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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2)

동래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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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原莊公逆王后于陳
원장공原莊公나라로 가서 왕후王后를 맞이하다
07-05-01 原莊公逆王后于陳
원장공原莊公나라로 가서 왕후王后를 맞이하다
[左傳]莊十八年이라 虢公晉侯鄭伯 使原莊公 逆王后于陳하다 陳嬀歸于京師하니 實惠后
장공莊公 18년, 괵공虢公진후晉侯정백鄭伯원장공原莊公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왕후王后를 맞이해 오게 하였다. 진규陳嬀경사京師로 시집갔으니 이가 실로 혜후惠后이다.
07-05-02 蘇公奉子頹
소공蘇公자퇴子頹를 모시고 출분出奔하다
[左傳]莊十九年이라 嬖于莊王하야 生子頹하니 子頹有寵하야 蔿國爲之師하다
장공莊公 19년, 당초에 왕요王姚주 장왕周 莊王의 사랑을 받아 자퇴子頹를 낳으니, 장왕은 자퇴를 총애하여 위국蔿國을 그의 스승으로 삼았다.
卽位하야 하고 之宮近於王宮하니 王取之하고 王奪하고 而收하다
혜왕惠王이 즉위한 뒤에 위국의 채포菜圃를 탈취하여 로 만들고, 왕궁王宮과 가까이 있는 변백邊伯의 집을 왕이 탈취하고, 왕이 자금子禽축궤祝跪첨보詹父의 땅을 빼앗고, 선부膳夫(료리사料理師)의 봉록俸祿몰수沒收하였다.
故蔿國邊伯石速詹父子禽祝跪作亂하야하다 五大夫奉子頹以伐王이나 不克하야 出奔溫하다
그러므로 위국蔿國변백邊伯석속石速첨보詹父자금子禽축궤祝跪반란叛亂을 일으켜 소씨蘇氏에게 의지하였다. 가을에 다섯 대부大夫자퇴子頹를 모시고 혜왕惠王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여 으로 도망하였다.
蘇子奉子頹以奔衛하니 衛師燕師伐周하야 立子頹하다
그러자 소자蘇子자퇴子頹를 모시고 나라로 도망가니, 위군衛軍연군燕軍나라를 쳐서 겨울에 자퇴를 주왕周王으로 세웠다.
07-05-03 王處櫟
혜왕惠王에 거처하다
[左傳]莊二十年이라 〈春〉 鄭伯和王室이나 不克하고 〈執燕仲父하다 鄭伯〉遂以王歸하니 王處于櫟하다
장공莊公 20년, 봄에 정백鄭伯주 왕실周 王室불화不和화해和解시키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연중보燕仲父만을 잡았다. 여름에 정백鄭伯이 드디어 혜왕惠王을 모시고 돌아오니 혜왕이 에 거처하였다.
〈秋 王及鄭伯入于라가 遂入成周하야 取其寶器而還하다〉 王子頹享五大夫할새 樂及하니
가을에 혜왕이 정백과 함께 로 들어갔다가 마침내 성주成周로 가서 나라의 보기寶器를 가지고 돌아왔다. 겨울에 왕자 퇴王子 頹가 다섯 대부大夫를 접대할 때에 연주演奏하는 음악音樂편무徧舞에 미치니,
鄭伯聞之하고 見虢叔 曰 寡人聞之컨대 哀樂失時 殃咎必至라하니라 今王子頹歌舞不倦하니 樂禍也
정백이 이 소식을 듣고 괵숙虢叔을 만나 말하기를 “과인寡人이 듣건대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때에 맞지 않으면 반드시 화란禍亂이 이른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왕자 퇴王子 頹가무歌舞를 즐겨 피곤한 줄을 모르니, 이는 화란을 즐기는 것이다.
夫司寇行戮 君爲之不擧 而況敢樂禍乎 奸王之位하니 禍孰大焉 臨禍忘憂하니 憂必及之하리라 盍納王乎 虢公曰 寡人之願也
사구司寇사형死刑집행執行하면 임금은 그 사형당한 자를 위해 성찬盛饌을 들지 않는 것인데, 더구나 감히 화란을 즐긴다는 말인가. 천왕天王의 자리를 하였으니, 이보다 큰 화란이 어디 있는가. 화란이 닥쳐오는데도 근심을 잊고 있으니, 근심스러운 일이 반드시 그에게 닥칠 것이다. 그러니 어찌 혜왕을 들여보내어 복위시키지 않겠는가?”라고 하니, 괵공虢公이 “이것이 바로 과인의 소원이다.”라고 하였다.
