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 文五年
이라 六人叛楚卽東夷
하니 秋
에 楚
仲歸帥師滅六
하다 冬
에 楚
子燮滅蓼
하다
物莫不惡傷其類라 桃僵而李仆나 若樗若櫟은 必不爲之仆는 何也오 非其類也ㄹ새니라
芝焚而蕙歎이나 若蕭若艾는 必不爲之嘆은 何也오 非其類也ㄹ새니라
楚人滅江
에 而秦穆爲之憂
注+하니 君子未嘗疑焉
이라
秦之與江은 同諸侯也요 同盟會也요 同利害也니 類同則憂同이 固其所也라
臧文仲
은 魯國一大夫耳
라 大夫
는 하니 其視他國之休戚
이 固非職所當憂
어든
況六與蓼邈然在江淮之間
하야 自魯視之
면 盖
이니 其存與亡
이 何與於魯大夫事哉
아
而臧文仲一聞其滅에 蹙頞深憂하고 且遠傷皐陶之不祀하니 此世之所以共疑其闊於事情也라
見故人之子顚頓困阨이면 則惻怛流涕하야 解衣推食之不暇나 他日遇塗人之子면 則是心衰焉이라
臧文仲生千有餘年之後
하니 初不識皐陶於何地
며 友皐陶於何時
어늘 而視其子孫之亡
하고 憫惜痛悼
하야 不啻數十年膠漆之契
하니 是心安從生哉
아
類之同者는 移千歲爲一朝하고 類之異者는 暌一朝爲千載라 皐陶之所與同朝者는 曰共, 曰鯀, 曰兜, 曰苗니 禮貌非不相際也며 言語非不相接也라
然一則在雲天之上
하고 則在沮洳之下
하며 一則在風塵之表
하고 一則在膏火之中
하니 對席而分胡越
하고 接步而判古今
이라
想共鯀兜苗之心은 其視皐陶如寇讐然하야 日夜伺隙하야 惟恐害皐陶之無路耳어늘 矧有閔惜其子孫之意哉아 是所謂時同而類異者也라
天下之理는 未嘗無對하니 旣有時同而類異者면 亦有時異而類同者리라
故皐陶近不與共鯀兜苗爲類於唐虞之朝하고 而遠與臧文仲爲類於春秋之世하니라
想文仲之心
은 仰不知皐陶之在唐虞
하고 俯不知身之在春秋
하야 無形之中
에 自相拜酬
하고 無聲之中
에 自相
하야 跡遠而心近
하고 跡疏而心親
하니 此所以見皐陶之不祀
하고 慨嘆憫惜
을 不能自已
가 殆甚於合堂同席之交
하니라
大抵君子는 必與君子合하고 小人은 必與小人合하니 學者欲自驗其心인댄 盍以是觀之아
吾見君子失志而憂하고 見君子之子孫衰替而憂면 則是吾心與君子合也요 吾見君子失志而不憂하고 見君子之子孫衰替而不憂면 則是吾心不與君子合也라
憂人之憂가 本未足稱이나 然吾心與君子合則大可喜요 不憂人之憂가 本未足貶이나 然吾心不與君子合이면 則大可懼라
欲占吾心於君子合與不合인댄 當察吾心於君子憂與不憂라
傳
문공文公 5년, 육인六人이 초楚나라를 배반하고 동이東夷에 붙으니, 가을에 초楚나라의 성대심成大心과 중귀仲歸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육六나라를 멸하였다. 겨울에 초楚나라 공자公子 섭燮이 요蓼나라를 멸하였다.
장문중臧文仲이 육六나라와 요蓼나라가 멸망하였다는 말을 듣고서 말하였다. “고요皐陶(요堯)와 정견庭堅의 제사祭祀가 갑자기 끊기게 되었구나. 덕德을 세우지 않아 백성들이 구원救援하지 않아서이니 슬프도다.”
동류同類가 상해傷害를 입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물건이 없다. 복숭아나무가 엎어지면 오얏나무는 넘어지지만 가래나무와 상수리나무 같은 경우는 반드시 복숭아나무를 위해 넘어지지 않으니, 이는 어째서인가? 동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초芝草가 불에 타면 혜초蕙草는 탄식하지만 쑥과 약쑥 같은 경우는 반드시 지초를 위해 탄식하지 않으니, 이는 어째서인가? 동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초인楚人이
강江나라를
멸滅하자
진秦 목공穆公이
강江나라를 위해 근심하였으니,
注+≪春秋左氏傳≫ 文公 4년에 보인다. 군자君子는 〈
목공穆公의 근심에 대해〉 일찍이 의심하지 않았다.
진秦나라와 강江나라는 같은 제후국諸侯國이고 함께 결맹結盟한 사이이며 이해利害를 같이 하는 나라이니, 유類가 같으면 근심도 같은 것이 본래 당연한 바이기 때문이다.
장문중臧文仲은 노魯나라의 한 대부大夫일 뿐이다. 대부大夫는 속수束脩의 문유問遺가 국경을 넘지 않았으니, 타국他國의 기쁨과 슬픔을 살피는 것이 본래 대부大夫의 직분職分에 당연히 근심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하물며 육六나라와 요蓼나라는 아득히 먼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사이에 있어서 노魯나라에서 보면 조금도 관계가 없으니 그 나라의 존망存亡이 노魯나라 대부大夫와 무슨 관계가 있는 일이겠는가.
