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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4)

동래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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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 楚滅六蓼
【左傳】 文五年이라 六人叛楚卽東夷하니仲歸帥師滅六하다子燮滅蓼하다
臧文仲聞六與蓼滅하고不祀忽諸로다
物莫不惡傷其類 桃僵而李仆 若樗若櫟 必不爲之仆 何也 非其類也ㄹ새니라
芝焚而蕙歎이나 若蕭若艾 必不爲之嘆 何也 非其類也ㄹ새니라
楚人滅江 而秦穆爲之憂注+하니 君子未嘗疑焉이라
秦之與江 同諸侯也 同盟會也 同利害也 類同則憂同 固其所也
臧文仲 魯國一大夫耳 大夫 하니 其視他國之休戚 固非職所當憂어든
況六與蓼邈然在江淮之間하야 自魯視之이니 其存與亡 何與於魯大夫事哉
而臧文仲一聞其滅 蹙頞深憂하고 且遠傷皐陶之不祀하니 此世之所以共疑其闊於事情也
見故人之子顚頓困阨이면 則惻怛流涕하야 解衣推食之不暇 他日遇塗人之子 則是心衰焉이라
必厚其父祖然後 憐其子孫者 人之常也
皐陶之沒 下竟春秋千有餘年矣
臧文仲生千有餘年之後하니 初不識皐陶於何地 友皐陶於何時어늘 而視其子孫之亡하고 憫惜痛悼하야 不啻數十年膠漆之契하니 是心安從生哉
類之同者 移千歲爲一朝하고 類之異者 暌一朝爲千載 皐陶之所與同朝者 曰共, 曰鯀, 曰兜, 曰苗 禮貌非不相際也 言語非不相接也
然一則在雲天之上하고 則在沮洳之下하며 一則在風塵之表하고 一則在膏火之中하니 對席而分胡越하고 接步而判古今이라
想共鯀兜苗之心 其視皐陶如寇讐然하야 日夜伺隙하야 惟恐害皐陶之無路耳어늘 矧有閔惜其子孫之意哉 是所謂時同而類異者也
天下之理 未嘗無對하니 旣有時同而類異者 亦有時異而類同者리라
故皐陶近不與共鯀兜苗爲類於唐虞之朝하고 而遠與臧文仲爲類於春秋之世하니라
想文仲之心 仰不知皐陶之在唐虞하고 俯不知身之在春秋하야 無形之中 自相拜酬하고 無聲之中 自相하야 跡遠而心近하고 跡疏而心親하니 此所以見皐陶之不祀하고 慨嘆憫惜 不能自已 殆甚於合堂同席之交하니라
大抵君子 必與君子合하고 小人 必與小人合하니 學者欲自驗其心인댄 盍以是觀之
吾見君子失志而憂하고 見君子之子孫衰替而憂 則是吾心與君子合也 吾見君子失志而不憂하고 見君子之子孫衰替而不憂 則是吾心不與君子合也
憂人之憂 本未足稱이나 然吾心與君子合則大可喜 不憂人之憂 本未足貶이나 然吾心不與君子合이면 則大可懼
欲占吾心於君子合與不合인댄 當察吾心於君子憂與不憂
自省之術 孰要於此哉


나라가 나라와 나라를 하다
문공文公 5년, 육인六人나라를 배반하고 동이東夷에 붙으니, 가을에 나라의 성대심成大心중귀仲歸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멸하였다. 겨울에 나라 공자公子 나라를 멸하였다.
장문중臧文仲나라와 나라가 멸망하였다는 말을 듣고서 말하였다. “고요皐陶()와 정견庭堅제사祭祀가 갑자기 끊기게 되었구나. 을 세우지 않아 백성들이 구원救援하지 않아서이니 슬프도다.”
동류同類상해傷害를 입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물건이 없다. 복숭아나무가 엎어지면 오얏나무는 넘어지지만 가래나무와 상수리나무 같은 경우는 반드시 복숭아나무를 위해 넘어지지 않으니, 이는 어째서인가? 동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초芝草가 불에 타면 혜초蕙草는 탄식하지만 쑥과 약쑥 같은 경우는 반드시 지초를 위해 탄식하지 않으니, 이는 어째서인가? 동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초인楚人나라를 하자 목공穆公나라를 위해 근심하였으니,注+≪春秋左氏傳≫ 文公 4년에 보인다. 군자君子는 〈목공穆公의 근심에 대해〉 일찍이 의심하지 않았다.