07-05-04 鄭伯虢公納王
정백鄭伯괵공虢公혜왕惠王왕성王城으로 모셔 들이다
[左傳]莊二十一年이라 于弭하고 同伐王城하다
장공莊公 21년, 봄에 〈정백鄭伯괵공虢公이〉 에서 서명胥命하고서, 여름에 함께 왕성王城을 공격하였다.
鄭伯將王自圉門入하고 虢叔自北門入하야 殺王子頹及五大夫하다 鄭伯享王于闕西辟 하다
정백鄭伯혜왕惠王을 모시고서 어문圉門으로 들어가고, 괵숙虢叔북문北門으로 들어가서 왕자 퇴王子 頹와 다섯 대부大夫를 죽였다. 정백이 서쪽 에서 혜왕을 접대할 적에 육대六代의 음악을 모두 연주하였다.
王與之武公之略自虎牢以東하다 原伯曰 鄭伯效尤하니 其〈亦〉將自有咎리라 〈五月 鄭厲公卒하다
혜왕이 여공厲公에게, 옛날 정 무공鄭 武公나라의 경계였던 호뢰 이동虎牢 以東의 땅을 주었다. 원백原伯이 말하기를 “정백이 왕자 퇴의 잘못을 그대로 본받으니, 그에게도 장차 재앙災殃이 닥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5월에 정 여공鄭 厲公하였다.
07-05-05 會于首止
수지首止에서 회합하다
[左傳]僖五年이라 會于首止하야 會王太子鄭하니
희공僖公 5년, 제후諸侯수지首止에서 회합會合하여 왕태자 정王太子 鄭회견會見하였으니, 이는 주 왕실周 王室안정安定모의謀議하기 위함이었다.
07-05-06 惠王崩
혜왕惠王하다
[左傳]僖七年이라 冬閏月 惠王崩하다 하야 懼不立하야 不發喪하고 而告難于齊하다
희공僖公 7년, 겨울 윤월閏月혜왕惠王하였다. 양왕襄王태숙 대太叔 帶화난禍難을 일으킬 것을 꺼리고[] 자신이 왕위王位에 오르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을 발표하지 않고 나라에 화난禍難통보通報하였다.
07-05-07 盟于洮
에서 결맹結盟하다
[左傳]僖八年이라 春王正月 公會王人齊侯宋公衛侯許男曹伯陳世子款盟于洮하다 左氏曰 謀王室也
희공僖公 8년, 봄 주왕周王 정월에 희공이 왕인王人제후齊侯송공宋公위후衛侯허남許男조백曹伯진세자 관陳世子 款회합會合하여 에서 결맹結盟하였다.
07-05-08 王子帶召戎
왕자 대王子 帶을 불러들이다
[左傳]僖十一年이라 揚拒泉皐伊雒之戎同伐京師하야 入王城하야 焚東門하니
희공僖公 11년, 여름에 융인戎人이 함께 경사京師공격攻擊하여 왕성王城으로 들어가서 동문東門을 불태웠으니,
王子帶召之也 秦晉伐戎以救周하다 晉侯平戎于王하다
이는 왕자 대王子 帶가 불러들인 것이다. 나라와 나라가 토벌討伐하여 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 가을에 진후晉侯융인戎人천왕天王화평和平시켰다.
07-05-09 王子帶奔齊
왕자 대王子 帶나라로 출분出奔하다
[左傳]僖十二年이라 王以戎難故 討王子帶하니 王子帶奔齊하다
희공僖公 12년, 양왕襄王융인戎人이 쳐들어왔던 난리를 이유로 왕자 대王子 帶토벌討伐하니, 가을에 왕자 대王子 帶나라로 달아났다.
07-05-10 仲孫湫言王子帶
중손추仲孫湫왕자 대王子 帶에게 말하다
[左傳]僖十三年이라 齊侯使仲孫湫聘于周하고 且言王子帶러니 事畢 不與王言하고
희공僖公 13년, 봄에 제후齊侯중손추仲孫湫를 보내어 나라에 빙문聘問하고, 또 왕자 대王子 帶의 일을 말하게 하였다. 〈그러나 중손추는〉 빙문의 일을 마친 뒤에 에게 말하지 않고,
하야 復命曰 未可니이다 王怒未怠하니 其十年乎ㄴ저 不十年이면 王弗召也리이다
돌아와서 복명復命하였다. “아직은 불가능不可能합니다. 의 노여움이 아직 누그러지지 않았으니, 10년은 지나야 할 것입니다. 10년이 되기 전에는 이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07-05-11 滑人叛鄭
활인滑人나라를 배반하다
[左傳]僖二十年이라 滑人叛鄭而服於衛하니 鄭公子士洩堵寇帥師入滑하다
희공僖公 20년, 활인滑人나라를 배반하고 나라에 복종하니, 여름에 나라 공자 사公子 士설도구洩堵寇가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로 쳐들어갔다.
