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 宣四年
이라 初
에 楚司馬子良生子越椒
하니 曰 必殺之
하라 是子也
가 熊虎之狀而豺狼之聲
이니 弗殺
이면 必滅
矣
리라 諺曰
이라하니 是乃狼也
라 其可畜乎
아 子良不可
한대 하다
及將死
에 聚其族曰 椒也知政
이면 乃速行矣
하야 無及於難
하라하고 且泣曰 鬼猶求食
이니 若敖氏之鬼
가 아
傳
【左傳】 昭二十八年
이라 初
에 叔向欲娶於
하니 하다 叔向曰
라
其母曰
一子
하고 而
니 可無懲乎
아하니 向懼
하야 不敢取
하다 平公强使取之
하야 生伯石
하다
及堂
하야 聞其聲而還曰
이라 非是
면 라하고 遂弗視
하다
注
【主意】 周叔服, 楚子文, 晉叔向之母言人禍福이 巧發奇中이라
孔子未甞過而問焉이어늘 至荀卿하야 始着非相之篇하니라
由是로 相師自謂其術可與吾道抗이라하야 而相書蔓延於天下矣라
勢相敵而後訟
注+勢相敵而後訟:譬如人之相訟 必其勢力之相敵하니 未有非其敵而訟[者也
라 非其敵而訟]焉
注+未有非其敵而訟焉:相師本非吾道之敵 而荀卿與之辨 是非其敵而訟者也이면 則大者喪其爲大矣
리라
公卿之於皁隷色也와 巨室之於窶民也와 儒者之於卜祝也에 邈乎其勢之不相敵也하니
親屈公卿之貴而與皁隷訟
注+親屈公卿之貴而與皁隷訟:皁隷至賤 非公卿貴人之敵也하며 親屈巨室之富而與窶人訟
注+親屈巨室之富而與窶人訟:窶人至貧 非富家巨室之敵也하며 親屈儒者之重而與卜祝訟
注+親屈儒者之重而與卜祝訟:業相術者 不過卜祝之流 吾儒何勞與之辨曲直也이면 勝之不武
注+勝之不武:訟而勝之 不足爲武요 不勝爲笑
注+不勝爲笑:訟而不勝 反以笑 ○此二句本左傳文하니 適以自卑而已矣
注+適以自卑而已矣:已上一節譏荀卿라
荀卿以大儒而著非相之篇
注+荀卿以大儒而著非相之篇:荀子書有非相篇 專攻相術之妄하야 下與卜祝較
注+下與卜祝較:應前儒者與卜祝訟하니 何其不自愛也
注+何其不自愛也:深責荀卿오
彼挾相術以苟衣食者
注+彼挾相術以苟衣食者:挾術以圖衣食 言其技之至卑는 卑冗凡賤
으로 廁迹於巫醫優伶之間
注+卑冗凡賤 廁迹於巫醫優伶之間:巫能召鬼 醫能治病 優伶樂工 爲俳語以獻笑者 言相師之賤 本與此曹爲伍하니 仰視儒者
면 如斥鷃望大鵬於羊角扶摇之上
注+仰視儒者 如斥鷃望大鵬於羊角扶摇之上:斥鷃以喻相師 大鵬以喻儒者 莊子云 窮髮之北 有冥海者 天池也 有鳥云 其名爲鵬 背若泰山 翼若垂天之雲 搏扶搖羊角而上者九萬里 斥鷃笑之曰 彼且奚適也 我騰躍而上 不過數仞而下 此亦樂之至也이니 敢有一毫爭衡之心乎
注+敢有一毫爭衡之心乎:相師本不敢與吾儒抗아
荀卿忽降尊貶重
하야 譊譊然與相師辨
注+譊然與相師辨:譊譊多言之狀하야 連簡累牘而不已
注+連簡累牘而不已:言着非相之篇 古者編竹爲書 故曰簡牘라
是書一出
注+是書一出:非相之書旣出에 相師之氣坐增十倍
注+相師之氣坐增十倍:相師因此書而增氣有如下文所云하야 互相告語
호되 以謂我何人也
注+我何人也:不過卜祝之徒오 彼何人也
注+彼何人也:儒道之오 我何足以致彼之爭
이며 彼亦何苦於我爭也
리오
今彼乃明目張膽
注+今彼乃明目張膽:今儒者 乃開明其目 張大其膽하야 極其辨而與我爭曲直
하며 恐不勝者
注+極其辨而與我爭曲直 恐不勝者:極口肆恐其說之不勝하니 是必我之道可以與彼抗也
