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推曰 獻公之子九人
에 唯君在矣
라 로되 天未絶晉
은 必將有主
니 主晉祀者
는 非君而誰
오
天實置之어늘 而二三子以爲己力하니 不亦誣乎아 竊人之財도 猶謂之盜온 況貪天之功하야 以爲己力乎아
하야 上下相蒙
하니 難與處矣
로다 其母曰 盍亦求之
오 以死誰懟
오
오 對曰 言
은 身之文也
니 身將隱
이어늘 焉用文之
릿가 是求顯也
니이다
其母曰 能如是乎
아 與女偕隱
하리라하고 遂隱而死
하다 晉侯求之不獲
하야 以緜上爲之田曰
하노라
居爭奪奔競之中하야 而見曠逸高世之擧하니 囂塵滯慮가 一掃而空이라 心開目明하야 頓還舊觀하니
暑風旱雨不足以喩其快也
요 渴漿饑炙不足以喩其美也
요 라
晉文公反國之初
에 從行諸臣
이 騈首爭功
하야 과 은 要切狼戾
하야 有市人之所不忍爲者
어늘
而介之推獨超然處衆紛之外하니 孰謂此時而有此人乎아 是宜百世之後聞其風者가 猶咨嗟歎頌而不能已也라
雖然이나 盜跖之風不足以誤後世요 而伯夷之風反可以誤後世며 魯威之風不足以誤後世요 而季札之風反可以誤後世로다
凡人之情은 旣惡之則必戒之하니 其所以陷溺而不知非者는 皆移於所慕也라 然則介之推之失을 其可不別白以警後世乎아
推尤諸臣之貪功은 其言未必非也나 其言之所自發則非也라 使晉文賦之以祿에 推以此爲辭면 祿之言이 雖不盡中理라도 猶不失爲狷介也라
今旣不得祿而爲此言하니 則是借正義以泄私怨耳라 向若晉文位定之後에
首行推之賞하야 置之狐趙之間이면 吾不知推之發是言乎아 不發是言乎아 竊意斯言之未必發也라
推之言이 不在於祿方賦之初하고 而在於祿不及之後하니 吾固疑推之不主於理而主於怨也라
怨而忿詈는 未足多責이요 惟不明言其怨하고 而借理以逞怨者를 君子疾之라
時不我用이면 必曰 此時不可進也라하고 未嘗肯明言吾怨時之遺我也나 始若見用이면 則必不爲此言矣리라
人不我擧
면 必曰 此人不足附也
라하고 未
肯明言吾怨人之棄我也
나 始若見擧
면 則必不爲此言矣
리라
同是時也로되 用我則爲治라하고 不用我則爲亂이라하며
同是人也로되 擧我則爲賢이라하고 不擧我則爲愚라하니 何其無特操耶아 此君子所甚疾也라
吾固疑推之未免乎借理以逞怨也라 推는 高士也니 未易以凡心窺하고 利心量也라
事固有外似而中實相遠者하니 安知推之果出於怨也아 推는 吾所敬也니 因其似而加推之罪는 非惟不忍이라 亦不敢也라
以怨斷推之罪는 非吾之言也요 乃推之言也며 非推之言也요 推母之言也라
推自謂旣出怨言하니 不食其食이라하니 其母亦曰 盍亦求之오 以死誰懟오하니라
推若果以從亡之臣爲不當賞이면 則狐趙從亡之臣也요 己亦從亡之臣也니 其不賞均也어늘
文公之賞狐趙하니 固濫而可責也라 賞者爲濫이면 則不賞者乃理之常也라 是文公失之於狐趙하고 而得之於我也라
君待我以常이면 我自安其常이니 怨何爲而生이며 身何爲而隠乎아
是非無兩立之理하니 賞者是면 則不賞者非하고 賞者非면 則不賞者是라
今推旣咎文公之濫賞하고 又咎文公之不賞하니 此近於人情乎아 吾是以知推之言은 特借理而逞怨也라
天下固有迹高而心卑하고 形淸而神濁者矣니 如推之徒是也라
聚爭名者於朝와 聚爭利者於市가 山之巔과 水之涯에 忽遇如推者焉이면 非不蕭然可喜也나
怨心內積이면 則林麓未必非幽縶之網이요 澗溪未必非忿激之聲也니 吾未見此之果勝彼也로라
傳
僖公 24년, 晉侯(晉 文公)가 亡命했을 때 隨從했던 사람들에게 賞을 줄 때에 介推가 祿位를 구하지 않으니 祿 또한 그에게 미치지 않았다.