07-05-12 富辰請召王子帶
부신富辰왕자 대王子 帶를 불러들이기를 청하다
[左傳]僖二十二年이라 富辰言於王曰 請召大叔하소서 曰 協比其隣하면 昏姻孔云이라하니
희공僖公 22년, 부신富辰께 말하였다. “태숙太叔을 불러들이소서. ≪시경詩經≫에 ‘이웃과 화목和睦하면 인척姻戚들도 매우 우애友愛한다.’라고 하였습니다.
吾兄弟之不協이면 焉能怨諸侯之不睦이릿가 王說하다 王子帶自齊復歸于京師하니 王召之也
우리가 형제兄弟 사이에 화목하지 못하다면 어찌 제후諸侯들의 불목不睦원망怨望할 수 있겠습니까?” 이 기뻐하였다. 왕자 대王子 帶나라에서 다시 경사京師로 돌아왔으니 이 불러들인 것이다.
07-05-13 襄王以狄伐鄭
이적녀위후 대숙이적사공왕以狄女爲后 大叔以狄師攻王 왕사고난王使告難 양왕襄王적인狄人을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하고서 적인의 딸을 왕후로 삼았다. 태숙太叔적군狄軍을 거느리고서 양왕을 공격하니, 양왕이 나라 사신을 보내어 난리가 난 것을 통고하다
[左傳]僖二十四年이라 鄭之入滑也 滑人聽命이러니 師還 又卽衛하다
희공僖公 24년, 정군鄭軍나라로 쳐들어갔을 때는 활인滑人나라의 을 듣겠다고 하더니, 정군鄭軍이 돌아가자 나라는 다시 나라에 붙었다.
鄭公子士洩堵兪彌帥師伐滑하니 王使伯服游孫伯如鄭請滑하다 鄭伯怨惠王之入而하고 又怨襄王之與衛滑也
정공자 사鄭公子 士설도유미洩堵兪彌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하니, 왕이 백복伯服유손백游孫伯나라로 보내어 나라를 치지 말라고 요청하였다. 정백鄭伯혜왕惠王이 들어갔을 때 여공厲公에게 술잔[]을 주지 않은 일을 원망하고, 또 양왕襄王나라와 나라를 편드는 것을 원망하였다.
故不聽王命而執二子하다 王怒하야 將以狄伐鄭하다 富辰諫이나 王弗聽하고 使頹叔〈桃子〉出狄師하다
그러므로 왕명王命을 듣지 않고 두 사람을 잡아 가두니, 왕은 노하여 적군狄軍을 거느리고서 가서 나라를 치려 하였다. 부신富辰하였으나 왕은 듣지 않고서 퇴숙頹叔도자桃子를 보내어 적군狄軍출동出動시키게 하였다.
狄伐鄭取櫟하니 王德狄人하야 將以其女爲后어늘 富辰諫한대 王又弗聽하다 甘昭公通於隗氏하니 王替隗氏하다
여름에 적인狄人나라를 토벌하여 을 취하니 왕은 적인의 을 입었다고 여겨 적인의 딸을 왕후王后로 삼으려 하자 부신富辰이 간하였으나, 왕은 또 듣지 않았다. 감소공甘昭公외씨隗氏사통私通하니 왕은 외씨隗氏폐출廢黜하였다.
頹叔桃子曰 我實使狄하니 狄其怨我리라하고 遂奉大叔하야 以狄師攻王하다
퇴숙頹叔도자桃子가 말하기를 “우리가 실로 적인狄人에게 딸을 왕후로 바치도록 시켰으니, 적인狄人이 우리를 원망할 것이다.”라고 하고서, 드디어 태숙太叔을 받들어 모시고 적군狄軍을 거느리고서 왕을 공격하였다.
王御士將禦之한대 王曰 先后其謂我何 寧使諸侯圖之하리라하고 王出適鄭하야 處于氾하다 大叔以隗氏居于溫하다
왕의 어사御士방어防禦하려 하자 왕이 말하기를 “선후先后께서 나를 무어라고 하시겠느냐? 차라리 제후諸侯들에게 도모圖謀하도록 하겠다.”라고 하고서, 왕이 경사京師를 떠나 나라로 가서 에 머물렀다. 태숙太叔외씨隗氏를 데리고 에 거주하였다.
