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僖三年
이라 楚人伐鄭
하니 鄭伯欲成
한대 不可曰
어늘 棄德不
이라하다
傳
若出於東方
하야 리라 申侯曰 善
타하다 濤塗以告
한대 하다
申侯見曰
나 若出於陳鄭之間
하야 共其資糧
屨
면 其可也
리이다
傳
[左傳]僖五年
이라 陳轅宣仲怨鄭申侯之反己於召陵
이라 故勸之城其
曰 美城之
하라
니 子孫不忘
하리라 吾助子請
하리라하고 乃爲〈之〉請於諸侯而城之
하니 美
어늘
遂譖諸鄭伯曰 美城其賜邑하니 將以叛也라 申侯由是得罪하다
鄭伯喜於王命而懼其不朝于齊也
라 故逃歸不盟
하다 하고
失親
이면 患必至
하리이다 病而乞盟
이면 所喪多矣
리니 君必悔之
리이다 弗聽
하고 하다
傳
[左傳]僖七年
이라 春
에 하니 孔叔言於鄭伯曰 諺有之曰
가
旣不能强하고 又不能弱이 所以斃也니이다 國危矣니 請下齊以救國하소서
夏
에 하니 라 初
에 申侯
는 라 有寵於楚文王
이러니
文王將死에 與之璧하야 使行曰 唯我知女로라 女專利而不厭하야 予取予求로되 不女疵瑕也어니와
하리니 女必不免
하리라 我死
어든 女必速行
호되 하리라
旣葬
에 出奔鄭
하야 又有寵於厲公
하다 子文聞其死也
하고 曰 古人有言曰 知臣莫若君
이라하니 로다
注
[主意]謂世俗之論은 徇時者通하고 忤時者窮이라하나 然春秋之時에 孔叔忤時로되 而免於禍하고
申侯徇時로되 而殺其身하니 世俗之論을 殆未可信也로다 末說小人以遇治世爲幸하고 遇亂世爲不幸은 議論尤高라
怠善而長姦者는 莫如徇時之說이라 是說之行於世가 不知其幾年矣라 持之有故也하고 擧之有證也며 辨之有理也하니 無惑乎傾天下而從之也라
其說曰 徇時者通
注+人能隨時上下 無往不通하고 忤時者窮
注+若揣時而獨行己志 無往不窮이라 天下堯舜
이로되 而我獨共鯀
注+共工伯鯀 爲惡於堯舜之時이라 是以有放殛之刑
注+此忤時爲惡而得禍者 舜流共工于幽洲 殛鯀于羽山하고
天下桀紂
로되 而我獨湯文
注+成湯文王 爲善於桀紂之時이라 是以有幽縶之禍
注+此忤時爲善而得禍者 桀囚湯於夏臺 紂囚文王於羑里하니라 故崇山幽洲之竄宜也
注+見尙書요 夏臺羑里之囚亦宜也
注+見史記라
亂世之不利爲善
注+如湯文之類是이 猶治世之不利爲惡也
注+如共鯀之類是 此二句鎭上文니
子欲爲善於亂世
注+春秋是亂世 所以此下只言亂世不宜爲善ㄴ댄 盍先自省
注+爲善者 何不先自省察 能飢乎
아 能寒乎
아 能傲炎荒而輕髡鉗乎
注+炎荒 瘴地也 髡 削髮也 鉗 械手足也 問爲善者 能甘受炎荒之竄 髡鉗之刑乎아 能嗜刀鋸而親碪質乎
注+刀鋸 刑人之具也 碪質 斬人之具也 問爲善者 能甘受刑誅乎아
能也
ㄴ댄 固可忤時而獨行其志也
어니와 如曰未能
注+苟未能受此竄逐刑誅 何不徇時以徼求恩寵 保全其身乎인댄 盍亦隨時上下
하야 以徼寵保身哉
아
에 이 十人而九矣
注+徇時者多 守道者少니 噫嘻
라 世之君子果何道而排之乎
注+言有何道可以排斥世俗之說아
春秋之時
는 澆僞蠭起之時也
注+此時風俗澆薄 詐僞如蠭之起니 徇時而生者
도 吾見其人矣
注+如下文 祭仲潘崇是요 忤時而死者
도 吾見其人矣
注+如下文 洩冶伯宗是로라
祭仲潘崇之顯榮