나라와 나라는 같은 제후국諸侯國이고 함께 결맹結盟한 사이이며 이해利害를 같이 하는 나라이니, 가 같으면 근심도 같은 것이 본래 당연한 바이기 때문이다.
장문중臧文仲나라의 한 대부大夫일 뿐이다. 대부大夫속수束脩문유問遺가 국경을 넘지 않았으니, 타국他國의 기쁨과 슬픔을 살피는 것이 본래 대부大夫직분職分에 당연히 근심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하물며 나라와 나라는 아득히 먼 장강長江회수淮水 사이에 있어서 나라에서 보면 조금도 관계가 없으니 그 나라의 존망存亡나라 대부大夫와 무슨 관계가 있는 일이겠는가.
그런데 장문중臧文仲은 그 나라들이 멸망했다는 말을 한 번 듣자 이마를 찌푸리며 깊이 근심하고, 또 먼 옛날의 고요皐陶의 제사가 끊길 것을 상심하였으니, 바로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함께 그의 사정에 우활함을 의심하는 까닭이다.
친지親知의 아들이 곤궁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면 가여워 눈물을 흘리면서 입은 옷을 벗어 입혀주고 먹던 밥을 밀어 먹여주기에 겨를이 없지만, 다른 날에 〈똑같은 처지에 놓인〉 길가는 사람의 아들을 만나면 〈가여워하는〉 이 마음이 쇠퇴한다.
반드시 그 부친父親이나 조부祖父와 두터운 교분交分이 있은 뒤에야 그 아들이나 손자를 가엽게 여기는 것이 사람들의 상정常情이다.
고요皐陶가 사망한 날로부터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이르기까지 1천여 년이 지났다.
장문중臧文仲이 1천여 년 뒤에 출생했으니, 애당초 고요皐陶가 어느 지방 사람이며 고요皐陶와 어느 시대에 교유交遊하였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자손이 멸망한 것을 보고서 애석해하고 애통해하는 것이 수십 년 동안 사귄 친밀한 벗과 같을 뿐이 아니었으니 이런 마음이 어디에서 생겼는가?
동류同類는 〈이〉 천년이 가도 하루아침 같지만 이류異類는 〈이〉 하루아침만 헤어져도 천년처럼 멀어진다. 고요皐陶와 같은 조정에서 함께 지낸 이들 중에 공공共工환두驩兜삼묘三苗가 있었으니, 이들은 예모禮貌로써 서로 교제하였을 것이며 언어言語로써 서로 접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쪽(고요皐陶)은 운천雲天의 위(하늘나라)에 있고, 한쪽(네 사람)은 늪 밑에 있는 것 같으며 한쪽은 풍진風塵 밖에 있고 한쪽은 기름불 가운데 있는 것 같으니, 서로 자리를 마주하고 앉아도 호월胡越처럼 멀게 느끼고, 가까이 발을 대고 동행해도 마치 고금古今으로 막혀 있는 듯 했을 것이다.
상상건대 공공共工환두驩兜삼묘三苗의 마음은 고요皐陶 보기를 구수寇讐처럼 여겨 밤낮으로 틈을 노리면서 고요皐陶를 해코지할 길이 없을까 걱정했을 것인데, 하물며 그 자손을 애석해하는 마음을 가졌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시대는 같으나 가 다르다는 것이다.
천하의 이치는 상대가 없는 것이 없으니, 이미 시대는 같으나 가 다른 경우가 있다면 또한 시대는 다르나 가 같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요皐陶가 가까이 의 조정에서 공공共工환두驩兜삼묘三苗동류同類가 되지 못하고 멀리 춘추시대春秋時代장문중臧文仲과 동류가 된 것이다.
상상건대 장문중臧文仲의 마음은 위로 고요皐陶 시대에 있고, 아래로 자신이 춘추시대에 있는 줄을 모르고서, 형상이 없는 속에서 서로 절하며 응대하고 소리가 없는 속에서 서로 시사詩詞를 주고받으며 화답하면서 형적形跡은 멀지만 마음은 가깝고 형적은 소원하지만 마음은 친밀하였으니, 이것이 고요皐陶의 제사가 끊긴 것을 보고서 한 방에서 동석했던 벗보다 심하게 탄식하고 애석해 마지않았던 까닭이다.