王使來告難曰 不穀不德하야 得罪于母弟之寵子帶하야 鄙在鄭地氾일새 敢告叔父하노라
겨울에 왕이 사람을 보내어 와서 난리가 난 것을 통고通告하며 말하기를 “불곡不穀부덕不德하여 모후母后의 총애하는 아들 에게 를 얻어 나라 향촌鄕村[]에서 머물고 있기에 감히 숙부叔父에게 고하노라.”라고 하였다.
臧文仲對曰 天子于外하시니 敢不奔問官守릿가 王使簡師父告于晉하고 使左鄢父告于秦하다
장문중臧文仲이 대답하기를 “천자天子께서 밖으로 몽진蒙塵하셨으니 감히 달려가 관수官守에게 문후問候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간사부簡師父를 보내어 나라에 고하게 하고, 좌언보左鄢父를 보내어 나라에 고하게 하였다.
07-05-14 晉侯納王
진후晉侯혜왕惠王경사京師로 들여보내다
[左傳]僖二十五年이라 秦伯師于河上하야 將納王이어늘 狐偃言於晉侯曰 求諸侯ㄴ댄 莫如勤王이니
희공僖公 25년, 봄에 진백秦伯이 군대를 황하黃河 가에 주둔시키고서 호송護送경사京師로 들여보내려고 하자, 호언狐偃진후晉侯에게 말하기를 “제후의 패자霸者가 되기를 구하려면 왕사王事진력盡力하는 것만 한 게 없습니다.
諸侯信之 且大義也니이다 繼文之業하야 而信宣於諸侯ㄴ댄 今爲可矣니이다
제후가 신임信任할 것이고 또 대의大義에도 부합합니다. 문후文侯공업功業을 계승하여 제후에게 신의信義선양宣揚하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라고 하였다.
使卜偃卜之한대 曰 吉하니 晉侯辭秦師而下하야 三月甲辰 次于陽樊하야 右師圍溫하고 左師逆王하다
문공文公복언卜偃에게 거북점을 치게 하니, 복언卜偃이 “합니다.”라고 하니, 진후晉侯진군秦軍에게 사양하고서 물길을 따라 내려갔다. 3월 갑진일甲辰日양번陽樊에 주둔하여 우군右軍을 포위하고, 좌군左軍을 맞이하였다.
夏四月丁巳 王入于王城하야 取大叔于溫하야 殺之于隰城하다 戊午 晉侯朝王하니 王享醴하고 命之하다
여름 4월 정사일丁巳日에 왕이 왕성王城으로 들어가서 태숙太叔에서 잡아 습성隰城에서 죽였다. 무오일戊午日진후晉侯가 왕께 조현朝見하니 왕이 단술을 접대하고 하였다.
天下之事 遠近隱顯之所在 初未嘗有定名이라 古非遠也 今非近也 古之事非隱也 今之事非顯也 惟吾心之所見如何耳
천하의 일에는, 먼 일, 가까운 일, 은미隱微한 일, 현저顯著한 일이 있으니, 애당초 정해진 명칭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고대古代의 일이라 하여 먼 것이 아니고, 금세今世의 일이라 하여 가까운 것이 아니며, 고대의 일이라 하여 은미한 것이 아니고, 금세의 일이라 하여 현저한 것이 아니니, 오직 내가 마음속으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먼 일, 가까운 일, 은미한 일, 현저한 일이 결정될 뿐이다.〉
今之所謂甚近而易見者 莫如身之所親歷也어늘 惠王身被子頹簒奪之禍코도 而復寵子帶하고
지금 매우 가까워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는 내가 몸소 겪은 일만 한 것이 없는데, 혜왕惠王자퇴子頹에게 왕위를 찬탈당하는 를 몸소 겪고도 다시 자대子帶를 총애하였고,
鄭伯身見子頹徧舞之僭코도 而復奏備樂하며 襄王身經子帶召戎之變코도 而復親戎狄하니
정백鄭伯육대六代의 음악[편무徧舞]을 연주하는 자퇴의 참람함을 직접 보고도 다시 육대의 음악을 연주[비락備樂]하였으며, 양왕襄王은 자대가 융적戎狄을 불러들인 변란을 몸소 겪고도 다시 융적을 가까이하였다.
身遇之而復身蹈之 何耶 人心蔽於此者 怠於彼일새니라 惠王蔽於愛 故雖近被簒奪之害로되 已如異世而忘之矣
이들이 모두 직접 화를 당하고도 다시 몸소 그 일을 답습한 것은 어째서인가? 사람의 마음은 이 일에 마음이 가려지면 저 일에 마음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혜왕은 자식 사랑에 가려졌기 때문에 근자에 찬탈의 화를 당하고도 이미 다른 세대의 일처럼 잊었고,
鄭伯蔽於侈 故雖近見徧舞之僭이로되 已如異世而忘之矣 襄王蔽於忿이라 故雖近經召戎之變이로되 已如異世而忘之矣니라
정백은 사치奢侈에 가려졌기 때문에 근자에 편무徧舞참용僭用하는 것을 보고도 이미 다른 세대의 일처럼 잊었으며, 양왕은 분노憤怒에 가려졌기 때문에 근자에 융적을 불러들인 변란을 당하고도 이미 다른 세대의 일처럼 잊은 것이다.
