外臣也:是在外之諸侯 朝受圖而夕設版矣注+朝受圖而夕設版矣:以周地與晉人 是割地與諸侯之國 彼晉人者 朝受四邑之圖籍 而夕已設版 奄爲晉之有矣 是不同注+是不同:以此知衛邑可多與仲叔于奚 而周邑實不可以與晉文 其事體大不同也 此一疑難 東萊只數句斷了 極有手段 又朝受圖而夕設版 亦是融化左傳句法 所以學者貴乎讀書也이라


文公隧葬을 청하다, 南陽으로 영토를 開拓하다, 陽樊을 포위하다, 을 포위하다, 을 지킬 만한 관리를 묻다
僖公 25년, 晉侯秦軍에게 사양하고서 물길을 따라 내려갔다. 3월 甲辰日陽樊에 주둔하여 右軍을 포위하고 左軍을 맞이해 들였다.
여름 4월 丁巳日王城으로 들어가서 太叔에서 잡아 隰城에서 죽였다. 戊午日晉侯朝見하니 이 단술을 접대하고 하였다.
文公隧葬을 청하자, 은 허락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이는 典章(制度)이다. 나라의 을 대신할 자가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두 이 있는 것은 叔父도 싫어할 것이다.”라고 하고서,
陽樊欑茅 등의 땅을 주니, 나라가 이때부터 비로소 南陽으로 영토를 開拓(擴張)하였다. 陽樊人이 복종하지 않자 晉軍이 포위하니,
倉葛이 고함쳐 말하기를 “으로 中國懷柔하고 刑罰四夷威脅하는 것인데, 〈우리를 무력으로 위협하니〉 우리가 복종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곳의 주민 중에 親戚이 아닌 자가 누가 있기에 우리를 포로로 잡으려고 하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晉侯는 그곳의 백성을 축출하였다.
겨울에 晉侯을 포위할 때에 사흘 치의 식량만 가지고 가도록 명하였더니 〈사흘이 되어도〉 原人이 항복하지 않자 晉侯撤軍을 명하였다. 〈이때 에 잠입했던〉 諜者가 나와서 “原人이 항복하려 합니다.”라고 하니, 軍吏가 “〈저들의 항복을〉 기다리소서.”라고 하였다.
文公이 말하기를 “은 나라의 보배로 백성들이 庇護(保護)받는 것인데, 을 얻는다 하더라도 을 잃는다면 무엇으로 백성을 비호하겠는가? 잃는 것이 더욱 많을 것이다.”라고 하고서 1를 물러나니 原人이 항복하였다.
晉侯原伯 (나라 땅)로 옮기고서 趙衰原大夫로 삼았다. 晉侯寺人 勃鞮에게 을 지킬 만한 관리를 물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전에 趙衰壺飱을 가지고 主君從行할 때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를 大夫로 삼아〉 에 거처하게 하였다.
이 글에서 말하였다. “形勢는 몸과 같고 은 기운과 같으니, 몸이 존재하지 않고서 기운만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 婁敬은 ‘나라가 쇠퇴한 것은 이 박해서가 아니라 곧 형세가 약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진실로 망령된 말이다.
襄王 文公隧道를 청한 것을 허락하지 않고 차라리 땅을 할애해주었으니, 그의 생각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에 있고 형세에 있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몸은 지키지 못하면서 한갓 기운만을 지키고자 한 것이니 이런 이치는 없다.” 이 의 의론이 정밀하고 합당하여 ‘〈나라를 보존하는 것은〉 에 달려 있고 험한 지형에 달려 있지 않다는 말’을 깨뜨릴 수 있다.
나라와 나라의 強弱을 말하는 자들은 그 원인을 반드시 형세로 돌리니,注+나라가 쇠퇴함은 형세가 약함으로 말미암았고, 나라의 번성함은 형세가 강함으로 말미암았다는 말이다. 이런 논리는 婁敬으로부터 비롯하였다.注+婁敬 高祖 때의 사람이다.
