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하고 이온 而況敢用人乎
잇가 요 民
은 神之主也
니 用人
이면 其誰享之
릿가
傳
臧武仲在齊
하야 聞之
하고 曰 周公其不享魯祭乎
ㄴ저 로다
傳
[左傳]昭十一年
이라 冬十一月
에 楚子滅蔡
하고 用
于岡山
하다
注
[主意]無間則仁하고 有間則暴니 幽明物我가 本同一體로되 宋襄季孫楚靈之徒가 不知此理하야 視幽明物我爲有間이라
於是便己而媚神하고 媚神而殺人하야 淪於殘忍暴虐之爲也로다
無間則仁
注+無間則仁:仁者 以天地萬物爲一體하고 有間則暴
注+有間則暴:不仁者 私於家 則隔藩墻而分比隣 私於己 則隔而分爾汝라 無間則天下皆吾體
니 烏得而不仁
注+無間則天下皆吾體 烏得而不仁:說無間則仁之意이며 有間則獨私其身
하니 烏得而不暴
注+有間則獨私其身 烏得而不暴:說有間則暴之意 ○起語數句 話頭甚大리오
幽明也
注+幽明也:幽 謂鬼神 明 謂人物와 物我也
注+物我也:物 謂人 我 謂己는 混混同流而無間者也
注+混混同流而無間者也:本同一體라 喜同一喜
注+喜同一喜:同一體 則同一性情하니 喜觸於心
이면 則幽明物我 不約而皆喜
注+喜觸於心……不約而皆喜:喜之情同故也하며
怒同一怒
注+怒同一怒:人有七情 擧喜怒兩端 之하니 怒觸於心
이면 則幽明物我 不約而皆怒
注+怒觸於心……不約而皆怒:怒之情亦同也라 判而爲慘舒休戚愛憎哀樂之情
注+判而爲慘舒休戚愛憎哀樂之情:變文好 ○有慘必有舒 有休必有戚 有愛必有憎 有哀必有樂 其情無不同也하고
別而爲盈虛予奪損益是非之理
注+別而爲盈虛予奪損益是非之理:有盈必有虛 有與必有奪 有是必有非 有損必有益 其理無不同也하며 散而爲禍福利害安危死生之變
注+散而爲禍福利害安危死生之變:有禍必有福 有利必有害 有安必有危 有死必有生 其變無不同也하야 彼動則此應
하고 彼發則此知
注+彼發則此知:以上皆發明幽明物我本同一體之意하니 未嘗有間也
注+未嘗有間也:知幽明物我之無間則仁矣라
昔之仁人
이 所以視民如傷者
注+昔之仁人 所以視民如傷者: 豈以冥冥之不可欺
注+豈以冥冥之不可欺:冥冥謂鬼神며 昭昭之不可犯哉
注+昭昭之不可犯哉:昭昭 謂天地 言仁人非爲天地鬼神之可畏 乃始視民如傷也리오
幽明物我
는 通爲一體
注+幽明物我 通爲一體:斷以主意니 不見有可傷之地也
注+不見有可傷之地也:引用如傷事極好 同體皆不可傷 況可殺人以祭鬼乎라 旣傷於民
이면 亦傷於身
注+旣傷於民 亦傷於身:物我同體故也하고
旣傷於身
이면 復傷於神
注+旣傷於身 復(부)傷於神:幽明同體故也이라 噫
라 知此者
는 其知仁之方乎
注+知此者 其知仁之方乎:方 猶術也 孔子言可謂仁之方 孟子言是乃仁術也 仁至難言 故假於實事以曉人 如方術然 可以推類而通之也인저
不仁則不覺
注+不仁則不覺:不仁之人 觸處皆蔽하고 不覺則不合
注+不覺則不合:獨私其身 謂民物自爲民物 鬼神自爲鬼神이라 幽明不合
이면 而有人與
之間焉
注+而有人與(物)[神]之間焉:於是 有私己畏神之擧하고 物我不合
이면 而有人與己之間焉
注+而有人與己之間焉:於是 有殺人媚神之事이라
遂以爲苟便於身
이면 何恥乎媚神
注+何恥乎媚神:視幽明爲有間이며 苟媚於神
이면 何恤乎害人
注+何恤乎害人:視物我爲有間이라하야 以妄傳妄
注+以妄傳妄:不誠則妄하고 以僞傳僞
