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桓六年
이라 楚武王侵隨
하야 使薳章求成焉
하고 軍於瑕以待之
하니 隨人使少師
하다
鬪伯比言於楚子曰 吾不得志於漢東也는 我則使然이니이다
我張吾三軍而被吾甲兵하야 以武臨之하니 彼則懼而協以謀我라
漢東之國
에 隨爲大
하니 隨
이면 必棄小國
하리니 小國離
는 니이다
熊率且比曰 季梁在
하니 何益
이리오 鬪伯比曰
하리라
季梁止之曰 天方授楚하니 楚之羸는 其誘我也니이다
民餒而君逞欲
하고 祝史矯擧以祭
하니 臣不知其可也
로소이다
公曰 吾牲牷肥腯하며 粢盛豐備이어늘 何則不信고 對曰 夫民은 神之主也니이다
故奉牲以告曰 博碩肥腯이라하니 謂民力之普存也며 謂其畜之碩大蕃滋也며 謂其不疾瘯蠡也며 謂其備腯咸有也니이다
奉盛以告曰 絜粢豐盛이라하니 謂其三時不害而民和年豐也요
奉酒醴以告曰 嘉栗旨酒라하니 謂其上下皆有嘉德而無違心也니 所謂馨香無讒慝也니이다
故務其三時
하며 하며 親其
하야 以致其
祀
하나니 於是乎民和而神降之福
이라
今民各有心
하여 而
하니 君雖獨豐
이나 其何福之有
리잇가
傳
【左傳】桓八年
이라 隨少師有寵
하니 楚鬪伯比曰
니이다
〈夏에 楚子合諸侯于沈鹿에 黃隨不會하니 使薳章讓黃하고〉 楚子伐隨하야 軍于漢淮之間하다
隨侯禦之
할새 望楚師
하다 季梁曰
하니 〈君必左
하리이다〉
少師曰 不當王이면 非敵也니이다 弗從하고 戰于速杞라가 隨師敗績하니 隨侯逸하다
昔之傾人之國者는 匿其機而使人陰墮其計하야 非受害之後면 莫能悟하니 何其深也오
方始墮其計에 終日奔走馳驅하야 聽其所役하야 投于禍患而不自知라가 及師已喪하고 國已破하야 回視前日之所蹈者면 無非陷穽이라
天下固有奇權密機하니 非特敵人旣敗오도 尙不知其所以然이라 雖至於數千百年之後라도 亦不知其所以然하니 可謂極天下之至深矣라
世之論鬪伯比之謀者는 不過謂季梁之正이 終不能勝少師之寵하니 季梁之諫은 必有時而不用也요 少師之說은 必有時而用也라
人見隨侯初拒少師追楚之請하고 從季梁修政之諫하야 以爲伯比之謀未行也라하니 而不知其謀已深行乎其間矣니라
와 은 必三至而後信
하니 其始告之者
는 明知其不信也
요 其再告之者
도 亦明知其不信也
라
蓋有一則有二하고 有二則有三하니 無兩人之說이 居其前이면 雖有善譖者라도 無以成三至之說也리라
其始之不信이 所以成其後之信也니 知此면 則可以窺伯比之機矣리라
隨侯之始拒少師는 所以成其後之從이요 隨侯之始從季梁은 所以成其後之拒니라
伯比以謂吾苟欲一擧而成功이면 彼少師雖愛나 豈能使其君遽違素所畏者之諫乎아
今先示弱以誘少師면 則少師必有伐楚之請이요 季梁必有修政之諫이리라
隨侯迫于平日之所畏하야 必勉從季梁而拒少師하리니 使季梁之諫虛用於無事之時하고 及其有事而又諫이면 其君必以爲瀆矣리라
隨之所恃者는 獨一季梁而已어늘 季梁之術旣窮이면 則吾他日之擧兵에 誰復齟齬於其間哉아
蓋人之情
은 迫于不得已而勉從所畏
之言
은 不過能一從之耳
니 至於再
하야도 豈
復從之乎
아
迫於不得已而勉拒所愛者之說은 不過能一拒之耳니 至於再하야도 豈能復拒之乎아
其勉從所畏之時에 雖曰從之라도 而已有不平之心矣요 其勉拒所愛之時에 雖曰拒之라도 而已有不忍之心矣라
隨侯一念之不平이 發於始從季梁之諫하야 積而至數年에 其不平日增하니 當楚再駕之際하야 季梁之諫이 安得而不廢乎아
一念之不忍이 發于始拒少師之說하야 積而至數年에 其不忍日深하니 當楚再駕之際하야 少師之說이 安得而不入乎아
想隨侯恐懼修政之時에 擧國交賀하야 頌其君納諫之明하고 而不知伯比欣然獨笑已入於吾之機矣라
兆破隨之機于數年之前하야 收破隨之功於數年之後하니 伯比之機微矣哉라
