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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4)

동래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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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 宋華耦辭宴
【左傳】 文十五年이라 宋華耦來盟 其官皆從之하다
【主意】 華耦無故揚其先人之惡以辭宴하니 少知禮義者 皆知賤之로되 而左氏槪稱魯人以爲敏이라 是謂魯空國無君子者 果何待魯之薄也
君子之立言注+君子之立言:著書立言以垂後世 待天下甚尊하고 期天下甚重注+待天下甚尊 期天下甚重:不敢自尊而輕人이라 雖至奥至邈之理라도 未嘗輕視天下하야 逆料其不能知
故識雖在一世之先注+故識雖在一世之先:見識雖高於人이나 而心常處一世之後注+而心嘗處一世之後:處心每下於人 是非推遜不伐而自(記)[託]於(慊)[謙]退也注+非推遜不伐而自退也:辨明君子所以尊重天子之意
降衷在天注+降衷在天:衷善也 書曰 惟皇上帝 降衷于下民이요 秉彜在民
注+秉彜在民:彛常也 詩曰 民之秉彛하니 凡具耳目鼻口하야 號爲人者注+凡具耳目鼻口 號爲人者:凡具人之者 均此降衷之性 同此秉彛之理 罔不備參賛化育之神注+罔不備參賛化育之神:無不可以贊天地之化育而與天地參者 經緯幽明之用注+經緯幽明之用:明有禮樂 幽有鬼神 無不能貫而通之 使相爲經緯者일새라
吾其敢以淺心隘量으로 大棄之於罷冗無能之地乎注+吾其敢以淺心隘量 大棄之於罷冗無能之地乎:君子所以尊重天下之人 意盖如此리오 至於父母之邦하얀 尤君子之所祗畏而不敢忽者也
維桑與梓 必恭敬止라하니 於一草一木에도 猶嚴如是하니 況於人乎
左氏世傳以爲魯史注+左氏世傳以爲魯史:左氏不知何人 古今以爲左丘明先儒矣 然世傳以爲魯史 則魯之史官也라하니 則魯其父母之邦也注+則魯其父母之邦也:旣爲魯之史官 則是魯人無疑 其載華耦來聘注+其載華耦來聘:入本題事 無故揚其先人之惡以辭宴注+無故揚其先人之惡以辭宴:威公二年 宋督弑其君與夷及其大夫孔父 餘見本題註하고 乃繫之曰 魯人以爲敏注+乃繫之曰 魯人以爲敏:言魯人稱華耦應對之敏이라하니
左氏之意注+左氏之意:原其立言之意 豈不以耦之辭令 魯人之所誇 而非君子之貴乎注+豈不以耦之辭令……而非君子之貴乎:料得左氏譏笑 魯人無見識如此아언마는 耦之言注+耦之言:辭宴之言 少知禮義者 皆知賤之注+少知禮義者 皆知賤之:賤其暴揚先世罪惡
雖當時二三浮薄輩妄相矜衒注+雖當時二三浮薄輩妄相矜衒:魯人稱華耦爲敏者 必是此等人이나 然曲阜龜蒙七百里之封注+然曲阜龜蒙七百里之封:此言魯地之廣也 記明堂位曰 封周公於曲阜地方七百里 詩魯頌閟宮篇云 奄有龜蒙 龜蒙二山名 寧無一人知其非者注+寧無一人知其非者:其中豈無人能知華耦之言繆 今槪稱魯人以爲敏注+今槪稱魯人以爲敏:槪猶今言一例이라하니 果哉 左氏之論也注+果哉 左氏之論也:深責左氏
概稱魯人以爲敏 是謂魯空國無君子注+概稱魯人以爲敏 是謂魯空國無君子:是謂魯無一人知禮義者 抑不思所謂魯人者注+抑不思所謂魯人者:轉責左氏毁薄鄕里 誰非爾之黨友乎注+誰非爾之黨友乎:其疏者則左氏之鄕黨僚友也 誰非爾之姻戚乎注+誰非爾之姻戚乎:其親者則左氏姻姫親戚也 誰非爾之師長乎注+誰非爾之師長乎:其尊者則左氏之師長也니라