注+以僞傳僞:不眞則僞 僞妄相傳 其弊至於殺人祭鬼하니
然後囂淫怪誕之說興
注+然後囂淫怪誕之說興:神怪之論하고 然後焄蒿悽愴之妖作
注+然後焄蒿悽愴之妖作:妖之事하며 然後陰詭側僻之祀起
注+然後陰詭側僻之祀起:祭淫昏之鬼하고 然後釁塗刳剔之亂生
注+然後釁塗刳剔之亂生:肆殺之毒이라
如宋襄楚靈季平子之事
注+如宋襄楚靈季平子之事:三事竝見本題註는 蓋有
之所不忍爲者
注+蓋有戎狄禽獸之所不忍爲者:殺人祭鬼 非理之甚라 非天獨賦以酷戾狠逆之性也
注+非天獨賦以酷戾狠逆之性也:人性皆善 而三人所爲如此라
私己深
注+私己深:始於視人己爲有間하고 畏神甚
注+畏神甚:繼而視幽明爲有間하야 淪惑其心
하야 而至此極也
注+淪惑其心 而至此極也:有間則暴 故其末流至此라
一時之君子 隨而議之
注+一時之君子 隨而議之:謂子魚臧孫申無宇之徒나 是猶詆蚩尤之殘
하고 哂盜跖之貪
하야 適爲贅爾
하니 曷若求其爲暴之原而滌之乎
注+曷若求其爲暴之原而滌之乎:滌 洗也 此句生下文意아
天下之理
는 有通有塞
注+有通有塞:通則無間 塞則有間하니 其通耶
注+其通耶:此下說理之通者엔 八荒之外
注+八荒之外:爾雅云 泰遠邠國鈆祝粟謂之四極 觚竹北戶西王母日下謂之四荒와 六合之內
注+六合之內:上下四方 謂之六合에 幽明物我
가 上際下蟠
하야 不見其間
注+不見其間:通故如此하니 孰非吾仁者哉
注+孰非吾仁者哉:無間故仁리오
其塞耶
注+其塞耶:此下說理之塞者엔 雖汲汲以愛人利物爲志
注+雖汲汲以愛人利物爲志:雖愚蔽之人 誰無此志하야 朝三省而日九思
라도
然在此有毫芒之塞
注+然在此有毫芒之塞:視此身之外 皆與自己不相干이면 則在彼有尋丈之間
하야 發於其身
注+則在彼有尋丈之間 發於其身:不仁之心하야 害於其事
注+害於其事:見於有爲 皆不仁也하고 發於其事
注+發於其事:不仁之事하야 害於其政
注+害於其政:施於有政 皆不仁也하야 民有不得其死者矣
注+民有不得其死者矣:不待用以祭鬼 而殺人多矣리라
一念之毒
이 流金鑠石
注+一念之毒 流金鑠石:喩其毒之至烈하고 一念之駛
注+一念之駛:音史가 奔電走霆
注+奔電走霆:喩其暴之至速이라 雖未嘗以兵殺人
이나 實以心殺人
注+雖未嘗以兵殺人 實以心殺人:念念無非害人之心이요
雖未嘗用人以祭社之神
이나 而實用人以祭心之神也
注+雖未嘗用人以祭社之神 而實用人以祭心之神也:時時無非嗜殺之心 ○造語極精巧라 其視宋襄輩
컨대 何以大相過乎
注+其視宋襄輩 何以大相過乎:與宋襄楚靈季平子之心 其毒烈則一也리오
通者
는 仁之門也
注+通者 仁之門也:通則無間 故爲仁之門요 塞者
는 暴之門也
注+塞者 暴之門也:塞則有間 故爲暴之門라 是故
로 欲仁者
는 不于其仁
하고 于其通
注+欲仁者……于其通:由其通者 則漸漸可以至於仁矣하며 去暴者
는 不于其暴
하고 于其塞
注+去暴者……于其塞:撤其塞者 則漸漸可以銷其暴矣 ○結語深有理趣이니라
宋公이 邾 文公에게 鄫子를 犧牲으로 쓰게 하다
傳
僖公 19년, 宋公이 邾 文公에게 鄫子를 次睢의 社에 犧牲으로 쓰게 하여 東夷를 복속시키고자 하였다.
宋나라 司馬 子魚가 말하였다. “옛날에는 六畜을 서로 쓰지 않았고, 작은 제사에는 큰 희생을 쓰지 않았는데, 하물며 감히 사람을 쓴다는 말입니까. 제사는 사람을 위해서 지내는 것이고 백성은 神의 主人이니, 사람을 희생으로 쓴다면 그 어느 神이 歆饗하겠습니까.