注+是必我之道可以與彼抗也:是必相術可與儒道爲敵 所以與我爭也라
由是卜祝之流
가 人相勸
하고 家相勉
注+由是卜祝之流……家相勉:其徒競相勸免以行其術하야 支分派別
하야 相形之術
이 遂蔓延於天下矣
注+支分派別……遂蔓延於天下矣:相術因荀卿而盛行하니라 然則荀卿之於相術
에 將以排之
注+然則荀卿之於相術 將以排之:本欲排斥其非나 適以助之
注+適以助之:反以增重其氣요 將以抑之
나 適以揚之
니 非相之篇
이 吾恐未免爲是相之篇也
注+非相之篇 吾恐未免爲是相之篇也:是非一字 呼喚精神라
自孔子以前
注+自孔子以前:入本題事으로 相術固已槪見於世矣
注+相術固已槪見於世矣:如左傳所紀數事니라 若周叔服相公孫敖之二子
注+若周叔服相公孫敖之二子:公孫敖 魯公子慶父之子也 有二子 長曰穀 次曰難 使叔服相之 難音那하고 一言其必食子
注+一言其必食子:叔服 言穀也食子 穀文伯也 食子 謂祭祀供食汝身者也요 一言其必収子
注+一言其必収子:又言難也收子 難惠叔也 收子 謂收葬汝身者也는 是以相而預言人之福也
注+是以相而預言人之福也:東萊斷라
子文及叔向母見越椒伯石之始生
注+子文及叔向母見越椒伯石之始生:子文楚令尹闘穀於菟也 叔向晉大夫羊舌肹也 餘見本題註하고 一言其必滅若敖氏
注+一言其必滅若敖氏:子文言越椒必滅若敖氏라하고 一言其必喪羊舌氏
注+一言其必喪羊舌氏:叔向母言伯石必喪羊舌氏라하니 是以相而預言人之禍也
注+是以相而預言人之禍也:東萊斷라
數十年之後
注+數十年之後:說所言禍福之驗에 福焉而福
注+福焉而福:其後惠叔果能收葬公孫敖之喪 文伯生仲孫蔑 是爲孟獻子 果能繼孟孫氏之後하고 禍焉而禍
注+禍焉而禍:楚若敖氏 果因越椒而滅 晉羊舌氏 果因伯石而滅하야 無一不合
注+無一不合:禍福皆憑하니 誇於口者有之
하고 筆於書者有之
注+誇於口者有之 筆於書者有之:如左傳記載此數事로되 孔子未嘗過而問焉
注+孔子未嘗過而問焉:孔子未甞排斥相者하시니 豈孔子衛道之心
이 反緩於荀卿耶
注+豈孔子衛道之心 反緩於荀卿耶:衛猶防也 設疑問難아
孔子以謂天下之曲技小術
注+孔子以謂天下之曲技小術:答問推原孔子之意이 雜焉而不可縷數
注+雜焉而不可縷數:曲技小術 如相師之類 是不一端나 如蜩蟬蛙蠅
注+如蜩蟬蛙蠅:譬如小虫之能鳴者也이 自鳴自止
注+自鳴自止:售其術以自鳴 術不行而自止하야 本不足爲吾道之輕重
注+本不足爲吾道之輕重:存之不足輕吾道 去之不足重吾道이라
苟獨取其一而辨焉
注+苟獨取其一而辨焉:設使孔子取其一事 亦如荀卿與之爭辨이면 則天下必以是
術也
라하야 至勞聖人與之辨
注+至勞聖人與之辨:以聖人而與相者辨하고 必其道可與聖人抗
注+必其道可與聖人抗:是相術 可爲聖人之敵이라하야 殆將有陷溺而從之矣
注+殆將有陷溺而從之矣:從其術者 愈盛矣리라 是不能爲吾道損一異端
하고 反爲吾道增一異端也
注+反爲吾道增一異端也:增相術爲一家之言라
天下本未嘗以異端待相術
注+天下本未嘗以異端待相術:相術小技 非如楊墨之害吾道이러니 荀卿強斥以爲異端
하야 而與之辨
注+荀卿強斥以爲異端 而與之辨:不如孔子하야 無故而爲吾道增一異端
注+無故而爲吾道增一異端:由此相術敢與吾道抗하니 非卿之罪耶
注+非卿之罪耶:皆卿非相一書所致아
吾觀孔子周遊於天下
注+吾觀孔子周遊於天下:言孔子歷聘諸侯也 此下議論愈出愈奇 可喜可敬에 鄙夫陋人每以區區相術而窺之
注+鄙夫陋人每以區區相術而窺之:有此等人以形貌相孔子하야 有曰顙類堯也