注+과 洩冶伯宗之戮辱
注+ 而公弗禁 此洩治之忤時而死也 伯宗 晉大夫 爲所譖而殺之 初伯宗每朝 其妻必告之曰 子 好直言 必及於禍 此伯宗之忤時而死也은 皆世俗所指以藉
也
注+世俗之說 往往指此事以爲戒니라
盖嘗以齊楚爭鄭之際觀之
注+轉入主意 ○齊伯楚疆 爭欲服鄭國矣컨대 鄭伯之臣
注+謂孔叔申侯에 終始主齊
하야 不變其說者
는 孔叔也
注+鄭伯欲從楚 而孔叔不可 鄭伯欲逃歸 而孔叔止之 此忤時者也요
反覆趨利
하야 且齊且楚者
는 申侯也
注+申侯有寵於楚文王 王將死與之璧使行 遂適鄭 又有寵於厲公 餘見本題註 此徇時者也라 格之以世俗之說
注+格猶質正也이면 則孔叔之樸固膠滯
注+拘執不通는 殆難免乎今之世
注+忤時如此 宜其取死요
申侯持詭譎之術
注+如反轅濤塗於召陵之類하야 遇澆僞之時
注+正當春秋 澆僞蠭起之時하니 所謂卉之春稼之秋也
라 然孔叔卒無纖芥之禍
하고 而申侯反以殺其身
注+申侯 徇時得志 如花卉之逢春 禾稼之遇秋也 則世俗忤時者窮之說 不驗矣 則世俗徇時者通之說 不驗矣하니
則世俗之說
을 果可盡信耶
注+發明主意以破世俗之說아 附丁傅者
는 皆貴於哀帝之朝
注+又引漢事 丁傳二太后家也로되 而朱博以丁傅敗
注+初哀帝祖母定陶太后 欲求稱尊號 傅喜孔光共持正議 傅晏亦太后弟 諂諛欲順旨 會博新徴爲京兆尹 相與交結 謀成尊號 由是 罷喜就國 免光爲庶人 以博代光爲丞相 太后使晏風令奏免喜侯 博與御史趙玄 幷奏喜無益於治 請免爲庶人 上知傅太后素常怨喜 疑博玄承旨 詔彭宣雜問 宣等劾奏 博執左道虧損上恩 以結信貴戚 附下罔上 爲臣不忠不道 請召博等 詣廷尉 詔獄 博遂自殺하고
獻符命者
는 皆侯於王莽之世
注+王莽 亦漢外戚 稱符命僭位爲天子로되 而劉棻以符命誅
注+王莽 簒位時 爭爲符命封侯 其不爲者 相戲曰 獨無天帝書乎 司命陳崇白莽曰 此開姦臣作福之路 而亂天命 宜絶其源 莾亦厭之 遂使趙竝驗治 非五威將帥班 皆下獄 甄豐及其子尋皆敗 豐自殺 尋隨方士入華山 嵗餘捕得 辭連隆威侯劉棻 及公卿親黨 列侯以下 死者數百人하니 昔之君子 介然自守
하야 忤時不悔者
는 其知之矣
注+君子樂天知命 不爲窮通得喪變其所守 盖知此理者也 如朱博劉棻之徒 猶不免禍 則徇時者 果何益哉니라
嗚呼
注+此下一段議論 出人意表라 治世者
는 小人失志之時也
注+此亦世俗之說요 亂世者
는 小人得志之時也
라 爲小人禱者
는 必祝其遇亂世而毋遇治世
하니
抑不知事有大繆不然者
注+轉說 小人遇治世 適以全身 遇亂世 適以被禍 議論極佳니라 小人之在治世
에 片言犯義
면 則鐫譙至
注+不得肆其所欲言하고 跬步觸法
이면 則譴責來
注+不得逞其所欲爲니라
含毒蓄險
注+含害人之毒 蓄陰謀之險하야 鬱不得吐
注+有此毒險 而無所施하니 信乎其不得志也
注+應前失志之時로다 然抑其惡
이 所以全其身
注+雖不得志 而亦無害이니 愛小人者
가 孰有加於治世乎
注+不可謂不得志아
嚴師之箠楚
注+以譬小人受君子之鐫譙요 慈母之呵叱
注+以譬小人受君子之譴責이니 吾見其恩
이요 而不見其讐也
注+小人受君子之恩 不令以君子爲仇로라
亂世則反是矣
注+小人得志之時하야 貪大者
는 家亦大
注+貪墨之甚 其家愈肥하고 詐高者
는 位亦高
注+詐僞之深 其官愈尊니라
群讙輩囂
注+小人成黨 相扇而起하고 競於爲惡