婁敬은 이렇게 말하였다. “周公成周를 경영하여注+成周는〉 옛날 周公이 경영하여 천도한 지역이다. 雒邑에 도읍한 것은,注+〈‘’은〉 ‘’과 같으니 洛邑으로 도읍을 정한 것이다. 지금의 東京 洛関이 이곳이다. 덕이 있으면 흥성하기 쉽고 덕이 없으면 패망하기 쉬우니,注+이 한 구절은 婁敬이, 周公이 낙읍을 경영할 때 했던 말을 인용한 것이다. 험고한 곳을 〈도읍으로 정하여〉 후세(후손)가 지형을 믿고 교만하고 사치하여 백성을 학대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서이다.注+이는 婁敬이 위 두 구절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낙읍은 험고한 지형이 없어서 자손으로 하여금 두려워해서 덕을 닦고 백성을 구휼하게 한다는 것을 이른다.
周公 旦周公 旦
그러나 나라가 쇠미해지자 천하의 제후들은 누구도 조회 오지 않았으나注+제후가 더 이상 나라에 조회 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나라는 그들을 제재할 수 없었으니,注+제후를 제재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이는 덕이 박해서가 아니라注+나라가 덕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형세가 약해서이다.注+洛邑에 험고한 지형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나라 지역은 높은 산이 에워싸고 강하가 띠처럼 둘러 있어注+나라의 도성인 關中山河의 험고함이 있다는 말이다. 사방이 요새여서 견고하니注+사면의 요새를 험고한 지형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이것이 이른바 ‘天府’이다.”注+그 형세가 하늘에 오르는 것 같기 때문에 ‘하늘이 낸 창고[天府]’라고 부른다. 婁敬의 말은 여기까지이다.
나라와 나라의 형세를 논하는 자들은 모두 婁敬의 설을 종지로 여기지만注+후세에 의론하는 자들은 婁敬의 말을 종주로 삼는다는 말이다. 아래 글에서는 곧 누경의 말이 잘못되었음을 폄하하였다. 나는 홀로 아래와 같이 생각한다. ‘婁敬이 본 것은 平王나라일 뿐이니注+婁敬平王이 동쪽으로 천도한 뒤에야 비로소 洛邑에 산 것임을 몰랐다는 말이다. 어찌 일찍이 文王武王成王康王의 주나라를 보았겠는가?’注+文王에 도읍하였고 武王에 도읍하였으며 成王은 비록 洛邑을 경영하였으나, 다만 洛邑에서는 제후들의 조회만 받고 다시 으로 돌아갔으니, 洛邑에 거주한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婁敬은, 나라는 형세가 약하고 나라는 형세가 강하다고 하였으니, 이는 婁敬이 말한 나라가 바로 文王武王成王康王 때의 나라라는 것을 모른 것이다.注+누경의 말이 잘못되었음을 나타낸 것이다. 文王武王成王康王 때에 은 바로 나라의 도읍이었으니,注+그 지역이 바로 關中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婁敬이 말한 ‘산이 에워싸고 강하가 띠처럼 둘러 있어 사방이 요새여서 견고하다.’注+또한 關中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는 것은 모두 나라의 형세를 이른 것이다. 당시에 어찌 이른바 ‘나라’라는 것이 있었겠는가?注+나라는 西戎의 후예이니 당시에는 關中의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平王東遷함에 미처注+犬戎의 난리로 인하여 洛邑으로 東遷한 것을 이른다. 의 땅을 가볍게 떼어 나라를 봉해주었다.注+文王武王成王康王의 도읍지를 나라에 주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라가 強國이 되게 하였으니注+나라는 이때부터 비로소 강해졌다는 말이다. 이는 나라가 스스로 강국이 된 것이 아니라 나라의 형세를 얻어서 강국이 된 것이다.注+변론이 분명하다
나라는 나라의 형세를 얻은 뒤에 무도한 정치를 하였으되注+형세를 믿고 멋대로 무도한 짓을 했다는 말이다. 오히려 제후를 압도하고注+마침내 제후의 영웅이 되었다는 말이다 천하를 병탄하기에注+6국(, , , , , )을 병탄하여 천하를 소유했다는 말이다. 충분하였는데,
하물며 文王武王成王康王注+‘하물며 나라의 네 분 임금은 도가 있으니’의 뜻이다. 성대한 덕을 근본으로 삼고注+유덕함으로 기운을 삼은 것이다. 형세를 보조로 삼았으니注+형세로 신체를 삼은 것이다. 그 누가 막을 수 있었겠는가?注+이것이 成周가 번성한 이유이다.