대체로 군자君子는 반드시 군자와 계합契合(의기투합)하고 소인小人은 반드시 소인과 계합한다. 학자學者가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검증하고자 한다면 어찌 이런 방법으로 자신을 관찰하지 않는가?
내가 군자가 뜻을 잃고 〈의기소침한 것을〉 보고 근심하고, 군자의 자손이 쇠락衰落한 것을 보고 근심한다면 이는 나의 마음이 군자와 계합하는 것이고, 내가 군자가 뜻을 잃고 〈의기소침한 하는 것을〉 보고도 근심하지 않고, 군자의 자손이 쇠락한 것을 보고도 근심하지 않는다면 이는 나의 마음이 군자와 계합하지 않는 것이다.
남의 근심을 근심하는 것이 본래 칭찬할 것이 못되지만 내 마음이 군자와 계합하면 크게 기뻐할 만하고, 남의 근심을 근심하지 않는 것이 본래 깎아내릴 것이 못되지만 내 마음이 군자와 계합하지 않으면 크게 두려워할 만하다.
내 마음이 군자와 계합하느냐 계합하지 않느냐를 검증하고자 한다면 응당 내 마음이 군자의 우환憂患에 대해 근심하느냐 근심하지 않느냐를 관찰해야 할 것이다.
자신을 반성反省하는 방법이 무엇이 이보다 중요하겠는가?


역주
역주1 : 子玉의 아들이다.〈附注〉
역주2 : 저본에는 ‘公’이 없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3 : 崔述의 ≪考信錄≫에 “皐陶와 庭堅은 두 사람이다. 六나라는 皐陶의 후손이고 蓼나라는 庭堅의 후손이다.”라고 하였다.
역주4 : 蓼나라와 六나라는 모두 皐陶의 후손이다. 두 나라의 임금이 德을 세우지 않고 大國과 怨恨을 맺어 갑자기 亡한 것을 가슴 아프게 여긴 것이다.〈杜注〉
역주5 : 魯 文公 4년에 “楚人이 江나라를 멸하니 秦伯이 江나라를 위해 素服을 입고 正殿을 피해 다른 곳에 머물면서 盛饌을 들지 않기를 정해진 禮數보다 지나치게 하였다. 大夫가 諫하자, 秦 穆公이 말하기를 ‘同盟國이 滅亡하였으니 비록 구원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감히 가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는 나 스스로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楚人滅江 秦伯爲之降服出次 不擧過數 大夫諫 公曰 同盟滅 雖不能救 敢不矜乎 吾自懼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6 : 脩는 脯이니, 十脡(길게 펴서 말린 肉脯 열 장)이 束이다. 束脩처럼 박한 예물도 국경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大夫는 사사로이 外交함이 없었다는 말이다.
역주7 : ≪春秋左氏傳≫ 僖公 4년에 齊 桓公이 楚나라를 토벌하자, 楚나라가 使臣을 보내와서 “임금은 北海에 살고 寡人은 南海에 살아 바람난 牛馬도 서로 미칠 수 없는 먼 거리이니, 임금께서 우리의 땅에 오실 줄은 생각지 못하였소.[君處北海 寡人處南海 唯是風馬牛不相及也 不虞君之涉吾地也]”라고 말한 곳에서 보인다. 林堯叟(宋)는 “암수가 서로 유혹하는 것을 바람[風]이라 한다. 마소가 바람이 나 달아나서 암수가 서로 유혹하려 해도 거리가 멀어 미칠 수 없다는 말이니, 齊나라와 楚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관계가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8 : 저본에는 ‘吾’가 있으나, 三民書局本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9 : 저본에는 ‘具’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本에 의거하여 ‘一’로 바로잡았다.
역주10 : 賡載는 서로 詩詞를 주고받으며 화답하는 뜻이다. ≪書經≫ 〈虞書 益稷〉에서 臯陶가 舜임금과 대화하면서 “이에 노래하기를 ‘임금이 현명하시면 股肱(신하)들이 어질어서 모든 일이 편안히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乃賡載歌曰 元首明哉 股肱良哉 庶事康哉]”라고 한 곳에서 보인다.

동래박의(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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