吾嘗深考伯比之謀컨대 旣假毁軍之詐하야 而中少師之欲하고 復假少師之請하야 而激季梁之諫하며 復假季梁之重하야 而致隨侯之懼하고 復假隨侯之止하야 而增少師之慙하며 復假少師之寵하야 而沮季梁之策이라
置毫末之毒於少師之心하야 而一國君臣展轉薰染하야 自勝自負하고 自起自仆하며 自予自奪을 如輪如機하야 不得少息이니 吾端坐拱手하야 不動聲色而徐制其弊焉이라
雖事往迹陳하야 書之簡牘이나 讀者猶不知其端倪온 況於當時自墜其網者乎아
無受焚之地면 則烈火不能焚玉하고 無受病之地면 則癘氣不能病人이라
鬪伯比謀隨累年이로되 不乘其潰敗之餘하야 一擧平之하고 反以敵遺子孫이라
勇于伐隨하고 而怯於滅隨니 非前工而後拙也라 以少師旣死하니 則隨無受病之地也ᄅ새니라
嗚呼라 小人之根未去면 則雖從諫이라도 不足喜요 小人之根旣去면 則雖軍敗라도 不足憂니 爲國者는 其務去小人之根也哉ㄴ저
傳
환공桓公 6년, 초楚 무왕武王이 수隨나라를 침공侵攻해 들어가서 위장薳章(초나라 대부)을 보내어 화평和平을 요구하게 하고는 하瑕(수나라 땅)에 주둔하여 그 결과를 기다리니, 수인隨人이 소사少師(수나라 대부)를 초楚의 진영陣營으로 보내어 강화회담講和會談을 주재主宰하게 하였다.
투백비鬪伯比(초나라 대부)가 초자楚子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한수漢水 동쪽에서 뜻을 얻지 못한 것은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삼군三軍을 과시誇示하고 우리의 갑옷과 무기를 갖추어서 무력으로 저들을 대하였기 때문에 저들은 두려워서 협심協心하여 우리에게 대항하기를 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을 이간시키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한수漢水 동쪽의 여러 나라 중에 수隨나라가 가장 크니, 수隨나라가 스스로 잘난 체하여 교만해지면 반드시 작은 나라들을 버릴 것이니, 작은 나라의 마음이 수나라를 떠나는 것은 우리 초楚나라의 이익입니다.
소사少師는 본래 잘난 체하는 교만한 사람이니, 파리하고 약한 군사만을 보여주어 소사의 마음을 더욱 오만하게 만드소서.”라고 하였다.
웅률차비熊率且比(초나라 대부)가 말하기를 “수隨나라에는 계량季梁(수나라 대부)이란 현신賢臣이 있으니 이런 계획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투백비鬪伯比가 말하기를 “후일을 위한 계책이니 장차 소사가 그 임금의 신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초楚 무왕武王은 군대의 위용威容을 무너뜨리고 소사를 영접迎接하였다.
소사가 돌아가서 초군楚軍을 추격하기를 청하니, 수후隨侯가 이를 허락하려 하였다.
그러자 계량季梁이 말리면서 말하기를 “하늘이 바야흐로 초나라를 돕고 있는데, 초나라가 파리한 군대를 보여준 것은 우리를 유인하려는 것입니다.
신이 듣건대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을 대적하는 경우는 소국은 유도有道하고 대국이 무도無道할 때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른바 ‘도道’란 백성에게 충실忠實하고 신神에게 진실眞實한 것입니다.
윗사람이 백성을 이롭게 하기를 생각하는 것이 충忠이요, 축사祝史가 바른 말로 신神에게 고하는 것이 신信입니다.