천하에 형세가 강한 나라로는 나라만 한 나라가 없었는데注+나라가 비록 유덕하기는 하나 어찌 형세에 의지하지 않았겠느냐.’는 말이다. 婁敬은 무슨 소견으로 갑자기 나라를 弱國으로 명칭하였는가?注+婁敬나라의 形勢가 약하다고 한 것은 잘못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로 인해 “婁敬이 본 것은 平王 때의 나라이고 文王武王成王康王 때의 나라는 보지 못했다.”고 한 것이다. 婁敬나라의 형세를 논한 것이 이미 틀렸고,注+는 ‘잘못[]’의 뜻이니,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가 나라의 을 논한 것은 더욱 틀렸다.注+뒤에 말하는 바와 같다.
形勢이 어찌 서로 다른 두 가지 일이겠는가?注+두 가지는 서로 의지하여 존재한다는 말이다. 형세는 몸과 같고 은 기운과 같으니,注+기운이 없으면 몸이 죽고, 몸이 없으면 기운이 흩어진다는 말이다.
기운이 충만함을 믿고서 몸을 죽기 쉬운 곳에 두는 사람은 없고, 덕이 성대함을 믿고서 나라를 망하기 쉬운 곳에 두는 사람도 없다.注+반드시 덕이 있어야 험고한 형세를 지킬 수 있고, 반드시 험고한 형세가 있어야 그 덕을 쓸 수 있으니, 후세에서 이른바 〈나라를 보존하는 것은〉 에 달려 있고 험고한 지형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대체로 한쪽으로 치우친 논리라는 말이다.
王者가 일어날 때는 그 이 반드시 천하에 으뜸이었고 그 형세 또한 반드시 천하에 으뜸이었으니,注+두 가지는 모두 없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文王武王成王康王은 천하에 비길 데가 없고,注+이분들의 덕이 천하에 으뜸이라는 말이다.
伊川雒邑의 형세 또한 천하에 비길 데가 없었다.注+이 지역의 형세가 천하에 으뜸이라는 말이다. ‘형세’와 ‘덕’ 두 가지를 똑같이 지극히 여겨 한쪽을 높이거나 낮춤이 없었으니 君子는 그 지극함을 쓰지 않음이 없다.
덕만을 높이고 형세를 낮춘다면注+婁敬이 말한 洛邑을 경영함에 대한 의론과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그 지극함을 쓰지 않는 때가 있는 것이니, 어찌 王者가 될 수 있겠는가?注+王者가 어찌 덕의 번성함만을 믿고 망하기 쉬운 지형에 나라를 둘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비루하구나. 婁敬의 의론이여!注+이상의 글은 모두 婁敬의 잘못된 의론을 책망한 것이다.
비단 婁敬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注+이 이하의 글은 전환하여 襄王이 땅을 나라에 할양한 것은 부당하다고 질책한 것이다. 나라의 子孫들도 모두 그러하였다.注+이 또한 婁敬의 견해와 같다는 말이다. 文公子帶의 반란을 평정하고 나서注+애초에 王子 狄國을 불러들여 나라를 치니 襄王이 출망하여 나라로 갔다. 文公子帶를 죽이고 襄王나라에 들여보냈다. 隧道를 청하여 스스로의 榮寵(광영)으로 삼고자 하였다.注+隧道를 파서 장사 지내는 것은 천자의 예이다. 文公周王室에 큰 공이 있었기 때문에 隧道를 쓸 것을 요청한 것이다.
襄王은 허락하지 않으며 “이는 王章(왕의 制度)이다.注+襄王은 이 隧道는 왕실의 典章이라고 대답해 말한 것이다. 나라의 을 대신할 자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는데注+나라에는 나라를 대신하여 王者가 될 만한 덕이 없다는 말이다.이 있는 것은注+지금 〈나라가〉 장례에 隧道를 쓰면 두 왕이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叔父도 싫어할 것이다.”注+天子同姓의 제후를 ‘伯父’나 ‘叔父’라고 칭한다.라고 하고 陽樊欑茅 등의 땅을 주었으니,注+襄王 文公에게 네 읍의 땅을 주었으니, 첫째 陽樊이고, 둘째 이며, 셋째 이고, 넷째 櫕茅이다.