注+競爲敗國之事하야 不至於覆宗絶祀
면 不止也
注+一時雖得志 終有殺身滅族之禍라
有餌焉以馨其鉤
注+如以香餌爲釣鉤 魚爲所誘而呑焉하고 有錦焉以華其阱
注+如以文錦覆陷阱 人爲所誘而隕焉이니 安得不誘而納之死地乎
注+雖得志 而終不免禍아
此申侯所以狃爲惡之利而至斯極也
니라 嗚呼
라 小人者
는 毋以遇亂世爲幸哉
注+其爲小人之戒ㄴ저
傳
희공僖公 3년, 초인楚人이 정鄭나라를 토벌討伐하니 정백鄭伯이 초楚나라와 화친和親하고자 하였다. 그러자 공숙孔叔이 불가不可하다고 하며 “제齊나라가 바야흐로 우리나라를 위해 근로勤勞하고 있는데, 그 은덕恩德을 저버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제齊나라가 진陳나라의 원도도轅濤塗를 잡아 가두다
傳
희공僖公 4년, 진陳나라 원도도轅濤塗가 정鄭나라 신후申侯에게 말하기를 “군대가 진陳나라와 정鄭나라 사이로 행군行軍하면 우리 양국兩國이 틀림없이 심한 피해를 입을 것이지만,
동쪽으로 행군行軍하여 동이東夷에게 무력武力을 과시誇示하고서 해변海邊을 따라 회군回軍한다면 우리 양국에는 아무 피해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니, 신후申侯가 “좋다.”고 하였다. 원도도轅濤塗가 제후齊侯에게 고하니 제후齊侯가 허락하였다.
신후申侯가 제후齊侯를 알현謁見하고서 말하기를 “군대가 출정出征한 지 오래되어 모두 지쳐있으니 만약 동쪽으로 행군하다가 적이라도 만난다면 군대를 쓸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진陳나라와 정鄭나라 사이로 행군하면서 군량軍糧‧신발 등을 공급받는다면 아무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제후齊侯는 기뻐하여 신후申侯에게 호뢰虎牢를 주고, 진陳나라의 원도도轅濤塗를 잡아 가두었다. 가을에 진陳나라를 토벌討伐하였으니, 이는 원도도轅濤塗의 불충不忠을 토벌한 것이다. 겨울에 진陳나라가 화친和親을 요청하니 원도도轅濤塗를 진陳나라로 돌려보냈다.
신후申侯가 하사받은 읍邑에 성을 쌓다‧정백鄭伯이 도망하여 돌아가다
傳
희공僖公 5년, 진陳나라 원선중轅宣仲(원도도轅濤塗)은 정鄭나라 신후申侯가 소릉召陵에서 자기를 배반한 것을 원망하였다. 그러므로 신후申侯에게 하사받은 읍邑에 성을 쌓으라고 권하기를 “아름답게 성을 쌓아라.
명성名聲을 크게 하는 것이니 자손들이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대를 도와 청하겠다.”고 하고서, 신후申侯를 위해 제후諸侯에게 요청하여 성을 쌓으니 그 성이 아름다웠다.
그러자 원선중轅宣仲은 드디어 정백鄭伯에게 “신후申侯가 하사받은 읍邑에 성을 아름답게 쌓았으니, 이는 장차 그 성을 근거지根據地로 삼아 배반하려는 것입니다.”라고 참소하였다. 신후申侯는 이로 인해 죄罪를 얻었다.