지금 백성은 주리고 있는데 임금은 사욕을 만족하게 채우고, 축사祝史는 거짓말을 들어 제사 지내니, 신臣은 이런 상태로 대국을 대적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공(隨侯)이 대답하기를 “내가 제사에 올리는 희생犧牲의 색깔이 순색純色이고 살졌으며, 자성粢盛이 풍부하고 구비되었는데, 어째서 신神에게 진실하지 못했다고 하는가?”라고 하니, 계량季梁이 대답하기를 “백성은 신神의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성왕聖王은 먼저 백성의 생활부터 이루어준 뒤에 신神을 섬기는 제사에 힘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희생을 올리며 ‘박석비돌博碩肥腯’이라고 고告하니, 이는 백성의 재력財力이 널리 축적蓄積되었다는 것을 이름이며, 가축家畜이 비대肥大하고 번성蕃盛하다는 것을 이름이며, 가축이 병이 없고 피부에 버짐이 없다는 것을 이름이며, 비대肥大한 가축이 구비되어 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또 자성粢盛을 올리며 ‘결자풍성潔粢豐盛’이라고 고告하니 이는 세 철에 재해災害가 없어 백성들이 화목하고 농사가 풍년이 들었다는 것을 이름이고,
술을 바치며 ‘가율지주嘉栗旨酒’라고 고하니 이는 상하가 모두 아름다운 덕을 지녀 사심邪心이 없음을 이르는 것이니, 바로 제물祭物의 향기가 멀리까지 퍼지는 것은 사람들의 행동에 참소와 사특함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 철의 농사에 힘을 다하고, 오교五敎를 수명修明하고, 구족九族을 친애親愛하고 나서 제사에 힘을 다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화목하여 신神이 복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백성들의 마음이 각각 달라서 귀신에게 주인이 없으니, 임금께서 혼자 아무리 제사를 풍성하게 지낸들 무슨 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임금께서는 우선 정치를 닦고 형제의 나라를 친애하소서.
그렇게 하면 거의 화난禍難에서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수후隨侯는 두려워하여 정치를 닦으니, 초楚나라가 감히 침벌侵伐하지 못하였다.
傳
환공桓公 8년, 수隨나라 소사少師가 그 임금에게 총애를 받으니, 초楚나라 투백비鬪伯比가 말하기를 “수隨나라를 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적국敵國에 틈이 생겼으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여름에 초자楚子가 침록沈鹿(초나라 땅)에서 제후를 회합會合하였는데, 황黃나라와 수隨나라가 회합에 참가하지 않으니, 위장薳章을 보내어 황黃나라를 문책問責하게 하고, 초자楚子는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수隨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한수漢水와 회수淮水 사이에 주둔하였다.
계량季梁이 수후隨侯에게 항복하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저들이 우리의 항복을 허락하지 않은 뒤에 전투하면 우리의 군대를 격노激怒케 하고 적군敵軍을 태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소사少師가 수후隨侯에게 말하기를 “반드시 속전速戰하소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차 초군楚軍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수후隨侯가 방어防禦하려 할 때 멀리 초사楚師를 바라보자, 계량季梁이 말하기를 “초인楚人은 왼쪽을 높이니 초군楚君이 반드시 좌군左軍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초왕楚王과 마주치지 마시고, 우선 그 우군右軍을 공격하소서.
우군에는 양장良將이 없으니 반드시 패전敗戰할 것이고, 한쪽이 패전하면 초군楚軍의 군중群衆이 도망해 흩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소사가 말하기를 “초왕楚王과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으면 우리가 저들의 적수敵手가 아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라고 하니, 수후隨侯는 계량季梁의 말을 따르지 않고, 속기速杞(수나라 땅)에서 전투하다가 수군隨軍이 대패大敗하고 수후는 도망하였다.
투단鬪丹이 수후隨侯의 융거戎車를 노획鹵獲하고 융우戎右 소사少師를 생포生捕하였다.
초자楚子가 허락하지 않으려 하자, 투백비鬪伯比가 말하기를 “하늘이 수隨나라의 해악害惡을 제거하였으니, 수나라를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초자楚子는 수나라와 결맹하고서 환국還國하였다.