襄王은 ‘우리 나라가 나라가 되는 이유는 에 있고 형세에 있지 않으니注+襄王의 견해는 바로 婁敬과 같다. 典章文物의 제도는注+國家가 세운 法度를 말한다. 子孫이 마땅히 대대로 지켜야 하고 터럭만치도 남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注+예컨대 隧道를 요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은 따위를 이른다.
하찮은 땅덩어리야注+토지는 아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내 무엇 때문에 아껴 강국의 심기를 건드려 노하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注+차라리 네 읍을 할애하여 文公에게 주는 것이 낫다고 여긴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隧道도 본래 王章이고注+이 글 이하는 襄王이 땅을 할양한 잘못을 책망하였다. 千里畿甸王章이라는 것은注+王畿는 땅이 사방 千里이니, 이 또한 왕실의 典章이라는 말이다. 모른 것이다.
襄王禮文을 아껴 나라에 주지 않고서注+隧道를 요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음을 이른다. 스스로 王章을 지켰다고 생각하였으나,注+王室典章을 지키는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땅을 잘라 남에게 주고 스스로의 땅을 삭감하면 천리의 畿甸을 가져야 하는 王章이 이미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모른 것이다.注+王畿의 땅이 날로 깎여 날로 좁아지면 또한 왕실의 典章을 지킬 수 없다는 말이다.
한 가지(隧道)는 아끼고 한 가지(畿甸)는 훼손하였으니注+의 음은 이다. 隧葬을 아껴서 땅을 남에게 할양한 것을 이른다. 어찌 그 王章을 지켰다고 할 수 있겠는가?注+이는 禮文王章은 지켰으나 畿甸王章은 잃은 것이라는 말이다. 형세는 몸과 같고 은 기운과 같다.注+앞의 主意에 호응한다.
어깨와 등을 베어내 손과 발을 잘라내고서 스스로 “기운을 지켰다.”注+襄王이 땅을 잘라 남에게 주어 형세가 날로 위축되는데도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은 덕에 있다고 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고 한다면 나는 믿지 않는다.注+支體가 없는데 기운만 남아 있는 것이니, 이런 이치는 없다는 말이다.
아!注+이 글 이하는 의론이 더욱 정밀하고 다채롭다. 나라는 平王을 떼어 나라를 봉해준 때로부터注+다시 서술하여 의론을 제기한 것이다. 이미 나라의 절반을 잃은 것이다.注+이미 王畿千里의 땅을 잃었다는 말이다.
쪼개지고 찢어져 온전하지 못한 나라로는 전전긍긍하며 스스로 보전되기를 바라더라도注+현재 남아 있는 땅을 보존하여 지킨다는 말이다. 오히려 存立하기 어려울까 두려운데注+오히려 나라를 유지할 수 없을까 두렵다는 말이다. 어찌 다시 侵削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注+‘땅이 이미 협소하니 어찌 자주 할양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자손이 오히려 아까워할 줄을 모르는가?注+나라의 자손을 깊이 책망하는 말이다. 오늘 虎牢를 떼어 나라에 주고注+ 莊公 21년에 惠王 厲公에게 옛날 武公 때 〈나라의 경계였던〉 虎牢 以東의 땅을 주었다. 내일 酒泉을 떼어 나라에 주어注+이해(莊公 21년)에 을 순수하면서 虢公에게 酒泉의 땅을 주었다.
文王武王이 개척한 영토가 해마다 쪼그라들고 달마다 줄어들어注+침삭이 그치지 않았다는 말이다. 襄王 때에 이르러서는注+襄王恵王의 아들이다. 거의 멸망에 근접하였는데,注+땅이 깎이고 군대가 적어져 멸망에 가깝게 되었다는 말이다. 또 갑자기 몇 개의 나라에 주었다.注+게다가 네 읍을 떼어서 文公에게 뇌물로 주었다는 말이다.
