爲善未盡이라도 猶愈不爲요 改過未盡이라도 猶愈不改라 堯舜之善은 非可一日爲也요 桀紂之惡은 非可一日改也라
百善而有其一이면 固可漸自附於堯舜矣요 百過而去其一이면 固可漸自離於桀紂矣라
雖然이나 爲善未盡者엔 君子固矜而進之也하고 寛而待之也하며 徐而誘之也어니와
至於人之改過者하얀 君子必用其察焉하야 改過而未盡者는 在所恕요 改過而不盡者는 在所誅라
始發之善端은 新而未固하고 已染之惡習은 舊而難除라 是改過未盡者也니 是力不足者也라
鐫其毫末하야 以盖丘山之愆하고 去其一二하야 以塞衆多之議라 是改過不盡者也니 是誠不足者也라
力不足者는 猶有時而足焉이어니와 誠不足者는 前過未盡에 今僞已生하니 是益其過耳라 何改過之云乎아 曾不如不改之爲愈也니라
藥未投에는 雖危疾이라도 猶有望其瘳요 戰未接엔 雖危國이라도 猶有望其勝이어니와 一發而不中이면 則其望窮矣라
過而不改者
는 雖
라도 猶不忍輕絶
은 何也
오 所恃者改過之術存也
ㄹ새니라
乃若改過而不肯盡하고 略爾裁抑하야 苟以欺人이면 則是改過之術旣試而不效矣니 夫復何所望耶아
積昏所以致明也요 積蔽所以致通也며 積迷所以致悟也니
人心至神
하야 雖懵懵罔罔
하야 不知過之當改
라도 久閉斯
하고 久鬱斯發
이니 是惟無改
언정 改則若決江河而莫能禦矣
라
三年鐘鼓之間
은 乃所以陰養其一日之修省也
라 今旣知過之當改
오도 反毛擧細故
하야 爲欺誕
하야 以竊改過之名
이면 是旣累其心於不誠矣
라
心旣不誠이면 則善端何時而復發耶아 本無昏이면 安得明이며 本無蔽면 安得通이며
本無迷면 安得悟리오 吾是以知改過不盡者는 終無改過之路也로라
晉文公始兼
하야 以擬天子之六軍
이러니 曾未數年
에 知僭侈之過
하야 復蒐於淸原
에 損其一而爲五軍焉
하니라
晉文公果知過之當改
면 則亟出令
하야 盡復諸侯之舊可矣
어늘 乃於改過之時
에 而爲
之事
하야
創立軍制하야 上則異於天子하고 下則尊於諸侯라 明知其過而不能盡改하야 外邀恭順之名하고 內享泰侈之實하니
其機不可謂不巧요 其謀不可謂不譎矣라 巧如是하고 譎如是하니 其良心乎아 僞心乎아
良心無巧하니 巧者는 僞心也요 良心無譎하니 譎者는 僞心也라 軍雖損其一이나 而僞心之增者는 不知其幾矣라
嗚呼라 易則易하고 于則于하니 易于雜者는 未之有也라
天下之分은 非君則臣이요 天下之俗은 非夷則夏며 天下之事는 非善則惡이요 天下之說은 非正則邪니
出臣則入君하고 出夷則入夏하며 出善則入惡하고 出正則入邪라
傳
僖公 31년, 가을에 晉나라가 淸原에서 군대를 査閱하고서 五軍으로 만들어 狄人을 방어할 때에 趙衰를 卿으로 삼았다.
善行을 하는 것이 극진하지 못하여도 오히려 하지 않는 것보다 낫고, 허물을 고치는 것이 극진하지 못하여도 오히려 고치지 않는 것보다 낫다. 堯와 舜의 善行은 하루 안에 다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桀과 紂의 惡行은 하루 안에 다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백 가지 善行 중에 한 가지 선행을 가진다면 반드시 점점 〈선행을 늘려〉 스스로 堯舜에 근접할 수 있고, 백 가지 허물 중에 한 가지 허물을 제거한다면 반드시 점점 〈허물을 줄여〉 스스로 桀紂에서 멀어질 수 있다.
비록 그러나 선행을 하는 것을 극진히 하지 못한 자에 대해서는 君子는 본래 가엾게 여겨 進就시키고, 너그럽게 대우하며, 천천히 그를 誘導한다.
그러나 사람의 허물을 고치는 일에 대해서는 군자는 반드시 밝게 살펴, 허물 고치기를 극진히 할 수 없는 자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용서하고, 허물 고치기를 극진히 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誅伐한다.
처음 발생한 善端(선의 싹)은 새로 생겨나서 아직 견고하지 못하고, 이미 오염된 惡習은 오래되어 제거하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허물을 고치기를 극진히 하지 못하는 까닭이니, 이것은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털끝만 한 허물을 삭제하여 태산 같은 허물을 덮고, 한두 가지 허물을 제거하여 많은 비난을 막으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허물을 고치기를 극진히 하지 못하는 까닭이니, 이것은 誠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힘이 부족한 자는 오히려 언젠가는 충분할 때가 있을 것이지만, 성심이 부족한 자는 지난날의 허물도 다 제거하지 전에 지금의 詐僞가 이미 생겨났으니 이는 그 허물을 덧보탤 뿐이다. 그러니 어찌 改過라 할 수 있겠는가? 〈이럴 바에야 차라리〉 끝내 고치지 않는 것이 나음이 되는 것만 못하다.