介推가 말하였다. “獻公의 아들 아홉 사람 중에 유일하게 主君만이 살아 계신다. 惠公과 懷公은 親近한 사람이 없어서 國內와 國外가 모두 그들을 버렸는데도 하늘이 晉나라를 滅絶시키지 않은 것은 반드시 나라에 主宰者가 있게 하려 한 것이니 晉나라의 祭祀를 主宰할 사람이 主君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실로 하늘이 主君을 임금으로 세운 것인데 몇몇 사람은 자신들의 功勞[力]로 여기니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남의 재물을 훔치는 것도 오히려 도둑이라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공로를 탐하여 자신들의 공로로 삼는 것이겠는가?
아랫사람은 그 罪를 義로 여기고 윗사람은 그 奸惡한 행위에 賞을 내려 上下가 서로 속이니, 저들과 함께 거처하기 어렵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도 賞을 구하지 않느냐? 이대로 죽으려 한다면 누구를 원망할 게 있겠느냐?”고 하니,
대답하기를 “〈저들의 행위를〉 허물로 여기면서 그 허물을 본받는다면 罪가 더욱 심하게 됩니다. 또 원망하는 말을 내었으니 다시는 그의 祿을 먹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임금에게 너의 생각을 알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니, 대답하기를 “말은 몸을 꾸미는 것입니다. 장차 몸을 숨기려 하면서 무엇 때문에 꾸미겠습니까? 〈만약 꾸민다면〉 이는 顯達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네가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나도 너와 함께 은거하겠다.”라고 하고서 드디어 은거하다가 죽었다. 晉侯는 介推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緜上을 그의 封田으로 삼고서 말하기를 “이것으로 나의 잘못을 기억하고, 또 善人을 旌表한다.”고 하였다.
爭奪하고 奔競하는 세상에 살면서 속세를 벗어난 초연한 행위를 보니, 시끄러운 세상의 적체된 생각들이 모두 쓸려나가 텅 비어 마음이 열리고 눈이 밝아져서 갑자기 옛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는 무더위의 서늘한 바람과 가뭄의 단비로도 그 상쾌함을 비유하기에 부족하고, 목마를 때의 음료와 배고플 때의 불고기로도 그 아름다움을 비유하기에 부족하며, 沂水에서 목욕하고 舞雩에서 노니는 것으로도 그 시원함을 비유하기에 부족하다.
晉 文公이 晉나라로 돌아와 즉위한 처음에, 망명 시에 시종했던 신하들이 말 머리를 나란히 하고 功勞를 다투어 子犯이 晉 文公에게 碧玉을 주고, 顚頡과 魏犫가 僖負羈의 집에 불을 지른 것은 〈功名을 이루고픈〉 마음이 간절해서 시정잡배도 차마 하지 않는 사납고 괴벽한 짓을 한 것이다.
그런데 介推는 홀로 어지러운 무리 밖에 초연히 있었으니 이때에 이런 사람이 있을 줄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당연히 百世 뒤에 그의 풍도를 듣는 자도 오히려 탄식하며 칭송해 마지않을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盜跖의 기풍은 후세를 그르치기에 부족하고 伯夷의 풍도가 도리어 후세를 그르칠 수 있으며, 魯 桓公의 기풍은 후세를 그르치기에 부족하고 季札의 풍도가 도리어 후세를 그르칠 수 있다.
무릇 사람의 심정은 싫어하면 반드시 경계하니, 잘못에 빠지고도 잘못인 줄을 모르는 것은 모두 사모하는 대상에게 마음이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介推의 잘못을 어찌 명백하게 변별하여 후세를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介推가 공로에 대한 포상을 탐한 신하들을 비난한 것은 그 말이 반드시 그른 것은 아니나 그 말을 직접 한 것은 옳지 않다. 가령 晉 文公이 祿位를 주었는데 介推가 이 말로 사양했다면 祿位를 말한 것이 비록 다 이치에 맞지 않았다 하더라도 오히려 ‘몸을 깨끗이 지키는 도리[狷介]’는 잃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미 녹위를 받지 못하자 이런 말을 하였으니 이는 正義의 말을 빌려 사사로운 원망을 털어놓은 것일 뿐이다. 만약 晉 文公의 位가 정해진 뒤에
맨 먼저 介推에게 상을 주어 狐偃과 趙衰 사이의 지위에 두었더라도 介推가 이런 말을 했을지 하지 않았을지 모르겠으나, 내 생각에는 반드시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介推가 녹위를 한창 나누어줄 때에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녹위가 자기에게 미치지 않은 뒤에 말하였으니, 나는 본래부터 介推가 도리에 의거해 말한 것이 아니고 원망으로 인해 말한 것으로 의심하였다.