是三君者 心一有所蔽하야 雖耳目之所親接者 視之惘然如異世事어든
이 세 임금은 마음이 한 곳에 가려졌기 때문에 귀와 눈으로 직접 듣고 본 것도 마치 아득한 다른 세대의 일처럼 보았는데,
況欲責紂使鑑數百年前之桀하고 責幽厲使鑑數百年前之紂 難矣哉ㄴ저
하물며 주왕紂王에게 수백 년 전 걸왕桀王의 일을 거울 삼으라고 요구하고, 유왕幽王여왕厲王에게 수백 년 전 주왕을 거울 삼으라고 요구한다면 어려울 것이다.
故嘗論之호대 心有所蔽 則以今爲古하고 心無所蔽 則以古爲今이라 是何也
그러므로 나는 일찍이 이렇게 논하였다. 마음에 가려진 것이 있으면 지금의 일을 옛 일로 여기고, 마음에 가려진 것이 없으면 옛 일을 지금의 일로 여긴다. 이는 어째서인가?
心有所蔽하야 釁在前而不見하고 戮在後而不知하며
마음에 가려진 것이 있으면 정욕情欲에 흔들리고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여 흔단釁端(화단禍端)이 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고 살육殺戮이 뒤에 있어도 알지 못하며,
身所親歷 曾未踰時하야 若醉若夢하야 視之猶太古鴻荒之世하야 不復이라 此以今爲古也 惠襄鄭伯之類是也
몸소 겪은 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취중이나 꿈속의 일처럼 모호하여 아득한 태고太古의 일처럼 다시 기억하지 못한다. 이것이 지금의 일을 옛 일로 여기는 것이니, 혜왕惠王양왕襄王정백鄭伯 등이 이에 해당한다.
心無所蔽하야 合千載爲一朝하고 合萬代爲一世하야 與古聖賢으로 更相授受하고 更相酬酢하야
마음에 가려진 것이 없으면 상하 사방上下 四方으로 통하여 천 년을 하루아침으로, 만대萬代일세一世로 여겨, 옛 성현聖賢과 서로 주고받으며 서로 묻고 답하여,
이라 此以古爲今也 舜文之類是也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천도天道〉 가운데서 한마음 한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옛 일을 지금의 일로 여기는 것이니, 임금과 문왕文王부절符節을 맞춘 것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以古爲今 以今爲古 特在吾心之通與蔽耳 曷嘗有定名哉
옛 일을 지금의 일로 여기고 지금의 일을 옛 일로 여기는 것은, 단지 내 마음이 하였느냐 가려졌느냐에 달렸을 뿐이니, 어찌 일찍이 정해진 명칭이 있었겠는가?
嗚呼 人心不可有所蔽也 處當世之事호되 而蔽於私情이면 則雖易見之禍라도 有不能見焉하고
아! 사람의 마음은 가려짐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당세의 일을 처리하면서 사사로운 인정에 가려지면 비록 보기 쉬운 화도 보지 못하고,
論異世之事호되 而蔽於陳迹이면 則雖易見之理라도 有不能見焉이라
고대의 일을 논하면서 옛 사적事迹에 가려지면 비록 보기 쉬운 이치도 보지 못한다.
惠襄鄭伯旣蔽於私情하야 而不能見其禍矣 後世論之 亦未免蔽於陳迹也
혜왕惠王양왕襄王정백鄭伯은 이미 사사로운 인정에 가려져서 그 화를 보지 못하였지만, 후세에 이들의 일을 논하는 자들 또한 옛 사적에 가려짐을 면하지 못하였다.
自其迹觀之 則鄭伯 首唱納惠王者 虢公 從鄭伯而納惠王者
사적으로 보면, 정백은 혜왕惠王을 모셔 들일 것을 먼저 주창主唱한 자이고, 괵공虢公은 정백을 따라 혜왕을 모셔 들인 자이다.
鄭功大로되 而惠王反薄之하고 虢功小로되 而惠王反厚之하니 世皆疑惠王待鄭之薄也니라
정백의 공이 큰데도 혜왕은 도리어 박대薄待하였고, 괵공의 공이 작은데도 혜왕은 도리어 후대厚待하였으니, 세상 사람들은 모두 혜왕이 정백을 박대한 것으로 의심한다.