라하고 有曰項類皐陶也
라하고 有曰肩類子産也
注+有曰肩類子産也:家語 子貢與孔子相失 有謂子貢曰 東門有人 其顙似堯云云 纍纍然若喪家之狗라하니라
孔子與門弟子聞之
注+孔子與門弟子聞之:弟子 指子貢하고 不過付之一笑耳
注+不過付之一笑耳:未甞與之爭辨니 豈非曲技小術
라 初不足與論是非耶
아
乃若吾夫子之門自有相書
注+乃若吾夫子之門自有相書:此下議論奇偉하니 殆非卜祝所誦之相書也
라 申申夭夭
는 卽孔門相容貌之術
注+申申夭夭 卽孔門相容貌之術:論語述而篇 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이요 誾誾侃侃
은 卽孔門相言語之術
注+誾誾侃侃 卽孔門相言語之術:鄕黨篇 朝與下大夫言 侃侃如也 與上大夫言 誾誾如也이요 躩如翼如
는 卽孔門相步趨之術
注+躩如翼如 卽孔門相步趨之術:同上 趨進翼如也 衣前後襜如也이요 勃如怡如
는 卽孔門相顔色之術
注+勃如怡如 卽孔門相顔色之術:同上 君召使擯 色勃如也 私覿 愉愉如也이라 一部一位
와 一占一候
하야 毫釐不差
하니 季咸․康擧․許負之術
이 至是皆敗矣
라
曾子傳此相書以相人
注+曾子傳此相書以相人:曾子親得孔子一貫之傳이라 故發而爲動容貌之論
注+故發而爲動容貌之論:泰伯篇 曾子曰 動容貌 斯遠暴慢矣하고 子思傳此相書以相人
注+子思傳此相書以相人:孔子之孫子思 師於曾子 作中庸之書이라 故發而爲動乎四體之論
注+故發而爲動乎四體之論:中庸曰 見乎蓍龜 動乎四體하고 孟子傳此相書以相人
注+孟子傳此相書以相人:孟子學於子思 作七篇之書이라 故發而爲眸子瞭眊之論
注+故發而爲眸子瞭眊之論:孟子曰 胷中正則眸子瞭焉 胷中不正則眸子眊焉이라
苟荀卿得孔門之相書
注+苟荀卿得孔門之相書:應前孔門自有相書 荀卿擇焉而不精 未足以知此면 將心醉服膺之不暇
注+將心醉服膺之不暇:膺 胷也 莊子云 列子見之而心醉 中庸曰 顔子得一善 則服膺而弗失之矣 此言荀卿若知孔子觀容貌之道 將喜慕佩服而不能忘矣어늘 何暇非他人之相書耶
注+何暇非他人之相書耶:必不暇作非相之篇 結語十分精采아
주周나라 숙복叔服이 공손오公孫敖의 두 아들의 상을 보다
傳
문공文公 원년, 주왕周王이 내사內史 숙복叔服을 보내어 와서 회장會葬하였다.
공손오公孫敖는 숙복叔服이 사람의 상相을 잘 본다는 말을 듣고서 자기의 두 아들을 그에게 보이니, 숙복叔服이 말하였다. “곡穀은 그대를 먹일 것이고, 난難는 그대를 거둘 것이다. 곡穀은 아래턱이 풍만하니 반드시 노魯나라에서 후손이 창성昌盛할 것이다.”
월초越椒가 태어나자 자문子文이 이 아이가 약오씨若敖氏를 멸망滅亡시킬 것을 알다
傳
선공宣公 4년, 당초에 초楚나라 사마司馬 자량子良이 아들 월초越椒를 낳으니, 자문子文이 〈자량子良에게〉 말하기를 “반드시 이 아이를 죽여라. 이 아이의 형상은 웅호熊虎와 같고 음성音聲은 시랑豺狼과 같으니,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우리 약오씨若敖氏를 멸망시킬 것이다. 속담에 ‘시랑豺狼의 새끼는 야심野心이 있다.’고 하니, 이 아이가 바로 시랑豺狼이다. 어찌 길러서야 되겠는가?”라고 하였으나, 자량子良이 듣지 않으니 자문子文은 크게 근심하였다.