그런데 장문중臧文仲은 그 나라들이 멸망했다는 말을 한 번 듣자 이마를 찌푸리며 깊이 근심하고, 또 먼 옛날의 고요皐陶의 제사가 끊길 것을 상심하였으니, 바로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함께 그의 사정에 우활함을 의심하는 까닭이다.
친지親知의 아들이 곤궁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면 가여워 눈물을 흘리면서 입은 옷을 벗어 입혀주고 먹던 밥을 밀어 먹여주기에 겨를이 없지만, 다른 날에 〈똑같은 처지에 놓인〉 길가는 사람의 아들을 만나면 〈가여워하는〉 이 마음이 쇠퇴한다.
반드시 그 부친父親이나 조부祖父와 두터운 교분交分이 있은 뒤에야 그 아들이나 손자를 가엽게 여기는 것이 사람들의 상정常情이다.
고요皐陶가 사망한 날로부터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이르기까지 1천여 년이 지났다.
장문중臧文仲이 1천여 년 뒤에 출생했으니, 애당초 고요皐陶가 어느 지방 사람이며 고요皐陶와 어느 시대에 교유交遊하였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자손이 멸망한 것을 보고서 애석해하고 애통해하는 것이 수십 년 동안 사귄 친밀한 벗과 같을 뿐이 아니었으니 이런 마음이 어디에서 생겼는가?
동류同類는 〈정情이〉 천년이 가도 하루아침 같지만 이류異類는 〈정情이〉 하루아침만 헤어져도 천년처럼 멀어진다. 고요皐陶와 같은 조정에서 함께 지낸 이들 중에 공공共工․곤鯀․환두驩兜․삼묘三苗가 있었으니, 이들은 예모禮貌로써 서로 교제하였을 것이며 언어言語로써 서로 접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쪽(고요皐陶)은 운천雲天의 위(하늘나라)에 있고, 한쪽(네 사람)은 늪 밑에 있는 것 같으며 한쪽은 풍진風塵 밖에 있고 한쪽은 기름불 가운데 있는 것 같으니, 서로 자리를 마주하고 앉아도 호월胡越처럼 멀게 느끼고, 가까이 발을 대고 동행해도 마치 고금古今으로 막혀 있는 듯 했을 것이다.
상상건대 공공共工․곤鯀․환두驩兜․삼묘三苗의 마음은 고요皐陶 보기를 구수寇讐처럼 여겨 밤낮으로 틈을 노리면서 고요皐陶를 해코지할 길이 없을까 걱정했을 것인데, 하물며 그 자손을 애석해하는 마음을 가졌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시대는 같으나 유類가 다르다는 것이다.
천하의 이치는 상대가 없는 것이 없으니, 이미 시대는 같으나 유類가 다른 경우가 있다면 또한 시대는 다르나 유類가 같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요皐陶가 가까이 당唐․우虞의 조정에서 공공共工․곤鯀․환두驩兜․삼묘三苗와 동류同類가 되지 못하고 멀리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장문중臧文仲과 동류가 된 것이다.
상상건대 장문중臧文仲의 마음은 위로 고요皐陶가 당唐․우虞 시대에 있고, 아래로 자신이 춘추시대에 있는 줄을 모르고서, 형상이 없는 속에서 서로 절하며 응대하고 소리가 없는 속에서 서로 시사詩詞를 주고받으며 화답하면서 형적形跡은 멀지만 마음은 가깝고 형적은 소원하지만 마음은 친밀하였으니, 이것이 고요皐陶의 제사가 끊긴 것을 보고서 한 방에서 동석했던 벗보다 심하게 탄식하고 애석해 마지않았던 까닭이다.
대체로 군자君子는 반드시 군자와 계합契合(의기투합)하고 소인小人은 반드시 소인과 계합한다. 학자學者가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검증하고자 한다면 어찌 이런 방법으로 자신을 관찰하지 않는가?
내가 군자가 뜻을 잃고 〈의기소침한 것을〉 보고 근심하고, 군자의 자손이 쇠락衰落한 것을 보고 근심한다면 이는 나의 마음이 군자와 계합하는 것이고, 내가 군자가 뜻을 잃고 〈의기소침한 하는 것을〉 보고도 근심하지 않고, 군자의 자손이 쇠락한 것을 보고도 근심하지 않는다면 이는 나의 마음이 군자와 계합하지 않는 것이다.
남의 근심을 근심하는 것이 본래 칭찬할 것이 못되지만 내 마음이 군자와 계합하면 크게 기뻐할 만하고, 남의 근심을 근심하지 않는 것이 본래 깎아내릴 것이 못되지만 내 마음이 군자와 계합하지 않으면 크게 두려워할 만하다.
내 마음이 군자와 계합하느냐 계합하지 않느냐를 검증하고자 한다면 응당 내 마음이 군자의 우환憂患에 대해 근심하느냐 근심하지 않느냐를 관찰해야 할 것이다.
자신을 반성反省하는 방법이 무엇이 이보다 중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