사람의 정신을 어찔하게 하는 독한 藥은 재차 복용할 수 없고, 城을 등진 최후의 一戰은 두 번 다시 接戰할 수 없다.
약을 쓰기 전에는 아무리 위험한 병이라도 오히려 치료되기를 희망하고, 交戰하기 전에는 아무리 위험한 나라라도 오히려 승리하기를 희망하지만, 한번 행동하여 的中하지 못하면 그 희망이 없어진다.
허물이 있는데도 고치지 않은 자가 비록 지극히 간악한 자라 하더라도 군자가 차마 가벼이 斷絶하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믿는 바는 허물을 고칠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허물을 고치되 다 고치려 하지 않고 대략 억제하여 구차하게 사람들을 속이려 한다면 이는 허물을 고치는 방법을 이미 시험하여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니, 이런 사람에게 다시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오래 쌓인 어두움은 광명을 부르는 원인이고, 오래 쌓인 가림은 개통을 부르는 원인이며, 오래 쌓인 미혹은 깨달음을 부르는 원인이다.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神妙하여, 아무리 무지하고 속임을 당해, 허물을 당연히 고쳐야 함을 모른다 해도 오래 막힌 것은 뚫리기 마련이고 오래 뭉친 것은 발산하기 마련이니, 고치지 않을지언정 고친다면 長江과 大河의 둑이 터진 것처럼 그 기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3년 동안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 가운데서 〈가르침을 받은 것은〉 속으로 하루의 修身과 反省을 培養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허물을 당연히 고쳐야 함을 알고도 도리어 털끝 같은 작은 허물을 들어 공공연히 세상을 속여 “허물을 고쳤다.”는 명성을 竊取한다면 이는 이미 그 마음에 성실하지 못함이 쌓인 것이다.
마음이 이미 성실하지 못하다면 善端(善의 싹)이 언제 다시 트겠는가? 본래 어두움이 없었다면 어찌 밝아짐이 있을 수 있으며, 본래 가림이 없었다면 어찌 뚫림이 있을 수 있으며,
본래 미혹함이 없었다면 어찌 깨달음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로 인해 허물을 고치기를 극진히 하지 않는 자는 끝내 허물을 고칠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았노라.
晉 文公은 처음에 三行과 三軍의 제도를 竝行하여 天子의 六軍을 比擬(모방)하였는데, 몇 해 되지 않아 참람했다는 허물을 알고서 다시 淸原에서 군대를 査閱하면서 1軍을 줄여 5軍으로 만들었다.
晉 文公이 과연 허물을 당연히 고쳐야 함을 알았다면 급히 명령을 내려 諸侯의 옛 제도를 다 회복하는 것이 옳았는데, 도리어 허물을 고칠 때에 허물을 숨기는 일을 하여,
군대의 제도를 創建하여 위로는 天子와 다르게 하고 아래로는 諸侯보다 높게 하였다. 자기의 허물을 분명히 알면서도 다 고치지 않아, 겉으로는 恭順하다는 명성을 얻기를 바라고 안으로는 교만하고 사치하는 實情을 누렸으니,
그 心機(心思)가 교묘하다 하지 않을 수 없고 그 計謀가 詭譎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교묘하고 이와 같이 詭譎한 것이 그의 良心이었는가? 僞心이었는가?
良心에는 교묘함이 없으니 교묘함은 僞心이고, 良心에는 詭譎이 없으니 궤휼은 僞心이다. 군대는 비록 하나를 줄였으나, 僞心은 얼마가 增加되었는지 알 수 없다.
아! ≪禮記≫ 〈檀弓 下〉에 “간략한 臣禮를 행해야 할 때이면 간략하게 臣禮를 행하고 성대한 君禮를 행해야 할 때이면 성대하게 君禮를 행하였으며, 간략한 臣禮와 성대한 君禮를 雜用한 경우는 아직까지 없었다.”라고 하였다.
천하의 身分은 君이 아니면 臣이고, 天下의 風習은 夷狄이 아니면 華夏이며, 天下의 일은 善이 아니면 惡이고, 天下의 말은 正이 아니면 邪이니,
臣을 벗어나면 君으로 들어가고, 夷狄을 벗어나면 華夏로 들어가며, 善을 벗어나면 惡으로 들어가고, 正을 벗어나면 邪로 들어간다.
天下 어디에 여기에서 벗어났으나 저기에로 들어가지 않은 자가 있었던가? 晉 文公이 마음을 괴롭혀가며 온갖 잔꾀를 다 부려도 날이 갈수록 더욱 궁지로 몰린 것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