가을에 제후가 결맹結盟할 때에 주 혜왕周 惠王이 주공周公을 보내어 정백鄭伯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하였다. “내가 그대를 위무慰撫해 초楚나라를 따르게 하고 또 진晉나라에게 그대를 돕게 할 것이니, 그러면 그대 나라가 조금은 평안해질 것이다.”
정백鄭伯은 왕명王命에 대해서는 기뻐하였으나 제齊나라에 조현朝見하지 않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도망해 돌아오고 맹약에 참여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자 공숙孔叔이 말리며 말하기를 “국군國君은 경솔히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경솔하면 가까운 나라를 잃고,
가까운 나라를 잃으면 환란患亂이 반드시 닥칩니다. 환란이 닥친 뒤에 맹약하기를 구걸求乞한다면 잃는 것이 많을 것이니, 임금님께서는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으나, 듣지 않고서 군대는 그대로 두고서 혼자 도망해 돌아갔다.
정鄭나라가 신후申侯를 죽여 제齊나라에 해명하다
傳
희공僖公 7년, 봄에 제인齊人이 정鄭나라를 토벌하니, 공숙孔叔이 정백鄭伯에게 말하였다. “속담에 ‘마음은 강强하지 못하면서 무엇 때문에 굴욕屈辱은 두려워하는가?’라고 하니,
이미 강强하지 못하면서 약자弱者로 처신하지 않는 것이 패망敗亡하는 길입니다. 나라가 위태로우니 제齊나라에 항복하여 나라를 구제救濟하소서.”
정백鄭伯이 말하였다. “나는 저들이 온 까닭을 알고 있으니 우선 잠시 내가 하는 대로 기다리라.” 공숙孔叔이 대답하였다. “아침 이슬이 저녁까지 갈 수 없듯이 사태가 절박하니 어찌 임금님께서 하시는 대로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여름에 정鄭나라가 신후申侯를 죽여 제齊나라에 해명하였으니, 이 또한 진陳나라 원도도轅濤塗의 참소를 따른 것이다. 당초에 신후申侯는 신출申出로 초 문왕楚 文王에게 총애를 받았다.
문왕文王이 임종臨終 때 신후申侯에게 옥벽玉璧을 주어 떠나게 하며 말하였다. “오직 나만이 너를 안다. 너는 오로지 사리私利만 생각하고 만족할 줄을 몰라 나에게서 취해 가고 나에게 요구하였으나, 나는 너를 허물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인後人은 너에게 많은 재물財物을 요구할 것이니 너는 반드시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죽거든 너는 빨리 떠나되 작은 나라로 가지 말라. 작은 나라는 너를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문왕文王의 장사를 지낸 뒤에 신후申侯는 정鄭나라로 도망가서 또 정 여공鄭 厲公의 총애를 받았다. 자문子文은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옛사람의 말에 ‘신하를 알아보는 데는 그 임금만 한 이가 없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고칠 수 없는 말이다.”
注
세속에서 의론하기를, 때를 따르는 자는 형통亨通하고 때를 거스르는 자는 궁색窮塞하다고 한다. 그러나 춘추시대에 공숙孔叔은 때를 거슬렀으나 화를 면하였고,
신후申侯는 때를 따랐으나 자신이 죽임을 당하였으니, 세속의 의론은 그다지 믿을 수 없을 듯하다. 결말에 소인小人이 치세를 만난 것이 다행이고 난세를 만난 것이 불행이라고 하였으니, 의론이 더욱 고상하다.
선행善行을 나태하게 하고 간악姦惡을 조장하게 하는 것은 ‘때를 따르다’는 말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 이 말이 세상에 퍼진 것이 몇 년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이 말을 지키는 데에 이유가 있고, 행하는 데에 징험할 수 있으며, 이치로 분별할 수 있으니, 온 천하 사람들이 이 말을 따름이 이상할 것이 없다.
그들이 하는 말은 아래와 같다. “때를 따르는 자는 형통하고
注+사람이 때에 따라 알맞게 행한다면 어디서나 형통하지 않을 때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때를 거스르는 자는 궁색하다.
