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僖三十年
이라 冬
에 王使周公閱來聘
하다 하니
身者寄也
요 者身之寄也
는 是道家者流之論也
라 人自送丞相長史
로되 而
厭其勞
注+張君嗣厭其勞:見本傳하고
魯自待宰周公이나 而姬閱辭其享하야 認而有之하니 非惑耶아
信如是言이면 則有宰周公而又有姬閱이니 是身與位爲二也라
視身與位爲二
라 故指飮故人
과 按故人者爲兩事
注+蘇孺文視身與位爲二……按故人者爲兩事:見本傳라
道將視身與位爲二
라 故指殺弟哭弟者爲兩人
注+(荀)[苟]道將視身與位爲二 故指殺弟哭弟者爲兩人:見本傳이라 傷恩敗敎
하야 其禍有不可勝言者
가 非二之罪耶
아
儒者之論則進是矣나 居其位而無其德이면 爲身之羞요 居其位而黜其禮면 爲位之羞라
身者
는 一夫之私也
요 位者
는 萬世之公也
라 周公閱以德薄自
하야 不敢受魯之享
하니
抑不思所居者上宰之官이요 所持者天子之節이요 所享者先王之禮라
今徒以一夫之無德으로 而廢萬世之常尊하니 是避身之羞而爲位之羞也요
是知身之
當其禮
요 而不知身之不足當其位也
라 如愧之
인댄 莫若亟去其位
라
位則受之하고 禮則辭之는 受其大而辭其細하니 豈不甚可責耶아
以儒者之論
으로 而責周公閱
이면 固無所逃罪
라 然吾
有所矜焉
이로라
周公之位는 自周文公之沒로 居其位者不知其幾人也요 使于四方하야 享昌歜白黑形鹽之享者도 又不知其幾人也어늘
彼豈皆德與禮稱하야 受之而無愧耶아 晏然居之하고 欣然樂之요 未聞有一人以德薄辭者라
至周公閱之居此官受此享에 怵惕內愧하야 對大賓大客之前에 痛自羞薄하야 不敢少安하니
其不能辭位固可責이나 吾未嘗不獨矜其愧心之猶在也로라
其視前後數公이 旣不辭位하고 又不辭禮하야 驕泰奢侈者컨대 豈不賢耶아
其視道家者流의 傲誕荒唐하야 視身與位爲二物者컨대 豈不賢耶아
范鞅一陪臣
이로되 猶索十牢於禮之外
注+范鞅一陪臣 猶索十牢於禮之外:하고 周公閱以天子之宰
로 乃肯辭備物於禮之內
어늘
儒者不矜其愧心而責其迹하니 吾(切)[竊]恨儒者之不恕也로라
然旣曰 知愧矣라하니 不愧其大而愧其細는 獨何歟아 吾又未見儒者之不恕也로라
傳
僖公 30년, 겨울에 王이 周公 閱을 魯나라로 보내어 와서 聘問하였다. 그를 접대하는 床에 창포김치[昌歜]‧흰쌀[白]‧검은 기장[黑]‧호랑이 모양으로 깎은 소금[形鹽]이 올라 있으니,
周公 閱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國君의 文治가 四方에 드러날 만하고, 武功이 사람들을 畏服시킬 만하면,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접대하여 그의 文德을 象徵하고,
五味와 嘉穀과 호랑이 모양으로 깎은 소금을 올려 武功을 상징하는 것이니, 내가 어찌 이를 감당하겠습니까?”
몸은
寄託하는 것이고,
軒冕은 몸이 기탁하는 것이라는 말은 바로
道家者流의
論說이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丞相長史를 전송하는데도
張君嗣는 전송하는 빈객을 접대하는 노고를 싫어하였고,
注+≪三國志≫ 〈蜀志 張裔傳〉에 보인다.
魯나라가 자발적으로 宰周公을 접대하는데도 姬閱은 그 宴享을 사양하여, 응당 그렇게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였으니 이것은 迷惑이 아닌가?
진실로 이 말대로라면 宰周公이라 하고 또 姬閱이라 하였으니, 이는 몸과 職位를 나누어 둘로 여긴 것이다.