이는 사이에서 양식을 버리고注+비유하자면 孔子나라와 나라의 국경지역에서 곤액을 당해 양식이 이미 다 떨어져 가는데도 또 남은 양식을 버리는 일과 같다는 말이다. 原憲曾參의 집에서 돈을 헤프게 쓰는 것과 같으니注+비유하자면 原憲曾參의 집안 살림이 매우 가난하였는데도 또 아낌없이 돈을 헤프게 쓰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과연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注+비유를 든 것이 명쾌하다. 나라의 쇠퇴가 이에 이르렀으니注+또 문장을 전환하여 文公이 어질지 못하여 나라를 침체시키고 땅을 깎아 약화시켜 떨치지 못하게 하였음을 책망하였다. 보는 자들이 모두 가여워하였다.注+나라가 무도하여 땅이 깎이고 약화된 것이 아니니 진실로 민망할 만하다는 말이다.
曾子曾子
그런데도 文公은 잔인하게도 이러한 때에 나라의 땅을 많이 취하여 자신을 살찌웠으니注+네 읍을 받으면서도 사양하지 않았음을 이른다. 또한 사이에서 양식을 빼앗고,注+양식이 이미 떨어졌는데 또 약탈까지 당한다는 말이다. 原憲曾參의 집에서 돈을 탈취하는 것과 같으니注+돈이 다 떨어졌는데 또 강탈까지 당한다는 말이다. 그 또한 매우 어질지 못하다.注+윗글과 맥락이 관통하니 비유가 매우 정교하다.
아,注+윗글의 뜻을 이어 文公을 깊이 책망하는 것이다. 文公은 유독 나라의 후예가 아니었던가?注+나라에 처음 봉해진 임금은 唐叔虞이니, 곧 武王의 아들이자 成王의 동생이다. 宗主國의 위급한 상황을 가만히 구경만 하고注+형세가 위태롭고 땅이 줄어들었음을 이른다.나라를 도와 토지를 개척해〉 국토를 넓혀주지 않고서注+나라를 위하여 疆土를 개척하지 못했음을 이른다.
도리어 쫒아가서 침탈하였으니注+게다가 隧道를 요청함으로 인하여 네 읍의 땅을 취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짓을 차마 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인들 차마 하지 못하였겠는가?注+이런 일을 오히려 차마 하였으니 무슨 일을 차마 하지 못하겠느냐는 말이다. 그런데도 평의하는 자들은 도리어 잗달게 을 정벌한 때의 신의와注+본편의 ≪春秋左氏傳≫ 주에 보인다. 또 ≪春秋左氏傳≫에서 “이에 〈 文公은〉 을 쳐서 백성들에게 信義를 보였다.”라고 하였다. 을 지킬 신하를 물은 잘못만을 논평하였으니,注+본편의 ≪春秋左氏傳≫ 주에 보인다. 柳宗元(자는 子厚)의 〈晉文公問守原議〉에 “ 文公이 천자로부터 을 받은 뒤에 그곳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寺人勃鞮에게 물어 그곳을 趙衰에게 맡겼다. 내가 생각건대 을 지키는 것은 정치상 중대한 것으로, 천자를 받들어 霸者의 공업을 세우고 제후들에게 명을 이루는 수단이니 ‘설만하게 가까이 모시는 신하[媟近]’와 상의하여 천자의 명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媟近寺人(환관)을 이른다. 어쩌면 그리도 근본은 버리고 말단만을 추구하였는가?注+左氏는 그 일을 두고 信義를 보일 수 있다고 말하고, 柳宗元의 글은 寺人에게 물었다고 폄하하였으나, 나라의 땅을 침삭한 죄는 몰랐던 것이니, 이는 모두 그 근본을 버리고 말단만을 의론한 것이라는 말이다.