注+만약 때를 헤아리면서도 홀로 자기의 뜻만 행한다면 어디서나 궁색하지 않을 때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천하 사람들이
요堯‧
순舜을 따르는데도 나만 홀로
공공共工이나
백곤伯鯀의 행동을 하기
注+공공共工과 백곤伯鯀은 요堯‧순舜 때에 악행을 저질렀던 인물이다. 때문에 추방당하여 죽게 되는 형벌이 있었고,
注+이것은 때를 거스르고 악행을 저질러 화를 받은 경우이다. 순舜임금이 공공共工을 유주幽洲에 귀양 보내고, 곤鯀을 우산羽山에서 죽였다.
천하 사람들이
걸桀‧
주紂를 따르는데 나만 홀로
탕왕湯王이나
문왕文王 같은 행동을 하기
注+탕왕湯王과 문왕文王은 걸왕桀王과 주왕紂王 때에 선善을 행한 분이다. 때문에 구속되는 화를 당한 것이다.
注+이것은 때를 거슬러 선을 행하여 화를 얻은 경우이다. 걸桀은 탕왕湯王을 하대夏臺에 가두었고, 주紂는 문왕文王을 유리羑里에 가두었다. 그러므로 공공이나 백곤이
숭산崇山과
유주幽洲에 귀양 간 일이 마땅하고,
注+≪상서尙書≫에 보인다. 탕왕이나 문왕이
하대夏臺와
유리羑里에 갇힌 일도 마땅하다.
注+≪사기史記≫에 보인다.
난세亂世에
선善을 행하는 것이 이롭지 못한 것이,
注+탕왕湯王과 문왕文王 같은 부류가 여기에 해당한다. 치세治世에
악惡을 행하는 것이 이롭지 못한 것과 같다.
注+공공共工과 백곤伯鯀 같은 부류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두 구절은 윗글을 압도한다.
그러니 그대가 난세에 선을 행하고자 한다면,
注+춘추시대는 난세이다. 이 때문에 아래 글에서 단지 ‘난세에 선善을 행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하였다. ‘굶주림을 견딜 수 있을까?’, ‘추위를 견딜 수 있을까?’, ‘먼 곳으로의 귀양도 오만하게 버티고, 머리가 깎이고 형틀에 매이는 일도 가벼이 여길 수 있을까?’,
注+선善을 행하는 자가 어찌 먼저 스스로 살펴보지 않느냐는 말이다. ‘형벌에 쓰는 칼과 도끼를 좋아하고, 목을 베는 모탕을 가까이할 수 있을까?’
注+염炎은 풍토병이 있는 먼 지역이고, 곤髡은 머리를 깎이는 것이며, 겸鉗은 손발에 형구刑具를 차는 것이다. 선善을 행하는 자가 어찌 풍토병이 있는 먼 지역에 유배 갈 수 있으며 머리를 깎이고 형구를 차는 형벌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하는 것을 어찌 먼저 살펴보지 않는가?
注+도거刀鋸는 죄인에게 벌 주는 형구刑具이고, 침질碪質은 죄인의 목을 베는 형구이다. 선善을 행하는 자가 어찌 형틀에 매달리거나 주벌을 감수할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이런 것을 견뎌낼 수 있다면 진실로 때를 거슬러 홀로 그 뜻을 행할 수 있겠지만, 만일 견뎌낼 수 없다면
注+만일 이런 유배와 형벌을 받을 수 없다면, 어찌 때를 좇아 은총을 구하여 자신을 보전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어찌 시대에 따라 어울려
요행僥倖과
총애寵愛로 자신을 보전하려 하지 않는가?”
이
설說이
유행流行하자 모방해 따르거나 영향을 받은 자가 열에 아홉이나 되는데,
注+때를 따르는 자는 많고, 도를 지키는 자는 적다는 말이다. 아, 세상의 군자가 과연 무슨 방도로 이 말을 배척할 수 있겠는가?
注+어찌 세속의 말을 배척할 수 있는 방도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는 경박한 속임수가 벌떼처럼 일어난 때이니,
注+이 시대에 풍속이 경박하여 속임수와 거짓이 벌떼처럼 일어났다는 말이다. 이 시대에 때를 따랐기 때문에 살아난 자도 나는 보았고,
注+아래 글의 채중祭仲과 반숭潘崇이 여기에 해당한다. 때를 거슬렀기 때문에 죽은 자도 나는 보았다.
