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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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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魏壽餘履士會之足於朝注+魏壽餘履士會之足於朝:註見上篇
我以爲羊腸한대 而彼方以爲衢道하고 我以爲烏喙한대 而彼方以爲稻粱하니 主涇賓渭하야 分騖背馳 奚適而能相喻哉리오
言者 不知聽者之心하야 而每恨其悟之遲하고 聽者 不知言者之心하야 而每駭其談之遽 攻愈力 閉愈堅하고 叩愈煩 應愈怠
南面而君 北面而臣 東面而師 西面而徒 所以百諫而不從하고 屢告而不入者 職此之由也
盖嘗觀魏壽餘之誘隨會컨대 一履其足而歸晉之機已傳하니 是獨何術而動物悟人如此其捷耶 殆非壽餘術之工이라 乃隨會聽之切也
會思晉之念 如獸思壙하고 鳥思林하며 魚思淵이로되 蹙閼拘繫而不得騁이라가 一朝壽餘以歸晉之機動之하야 微見其端 心領神受하야 舃交踵接 閟策已通하니 庸非聽之切則得之速耶
使會歸晉之念不切이면 則壽餘雖刺其股하고 搏其膺이라도 亦將撫機而不喻矣리라
歜職相感以一抶而商人戕注+歜職相感以一抶而商人戕:文十八年 齊懿公之爲公子也 與邴歜之父 爭田弗勝 及卽位 掘而刖之 而使歜僕 納閻職之妻而使職驂乗 夏五月 公游于申池 二人浴于池 歜以扑抶職 職怒 歜曰人奪女妻而不怒 一抶女庸何傷 職曰 與刖其父而弗能病者 何如 乃謀殺懿公 納諸竹中 歸舍爵而行 蓄憾之切者也 魏韓相警以一肘而智伯滅注+魏韓相警以一肘而智伯滅:威烈二十三年 智伯求蔡皐狼之地於趙襄子 襄子弗與 智伯怒 帥韓魏之甲以攻趙氏 襄子乃走晉陽 三家以國人圍而灌之 城不浸者三版 吾乃知水可以亡人國也 趙襄子使張孟談潜出見二子 二子乃陰與張孟談約 爲之期日而遣之 襄子夜使人殺守隄之吏而決水灌智伯軍 智伯軍救水而亂 韓魏翼而擊之 遂殺智伯 盡滅其族 慮患之切者也 餘會相悟以一履而去計定 謀歸之切者也
使數子者移蓄憾爲蓄德하고 移慮患爲慮善하며 移謀歸爲謀道 則皆將黙會至理於交臂目擊之間이리니 豈有告諄諄而聽藐藐者耶
信矣 切之一字誠入道之門也
自孔孟 感發轉移之機不復見於天下 盖數千年于此矣 學者慨誦塵編하며 浩然歎息하야 以爲沒身不可復遇也
抑不知道不可離 理不可이라 孔孟雖往이나 感發轉移之機 豈隨孔孟而往哉리오
前觀之古하고 後觀之今하며 仰觀之朝하고 俯觀之野 利害相激하고 事會相投하야 此機此理 隨遇而發이라
下至於壟斷罔利之徒하얀 萬貨錯陳하고 五方畢會 低昻盈縮하야 出沒變化 一瞬未終이로되
彼此咸喻하야 相語不以口而以形하고 相視不以迹而以神이라 是廛肆市區 皆處洙泗之濱하야 工賈商旅 皆具游夏之用也
擧目皆妙用이로되 而吾自不觀하고 盈耳皆이로되 而吾自不聽이라 終日與理遇오도 而反有不遇之嘆하니 理不遇人耶 人不遇理耶


위수여魏壽餘나라 조정에서 사회士會의 발을 슬쩍 밟다注+주석이 윗편(〈晉使魏壽餘僞以魏叛以誘士會〉)에 보인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에〉 “손을 잡고 일러줄 뿐 아니라 일의 옳고 그름을 보여주며 대면해 가르칠 뿐 아니라 귀에 대고 말해주노라” 하였으니, 오래 되었도다. 사람을 깨우치기 어려움이여!
내가 이 길을 양의 창자〈처럼 꼬불꼬불한 오솔길이〉라고 하면 저 사람은 도리어[] 사방으로 통하는 큰 길이라고 하고, 내가 이것을 오훼烏喙(부자附子)라고 하면 저 사람은 도리어 도량稻粱이라 한다. 이는 마치 작은 경수涇水를 크다[]고 하고 큰 위수渭水를 작다고 하여, 두 마리의 말이 서로 등지고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서로 깨우칠 수 있겠는가.