자문子文은 죽을 때에 미쳐 그 종족宗族을 모아놓고 이르기를 “〈후일에〉 월초越椒가 국정國政을 맡거든 너희들은 속히 도망가서 화난禍難에 미치지 않게 하라.”고 하고서, 또 눈물을 흘리며 이르기를 “귀신鬼神도 오히려 먹기를 구하는데, 약오씨若敖氏의 귀신이 어찌 굶주리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영윤令尹 자문子文이 죽자 투반鬪般이 영윤令尹이 되고, 자월子越이 사마司馬가 되었다. 위가蔿賈가 공정工正이 되었는데 〈월초越椒를 위해 초왕楚王에게〉 자양子揚을 참소해 죽이게 하고서, 자월子越을 영윤令尹이 되게 하고 자신은 사마司馬가 되었다.
자월子越은 또 위가蔿賈를 미워하여 약오씨若敖氏의 종족宗族을 거느리고 가서 백영伯嬴을 잡아 요양轑陽에 가두었다가 죽이고는, 드디어 증야烝野에 주둔하여 초왕楚王을 공격하려 하였는데, 초왕楚王은 장수漳水 가에 진陣을 치고 기다렸다.
가을 7월에 초자楚子가 약오씨若敖氏와 고호皐滸에서 전쟁하여 드디어 약오씨若敖氏를 멸망시켰다.
백석伯石이 태어나자 숙향叔向의 어머니가 이 아이가 양설씨羊舌氏를 망칠 것임을 알다
傳
소공昭公 28년, 당초에 숙향叔向이 신공무신씨申公巫臣氏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려 하니, 그 어머니가 자기 친당親黨의 딸을 며느리로 삼고자 하였다.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저에게는 서모庶母가 많았으나 서형제庶兄弟가 적으니 저는 외가外家의 여인女人들을 경계[懲]로 삼습니다.”고 하였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자령子靈의 아내는 세 남편과 한 임금과 한 자식을 죽이고 한 나라를 망치고 두 경卿을 도망가게 하였으니, 경계로 삼아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니, 숙향叔向은 두려워서 감히 장가들지 않았다. 그런데 평공平公이 강제로 장가들게 하여 백석伯石(양식아楊食我)을 낳았다.
백석伯石이 처음 출생하였을 때 자용子容의 어머니가 시어머니에게 달려가 고하기를 “큰 시숙(숙향叔向)의 동서가 아들을 낳았으니 어머니께서 가서 보십시오.”라고 하니,
숙향叔向의 어머니가 보려고 가다가 마루에 미쳐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되돌아와서 말하기를 “이 아이의 울음소리는 바로 시랑豺狼의 소리이다. 시랑豺狼은 야심野心이 있으니 이 아이가 아니면 양설씨羊舌氏의 집안을 망칠 자가 없을 것이다.”고 하고서 마침내 보지 않았다.
注
주周나라 숙복叔服과 초楚나라 자문子文과 진晉나라 숙향叔向의 모친이 남의 화복을 말한 것이 교발기중巧發奇中(교묘하게 말한 것이 신기하게 들어맞음)하였다.
공자孔子께서는 이런 일에 마음을 쓰신 적이 없는데, 순경荀卿에 이르러 비로소 〈비상편非相篇〉을 지었다.
이로부터 상사相師(관상가)들이 스스로 ‘그 술법術法이 오도吾道(유도儒道)와 맞먹을 수 있다.’고 하여, 관상서가 천하에 널리 퍼졌다.
까닭 없이 오도吾道에 이단異端이 하나 더 늘어나게 하였으니, 이는 순경의 죄이다.
신분[
세勢]이 서로 대등한 뒤에야
쟁론爭論[
송訟]할 수 있으니,
注+비유하자면 사람이 서로 爭訟함에 반드시 그 신분[勢]이 서로 대등한 상대와 하는 것과 같다. 신분이 대등하지 않은데 서로 쟁론하는 경우는 없다.