一出言而盡置黨友姻戚師長於庸鄙之域注+一出言而盡置黨友姻戚師長於庸鄙之域:魯人一言 是盡以其黨友姻戚師長爲無見識之人하야 倨傲暴慢之氣勃然可(鞠)[掬]注+倨傲暴慢之氣:形於魯人以爲敏之一語하니 歸之以不孫不弟之名注+歸之以不孫不弟之名:孫弟竝去聲 ○加此惡名以責左氏이라도 吾意左氏不能辭也注+吾意左氏不能辭也:無辭以解不孫不弟之罪리라
昔吾夫子亦嘗稱魯矣注+昔吾夫子亦嘗稱魯矣:如下文所云하야 曰魯無君子 斯焉取斯注+曰魯無君子 斯焉取斯:出論語 孔子稱宓子賤爲君子人 又言假使魯國無君子 則此人何所取以成此德乎 言魯之多君子也리오하니라
是夫子一言而待魯爲君子 左氏一言而待魯爲小人注+是夫子一言而待魯爲君子 左氏一言而待魯爲小人:左氏之罪 愈不可逃이니 人心之不同如是哉注+人心之不同如是哉:總結孔子左氏ㄴ저 一魯耳
夫子以夫子之心觀之 故見其可稱하고 左氏以左氏之心觀之 故見其可鄙하니 所存易於內 而所觀變於前也
或謂左氏之言魯人注+或謂左氏之言魯人:前面已罵倒左氏 此又設或人爲他分疏 特蚩蚩之流耳注+特蚩蚩之流耳:稱魯人者 自是一輩愚俗之人 至於閎達博雅之君子注+至於閎達博雅之君子:若是此等好人 敢名之以魯人哉注+敢名之以魯人哉:則左氏必不敢目之爲魯人矣리오
注+曰:又與或人卞閎達博雅之君子 其材雖出人千百等注+閎達博雅之君子 其材雖出人千百等:君子雖有過人之材이나 然履魯地하고 啜魯泉하며 服魯藥하고 食魯粟注+然履魯地……食魯粟:步趨飮食 皆出於魯하니 苟不名之以魯人注+苟不名之以魯人:雖君子亦只是魯人이면 豈九夷八蠻之人乎注+之人乎:議論精采
一爲君子而背鄕閭하고 蔑名敎하야 不以魯人自命注+一爲君子而背鄕閭……不以魯人自命:假使君子而恥名曰魯人이면 是外父兄하야 而恥與同類也注+是外父兄 而恥與同類也:是謂我自爲君子 而鄕里父兄皆非吾徒也 夫豈君子之所敢安哉注+夫豈君子之所敢安哉:果是君子其心必不如此리오 吾益見左氏之誤也注+吾益見左氏之誤也:深得反難非擊之體로다
雖然이나 衆不可盡言也 本不可忘也 左氏之失 固不可復蹈也 迺若十人之聚 三家之市 凡鄙汚下하니 皆無足取 斷之一言 不亦可乎
曰至理均賦로되 先覺者 爲聖爲賢하고 未覺者 爲庸爲鄙 彼雖未覺이라도 然是理洋溢往來於眉睫步趨間하니 屈伸俯仰無非動人悟物者
吾方左酬右酢之不暇 慢心何自而生이리오 人見吾與庸鄙接이요 而不知吾常與天理接也 終日與天理接하니 敢輕乎哉


나라 화우華耦가 연회를 사양하다
문공文公 15년, 나라 화우華耦가 와서 결맹結盟하였는데 그의 관속官屬이 모두 따라왔다. 에 “송사마화손宋司馬華孫”이라고 기록한 것은 그를 하게 여긴 것이다.
연회宴會를 열어 그를 접대하려 하니, 화우華耦가 사양하기를 “우리 송군宋君선신先臣 상공殤公께 죄를 얻어 그 이름이 제후국諸侯國사책史策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제사를 받드는 이 어찌 감히 임금님을 욕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려亞旅연회宴會[]를 받기를 청합니다.”고 하였다. 노인魯人은 그를 민첩敏捷하다고 하였다.
화우華耦가 까닭 없이 선대의 악행을 드러내어 연회를 사양하였으니, 조금이라도 예의禮義를 아는 자라면 모두 그를 천하게 여길 줄을 아는데, 좌씨左氏는 “노인魯人은 그를 민첩敏捷하다고 하였다.”고 뭉뚱그려서 칭찬하였다. 이는 나라가 텅 비어 군자가 없음을 이르니, 과연 어찌 그리도 나라를 야박하게 대접하였는가.