말하는 자는 듣는 자의 심정을 모르고서 매양 그 깨달음이 더딘 것을 한스러워하고, 듣는 자는 말하는 자의 심정을 모르고서 매양 그 말이 빠른 데에 혼란스러워한다. 〈그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기 위해〉 더욱 힘써 공격할수록 더욱 견고히 닫고, 더욱 자주 고문叩問할수록 더욱 게을리 대답한다.
남면南面하는 임금이나 북면北面하는 신하나 동면東面하는 스승이나 서면西面하는 제자가 백번을 간하여도 따르지 않고 자주 고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은 오로지 이 때문이다.
일찍이 위수여魏壽餘수회隨會를 유인한 것을 관찰하건대 한번 그의 발을 슬쩍 밟자 나라로 돌아가자는 심기心機(계책)가 이미 전달되었다. 이는 무슨 방법이기에 사람을 동요시키고 깨우친 것이 이처럼 빨랐는가? 아마도 위수여魏壽餘의 방법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수회隨會의 소식을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해서일 것이다.
智伯이 강물을 터서 晉陽城을 잠기게 하다[智伯決水灌晉陽]智伯이 강물을 터서 晉陽城을 잠기게 하다[智伯決水灌晉陽]
수회隨會나라를 그리워하는 생각이 짐승이 광야를 그리워하고 새가 숲을 그리워하며 물고기가 심연을 그리워하는 생각과 같은데, 제지당하고 구속되어 달리지 못하다가 하루아침에 위수여魏壽餘나라로 돌아가자는 계책으로 그를 감동시키기 위해 그 기미를 살짝 내보이자 수회隨會는 마음으로 알아차리고 정신으로 이해하여, 신발이 발꿈치에 닿자마자 비책閟策(비책秘策)이 이미 통하였으니, 이는 어찌 소식을 듣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에 신속히 동요하고 깨우친 것이 아니겠는가.
가령 수회隨會나라로 돌아갈 생각이 간절하지 않았다면 위수여魏壽餘가 그의 다리를 찌르고 가슴을 쳤더라도 수회는 아마 기회가 닥쳤어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병촉邴歜염직閻職은 채찍으로 한 번 채찍질하는 것으로 서로 감응하여 상인商人( 의공懿公의 이름)을 살해했으니注+文公 18년의 일이다. 齊 懿公이 公子로 있을 때 邴歜의 아비와 土地를 다투었으나 이기지 못한 일이 있었다. 懿公은 卽位한 뒤에 〈邴歜의 아비의 尸體를 무덤에서〉 파내어 그 발목을 자르고는 그 아들 邴歜을 僕(御者)으로 삼았으며, 閻職의 아내를 奪取해[納] 제 여자로 삼고는 閻職을 驂乘으로 삼았다. 여름 5월에 懿公이 申池에서 水泳할 때 두 사람도 申池에서 목욕을 하였는데, 이때 邴歜이 말채찍으로 閻職을 치니 閻職이 노하였다. 그러자 歜이 “남이 네 아내를 빼앗아가도 노하지 않더니 너를 한 번 친 것이 뭐 그리 해로우냐?”고 하니, 閻職이 “제 아비의 발목을 잘랐는데도 怨恨을 품지 않는 자와 비교해 어떠하냐?”고 하였다. 두 사람은 이에 懿公을 弑害하여 그 尸體를 대밭 속에 버리고 돌아와 〈술을 마시고는〉 술잔을 내려놓고서 逃走하였다.(≪春秋左氏傳≫) 이는 원한이 쌓여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고, 위환자魏桓子한강자韓康子는 한 번 팔꿈치를 치는 것으로 서로 경계하여 지백智伯을 멸망시켰으니注+威烈王 23년의 일이다. 智伯이 蔡나라 皐狼의 땅을 趙襄子(無恤)에게 요구하였는데 襄子가 주지 않았다. 智伯이 노하여 韓氏․魏氏의 군대를 거느리고 趙氏를 공격하니, 襄子는 마침내 晉陽으로 도망하였다. 三家(韓, 魏, 智)가 온 나라 사람을 동원하여 晉陽城을 포위하고 물을 대니, 城이 물에 잠기지 않은 것이 세 版뿐이었다. 智伯이 물길을 순행하며 말하기를 “나는 이제야 물이 남의 나라를 멸망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라고 하니, 魏桓子가 韓康子의 팔꿈치를 밀쳤고 韓康子는 魏桓子의 발등을 슬쩍 밟았다. 〈智伯의 말은 韓康子와 魏桓子에게〉 이는 汾水로 安邑을 물에 잠기게 할 수 있고, 绛水로 平壤을 물에 잠기게 할 수 있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趙襄子가 張孟談을 시켜 몰래 성을 나가 二子(魏桓子와 韓康子)를 만나 〈도움을 요청하니,〉 二子가 마침내 은밀히 張孟談과 약속하고는 날짜를 기약하고 張孟談을 돌려보냈다. 趙襄子가 밤에 사람을 시켜 제방을 지키는 관리를 죽이고 물을 터서 智伯의 軍中에 대니, 智伯의 군사들이 물에서 헤어 나오느라 혼란하였다. 韓氏와 魏氏가 좌우에서 공격하니, 마침내 智伯을 죽이고 智氏의 종족을 모두 멸하였다.(≪資治通鑑≫) 이는 환란을 우려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며, 위수여魏壽餘수회隨會는 한 번 발을 밟는 것으로 서로 깨우쳐 나라를 탈출할 계획을 정하였으니 이는 돌아가기를 도모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가령 이 몇 사람이 원한을 쌓는 마음을 바꾸어 을 쌓고, 환란을 걱정하는 마음을 바꾸어 선행을 걱정하고, 돌아가기를 꾀하는 마음을 바꾸어 를 꾀한다면, 모두 장차 어깨를 한번 스치고 눈으로 한번 바라보는 사이에 진리를 마음속으로 깨닫게 될 것이니, 어찌 고해주는 사람이 정성스레 가르치는데 듣는 자가 딴청을 부리는 일이 있겠는가?