注+相師(관상가)는 본래 吾道(儒道)와 대등한 상대가 아닌데 荀卿이 저들과 爭論하였으니, 이것이 대등한 상대가 아닌데도 쟁론한다[非其敵而訟]는 것이다. 신분이 대등하지 않은데도 서로 쟁론하면
강대强大한 자는 그 강대함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공경公卿이 조례皁隷(관노官奴)와, 거실巨室이 빈민貧民과, 유자儒者가 복축卜祝(점쟁이)과는 그 신분의 차이가 커서 서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공경公卿으로서 존귀한 신분을 낮추어 천한
관노官奴와 쟁론하고,
注+皁隷는 지극히 비천하니, 존귀한 公卿의 상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거실巨室로서
호부豪富한 신분을 낮추어 빈궁한 사람과 쟁론하며,
注+窶人은 지극히 가난하니, 豪富한 巨室(大家)의 상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유자儒者로서
장중莊重한 신분을 낮추어 점쟁이와 쟁론한다면
注+相術을 직업으로 삼는 자는 卜祝의 무리에 지나지 않으니, 우리 儒者가 무엇 때문에 수고롭게 저들과 曲直을 論辨하겠느냐는 말이다. 이긴다 해도
무용武勇이 되지 못하고,
注+논변하여 이긴다 해도 武勇이 되기에 부족하다. 이기지 못하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니,
注+논변하여 이기지 못하면 도리어 웃음거리가 된다. ○이 두 句(勝之不武 不勝爲笑)는 ≪春秋左氏傳≫의 글을 근본한 것이다. 스스로 자신만을
비천卑賤하게 만들 뿐이다.
注+이상의 한 마디는 荀卿을 비난한 것이다.
그런데
순경荀卿은
대유大儒로서 〈
비상편非相篇〉을 지어
注+荀卿이 지은 ≪荀子≫에 〈非相篇〉이 있는데, 오로지 相術의 망령됨을 공격하였다. 아래로 천한
복축卜祝과 논쟁[
각較]하였으니,
注+앞의 ‘儒者가 卜祝과 쟁론한다.’는 것에 호응한 것이다. 어쩌면 그리도 자신을 아끼지 않았는가.
注+荀卿을 깊이 책망한 것이다.
저
상술相術을 팔아 구차히 생활하는 자들은
注+相術을 가지고 衣食을 도모한 것이니, 그 기술이 지극히 비천함을 말한 것이다. 비천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신분이〉
무의巫醫와
우령優伶(광대) 사이에 위치한 자들이니,
注+무당은 능히 귀신을 부르고, 의원은 능히 병을 치료한다. 優伶은 樂工으로 익살스런 말로 남을 웃기는 자이니, 相師는 비천하여 본래 이 무리들과 같은 부류임을 말한 것이다. 유자儒者를 우러러보는 것이 마치 메추리[斥鷃]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서 하늘 높이 올라가는
대붕大鵬을 바라보는 것과 같을 것이니,
注+斥鷃으로써 相師를 비유하고, 大鵬으로써 儒者를 비유하였다. ≪莊子≫에 “極北의 不毛地에 어두운 바다[冥海]가 있는데 바로 하늘의 못[天池]이다. 그곳에 새가 있는데 이름을 鵬이라 한다. 등은 태산 같고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은데, 날개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서 9만 리를 올라간다. 斥鷃이 비웃으며 ‘저 鵬은 장차 어디로 가겠다는 것인가? 나는 날아올라도 몇 길에 지나지 않고 내려온다. 이것도 즐거움이 지극하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어찌 감히
일호一毫인들 승부를 겨룰 마음을 갖겠는가?
注+相師는 본래 우리 儒者에게 감히 대항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순경荀卿은 갑자기 귀중한 신분을 낮추어 시끄럽게
상사相師(관상가)들과 쟁론하는
注+譊譊는 말이 많은 모양이다. 장편의
간독簡牘(
논문論文)을 쓰기를 그치지 않았다.
注+〈非相篇〉을 지은 것을 말한다. 옛날에는 대쪽을 엮어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簡牘’이라 한 것이다.
이 논문이 세상에 나오자,
注+相術을 비난하는 책이 이미 나온 것이다. 상사相師들은 기세가 10배나 증가하여
注+相師가 이 책으로 인해, 下文에 말한 바와 같이 기세가 증가하였다. 서로 말하기를 “우리는 어떤 사람이고,
注+卜祝의 무리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저들은 어떤 사람인가.