襄王以狄伐鄭 富辰固諫之하고 襄王召子帶 富辰實導之하니 能見狄之禍 而不見子帶之禍 世皆悔富辰導子帶之失也니라
양왕襄王적인狄人을 거느리고 나라를 정벌할 때 부신富辰이 강력히 간하였고, 양왕이 자대子帶를 불러들일 때는 부신이 실로 인도하였으니, 부신은 적인의 만 알고 자대의 화는 알지 못한 것이니, 세상 사람들은 모두 부신이 자대를 불러들이도록 인도한 잘못을 회한悔恨한다.
惠王失位於齊桓伯諸侯之時하고 襄王失位於晉文伯諸侯之時한대 納襄王者在晉이요 而納惠王者不在齊하니 世皆咎齊桓之納王緩也
혜왕惠王제 환공齊 桓公이 제후의 패자霸者였을 때에 왕위를 잃었고, 양왕襄王진 문공晉 文公이 제후의 패자였을 때에 왕위를 잃었는데, 양왕을 왕경王京으로 모셔 들인 이는 진 문공이고, 혜왕을 모셔 들인 이는 제 환공이 아니었으니,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제 환공이 혜왕을 너무 늦게 모셔 들인 것을 죄로 여겨 나무란다.
揆之以理컨대 則惠王之待鄭薄 本無可疑 富辰之召子帶 本無可悔 齊桓之緩於納王 本無可咎 是豈有難見之理哉
그러나 사리로 헤아려보면, 혜왕이 정백鄭伯을 박대한 것은 본래 의심할 것이 없고, 부신이 자대를 불러들인 것도 본래 회한할 것이 없으며, 제 환공이 혜왕을 늦게 모셔 들인 것도 본래 나무랄 것이 없으니, 여기에 어찌 알기 어려운 이치가 있겠는가?
兩人交訟 其行賂多出於理之曲者하니 蓋恃直則不必賂也 鄭恃功之大而守其常하고 虢慊功之小而獻其諂이라
두 사람이 쟁송爭訟할 때에 뇌물을 쓰는 일은 대체로 잘못이 있어 승소할 수 없는 자에게서 나오니, 이는 잘못이 없는 자는 자기의 곧음을 믿어 뇌물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백鄭伯은 자기의 공이 큰 것을 믿고서 상도常道를 지켰고, 괵공虢公은 자기의 공이 작은 것을 불만으로 여겨 아첨하여 양왕襄王의 비위를 맞추었다.
已往而易忘이요 方至而易惑이니 此惠王之所以厚虢而薄鄭歟ㄴ저
공을 세운 것은 이미 지난 일이어서 잊기 쉽고, 아첨은 지금 이른 것이어서 현혹되기 쉬우니, 이것이 혜왕惠王이 괵공을 후대하고 정백을 박대한 까닭일 것이다.
劉文靖裴寂俱唐室功臣이나 然首建大義 皆文靜之謀 非寂敢望也
류문정劉文靖배적裴寂은 모두 나라의 공신이었지만, 먼저 대의를 세운 것은 문정의 계획이었으니 배적이 감히 비교될 수 없다.
高祖厚寂而薄文靜者 文靜以其功이요 寂以其諂耳注+見唐史本紀ㄹ새니라 人情豈相遠哉리오 故曰 惠王之待鄭薄 本無可疑라하니라
그런데도 당 고조唐 高祖가 배적을 후대하고 문정을 박대한 것은, 문정은 자기의 공을 믿었고, 배적은 아첨으로 고조의 비위를 맞추었기 때문이다.注+당서唐書≫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보인다. 사람의 마음이 어찌 서로 다르겠는가? 그러므로 “혜왕이 정백을 박대한 일은 본래 의심할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兄弟當親이요 戎狄當疎 子帶之不可絶 政如戎之不可通也니라 富辰敎襄王親其所親하고 疎其所疎하니 本無二說이라
형제兄弟는 친근하게 대해야 하고 융적戎狄은 소원하게 대해야 하니, 자대子帶와 형제의 정을 단절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융적과 교통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부신富辰양왕襄王에게 가까이할 사람을 가까이하고, 멀리할 사람을 멀리하라고 가르쳤으니, 본래 이 밖에 달리 더할 말이 없다.