齊 桓公은 망해가는 세 나라를 보존시켜 諸侯들을 服屬시켰는데도 義士는 오히려 德이 부족하다고 하였는데,
임금께서는 지금 한 번의 會合에서 두 나라 임금을 해치고, 또 鄫子를 淫昏한 귀신(妖邪한 귀신)의 제사에 희생으로 써서 霸者가 되기를 구하고자 하시니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傳
昭公 10년, 가을에 季平子가 莒나라를 쳐서 郠邑을 취하였다. 〈勝戰하고 돌아와 太廟에〉 俘虜를 바칠 때 비로소 亳社에 사람을 犧牲으로 썼다.
臧武仲이 齊나라에서 이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周公은 아마도 魯나라의 제사를 歆饗하지 않을 것이다. 周公은 道義에 맞는 제사를 흠향할 것인데, 魯나라가 도의를 무시했으니 말이다.
≪詩經≫에 ‘德音(道德에 맞는 말)이 매우 밝아서, 백성 대하기를 偸薄(苟且)하지 않게 하네.’라고 하였다. 투박한 것도 심하다고 할 수 있는데 〈사람과 牛羊을〉 동일하게 여겨 희생으로 썼으니 장차 어찌[誰] 福을 받을 수 있겠는가?”
傳
昭公 11년, 겨울 11월에 楚子가 蔡나라를 멸하고서 隱太子를 죽여 岡山에 지내는 제사에 犧牲으로 썼다.
申無宇가 말하기를 “상서롭지 못하다. 五牲을 서로 희생으로 쓰지 않는 것인데 하물며 諸侯를 쓴단 말인가? 楚王은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注
〈마음에 物我의〉 간격이 없으면 仁厚하고, 간격이 있으면 殘暴하다. 幽(귀신)와 明(사람), 物과 我가 본래 동일체인데, 宋 襄公‧季孫子‧楚 靈王 등은 이런 이치를 모르고서 幽와 明, 物과 我를 간격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에 제 몸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귀신에게 아첨하고, 귀신에게 아첨하기 위하여 사람을 죽여, 잔인하고 포학한 짓거리를 하는 죄에 빠졌다.
〈마음에
物我의〉 간격이 없으면
仁厚하고,
注+仁者는 天地 萬物을 一體로 여기기 때문이다. 간격이 있으면 잔포하다.
注+不仁者는 자기 집을 사사로이 여겨 담으로 막아 이웃과 분리하고, 자기를 사사로이 여겨 形骸에 막혀 나와 너로 분리한다. 간격이 없으면 천하가 모두 내 몸이니 어찌 인후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注+〈物我의〉 간격이 없으면 仁厚해진다는 뜻을 설명한 것이다. 간격이 있으면 제 몸만을
偏愛하니 어찌 잔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注+〈物我의〉 간격이 있으면 잔포해진다는 뜻을 설명한 것이다. ○첫머리의 몇 구절은 話頭가 매우 크다.
幽와
明,
注+幽는 鬼神을 이르고, 明은 人物을 이른다. 物과
我는
注+物은 남을 이르고, 我는 나를 이른다. 여러 줄기의 물이 하나로 합쳐져 흐르는 것과 같아 간격이 없다.
注+본래 동일체라는 말이다. 기쁘면 다함께 기쁘니
注+동일체이면 性情도 동일하다. 기쁨이 마음을 자극하면
幽와
明,
物과
我가 약속하지 않고도 모두 기뻐하고,
注+기뻐하는 感情이 같기 때문이다.
분노하면 다함께 분노하니
注+사람에게 七情이 있으나, 기쁨과 분노 두 가지를 들어 對言한 것이다. 분노가 마음을 자극하면
幽와
明,
物과
我가 약속하지 않고도 모두 분노한다.
注+분노하는 感情이 또한 같기 때문이다. 이것이 갈라져서
慘舒‧
休戚‧
愛憎‧
哀樂의
感情이 되고,
注+문장의 변화가 좋다. ○참혹함이 있으면 반드시 舒泰(마음이 편안함)함이 있고, 편안함이 있으면 반드시 근심이 있고, 사랑이 있으면 반드시 미움이 있고, 슬픔이 있으면 반드시 즐거움이 있게 마련이니, 그 感情이 같지 않음이 없다.