注+儒道의 무리라는 말이다. 우리가 어찌 저
순경荀卿과 쟁론할 수 있겠으며, 저
순경荀卿 또한 무엇이 괴로워서 우리와 쟁론하겠는가.
그런데 지금
순경荀卿은 도리어 눈을 밝게 뜨고 담을 크게 펴고서
注+지금 儒者가 도리어 그 눈을 밝게 뜨고 그 담을 크게 펼친 것이다. 그
구변口辯을 다해 우리와
곡직曲直을 논쟁하며 이기지 못할까 두려워하였으니,
注+방자하게 온갖 말을 다하여, 자기의 말이 상대를 이기지 못할까 두려워함이다. 이는 반드시 우리의
도술道術(관상술)이 저
유가儒家와 필적할 만하기 때문이다.”
注+이는 반드시 相術이 儒道와 필적할 만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우리와 쟁론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복축卜祝의 무리가 사람마다 집집마다 서로 권면하여,
注+그 무리들이 앞다투어 相術을 시행하도록 서로 권면한 것이다. 가지를 치고 갈래로 갈라져서
상술相術이 마침내 천하에 널리 퍼졌다.
注+相術이 荀卿으로 인해 성대하게 유행하였다. 그렇다면
순경荀卿이
상술相術에 대해 〈본의는〉 배척하려는 것이었지만
注+본래는 〈正道가 아닌 상술의〉 잘못을 배척하고자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그 기세를 도와준 것이 되고,
注+도리어 그 기세만 더 중하게 하였다. 〈본의는〉 억제하려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떨쳐 일어나게 한 것이 되었으니, 나는 〈
비상편非相篇〉이 〈
시상편是相篇〉이 됨을 면치 못할까 두렵다.
注+이 ‘非’ 한 字가 정신을 일깨운다.
공자孔子 이전부터
注+〈여기부터〉 본편의 일로 들어간다. 상술相術이 이미 세상에 대략 유포되었다.
注+≪春秋左氏傳≫에 기재된 몇 가지 일 같은 것이다. 예컨대
주周나라
숙복叔服이
공손오公孫敖의 두 아들의 상을 보고서,
注+公孫敖는 魯나라 公子 慶父의 아들인데, 아들 둘을 두었다. 長子는 ‘穀’이고 次子는 ‘難’인데, 叔服으로 하여금 〈두 아들의〉 관상을 보게 한 것이다. 難는 音이 那이다. ‘한 사람(
곡穀)은 반드시 그대를 먹일 것이고,
注+叔服이 “穀은 당신을 먹일 것이다.”고 말한 것이다. 穀은 文伯이다. 食子는 제사를 지내어 당신에게 음식을 제공할 자라는 말이다. 한 사람(
난難)은 반드시 그대를 거둘 것이다.’
注+또 “難는 당신을 거둘 것이다.”고 말한 것이다. 難는 惠叔이다. 收子는 당신의 屍身을 수습하여 장사 지낼 자라는 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상을 보고서 그 사람이 받을
복록福祿을 예언한 것이다.
注+東萊의 推斷이다.
자문子文과
숙향叔向의 모친이
월초越椒와
백석伯石이 막 태어났을 때에 울음소리를 듣고서
注+子文은 楚나라 令尹 闘穀於菟이다. 叔向은 晉나라 大夫 羊舌肹이다. 나머지는 본편의 註에 보인다. 한 사람(
자문子文)은 ‘이 아이가 반드시
약오씨若敖氏를 멸망시킬 것이다.’
注+子文이 “越椒가 반드시 若敖氏를 멸망시킬 것이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고, 한 사람(
숙향叔向의 모친)은 ‘이 아이가 반드시
양설씨羊舌氏를 망칠 것이다.’
注+叔向의 모친이 “伯石이 반드시 羊舌氏를 망칠 것이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상을 보고서 그 사람이 입을
재화災禍를 예언한 것이다.
注+東萊의 推斷이다.