使襄王納其諫하야 而不與狄通이면 則子帶何自而成其惡乎 苟與狄通이면 雖無子帶라도 猶不免於亂也리라
가령 양왕이 그의 간언을 받아들여 융적과 통호通好하지 않았다면 자대가 어떻게 간악한 반역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가령 융적과 통호하였다면 비록 자대가 없었다 하더라도 오히려 융적의 환란을 면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自古與戎狄共功者 未有不爲其하니 唐之回紇注+回紇 本匈奴高車部也 安祿山反 肅宗藉其兵力 復兩京 自是輕功 時入冦邊 晉之契丹注+五代晉高祖 以河東節度使 假契丹援 擧兵滅唐而據其位 割幽燕十六州之地與契丹而臣事之 出帝卽位 不肯稱臣於契丹 大怒 遣使責讓 後大擧入冦 出帝北遷 始借其力이라가 終罹其患하니
예로부터 융적과 함께 공을 이룬 자는 융적의 배반을 당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나라가 회흘回紇注+회흘回紇은 본래 흉노匈奴고차부족高車部族이다.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숙종肅宗이 그들의 힘을 빌려 양경兩京(장안長安낙양洛陽)을 수복하였다. 이때부터 회흘은 을 믿고서 때때로 들어와 변방을 침략하였다. 〈통호하고〉 나라가 거란契丹注+오대五代진 고조晉 高祖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로서 거란契丹응원應援을 빌려 군사를 일으켜 후당後唐을 멸하고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고는, 유주幽州연주燕州 등 16의 땅을 떼어 거란에 주고서 신하의 도리로 거란을 섬겼다. 출제出帝(고조高祖의 형)가 즉위하여 거란에게 신하로 칭하려 하지 않으니, 거란이 크게 노하여 사신을 보내어 꾸짖었다. 뒤에 대군大軍을 일으켜 쳐들어오니, 출제가 요양遼陽에서 북쪽 건주建州천도遷都하였다. 〈통호하여〉 처음에는 두 융적의 힘을 빌렸다가 마침내 융적의 환란을 당하였으니,
彼二國者 亦豈有子帶之釁召之邪 爲襄王者 當以與狄通爲悔 不當以召子帶爲悔也니라 故曰 富辰之召子帶 本無可悔라하니라
저 두 나라에도 어찌 자대 같은 화근이 있어서 융적의 환란을 부른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양왕의 일을 논하는 자들은 융적과 통호한 것을 회한悔恨해야지, 자대를 불러들인 것을 회한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부신이 자대를 불러들인 것은 본래 회한할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天子猶父也 諸侯猶子也 父有難 一子居近而能救之 爲諸子 幸其父之免足矣 何必競其功耶
천자天子는 아비와 같고 제후諸侯는 자식과 같으니, 아비에게 화난禍難이 닥쳤을 때 가까이 있는 한 자식이 아비를 구제하였으면 여러 자식들은 그 아비가 화를 면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 만족해할 것이니, 어찌 그 공을 다투겠는가?
齊桓伯天下 鄭虢納王이로되 而齊桓未嘗爭其功하니 當是時하야 風俗猶厚也ㄹ새니라
제 환공齊 桓公이 천하의 패자霸者가 되었을 때 정백鄭伯괵공虢公혜왕惠王경사京師로 모셔 들였으되 제 환공은 그 공을 다투지 않았으니, 이는 당시의 풍속이 오히려 순후하였기 때문이다.
及襄王之出 晉與秦俱欲納王이나 晉文辭秦師而獨擅其功하니라
양왕襄王이 경사에서 도망해 나왔을 때 진후晉侯진백秦伯이 서로 양왕을 모셔 들이고자 하였는데, 진 문공晉 文公진군秦軍사절謝絶하고서 그 공을 독차지하였다. 외전外傳(≪국어國語≫)에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양왕을 경사로 모셔 들이지 않으십니까?
若不納이면 秦將納之리라 則失周矣 何以求諸侯리오하니 是猶一子欲專救父之名하야 拒諸子使不得前이라
만약 임금께서 모셔 들이지 않으시면 진백秦伯이 모셔 들이려 할 것입니다. 그리 된다면 주왕周王의 마음을 잃게 될 것이니, 어떻게 제후의 신뢰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한 자범子犯에 말이 기재되어 있으니, 이는 한 자식이 아비를 구제하였다는 명예를 독차지하기 위해 여러 자식들을 앞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은 것과 같다.
其心不在於父而在於名하니 安得爲孝乎리오 亦薄矣로다 然則齊桓晉文孰爲咎耶 故曰 齊桓之緩於納王 本無可咎라하니라
그 마음이 아비를 구제하는 데 있지 않고 명예를 얻는 데 있었으니 어찌 가 될 수 있겠는가? 아! 너무나도 야박했다 하겠다. 그렇다면 제 환공과 진 문공 두 사람 중에 누구를 꾸짖어야 하겠는가? 그러므로 “제 환공이 늦게 양왕을 모셔 들인 것은 본래 꾸짖을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後世之論 疑其所不當疑하고 悔其所不當悔하며 咎其所不當咎하니라
그런데 후세의 논의는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의심하고, 회한하지 말아야 할 것을 회한하며, 꾸짖지 말아야 할 것을 꾸짖었다.