예전에, 남의 나라를 경복傾覆시킨 자는 자기의 계책을 숨기고 남을 은밀히 자기의 계책에 빠뜨려, 해를 당한 뒤가 아니면 깨달을 수 없게 하였으니, 어쩌면 그리도 계책이 심오하였는가?
처음 그 계책 속에 빠져 있을 때는 종일 동안 바쁘게 돌아다니며 힘을 다해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 화난禍難에 빠지는 것도 알지 못하다가, 군대를 잃고 나라가 망한 뒤에 전날 했던 일을 돌아보면 함정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런 뒤에 후회하며 발을 굴러도 미칠 수 없는 후회만 있으니, 아!
계책의 심오한 것이 어찌 다시 이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이보다 더 심오한 것이 있으니, 상대가 패배한 뒤에 나의 계책을 아는 것은 오히려 심오한 계책이 되기에 부족하다.
천하에는 본래 기묘한 권모權謀와 치밀한 계책計策이 있으니, 상대가 이미 패배한 뒤에도 그렇게 된 까닭을 모를 뿐만이 아니라, 비록 수천 수백 년 뒤에도 그렇게 된 까닭을 알지 못하니 천하에 더할 수 없이 심오한 계략이라 이를 만하다.’
나는 투백비鬪伯比가 수隨나라를 치기 위해 세운 모략을 보고서 그 모략의 심오함에 매우 감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세상에서 투백비의 계책을 논하는 자들은, 〈투백비가〉 ‘계량季梁의 정직함이 끝내 소사少師의 총애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니, 계량의 간언은 언젠가 반드시 쓰이지 않을 것이고, 소사의 말은 언젠가 반드시 쓰일 것이다.
나(투백비)의 계책이 비록 지금은 행해지지 못하나 끝내 후일에는 반드시 행해질 것이다.’라고 여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어찌 투백비의 계책을 엿보았다고 하기에 충분하겠는가?
사람들은 처음에 수후隨侯가 초楚나라를 추격하라는 소사의 청을 거절하고 정사를 닦으라는 계량의 간언을 따른 것을 보고 투백비의 계책이 행해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으니, 이는 그의 계략이 이미 그 사이에 깊이 행해지고 있음을 모른 것이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과 증삼曾參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은 반드시 세 번 와서 고한 뒤에야 사람들이 믿으니, 처음 고한 자는 분명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두 번째 고한 자도 분명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계속해서 고한 것은 어째서인까?
대개 한 번이 있으면 두 번이 있고, 두 번이 있으면 세 번이 있으니, 두 사람의 말이 앞에 있지 않았다면, 비록 참언讒言을 잘하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세 사람이 말하여 곧이 듣게 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처음에 믿지 않은 것이 뒤에 믿게 된 원인이니, 이것을 안다면 투백비鬪伯比의 계책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수후隨侯가 처음에 소사少師의 청을 거절한 것은 뒤에 소사의 청을 따르게 된 원인이고, 수후가 처음에 계량季梁의 말을 따른 것은 뒤에 계량의 말을 거절하게 된 원인이다.
계량은 수隨나라의 명망 있는 인물이니 임금이 평소 경외敬畏한 자이다.
투백비鬪伯比는 마음속으로 ‘내가 단번에 성공하려 한다면 저 소사가 비록 총애를 받고 있으나, 어찌 임금으로 하여금 대번에 평소 경외하는 자의 간언을 어기게 할 수 있겠는가?
지금 먼저 약한 모습을 보여 소사를 유인한다면 소사는 반드시 초나라를 치자고 청을 할 것이고, 계량은 반드시 정사를 닦으라고 간할 것이다.
수후는 평소 경외하는 상대에게 두려움을 느껴 반드시 힘써 계량의 간언을 따르고 소사의 요청을 거절할 것이니, 계량의 간언을 무사한 때에 헛되이 쓰이게 하고 유사시에 또 임금에게 간언하면, 임금은 반드시 번잡하다고 여길 것이다.
수나라가 믿을 사람은 오직 계량 한 사람뿐인데, 계량의 계책이 쓰이지 않는다면 후일에 우리가 거병擧兵할 때에 누가 다시 그 사이에서 방해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대체로 사람의 마음은 사태가 급박하여 어찌할 수 없어서 억지로 경외하는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은 한 번 따르는 데 불과할 뿐이니, 두 번째에 이르러서도 어찌 다시 따르려 하겠는가?