注+아래 글의 설야洩冶와 백종伯宗이 여기에 해당한다.
채중祭仲과
반숭潘崇은 현달하여 영화를 누렸으며,
注+채중祭仲은 정鄭나라 대부이다. 소공昭公을 쫓아내고 여공厲公을 받아들였다가, 다시 여공厲公을 쫓아내고 소공昭公을 받아들였다. 고거미高渠彌가 소공昭公을 시해하고 자미子亹를 세웠으나, 채중祭仲은 또한 위법을 따르고 토벌하지 않았다. 이에 제 양공齊 襄公이 자미子亹와 회합할 때에 그곳에서 고거미高渠彌를 죽였는데, 채중祭仲은 이 사실을 알고서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아 마침내 화를 면하였다. 이것이 채중祭仲이 때를 좇아 살아났다는 것이다.
반숭潘崇은 초楚나라 태자 상신商臣의 스승이다. 성왕成王이 상신商臣을 태자의 자리에서 폐하고 왕자직王子職을 세우려 하자 상신商臣이 반숭潘崇에게 상의하였는데, 반숭潘崇은 상신商臣에게 왕을 시해하고 스스로 왕이 되라고 가르쳤다. 이 일로 반숭潘崇은 상을 받았다. 이것이 반숭潘崇이 때를 좇아 살아났다는 것이다. 설야洩冶와
백종伯宗은 치욕을 받고 죽었으니,
注+설야洩冶는 진陳나라 대부大夫이다. 진 영공陳 靈公이 공녕孔寧‧의행보儀行父와 함께 하희夏姬와 간음하니, 설야洩冶가 잘못을 고칠 것을 간언하였다. 영공靈公이 공녕孔寧‧의행보儀行父 두 사람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공녕孔寧‧의행보儀行父가 설야洩冶를 죽일 것을 청하였는데, 영공은 이 일을 금하지 않았다. 이것이 설야洩冶가 때를 거슬러 죽게 된 이유이다.
백종伯宗은 진晉나라 대부인데 삼극三郤에게 참소받아 죽었다. 당초 백종伯宗이 조회에 나아갈 때마다 그의 아내가 “당신은 직언하기를 좋아하니 반드시 화를 당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백종伯宗이 때를 거슬러 죽게 된 이유이다. 이들은 모두 세속에서 지적하여 구실로 삼는 자들이다.
注+세속의 말은 종종 이 일을 가리켜 경계로 삼는다.
제齊나라와
초楚나라가
정鄭나라를 차지하고자 다툴 때를 관찰해보면,
注+주제로 전환하였다. ○패자霸者인 제齊나라와 강자强者인 초楚나라가 다투어 정鄭나라를 복종시키고자 하였다. 정백鄭伯의 신하 가운데
注+공숙孔叔과 신후申侯를 이른다. 시종일관 제나라를 주인으로 여기고 말을 바꾸지 않은 자는
공숙孔叔이고,
注+정백鄭伯이 초楚나라를 따르고자 하였으나 공숙孔叔은 안 된다고 하였고, 정백鄭伯이 도망하여 돌아가고자 하였으나 공숙孔叔이 저지하였으니, 이것이 때를 거슬렀다는 것이다.
변덕스럽게 이익을 좇아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를 갈팡질팡한 자는
신후申侯이다.
注+초 문왕楚 文王이 신후申侯를 총애하여 왕이 죽으려 할 때에 그에게 구슬을 주어 떠나게 하였다. 신후는 마침내 정鄭나라로 가서 또 정 여공鄭 厲公에게 총애를 받았다. 나머지는 본편에 인용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보인다. 이것이 때를 따랐다는 것이다. 세속의 말로 질정해보면,
注+격格은 질정質正한다는 말과 같다. 질박하고 고루한 공숙은
注+고집스러워 세속과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요즘 세상에 화를 면하기 어려울 듯하고,
注+때를 거스름이 이와 같으면 의당 죽임을 당할 것이다.