군자君子가 후세에 전할 만한 교훈을 남김[입언立言]에는注+책을 짓고 말을 실어 후세에 전함이다. 천하 사람들을 매우 높이 대우하고, 천하 사람들에게 매우 정중하게 기대한다.注+감히 스스로를 높이고 남을 경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비록 지극히 심오하고 지극히 심원한 이치라도 감히 천하 사람들을 가벼이 보아 〈저들은 이 이치를〉 알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식견은 비록 세인世人의 선두에 있으면서도注+‘식견이 비록 다른 사람보다 높지만’의 뜻이다. 마음은 항상 세인世人의 후미에 있는 것으로 자처한다.注+매양 다른 사람에게 낮추는 것으로 마음을 쓴다는 말이다. 이는 미루어 겸손하고 자랑하지 않아 스스로 겸양한다고 핑계 대는 것이 아니라,注+군자가 천자를 존중하는 뜻을 설명하였다. 강충降充은 하늘이지만注+衷은 善함이다. ≪書經≫ 〈商書 湯誥〉에 “위대하신 上帝께서 백성에게 善을 내리셨다.”고 하였다. 병이秉彛는 백성이니注+彛는 떳떳함이다. ≪詩經≫ 〈大雅 烝民〉에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常性이다.”라고 하였다. 무릇 이목구비를 갖추어 사람으로 호칭되는 자들은注+무릇 사람의 □을 갖추고 있는 자는 똑같이 降衷의 性을 받았고, 똑같이 秉彛의 이치를 가졌다는 말이다. 천지의 화육化育에 동참하여 돕는 신묘함과注+천지의 化育을 도와 천지와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승과 저승[유명幽明]을 경영하는 작용을注+이승[明]에 있는 禮樂과 저승[幽]에 있는 鬼神이 관통하여 서로 經緯가 되게 한다는 말이다. 갖추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내 어찌 감히 옅은 마음과 좁은 도량으로 대담하게 백성을 잔약하고 용렬하여 무능한 경지로 버리겠는가.注+군자가 천하의 사람들을 존중하는 이유는 그 뜻이 대략 이와 같다는 말이다. 부모의 나라인 경우에는 군자가 더욱 경외敬畏하여 감히 소홀히 할 수 없는 바이다.
〈≪시경詩經≫에〉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대해도 반드시 공경한다네.”라고 하였으니,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오히려 이처럼 엄중하게 보았는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좌씨左氏는 세상에 전하는 말에 ‘노사魯史(나라 사관)’라고 하니,注+左氏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古今에 左丘明은 ‘先儒遜下之矣’라 하였다. 그러나 세상에 전하는 말에 그를 ‘魯史’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魯나라의 사관이다. 그렇다면 나라는 그의 부모의 나라이다.注+이미 魯나라 사관이 되었다면 바로 魯나라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좌씨左氏는〉 화우華耦가 와서 빙문할 때에注+〈여기부터〉 본편의 일로 들어간다. 까닭 없이 그 선인先人의 죄악을 드러내어 연회를 사양한 일을 기재하고,注+桓公 2년에 宋督(華父督)이 그 임금 與夷(殤公)와 大夫 孔父를 죽였다. 나머지는 본편의 註에 보인다. 이어 “노인魯人은 그를 민첩敏捷하다고 하였다.”는 말을 기재하였다.注+魯나라 사람들이 華耦의 응대가 敏捷했다고 칭찬했다는 말이다.
좌씨左氏의 뜻은注+‘立言’한 뜻을 추구함이다. 어찌 화우華耦사령辭令(응대하는 사신의 언사言辭)을 나라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니 군자가 귀하게 여겨야 할 바가 아니겠느냐는注+左氏의 비웃음으로 생각했으니 魯나라 사람의 식견 없음이 이와 같다는 말이다. 생각이 아니었겠는가마는, 화우華耦의 말은注+〈魯君이 주관하는〉 연회를 사양한 말이다. 조금이라도 예의禮義를 아는 자라면 모두 〈그의 말을〉 천하게 여길 줄을 알 것이다.注+先代의 죄상을 폭로한 것을 천시한다는 말이다.
비록 당시에 몇몇 경박한 무리들이 함부로 뽐내고 자랑하였지만注+華耦가 민첩하다고 칭찬한 魯나라 사람들은 반드시 이러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곡부曲阜에서 구산龜山몽산蒙山까지 〈나라〉 칠백 리 땅에注+이는 魯나라 땅이 넓음을 말한 것이다. ≪禮記≫ 〈明堂位〉에 이르기를 “周公을 사방 7백 리 되는 땅인 曲阜에 봉하였다.”라고 하였다. ≪詩經≫ 〈魯頌 閟宮篇〉에 이르기를 “문득 龜山과 蒙山을 소유하여”라고 하였는데, 龜․蒙은 두 산의 이름이다. 어찌 한 사람도 그 잘못을 안 자가 없었겠는가.注+그 가운데 어찌 華耦의 말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겠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나라 사람들이 그를 민첩하다고 여겼다.’고 뭉뚱그려 말하였으니,注+槪는 요즘 말의 ‘一例’와 같다. 과감하도다. 좌씨左氏의 논설이여.注+심하게 左氏를 질책하는 말이다.