수십 년 뒤에
注+말한 禍福의 징험을 설명한 것이다. 복을 받는다고 한 사람은 과연 복을 받았고
注+그 뒤에 惠叔은 과연 公孫敖의 喪을 거두어 장사 지냈다. 文伯이 仲孫蔑을 낳았는데 이가 孟獻子이다. 〈孟獻子가〉 과연 孟孫氏의 後嗣를 이었다. 화를 입는다고 한 사람은 과연 화를 당하여
注+楚나라 若敖氏는 과연 越椒로 인해 멸망하였고, 晉나라 羊舌氏는 과연 伯石으로 인해 멸망하였다. 하나도 예언한 것과 맞지 않은 일이 없으니,
注+禍와 福이 모두 신빙할 수 있었다. 이 일을 과장해 말한 자도 있고 이 일을 기록으로 남긴 자도 있었다.
注+≪春秋左氏傳≫에 기재된 이 몇 가지 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공자孔子께서는 이 일에 마음을 두신 적이 없으셨으니,
注+孔子께서는 相者(相術人)를 배척하신 적이 없다. 어찌
공자孔子께서
도道를
보위保衛하는 마음이 도리어
순경荀卿만 못하였겠는가.
注+衛는 防衛와 같다. 의심스러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가설하여 논란하였다.孔子
공자孔子께서는 ‘천하에는 자잘한 기술들이
注+묻고 답하여 孔子의 뜻의 근원을 推究함이다. 잡다하여 일일이 셀 수 없으나,
注+‘曲技小術(자잘한 기술)’은 相師 같은 類이니, 한 가지만이 아니다. 매미나 맹꽁이가
注+비유하면 잘 우는 작은 벌레 같은 것들이다. 제 스스로 울다 그쳤다 하는 것과 같아,
注+자기의 기술을 행하여 스스로 울고, 기술이 행해지지 않으면 스스로 그만둔다. 본래
오도吾道에
경중輕重이 되기에 부족하다.’
注+〈잡다한 기술들을〉 남겨둔다 하여 우리의 도가 가벼워지지 않고, 없앤다 하여 우리의 도가 무거워지지 않는다.고 여기셨다.
가령
공자孔子께서 그중의 하나를 취하여 〈
상사相師들과〉
쟁변爭辨하셨다면
注+‘孔子께서 그중의 한 가지 일을 취하였다면, 荀卿이 그들과 爭辨하였던 것과 같았을 것’임을 가정한 것이다. 천하 사람들은 반드시 이것을 하나의
도술道術로 여겨 심지어 성인을 수고롭게 하여 저들과 쟁변하게 하고,
注+聖人으로서 相者와 爭辨하신 것이다. 반드시 그 도술이 성인의 도와 필적할 만하다고 하여
注+이 相術이 聖人의 ‘道’와 상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장차 그 속에 빠져 따르는 자가 있을 것이다.
注+그 相術을 따르는 자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도吾道를 위해 하나의
이단異端을 줄이지 못하고 도리어
오도吾道를 위해 한 이단을 보태는 것이다.
注+相術이 보태어져서 一家의 言論이 된 것이다.
천하에는 본래
상술相術을 이단으로 여긴 적이 없었는데,
注+相術은 작은 기술이니, 楊墨이 우리의 道를 해치는 것처럼 〈심하지〉 않다. 순경荀卿이 억지로 이단이라고 배척해 저들과 쟁변하여
注+孔子께서 過而不問하신 것만 못하다. 까닭 없이
오도吾道를 위해 한 이단을 보태었으니,
注+이로 말미암아 相術이 감히 吾道와 對抗하였다. 이것이
순경荀卿의 죄가 아닌가?
注+모두 荀卿의 〈非相篇〉 한 글이 불러온 것이다.
내가 보기에
공자孔子께서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실 적에
注+孔子께서 諸侯國을 두루 빙문하신 것을 말한다. 이 아래는 의논이 갈수록 더욱 기이하여 좋아할 만하고 공경할 만하다. 비루鄙陋한 사람들이 매양 하찮은
상술相術로 공자를 엿보고서
注+이런 사람들 중에 形貌를 가지고 孔子의 상을 본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마가
당요唐堯를 닮았다.’고 한 자도 있고, ‘목이
고요皐陶를 닮았다.’고 한 자도 있고, ‘어깨가
자산子産을 닮았다.’
注+≪孔子家語≫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子貢이 孔子를 잃었는데, 어떤 사람이 子貢에게 “東門에 한 사람이 서 있는데, 그 이마는 唐堯 같고,……실의에 빠진 모양이 마치 상갓집의 개와 같다.”고 일러주었다.고 한 자도 있었다.