속임수를 가진 신후는
注+소릉召陵에서 원도도轅濤塗를 배반한 부류와 같은 일이다. 경박하고 거짓된 시대를 만났으니
注+바로 춘추春秋는 경박한 속임수가 벌떼처럼 일어난 때이다. 이른바 꽃이 봄을 만나고 벼가 가을을 만난 것과 같다. 그런데도 공숙은 마침내 티끌만 한 화도 당하지 않았고, 신후는 도리어 자신을 죽게 만들었으니,
注+신후申侯가 때를 좇아 뜻을 얻은 것이, 꽃이 봄을 만나고 벼가 가을을 만난 것과 같으니, ‘때를 거스른 자는 궁색하다’는 세속의 말을 징험할 수 없고, ‘때를 따르는 자는 형통하다’는 세속의 말도 징험할 수 없다는 말이다.
세속의 말을 과연 다 믿을 수 있겠는가?
注+주의主意를 설명하여 세속의 말을 논파하였다. 그러나
정태후丁太后와
부태후傅太后를 따르는 자들은 모두
애제哀帝의 조정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으나
注+또한 한漢나라의 일을 인용하여 정태후丁太后와 부태후傅太后 두 집안에 대하여 말하였다. 주박朱博은 정태후와 부태후 때문에 패망했고,
注+예전에 후한 애제後漢 哀帝의 조모祖母인 정도태후定陶太后가 존호尊號를 받고자 하였는데, 부희傅喜와 공광孔光이 모두 바른 법도에 어긋난다고 반대하였다. 부안傅晏은 태후太后의 동생으로서 태후에게 아첨하여 그녀의 뜻을 따르고자 하였는데, 마침 경조윤京兆尹에 새로 임명된 주박朱博과 결탁하여 존호 올리는 일을 도모해 성사시켰다. 이로 말미암아 부희傅喜는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고, 공광孔光은 서인이 되었으며, 주박朱博은 공광孔光을 대신하여 승상丞相이 되었다.
태후太后가 부안傅晏을 시켜 〈주박朱博에게〉 부희傅喜의 후작侯爵을 파면하도록 풍간諷諫하여 상주上奏하게 하였는데, 주박朱博이 어사 조현御史 趙玄과 함께 ‘부희傅喜가 국정에 무익하니 파직하여 서인으로 삼을 것’을 아울러 상주하였다. 상上이 부태후傅太后가 평소 부희傅喜를 원망함을 알고 주박朱博과 조현趙玄이 태후의 뜻을 받든 것이라고 의심하여 팽선彭宣에게 조서를 내려 심문하게 하니, 〈죄상이 밝혀졌다.〉 팽선彭宣 등이 “주박朱博은 부정한 도의로 임금의 은혜를 손상시키고, 귀척대신貴戚大臣들과 결탁하여 아랫사람과 부화뇌동하여 윗사람을 기망하였으니, 불충不忠하고 부도不道한 신하입니다. 주박朱博 등을 정위廷尉에게 회부하여 형옥刑獄으로 다스리게 하소서.”라고 탄핵하자, 주박朱博이 마침내 자살하였다.
부명符命을 바친 자들은 모두
왕망王莽의 시대에 제후에 봉해졌으나
注+왕망王莽도 한漢나라 외척外戚으로서 부명符命(황제가 될 조짐을 쓴 비기秘記)을 칭탁하고 참람되이 자리에 나아가 천자가 되었다. 유분劉棻은
부명符命 때문에 주벌당했으니,
注+왕망王莽이 찬탈했을 때, 다투어 부명符命을 바친 자들을 후侯에 봉해주자, 부명符命을 바치지 않은 자들이 서로 비꼬기를 “어찌 황제의 제서除書(임명장)가 없는가?”라고 하였는데, 사명司命인 진숭陳崇이 왕망王莽에게 고하기를 “이는 간신姦臣들에게 복福을 조작하는 길을 열어놓는 것이고 천명天命을 어지럽히는 것이니 그 근원을 끊어야 합니다.” 하였다.