文公不仁함이 이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사람의 도리로 책망할 수 없다. 그때 가령 襄王祖宗이 전해준 땅은 한 자 한 치도 남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서 正義大法으로써 나라에 명백하게 일러주었다면,
나라가 아무리 強暴할지라도 감히 갑자기 나라에게 무도한 짓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그러나注+결미에 또 말의 장식인 배띠와 가슴걸이[繁纓]에 관한 또 다른 일로 의론하였으니 매우 적절하다. 仲叔于奚나라에 공을 세웠을 때에注+成公 2년, 新築의 전쟁에서 나라 군대가 크게 패배하니 仲叔于奚孫桓子를 구원하였다. 衛人을 상으로 주자, 그는 을 사양하고 曲縣繁纓으로 朝見하기를 청하니, 衛侯는 이를 許諾하였다. 曲縣軒縣이고, 繁纓은 말의 장식이니, 이 두 가지는 모두 제후의 禮制이다. 의 음은 이고, 의 반절음이다. 繁纓을 상으로 주자,
孔子께서는 “을 많이 주는 것만 못하다.”注+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애석하다. 을 많이 주는 것만 못하다. 오직 器物名號는 남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셨으니, 隧道繁纓에 비해 더욱 중대하지 않은가?注+隧葬天子이니 繁纓에 비하면 일의 체모가 더욱 중대하다는 말이다. 襄王隧道를 중시하고 을 경시하였으니 공자의 교훈에 부합한다.注+바로 孔子께서 “많이 주는 것만 못하다.”고 한 말과 마침 서로 부합한다는 말이다.
공자의 말씀이 옳았다면 襄王의 행위도 옳았고注+襄王을 나무랄 수 없다는 말이다. 襄王의 행위가 그르다면 공자의 말씀도 그르니,注+孔子를 어찌 나무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 두 가지 중에 반드시 하나에 해당할 것이다.注+이 한 가지 말을 가설한 것은 반론이 매우 강하다.
나는 생각한다. “이 두 가지는 같지 않다.注+한 종류의 일인 듯하나 〈이 일은〉 근본적으로는 서로 같지 않다고 단언한 것이다. 仲叔于奚國內의 신하이니注+이 사람은 나라의 신하라는 말이다. 비록 그에게 을 많이 주어도 여전히 나라의 국토이지만,注+나라 땅을 나라 사람에게 준 것이니 여전히 위나라 국토 안에 해당된다는 말이다.
文公國外의 신하이니注+ 文公은 국외의 제후라는 말이다. 아침에 封地와 함께 地圖를 받으면 저녁에 을 쌓을 것이니注+나라 땅을 晉人에게 준 것은 바로 땅을 떼어 제후의 나라에 준 것이다. 저 晉人은 아침에 네 읍의 地圖戶籍을 받고는 저녁에 이미 을 쌓아 갑자기 나라의 소유로 삼은 것이다. 이 점이 같지 않다.”注+이 일로 나라의 仲叔于奚에게 많이 주어도 되지만 나라의 은 실제로 文公에게 주어서는 안 됨을 알겠으니 그 일의 體貌가 매우 같지 않다. 이런 의심나는 한 부분을 東萊는 단지 몇 구절로 결단하였으니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또 ‘아침에 지도를 받고 저녁에 을 쌓았다.’는 말도 ≪春秋左氏傳≫의 문장법을 녹여낸 것이니, 이 때문에 배우는 자가 讀書를 귀하게 여긴다.


역주
역주1 晉侯辭秦師而下 : 秦軍에게 사양하여 돌려보내고서(王을 들여보낸 공을 독차지하기 위해서이다.) 물을 따라 내려갔기 때문에 ‘下’라고 한 것이다.〈杜注〉
역주2 次于陽樊 : 晉軍이 周나라 땅 陽樊에 주둔한 것이다.〈附注〉
역주3 右師圍溫 : 太叔이 溫에 있기 때문이다. 太叔은 王子 帶이다.〈杜注〉
역주4 殺之于隰城 : 晉人이 죽인 것이다.〈附注〉
역주5 王享醴 命之宥 : 享禮는 使臣이 朝聘한 나라의 임금에게 禮物을 進獻하는 儀式을 이른다. 享禮를 거행한 뒤에 단술을 접대하고 또 추가로 幣帛을 내려 기쁨을 도운 것이다. 宥는 돕는 것이다.〈杜注〉
역주6 請隧 弗許 : 땅에 굴을 파서 通路을 만드는 것을 ‘隧’라 하는데 이는 王의 葬禮이다. 諸侯는 모두 靈柩를 밧줄에 매달아 下棺한다.〈杜注〉 천자의 장례에는 棺이 크고 무겁기 때문에 멀리에서 壙까지 비스듬히 굴을 파서 통로를 만든 뒤에 그 통로를 이용해 관을 壙으로 밀어 넣는다.