나라 사람들이 민첩하다고 여겼다.’고 뭉뚱그려 말한 것은 나라가 텅 비어 군자가 없음을 이른 것이니,注+이는 魯나라에 禮義를 아는 자가 한 명도 없음을 이른다. 이는 이른바 ‘나라 사람’이注+문장을 전환하여 左氏가 故國을 헐뜯음을 질책하였다. 누군들 제 동료가 아니며,注+소원한 자는 左氏의 고향 동료이다. 누군들 제 인척이 아니며,注+친근한 이는 左氏의 친인척이다. 누군들 제 스승과 어른이 아닌가를注+높이는 자는 左氏의 스승과 어른이다.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좌씨左氏는 한 번 발언하여 동료와 인척과 스승과 어른을 모두 용렬하고 비루한 영역으로 버려,注+‘魯나라 사람이 華耦를 민첩하다고 칭찬하였다.’라는 左氏의 한마디는 그(左氏)의 고향 동료와 친인척과 스승․어른을 전부 식견이 없는 사람으로 여긴 것이라는 말이다. 오만하고 사나운 기세가 갑자기 드러났으니,注+‘魯나라 사람이 민첩하다고 하였다.’는 한마디에 〈오만하고 포학한 기세가〉 드러났다는 말이다. 겸손하지 못하고 공손하지 못하다는 악명惡名을 그에게 돌리더라도注+孫과 弟는 모두 去聲으로 읽어야 한다. ○이러한 惡名을 씌워 左氏를 질책한 것이다. 나는 좌씨左氏가 사양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注+겸손하지 못하고 공손하지 못하다는 죄를 해명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말이다.
예전에 우리 부자夫子(공자孔子)께서도 일찍이 나라를 칭찬하여注+아래 글에 말한 바와 같다.나라에 군자가 없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을 취하였겠는가?”注+≪論語≫에 나온다. 孔子가 宓子賤이 君子다운 사람임을 칭찬하고, 또 “가령 魯나라에 군자가 없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러한 德을 성취했겠느냐”고 말하였으니, 魯나라에 군자가 많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부자夫子는 한마디 말씀으로 나라 사람들을 군자로 대우하고 좌씨左氏는 한마디 말로 나라 사람들을 소인으로 대우한 것이니,注+左氏의 죄는 더욱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인심이 같지 않음이 이와 같다.注+孔子와 左氏의 차이를 총결한 것이다. 나라는 하나의 나라일 뿐이다.
부자夫子부자夫子의 마음으로 관찰하셨기 때문에 칭찬할 만한 것을 보았고, 좌씨左氏좌씨左氏의 마음으로 관찰하였기 때문에 천시할 만한 것을 본 것이다. 내면에 보존된 것이 다르면 관찰하는 것도 눈앞에서 변하는 것이다.
어떤 자가 말하기를 “좌씨左氏가 말한 ‘노인魯人’은注+앞부분에서 左氏를 매도하였고, 여기에서는 또 어떤 이가 좌씨를 위해 변명해줌을 가설하였다. 단지 어리석은 무리들을 가리킨 것뿐이고,注+‘魯나라 사람’이라고 일컬은 것은 본래 한 무리의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식견이 뛰어나고 사리에 통달한 점잖은 군자들까지注+‘이렇게 훌륭한 사람일 경우에는’의 뜻이다. 감히 ‘노인魯人’으로 명칭하였겠는가?”라고注+左氏는 반드시 감히 그들을 지목하여 ‘魯나라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하기에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注+또 或人의 말에 변론하는 말이다. “식견이 뛰어나고 사리에 통달한 점잖은 군자는 그 재능이 사람들보다 천백 배 뛰어나지만注+‘군자가 비록 남보다 뛰어난 재주가 있더라도’의 뜻이다. 나라 땅을 밟고 나라 물을 마시며 나라 약을 복용하고 나라 곡식을 먹으니,注+걷고 먹고 마시는 일상이 모두 魯나라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말이다. 만일 그들을 ‘노인魯人’으로 명칭하지 않는다면注+비록 군자일지라도 다만 魯나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구이팔만九夷八蠻의 사람이란 말인가.注+의론이 정밀하고 다채롭다.