왕망王莾도 이 일을 꺼려 마침내 조병趙竝에게 조사하여 치죄하게 하고 〈부명符命을 바친 자로서〉 오위장수五威將帥의 반열에 있는 자가 아니면 모두 하옥下獄하게 하니, 견풍甄豐과 그의 아들 견심甄尋이 모두 패하여, 견풍甄豐은 자살自殺하고 견심甄尋은 방사方士를 따라 화산華山으로 들어갔으나 1년여 뒤에 체포되었다. 융위후 유분隆威侯 劉棻과 공경公卿의 친당親黨들도 연루되어 열후列侯 이하로서 죽은 자가 수백 인이었다. 올곧게 자신을 지켜 때를 거슬러도 후회하지 않았던 옛날의 군자는 이치를 알았다.
注+군자君子는 천리天理를 즐기고 천명天命을 알기 때문에 곤궁하고 통달하며 얻고 잃는 것에 의해 지키는 것을 바꾸지 않으니 이는 이치를 아는 자이다. 주박朱博과 유분劉棻 같은 무리는 오히려 화를 면하지 못하였으니, 때를 좇는 것이 과연 유익하겠느냐는 말이다.
아,
注+이 이하의 의론은 보통 사람의 생각 밖을 표현하였다. 치세治世는
소인小人이 뜻을 잃는 때이고,
注+이 또한 세속의 말이다. 난세亂世는
소인小人이 뜻을 얻는 때이다. 소인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는 반드시 소인이 난세를 만나고 치세를 만나지 말 것을 축원한다.
그러나 이는 크게 어긋나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注+소인小人이 치세治世를 만나면 몸을 온전히 하기에 적당하고, 난세를 만나면 화를 입기에 적당하다고 전환하여 말하였으니, 의론이 매우 훌륭하다. 치세에는 소인이 정의를 침범하는 말 한마디를 하면 훈계와 꾸지람이 이르게 되고,
注+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법에 저촉되는 행보를 조금이라도 하면 견책이 이른다.
注+자기가 하고 싶은 바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속으로 독을 품고 음험함을 쌓고 있어도
注+남을 해치는 독을 머금고 몰래 도모하는 음험함을 쌓는 것이다. 꽉 막혀 뱉어낼 수가 없으니,
注+이런 독과 음험함이 있어도 시행할 곳이 없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진실로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注+앞글의 ‘실지지시失志之時’에 호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행을 억제하는 것이 자신을 온전히 하는 방법이니,
注+비록 뜻을 얻지 못할지라도 해로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소인을 사랑하는 것 중에 치세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注+뜻을 얻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이다.
엄한 스승의 회초리와 같고
注+소인小人이 군자君子의 타이름과 꾸지람을 받는 것을 비유하였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꾸지람과 같으니,
注+소인小人이 군자君子의 견책을 받음을 비유하였다. 나는 이런 일을 은혜로 여기고 원수로 여기지 않는다.
注+소인小人이 군자君子의 은혜를 받고 군자를 원수로 여기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난세는 이와 반대여서
注+소인小人이 뜻을 얻었을 때를 말한다. 탐욕이 큰 자는 그가 사는 집도 크고,
注+탐욕이 심할수록 그 집안이 더욱 비옥하다는 것이다. 속임수가 높은 자는 그의 지위도 높다.
注+속임수가 깊을수록 그 관직이 더욱 높다는 것이다.
무리들이 떼 지어 시끄럽게 부추기고
注+소인小人들이 무리를 이루어 서로 부추기며 일어난다는 말이다. 다투어 악행을 저질러
注+나라를 망치는 일을 다투어 한다는 것이다. 종족을 멸망시키고 제사를 끊는 데에 이르러서야 그만둔다.
注+한때 비록 뜻을 얻을지라도 끝내 자신이 죽고 종족이 멸망되는 화를 당한다는 말이다.
미늘에 맛나게 달려있는 미끼와
注+맛난 미끼로 낚싯대의 미늘을 만든 것과 같으니, 물고기가 유혹되어 그 미늘을 삼키는 것이다. 함정을 화려하게 덮고 있는 비단을 보고,
注+문채 나는 비단으로 함정을 덮어놓는 것과 같으니, 사람들이 유혹되어 그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어찌 유혹되어
사지死地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注+비록 뜻을 얻었을지라도 끝내 화를 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이
신후申侯가 악행을 저지르는 이로움에 빠져 이와 같은 극단에 이르게 된 이유이다. 아, 소인은 난세를 만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 말지어다.
注+소인小人을 위한 경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