역주
역주1 王姚(요) : 莊王의 妾이다. 姚는 姓이다.
역주2 惠王 : 莊王의 손자이다.
역주3 取蔿國之圃以爲囿 : 圃는 園이고, 囿는 苑(짐승을 기르는 곳)이다.
역주4 邊伯 : 周나라 大夫이다.
역주5 子禽祝跪與詹父 : 周나라 大夫이다.
역주6 膳夫之秩 : 膳夫는 石速이다. 秩은 祿이다.
역주7 蘇氏 : 周나라 大夫였는데, 桓王이 그의 12邑을 빼앗아(隱公 11년) 鄭나라에 준 뒤부터 드디어 王室과 不和하였다.
역주8 : 桓王이 탈취한 鄭나라 邑이다.
역주9 徧舞 : 黃帝‧堯‧舜‧夏‧商‧周 등 六代의 음악을 모두 연주하고 그 연주에 따라 춤을 추는 것이다.
역주10 胥命 : 諸侯가 서로 말로 約定하기만 하고 피는 마시지 않는 것이다.
역주11 樂備 : 六代의 음악을 갖추어 연주한 것이다. 六代는 黃帝‧堯‧舜‧夏‧殷‧周를 가리킨다.
역주12 謀寧周也 : 惠王이 惠后 때문에 太子 鄭을 廢하고 王子 帶를 太子로 세우려 하였다. 그러므로 齊 桓公이 제후를 거느리고 王太子와 회합하여 그 위치를 안정시킨 것이다.
역주13 襄王惡(오)大叔帶之難 : 襄王은 惠王의 太子 鄭이다. 太叔 帶는 양왕의 아우이고, 惠后의 아들이다. 혜후는 그를 총애하여 周王으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세우지 못하고 죽었다.
역주14 : ≪詩經≫ 〈小雅 正月〉편이다.
역주15 不與厲公爵 : 僖公 21년에 惠王이 虢公에게는 酒泉(地名)과 술잔을 하사하면서, 鄭伯에게는 盤鑑만 하사하고 술잔을 하사하니, 정백은 왕을 미워하기 시작하였다. 반감은 가죽 띠에 거울을 붙여 장식한 것이다.
역주16 蒙塵 : 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말로, 帝王이 王位를 잃고 외국으로 도망가 있는 것을 이른다.
역주17 : 賓客을 즐겁게 하기 위해 禮物을 주는 것이다.
역주18 觸情縱欲 : 欲情(욕망)에 마음이 흔들려 절제하지 못함을 이른 듯하다.
역주19 省錄 : 기억함이다.
역주20 六通四闢 : 上下 사방으로 통함을 이른다.
역주21 無聲無臭之中 : 天道를 이른다. ≪詩經≫ 〈大雅 文王〉에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네.[上天之載 無聲無臭]”란 말이 보이는데, 鄭玄의 箋에 “하늘의 도는 알기 어려우니,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도 없고, 코로 맡을 수 있는 냄새도 없다.”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幽深하여 헤아릴 수 없는 天道를 이르는 말로 쓰인다.
역주22 和同無間 : 틈 하나 없이 화목하여 한마음이 됨이다.
역주23 若合符節 : 부절을 맞춘 듯이 같다는 말이다. ≪孟子≫ 〈離婁 下〉에 “舜은 諸馮에서 출생하고,……文王은 岐周에서 출생하였으니, 두 지역의 相距가 천여 리이며, 세대의 선후도 천여 년이었으되, 뜻을 얻어 중국에 道을 행한 것은 부절을 맞춘 듯이 똑같았다.[舜生於諸馮……文王生於岐周……地之相去 千有餘里 世之相後 千有餘歲 得志行乎中國 若合符節]”란 말이 보이는데, 朱子의 註에 “符節은 玉으로 만든다. 文字를 篆刻하여 한 중간을 쪼개어 둘로 나누어 피차가 각각 반쪽씩을 가지고 있다가 일이 있으면 왼편의 반쪽과 오른편의 반쪽을 서로 맞추어보고서 信標로 삼는 것이다. 부절을 맞춘 듯하다는 것은 그 도가 같았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역주24 反噬 : 짐승이 도리어 주인을 깨문다는 말로, ‘배반’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역주25 外傳……何以求諸侯 : ≪國語≫ 〈晉語 四〉에 나오는 말이다.

동래박의(2) 책은 2019.1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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