한번 군자가 되어서 고향을 저버리고 명교名敎를 멸시하고서 ‘노인魯人’으로 스스로 명명命名하지 않는다면注+‘가령 군자이면서 魯나라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의 뜻이다. 이는 부형父兄외인外人으로 여겨 부형父兄동류同類가 되기를 부끄러워함이니,注+이는 나는 본래 군자이니 향리의 부형은 모두 나의 무리가 아니라고 함을 이른다. 어찌 군자가 감히 편안하게 여길 수 있는 바이겠는가.注+과연 군자라면 그 마음을 반드시 이렇게 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더욱 좌씨左氏의 잘못을 알겠다.注+공격적이지 않으면서도 반론을 제기하는 문체를 깊이 터득하였다.
비록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고, 사람은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되니, 좌씨左氏의 잘못을 진실로 다시 답습해서는 안 된다. ‘열 사람이 사는 취락이나 세 가호家戶가 보는 시장 사람들의 말이라면 평범하고 비루하니 모두 취할 만하지 못하다’고 한마디로 분명히 밝히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하늘이 지극한 이치[]를 똑같이 부여하였으나, 먼저 깨달은 자는 성현聖賢이 되고 깨닫지 못한 자는 평범하고 비루한 자가 된다. 저 사람이 비록 아직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이 이치는 용모[미첩眉睫] 사이에 드러나고 왕래하는 보행[보추步趨] 중에 표현되니, 몸을 굽히고 펴는 등 움직이는 일체의 행위[屈伸俯仰]가 사람을 감동시키고 만물을 깨우침이 아님이 없다.
내가 바야흐로 좌우로 대응하기에도 바빠 겨를이 없는데 오만한 마음이 어디에서 생기겠는가? 사람들은 내가 평범하고 비루한 사람과 교유하는 줄만 알고 내가 항상 천리天理와 교접하는 줄은 모른다. 종일 천리와 교접하니 감히 경시할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 옛날의 盟會에는 반드시 威儀를 갖추고 贄幣를 隆崇히 하여 賓主가 禮를 이루는 것을 공경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定公 4년 傳에 “卿의 出行에는 旅(五百人)가 따른다.”고 하였다. 春秋時代에는 대부분 威儀를 갖추지 않았는데 華孫만이 그 官屬을 거느리고 와서 古典을 따랐다. 그러므로 일을 공경하여 言行을 신중히[自重] 한 것이다. 使臣이 自重하면 魯나라를 尊敬하는 것이고, 일에 신중하면 禮를 돈독히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尊貴하게 여겨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杜注〉
역주2 : 與는 賜의 뜻이다. 賜宴은 임금이 宴會를 열어 臣下를 접대하는 것이다.
역주3 : 저본에는 ‘君’이 없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4 : 耦는 華督의 曾孫이다. 督이 殤公을 弑害한 일은 桓公 2년에 있었다. 耦는 스스로 罪人의 자손이기 때문에 감히 임금의 연회에 참석하여 魯君을 욕되게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杜注〉
역주5 : 上大夫의 宴會를 받겠다는 말이다.
역주6 : 아무 까닭 없이 자기 先祖의 罪를 드러내는 것은 敏捷하지 못한 것인데 魯人은 그를 민첩하다고 하였으니, 이는 君子가 인정한 바가 아님이 분명하다.〈杜注〉
역주7 : 저본에는 ‘敢’이 없으나, 四庫全書本․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8 : ‘降衷在天’은 하늘이 善한 性을 부여하는 것이고, ‘秉彜在民’은 백성이 자신에게 부여된 常性을 지키는 것이다.
역주9 : 저본에는 ‘記’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託’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 저본에는 ‘慊’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謙’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1 : 저본에는 1자 빈칸으로 되어 있다.
역주12 : 未詳이다. 굳이 해석한다면 ‘先儒도 遜(양보)하여 그에게 자신을 낮추었다.’라고 풀 수 있다.
역주13 : 勃然은 갑작스러운 모양이고, 可掬은 드러남이다.
역주14 : 저본에는 ‘鞠’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에 의거하여 ‘掬’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5 : ≪書經≫ 〈周書 旅獒〉에 “商나라를 이기니 마침내 九夷와 八蠻에 길이 통하였다.[惟克商 遂通道于九夷八蠻]”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蔡沈은 “‘九夷八蠻’은 많음을 칭한 것이다. ≪周禮≫ 〈職方氏〉에 ‘四夷八蠻’이라 하였고, ≪爾雅≫에 ‘九夷八蠻’이라 하였으니, 이는 단지 그 하나가 아닐 뿐임을 말한 것이다.[九夷八蠻 多之稱也 職方言四夷八蠻 爾雅言九夷八蠻 但言其非一而已]”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도 아홉 또는 여덟 종류의 蠻夷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魯나라 이외 지역의 존재로 泛稱한 것이다.

동래박의(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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