나뉘어
盈虛‧
予奪‧
損益‧
是非의 이치가 되며,
注+참이 있으면 반드시 빎이 있고, 줌이 있으면 반드시 뺏음이 있고, 옳음이 있으면 반드시 그름이 있고, 덜어짐이 있으면 반드시 보태짐이 있게 마련이니, 그 이치가 같지 않음이 없다. 흩어져서
禍福‧
利害‧
安危‧
死生의 변화가 되는데,
注+화가 있으면 반드시 복이 있고, 이로움이 있으면 반드시 해로움이 있고, 편안함이 있으면 반드시 위태로움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반드시 삶이 있게 마련이니, 그 변화가 같지 않음이 없다. 저것이 움직이면 이것이 반응하고 저것이 발생하면 이것이 지각하니
注+이상은 모두 幽와 明, 物과 我가 본래 동일체라는 뜻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일찍이 간격이 있은 적이 없었다.
注+幽와 明, 物과 我에 간격이 없음을 안다면 仁者라는 말이다.
옛날의 어진 사람이 백성 보기를 상처를 입은 것처럼 안쓰럽게 본 까닭이,
注+孟子가 말하였다. “文王은, 백성 보기를 상처를 입은 것처럼 안쓰럽게 여겼다.” 어찌 어두운 곳의 귀신을 속일 수 없고
注+冥冥은 귀신을 이른다. 밝은 곳의 사람들의 눈을 침범할 수 없다고 여겨서이겠는가?
注+昭昭는 天地를 이르니, 仁人이 天地와 鬼神을 두렵게 여기지 않아야 비로소 백성 보기를 상처를 입은 것처럼 안쓰럽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幽와
明,
物과
我는 모두 한 몸이니
注+主意를 단정한 것이다. 상처를 입힐 만한 곳을 보지 못한 것이다.
注+상처처럼 여긴 일을 인용한 것이 매우 좋다. 같은 몸도 모두 상해할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을 죽여 〈희생으로 써서〉 귀신에게 제사 지낼 수 있겠는가? 이미 백성에게 상처를 입혔다면 제 몸도 상처를 입을 것이고,
注+남과 내가 같은 몸이기 때문이다.
이미 제 몸이 상처를 입었다면 다시
神에게도 상처를 입히게 될 것이다.
注+鬼神[幽]과 人物[明]이 같은 몸이기 때문이다. 아! 이것을 아는 자는 아마도
仁을 행하는 방법을 알 것이다.
注+方은 ‘術(방법)’과 같다. 공자는 “仁을 행하는 방법이라고 이를 수 있다.”라고 하였고, 孟子는 “이것이 바로 仁을 행하는 방법이다”라고 하였다. 仁은 말로 표현하기가 지극히 어렵기 때문에 실제의 일을 빌려 사람들을 깨우쳐 마치 방술처럼 類推해 통할 수 있게 한 것이다.
仁心이 없으면 공통의 감각이 없고,
注+어질지 않은 사람은 가는 곳마다 모두 가려진다는 말이다. 공통의 감각이 없으면 융합할 수 없다.
注+사사로이 제 몸만을 아껴 民物은 民物이고 鬼神은 鬼神이라고 이르기 때문이다. 幽와
明이 융합하지 못하면 사람과 귀신 사이에 간격이 있고,
注+이에 제 몸만을 아끼고 귀신을 두려워하는 일이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나와 남이 융합하지 않으면 남과 나 사이에 간격이 있다.
注+이에 사람을 죽여 귀신에게 아첨하는 일이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마침내 자신에게 편리하다면 귀신에게 아첨하기를 부끄러워할 게 뭐 있으며,
注+幽明을 간격이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귀신에게 아첨해야 한다면 사람 해치는 것을 걱정할 게 뭐 있느냐고 하여
注+物我를 간격이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망령된 말을 망령되이 전하고
注+성실하지 않으면 망령된다. 거짓을 거짓으로 전하니,
注+진실하지 않으면 거짓이 되니, 거짓과 허망을 서로 전하면 그 폐단이 사람을 죽여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데에 이른다.
그런 뒤에 경박하고 음란하며 괴이하고 허탄한
說들이 일어나고,
注+신비하고 괴이한 의론이다. 그런 뒤에 사람의
魂氣가 상승해 사람을 슬프게 한다는
妖說이 일어나고,
注+요사스런 일이다. 그런 뒤에 몰래 속이는 부정한 제사가 시작되고,
注+부정한 귀신에게 제사 지낸 것이다. 그런 뒤에
器物에 피를 바르고 배를 가르는
悖亂이 생겨났다.
注+도살하는 악독한 짓을 제멋대로 행한 것이다.