원망하면서 성내고 욕하는 것은 심하게 꾸짖을 것이 못 되고, 다만 그 원망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도리를 빌려 원망하는 말을 털어놓는 자를 君子는 미워한다.
시대(時君을 뜻함)가 나를 등용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 시대는 〈난세이니〉 나아가서는 안 된다.”라고 하고, “나는 시대가 나를 버린 것을 원망한다.”라고 분명하게 말하려 하지 않을 것이나, 처음에 등용되었다면 반드시 이런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이 나를 천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 사람은 따르기에 부족하다.”라고 하고, “나는 남이 나를 버린 것을 원망한다.”라고 분명하게 말하려 하지 않을 것이나, 처음에 천거되었다면 반드시 이런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일한 시대인데도 나를 써주면 ‘治世’라 하고 나를 써주지 않으면 ‘亂世’라 하며,
동일한 사람인데도 나를 천거하면 ‘賢人’이라 하고 나를 천거하지 않으면 ‘愚人’이라 하니, 어쩌면 그리도 특별한 志操가 없단 말인가? 이것이 君子가 매우 미워하는 이유이다.
나는 본래부터 介推가 도리를 빌려 원망을 털어놓음을 면하지 못했다고 의심하였다. 介推는 고상한 선비이니 凡人의 마음으로 엿보거나 이익을 구하는 마음으로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일에는 본래 겉은 유사하나 속은 실제로 서로 크게 차이 나는 것이 있으니, 介推의 말이 과연 원망하는 마음에서 나왔다고 어찌 단정할 수 있겠는가? 介推는 내가 존경하는 분이니 유사한 것을 가지고 介推에게 죄를 씌우는 것은 차마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감히 할 수가 없다.
원망하는 〈마음을 털어놓으려고 이런 말을 했다고〉 介推의 죄를 단정한 것은 나의 말이 아니라 介推의 말이며, 介推의 말이 아니라 介推 모친의 말이다.
介推가 스스로 “이미 원망하는 말을 내었으니 다시 그 祿을 먹지 않겠다.”라고 하자, 그의 어머니 또한 “어찌하여 너도 賞을 구하지 않느냐? 이대로 죽으려 한다면 누구를 원망할 게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母子 사이에 진실한 속마음을 다 털어놓았으니 介推가 어찌 眞情을 숨길 수 있었겠는가?
介推가 가령 망명 시에 시종했던 신하들에게 褒賞하는 것을 부당하게 여겼다면 狐偃과 趙衰도 망명 시에 시종한 신하이고 자기도 망명 시에 시종한 신하이니 상을 내리지 않는 것이 공평한데,
文公이 狐偃과 趙衰에게 상을 내렸으니, 진실로 지나치다고 책망할 만하다. 상이 지나치면 상을 내리지 않는 것이 바로 이치의 常道이니, 이는 문공이 狐偃과 趙衰에게는 잘못하고 나(介推)에게는 바르게 한 것이다.
임금이 나를 常道로 대우하면 나도 스스로 그 상도를 편하게 여길 것이니, 원망하는 마음이 무엇 때문에 생길 것이며 몸을 무엇 때문에 숨기겠는가?
是와 非가 兩立하는 이치는 없으니, 상을 내린 것이 옳았다면 상을 내리지 않는 것이 그르고, 상을 내린 것이 그르다면 상을 내리지 않는 것이 옳았다.
지금 介推는 이미 文公의 지나친 賞을 꾸짖고 또 文公이 상을 내리지 않은 것을 꾸짖었으니, 이것이 인정에 가까운가? 나는 이로써 介推의 말은 다만 도리를 빌려 원망하는 마음을 털어놓은 것뿐임을 알겠다.
천하에는 본래 形迹은 고상하나 마음은 비열하고 형체는 淸秀하나 정신은 혼탁한 자가 있으니, 介推 같은 무리가 이에 해당한다.
조정에 모여 명예를 다투는 자나 시장에 모여 이익을 다투는 자가, 산마루나 물가에서 갑자기 介推 같은 사람을 만나면, 맑고 고상하여 俗氣가 없는 모습을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介推 같은 사람은〉 원망하는 마음이 안에서 쌓이면 숲과 산기슭이 반드시 〈자신을〉 囚禁하는 그물이 아니라고 하지 않을 것이고, 도랑과 시내의 물소리가 반드시 〈자신이〉 격분해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고 하지 않을 것이니, 나는 이런 사람이 과연 저 〈명예와 이익을 다투는〉 자들보다 나은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