’이라는 한 글자가 진실로 로 들어가는 문경門徑임을 믿을 수 있도다.
공맹孔孟 이후로 감발하여 전이하는 작용이 다시 천하에 보이지 않은 지가 오늘까지 대략 수천 년이 되었다. 학자들은 개탄해가며 고서古書를 송독하고 크게 탄식하면서 종신토록 다시는 이런 일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는 떠나서는 안 되고, 는 없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른 것이다. 공맹孔孟은 비록 가셨으나 감발하여 전이하는 작용까지 어찌 공맹孔孟를 따라 멀리 갔겠는가?
먼저 고대古代를 살펴보고 뒤에 현재를 살펴보며 위로 조정을 살펴보고 아래로 초야를 살펴보면, 이해가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일의 기회가 우연히 서로 부합하기도 하여 가 만남에 따라 발생한다.
아래로 유리한 곳에 자리를 잡아 시장의 이익을 망라하는 무리로 말하면 각종 화물을 뒤섞어 펼쳐놓고서 오방 사람들이 다 모이면 값을 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며 물건을 채우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면서 이랬다저랬다 하는 변화가 한 순간도 마침이 없다.
그러나 저들은 피차 모두 그 의도를 알고서 서로 말을 해도 입으로 하지 않고 몸으로 하며 서로 볼 때도 자취(동작)로 하지 않고 표정으로 하니, 이는 가게와 시장이 모두 수수洙水사수泗水 가에 있어서 장인과 상인들도 모두 〈공문孔門의〉 자유子游자하子夏재용才用을 갖춘 것 같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이 모두 신묘한 작용인데 내 스스로 보지 않고, 귀에 가득한 것이 모두 지언至言인데 내 스스로 듣지 않으면서 종일 동안 진리眞理와 만나면서도 도리어 만난 적이 없다고 탄식하니, 아! 진리眞理가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인가, 사람이 진리를 만나지 못한 것인가.


역주
역주1 : ≪詩經≫ 〈大雅 抑〉의 구절이다. ≪毛詩≫에 “이 시는 衛나라 武公이 厲王을 풍자하고, 또한 스스로 경계한 詩이다.”라고 하였다.
역주2 : ≪資治通鑑≫ 威烈王 23년에 의하면 ‘智伯行水’와 ‘曰’사이에 ‘魏桓子御韓康子驂乘智伯’이 더 있다. 당시에 三家(韓, 魏, 智)가 趙襄子를 멸하고자 물길을 순행할 때에 이들이 함께 수레를 탔는데, 智伯은 尊者의 자리인 왼편에 있고 魏桓子와 韓康子는 智伯의 강성함을 두려워하여 魏桓子가 御者가 되고 韓康子가 車右가 되었다.
역주3 : 桓子와 康子는 각각 韓康子와 魏桓子를 가리킨다. 安邑은 魏나라 초기 도읍지이며, 平陽은 韓나라 초기 도읍지로 주변에 각각 汾水와 絳水가 흐른다. 智伯의 말을 듣고 자신들의 도읍지도 趙襄子처럼 물바다가 될 것을 걱정하여 서로 눈짓을 한 것이다.
역주4 : 저본에는 ‘後而’로 되어 있으나, 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而後’로 바로잡았다.
역주5 : 저본에는 ‘忘’으로 되어 있으나, 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亡’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 저본에는 ‘入’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至’로 바로잡았다.

동래박의(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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