역주7 王章也 : 王의 典章은 諸侯와 다르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역주8 未有代德而有二王 亦叔父之所惡(오)也 : 周나라의 덕이 비록 쇠하였으나, 천하에 아직 周나라의 덕을 대신할 자가 나오지 않았는데, 晉侯가 天子의 禮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이는 두 王이 있는 것이 된다. 천하에 두 왕이 있는 것은 諸侯들이 싫어할 뿐만이 아니라 晉侯 스스로도 싫어할 것이라는 말이다.〈附注〉
역주9 始啓南陽 : 晉나라의 山南水北에 있기 때문에 ‘南陽’이라 한 것이다.〈杜注〉
역주10 倉葛 : 陽樊人이다.〈杜注〉
역주11 此誰非王之親姻 其俘之也 : 이곳에 사는 자 중에 王室의 親戚과 姻戚이 아닌 자가 누가 있느냐. 그런데 어째서 우리를 잡아 포로로 삼으려 하느냐는 말이다.〈附注〉
역주12 乃出其民 : 晉侯가 倉葛의 말을 듣고는 억지로 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陽樊의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그 땅만을 취했을 뿐이다.〈附注〉
역주13 得原失信……所亡滋多 : 原을 얻는 것은 얻는 것이 적고, 信을 잃는 것은 잃는 것이 많다는 말이다.〈附注〉
역주14 勃鞮 : 寺人 披이다.〈杜注〉
역주15 昔趙衰以壺飱從徑 餒而弗食 : 飱은 餔(저녁밥)인데 물에 말은 밥이다. 趙衰가 전에 병에 밥을 담아 가지고서 떠도는 文公을 따라다닐 때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감히 먹지 않았다는 말이다.〈附注〉
역주16 故使處原 : 披의 말을 따른 것이다. 趙衰는 大功이 있었지만 오히려 작은 善行으로 拔擢한 것은 작은 功勞도 잊지 않는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杜注〉
역주17 在德不在險之說 : 전국시대 魏 武侯가 西河에서 배를 타고 내려가다가 吳起에게 ‘山河의 견고함이 魏나라의 보배’라고 하자, 吳起가 “나라를 보존하는 것은 德에 달려 있고 험한 지형에 달려 있지 않으니[在德不在險], 만약 군주께서 德을 닦지 않으시면 이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敵國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史記≫ 권65 〈吳起列傳〉)
역주18 (二)[一] : 저본에는 ‘二’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에 의거하여 ‘一’로 바로잡았다.
역주19 (武)[厲] : 저본에는 ‘武’로 되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厲’로 바로잡았다.
역주20 而又棄其餘粮 : 이 일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공자가 陳나라와 蔡나라의 국경지역에서 겪었던 곤궁한 상황을 비유로 들어서, 이런 상황에서 양식을 버리는 것과 같다고 가정한 말인 듯하다.
역주21 而又不吝揮金 : 이 일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原憲과 曾參의 집안 살림이 매우 가난한 상황을 비유로 들어서, 이런 상황에서 돈을 헤프게 쓰는 것과 같다고 가정한 말인 듯하다.
역주22 又左傳曰……伐原以示之信 : ≪春秋左氏傳≫ 僖公 27년에 보인다.
역주23 新築之戰……仲叔于奚救孫桓子 : 新築은 衛나라 땅이다. 仲叔于奚는 新築을 지키는 大夫이고, 孫桓子는 衛나라 대부이다.
역주24 請曲縣繁纓以朝 : 曲縣은 軒縣[懸]이다. ≪周禮≫에 “天子의 樂은 宮縣으로 四面에 걸고, 諸侯의 樂은 軒縣으로 南面에는 걸지 않고 三面에만 건다.”고 하였다. 繁은 馬匹을 장식하는 繁纓(말의 배띠와 가슴걸이)이다.
역주25 夫子曰……不可以假人 : ≪春秋左氏傳≫ 成公 2년에 나오는 말이다.
역주26 [築] : 저본에는 1자 빈칸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을 살펴 ‘築’을 보충하였다. 版은 담이나 성을 쌓을 때 양쪽에 세우는 널빤지이고, 築은 흙을 다지는 工具이므로, 版築은 성을 쌓음을 뜻한다.

동래박의(3)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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