蘇孺文은 몸과
職位를 나누어 둘로 보았기 때문에
故人(벗)에게 술을 접대한 것과
故人의 죄를 심문한 것을 두 가지의 일로 여긴 것이다.
注+≪後漢書≫ 〈蘇章傳〉에 보인다.
苟道將은 몸과
職位를 나누어 둘로 보았기 때문에 아우를 죽인 자와 아우의 죽음을 곡하는 자를
兩人으로 여긴 것이다.
注+≪晉書≫ 〈苟晞傳〉에 보인다. 은혜를 해치고 교화를 망쳐
災禍가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 몸과 직위를 나누어 둘로 여긴 죄가 아니겠는가?
儒者의 도리로 논하면 仕進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 職位에 있으면서 그에 걸맞는 德이 없으면 몸의 치욕이 되고, 그 직위에 있으면서 그에 걸맞는 禮를 물리치면 직위의 치욕이 된다.
몸은 한 사람의 私有物이지만 직위는 만세의 公有物이다. 周公 閱은 자기의 德이 淺薄한 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 감히 魯나라의 饗宴을 받지 않았으니,
이는 자기가 있는 자리가 上宰의 官位이고 가지고 있는 것이 天子가 내린 符節이고 받는 饗宴이 선왕의 제정한 禮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 단지 한 사람이 無德하다 하여 만세토록 영원히 높여야 할 爵位를 폐기하였으니, 이는 몸의 치욕을 피하기 위해 직위의 치욕으로 돌린 것이고,
이는 몸이 그 禮를 담당하기에 부족한 것만을 알고, 몸이 그 직위를 담당하기에 부족한 것은 모른 것이다. 만약 부끄러워한다면 즉시 그 직위를 버려야 한다.
직위는 받아들이고 饗禮는 사양하는 것은 큰 것(직위)은 받아들이고 작은 것(향례)은 사양한 것이니, 어찌 매우 책망할 일이 아니겠는가?
儒者의 논리를 가지고 周公 閱을 꾸짖는다면 진실로 그 죄를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존경함이 있다.
周公의 職位는 周文公(姬旦)이 사망한 뒤로 그 직위에 있었던 자가 얼마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많았고, 사방의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창포김치‧흰 쌀‧검은 기장‧호랑이 모양으로 깎아 만든 소금의 饗宴을 받은 자가 또 얼마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많았는데,
저들이 德과 禮가 어찌 모두 서로 걸맞아서 그 향연을 부끄럼 없이 받아들일 만하였겠는가? 그런데도 편안한 마음으로 그 직위를 차지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 향례를 즐겼고, 한 사람도 德이 淺薄하다는 이유로 사양한 자가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그런데 周公 閱은 이 관직에 있고 이 향례를 받을 때에 두렵고 부끄러워, 高貴한 賓客을 面對한 앞에서 비통해하며 스스로 덕이 천박한 것을 치욕으로 여겨 감히 조금도 편안히 있을 수 없었으니,
그가 직위를 사양하지 않은 것은 진실로 꾸짖을 만하지만, 나는 홀로 그에게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을 존경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의 행위를 전후의 몇몇 周公들의, 직위를 버리지도 향례를 사양하지도 않고 교만하고 사치한 것에 비교하면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
그의 행위를 道家者流의 오만 放誕하고 황당하여 몸과 직위를 나누어 둘로 여긴 것에 비교하면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
范鞅은 한낱
陪臣으로서 오히려 향례 밖의
十牢를 요구하였고,
注+≪春秋左氏傳≫ 昭公 23년에 보인다. 周公 閱은
天子의
太宰로 끝내 향례 이내의
備物을 사양하였다.
그런데도 儒者들은 그의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존경하지 않고 그의 행적만을 꾸짖으니, 나는 마음속으로 儒者들의 寬恕하지 못함을 한스러워한다.
그러나 〈周公 閱이〉 이미 부끄러움을 안 것이라면, 큰 것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작은 것만을 부끄러워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儒者들이 이것을 꾸짖지 못하니〉 나는 또 儒者들이 ‘〈진정으로〉 寬恕하지 못함’을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