그러나
공자孔子께서는 문하의
제자弟子와 함께 들으시고서
注+弟子는 子貢을 가리킨다. 한 번 웃어넘기신 데 지나지 않았으니,
注+그와 쟁변한 적이 없었다. 이는 어찌 〈
상술相術이〉 자잘한 작은 기술이어서 애당초 더불어 시비를 논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겨서가 아니겠는가.
우리
부자夫子의
문중門中으로 말하면 본래
상서相書가 있었으니,
注+이 아래는 의논이 특이하다. 아마도
복축卜祝이 외는
상서相書가 아니었을 것이다. ‘
신신申申’과 ‘
요요夭夭’는 바로
공자孔子 문하에서 용모를 살피는 상술이고,
注+≪論語≫ 〈述而篇〉에 “孔子께서 한가로이 계실 때는 용모가 편안하시고 얼굴빛이 愉快하셨다.”고 하였다. ‘
은은誾誾’과 ‘
간간侃侃’은 바로
공자孔子 문하에서 언어를 살피는 상술이고,
注+≪論語≫ 〈鄕黨篇〉에 “조정에서 下大夫와 말씀하실 때는 和樂하시고, 上大夫와 말씀하실 때는 中正하셨다.”고 하였다. ‘
각여躩如’와 ‘
익여翼如’는 바로
공자孔子 문하에서 걸음걸이를 살피는 상술이고,
注+위 구절과 같은 〈鄕黨篇〉에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실 때엔 그 모습이 공경스러우셨고, 옷의 앞뒤 자락이 가지런하였다.”고 하였다. ‘
발여勃如’와 ‘
이여怡如’는 바로
공자孔子 문하에서 안색을 살피는 상술인데,
注+위 구절과 같은 〈鄕黨篇〉에 “임금이 불러 擯을 시키시면 얼굴빛이 변하셨으며, 私人의 자격으로 謁見하실 때에는 더욱 和悅하셨다.”고 하였다. 부위部位와
점후占候처럼 털끝만치도 어긋나지 않으니,
계함季咸․
강거康擧․
허부許負 등의 상술이 이에 이르러 모두
쇠패衰敗하였다.
孟子
증자曾子는 이
상서相書를
전습傳習하고서 사람의 상을 보았다.
注+曾子는 직접 孔子께서 전하신 一貫의 뜻을 터득하였다. 그러므로 ‘
동용모動容貌’의 의론을 발표하였고,
注+≪論語≫ 〈泰伯篇〉에 “曾子가 말하기를 ‘容貌를 움직임이 〈莊嚴하고 愼重하면 사람들이 감히 나를〉 사납거나 오만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자사子思는 이
상서相書를 전습하고서 사람의 상을 보았다.
注+孔子의 손자 子思는 曾子를 師事하였고, ≪中庸≫이란 책을 지었다. 그러므로 ‘
동호사체動乎四體’의 의론을 발표하였고,
注+≪中庸≫에 “〈길흉의 조짐이〉 시초점과 거북점에 나타나고, 四體의 동작에 드러난다.”고 하였다. 맹자孟子는 이
상서相書를 전습하고서 사람의 상을 보았다.
注+孟子는 子思에게 배웠고, 七篇의 책(≪孟子≫)을 지었다. 그러므로 ‘
모자요모眸子瞭眊’의 의론을 발표하였다.
注+〈≪孟子≫ 〈離婁 上〉에〉 孟子가 말하였다. “마음이 바르면 눈동자가 밝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눈동자 흐리다.”
가령
순경荀卿이
공문孔門의
상서相書를 얻었다면
注+앞의 ‘孔門에는 본래부터 相書가 있었다.’는 것을 호응한 것이다. 荀卿은 道를 선택하였으나 精當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을 알기에는 부족하다. 아마도 심취해 마음에 새기기에도 겨를이 없었을 것이니,
注+膺은 가슴이다. ≪莊子≫에 “列子가 보고서 心醉하였다.”고 하고, ≪中庸≫에 “顔子는 한 善行을 들으면 가슴에 새겨 잃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것은 荀卿이 만약 孔子께서 容貌를 관찰하시던 도를 알았다면 아마도 기뻐 사모하고 가슴에 새겨 잃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어느 겨를에 다른 사람의
상서相書를 비난하였겠는가.
注+〈荀卿이 孔門의 相書에 심취하여〉 반드시 〈非相篇〉을 지을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結語가 매우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