사태가 급박하여 어찌할 수 없어서 억지로 총애하는 자의 말을 거절하는 것은 한 번 거절하는 데 불과할 뿐이니, 두 번째에 이르러서도 어찌 다시 거절하겠는가?
경외하는 사람의 말을 억지로 따를 때에 비록 따르더라도 이미 불평스러운 마음이 있을 것이고, 총애하는 사람의 말을 억지로 거절할 때에 비록 거절하더라도 이미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수후隨侯의 불평스러운 일념一念이 처음 계량季梁의 간언을 따를 때에 생겨나서 몇 년 동안 쌓여 불평이 날로 증가하였으니, 초나라가 두 번째 쳐들어왔을 때에 계량의 간언이 어찌 폐기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차마 하지 못하는 일념一念이 처음 소사少師의 말을 거절할 때에 생겨나서 몇 년 동안 쌓여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날로 깊어졌으니, 초나라가 다시 쳐들어왔을 때에 소사의 말이 어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번에 계량의 간언을 거절한 것은 전에 그의 간언을 따른 데서 기인起因하고, 이번에 소사의 청을 따른 것은 전에 그의 요청을 거절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생각건대, 수후隨侯가 두려워하여 정사를 닦을 때에 온 나라 사람이 서로 축하하면서 임금이 간언을 받아들인 현명함만 칭송했지, 투백비鬪伯比가 기뻐하면서 수隨나라가 이미 자기의 계책에 빠졌다고 홀로 웃고 있는 줄은 몰랐을 것이다.
수년 전에 수나라를 깨뜨릴 계책을 세우고서 수년 뒤에 수나라를 깨뜨리는 공을 거두었으니, 투백비의 계책은 참으로 은미隱微하였다.
내가 일찍이 투백비鬪伯比의 계책을 깊이 고찰하건대, 이미 군대의 위용威容을 무너뜨리는 속임수를 빌려 소사少師의 욕망에 맞춰주고, 다시 소사의 청을 빌려 계량季梁을 자극해 간하게 하였으며, 다시 계량의 중망重望을 빌려 수후隨侯를 두려워하게 하고, 다시 수후의 거절을 빌려 소사의 부끄러움을 증가시켰으며, 다시 소사의 총애를 빌려 계량의 계책을 저지하게 하였다.
소사의 마음속에 심은 작은 독毒에 온 나라의 군신君臣이 모두 감염되어, 저들(隨나라의 군신君臣) 스스로 승부를 겨루고 저들 스스로 일어나고 넘어지며 저들 스스로 주고 빼앗기를 마치 수레바퀴와 기계처럼 끊임없이 반복하여 조금도 쉬지 않으니, 나(투백비)는 단정히 앉아 손을 마주 잡고 말이나 감정에 드러내지 않고 느긋하게 지친 수나라를 제압制壓하였다.
비록 지나간 사적事迹이 되어 사책史冊에 기록되어 있으나, 독자들도 오히려 그 두서를 알 수 없는데 하물며 당시에 직접 그 그물에 걸린 자이겠는가?
그렇다면 장차 어떻게 하여야 이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불이 붙을 곳이 없으면 뜨거운 불이 옥玉을 태울 수 없고, 병이 붙을 곳이 없으면 전염병의 기운이 사람을 병들게 할 수 없다.
투백비鬪伯比가 수隨나라의 토벌을 여러 해 동안 계획하였으면서도 수나라가 스스로 궤멸된 때를 이용하여 일거에 평정하지 않고, 도리어 적을 자손에게 남겨주었다.
수나라를 치는 데는 용감하였고 수나라를 멸망시키는 데는 겁을 냈으니, 이는 먼저는 훌륭하였고 뒤에는 졸렬해서가 아니라, 소사가 이미 죽어서 수나라에 병이 붙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 소인小人의 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비록 간언을 잘 따르더라도 기뻐할 것이 못 되고, 소인의 뿌리를 이미 제거하였으면 비록 군대가 패배하더라도 근심할 것이 못 되니,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소인의 뿌리를 제거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