宋 襄公‧
楚 靈王‧
季平子가 한 일은
注+3가지 일은 모두 本題 註에 보인다. 짐승 같은
戎狄도 차마하지 못한 바이다.
注+사람을 죽여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도리에 어긋남이 심하다. 이는 하늘이 유독 잔혹하고 패려궂고 사납고 거스르는 심성을 부여해서가 아니라,
注+사람의 본성은 모두 善한데 세 사람의 행위는 이와 같았다.
자기를 편애함이 깊고
注+남과 나 사이에 간격이 있다고 보는 데서 비롯한다. 귀신을 두려워함이 심하여
注+이어 幽와 明에 간격이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마음이 미혹되어 이러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注+간격이 있으면 잔포하기 때문에 末流가 이 지경에 이른다는 말이다.
당시의 군자들이 따라서 비평하였으나
注+子魚‧臧孫‧申無宇의 무리를 이른다. 이는
蚩尤의 잔학을 꾸짖고
盜跖의 탐욕을 비웃는 것과 같아서 다만 쓸데없는 군말이 될 뿐이니, 어찌 그 포학의 근원을 찾아서 깨끗이 제거하는 것만 하겠는가?
注+滌은 닦아낸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아래 글의 뜻을 생성하였다.
天下의 이치는 통함도 있고 막힘도 있다.
注+통하면 간격이 없고, 막히면 간격이 있다. 통하는 경우에는
注+이 이하는 이치가 통하는 것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다. 八荒의 밖과
注+≪爾雅≫에 이르기를 “泰遠‧邠國‧濮鈆‧祝粟을 四極이라고 하고, 觚竹‧北戶‧西王母‧日下를 四荒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六合의 안에
注+上下와 四方(동서남북)을 六合이라고 한다. 幽明과
物我가 상하에 꽉 차서 그 간격을 볼 수 없으니
注+통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것이다. 무엇인들 나의
仁이 아니겠는가?
注+간격이 없기 때문에 仁하다는 말이다.
막힌 경우에는
注+이 이하는 이치가 막힌 것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다. 비록 급급히 사람을 사랑하고 외물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뜻을 삼아
注+비록 어리석어 사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누가 이런 뜻이 없겠는가? 아침마다 세 번 반성하고 날마다 아홉 번 생각하더라도
여기에 털끝만치라도 막힘이 있으면
注+자기 몸 밖은 모두 자기와 상관없는 것으로 본다는 말이다. 저기에 있는 크게 벌어진 간격이 그 몸에서 생겨나
注+不仁한 마음을 이른다. 그 일을 해치고,
注+행위에 드러나는 것이 모두 不仁하기 때문이다. 그 일에서 생겨나
注+不仁한 일을 이른다. 그 정치를 해쳐서
注+정사에 시행되는 것이 모두 不仁하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제명대로 죽지도 못하게 된다.
注+〈사람을 제물로〉 써서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일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일이 많을 것이라는 말이다.
악독한 일념이
金石을 녹이고,
注+그 독이 지극히 맹렬함을 비유한 말이다. 달리고픈 일념이
注+〈駛의〉 독음은 ‘史’이다. 번개나 우레보다 빠르다.
注+포학함이 매우 빠름을 비유한 것이다. 비록 무기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으나 실제로 마음으로는 사람을 죽인 것이고,
注+생각마다 사람을 해치는 마음 아님이 없다는 말이다.
비록 사람을
社神의 제사에 희생으로 쓰지는 않았으나 실제로 마음은 사람을 제물로 쓴 것이다.
注+어느 때이고 사람 죽이기를 즐기는 마음 아님이 없다는 말이다. ○造語가 매우 정교하다. 그렇다면
宋 襄公의 무리에 비해 무슨 큰 차이가 있는가?
注+宋 襄公‧楚 靈王‧季平子의 마음과 그 독이 맹렬한 것은 같다는 말이다.
통함은
仁으로 들어가는 문이고,
注+통하면 간격이 없기 때문에 仁으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막힘은 포학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注+막히면 간격이 있기 때문에 포학으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그러므로
仁者가 되고자 하는 자는 그
仁을 구하는 데 마음을 쓰지 않고 통하기를 구하는 데에 마음을 쓰며,
注+통함으로 말미암는 자는 점점 仁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포학을 제거하고자 하는 자는 그 포학을 제거하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고 막힘을 제거하는 데에 마음을 쓴다.
注+막힘을 제거하는 자는 점점 포학함을 없앨 수 있다는 말이다. ○맺음말에 깊은 의리의 정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