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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1)

동래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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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1 楚侵隨
04-01-01 楚侵隨
【左傳】桓六年이라 楚武王侵隨하야 使薳章求成焉하고 軍於瑕以待之하니 隨人使少師하다
鬪伯比言於楚子曰 吾不得志於漢東也 我則使然이니이다
我張吾三軍而被吾甲兵하야 以武臨之하니 彼則懼而協以謀我
니이다
漢東之國 隨爲大하니이면 必棄小國하리니 小國離 니이다
率且比曰 季梁在하니 何益이리오 鬪伯比曰 하리라
少師歸하야 請追楚師하니 하다
季梁止之曰 天方授楚하니 楚之羸 其誘我也니이다
君何急焉이니잇고
臣聞小之能敵大也 小道大淫이라하니
所謂道 忠於民而信於神也니이다
上思利民 忠也 祝史正辭 信也니이다
民餒而君逞欲하고 祝史矯擧以祭하니 臣不知其可也로소이다
公曰 吾牲牷肥腯하며 粢盛豐備이어늘 何則不信 對曰 夫民 神之主也니이다
故奉牲以告曰 博碩肥腯이라하니 謂民力之普存也 謂其畜之碩大蕃滋也 謂其不疾瘯蠡也 謂其備腯咸有也니이다
奉盛以告曰 絜粢豐盛이라하니 謂其三時不害而民和年豐也
奉酒醴以告曰 嘉栗旨酒라하니 謂其上下皆有嘉德而無違心也 所謂馨香無讒慝也니이다
故務其三時하며 하며 親其하야 以致其하나니 於是乎民和而神降之福이라
故動則有成이니이다
今民各有心하여하니 君雖獨豐이나 其何福之有리잇가
君姑修政하여 而親兄弟之國하면
庶免於難하리이다
隨侯懼而修政하니 楚不敢伐하다
04-01-02 楚敗隨
【左傳】桓八年이라 隨少師有寵하니 楚鬪伯比曰 니이다
讐有釁하니 不可失也니이다
〈夏 楚子合諸侯于沈鹿 黃隨不會하니 使薳章讓黃하고〉 楚子伐隨하야 軍于漢淮之間하다
少師謂隨侯曰 必速戰하소서
不然이면 將失楚師하리이다
隨侯禦之할새 望楚師하다 季梁曰 하니 〈君必左하리이다
無與王遇하고 且攻其右하소서
右無良焉하니 必敗 偏敗 衆乃攜矣리이다
少師曰 不當王이면 非敵也니이다 弗從하고 戰于速杞라가 隨師敗績하니 隨侯逸하다
하다
楚子將不許한대 鬪伯比曰 隨未可克也니이다
乃盟而還하다
昔之傾人之國者 匿其機而使人陰墮其計하야 非受害之後 莫能悟하니 何其深也
方始墮其計 終日奔走馳驅하야 聽其所役하야 投于禍患而不自知라가 及師已喪하고 國已破하야 回視前日之所蹈者 無非陷穽이라
然後頓足이라도 有不可追之悔
亦晚矣로다
謀之深者 豈復有加於此耶리오
하니 使敵人旣敗而識吾之機 猶未足爲深也
天下固有奇權密機하니 非特敵人旣敗오도 尙不知其所以然이라 雖至於數千百年之後라도 亦不知其所以然하니 可謂極天下之至深矣
吾觀鬪伯比之謀隨하고 未嘗不三嘆其深也로라
世之論鬪伯比之謀者 不過謂季梁之正 終不能勝少師之寵하니 季梁之諫 必有時而不用也 少師之說 必有時而用也
吾之謀雖未行於今이나 終必行于後라하니
嗚呼
是何足以闚鬪伯比之機乎
人見隨侯初拒少師追楚之請하고 從季梁修政之諫하야 以爲伯比之謀未行也라하니 而不知其謀已深行乎其間矣니라
必三至而後信하니 其始告之者 明知其不信也 其再告之者 亦明知其不信也
明知其不信이로되 而續告之者 何耶
蓋有一則有二하고 有二則有三하니 無兩人之說 居其前이면 雖有善譖者라도 無以成三至之說也리라
其始之不信 所以成其後之信也 知此 則可以窺伯比之機矣리라
隨侯之始拒少師 所以成其後之從이요 隨侯之始從季梁 所以成其後之拒니라
季梁者 隨之望이니 其君素所畏者也
伯比以謂吾苟欲一擧而成功이면 彼少師雖愛 豈能使其君遽違素所畏者之諫乎
今先示弱以誘少師 則少師必有伐楚之請이요 季梁必有修政之諫이리라
隨侯迫于平日之所畏하야 必勉從季梁而拒少師하리니 使季梁之諫虛用於無事之時하고 及其有事而又諫이면 其君必以爲瀆矣리라
隨之所恃者 獨一季梁而已어늘 季梁之術旣窮이면 則吾他日之擧兵 誰復齟齬於其間哉
蓋人之情 迫于不得已而勉從所畏之言 不過能一從之耳 至於再하야도復從之乎
迫於不得已而勉拒所愛者之說 不過能一拒之耳 至於再하야도 豈能復拒之乎
不待至於再也
其勉從所畏之時 雖曰從之라도 而已有不平之心矣 其勉拒所愛之時 雖曰拒之라도 而已有不忍之心矣
隨侯一念之不平 發於始從季梁之諫하야 積而至數年 其不平日增하니 當楚再駕之際하야 季梁之諫 安得而不廢乎
一念之不忍 發于始拒少師之說하야 積而至數年 其不忍日深하니 當楚再駕之際하야 少師之說 安得而不入乎
是拒生於從하고 而從生於拒也
想隨侯恐懼修政之時 擧國交賀하야 頌其君納諫之明하고 而不知伯比欣然獨笑已入於吾之機矣
兆破隨之機于數年之前하야 收破隨之功於數年之後하니 伯比之機微矣哉
吾嘗深考伯比之謀컨대 旣假毁軍之詐하야 而中少師之欲하고 復假少師之請하야 而激季梁之諫하며 復假季梁之重하야 而致隨侯之懼하고 復假隨侯之止하야 而增少師之慙하며 復假少師之寵하야 而沮季梁之策이라
置毫末之毒於少師之心하야 而一國君臣展轉薰染하야 自勝自負하고 自起自仆하며 自予自奪 如輪如機하야 不得少息이니 吾端坐拱手하야 不動聲色而徐制其弊焉이라
雖事往迹陳하야 書之簡牘이나 讀者猶不知其端倪 況於當時自墜其網者乎
然則將何以自免
無受焚之地 則烈火不能焚玉하고 無受病之地 則癘氣不能病人이라
鬪伯比謀隨累年이로되 不乘其潰敗之餘하야 一擧平之하고 反以敵遺子孫이라
勇于伐隨하고 而怯於滅隨 非前工而後拙也 以少師旣死하니 則隨無受病之地也ᄅ새니라
嗚呼 小人之根未去 則雖從諫이라도 不足喜 小人之根旣去 則雖軍敗라도 不足憂 爲國者 其務去小人之根也哉ㄴ저


나라가 나라를 침공하다
나라가 나라를 침공하다
환공桓公 6년, 무왕武王나라를 침공侵攻해 들어가서 위장薳章(초나라 대부)을 보내어 화평和平을 요구하게 하고는 (수나라 땅)에 주둔하여 그 결과를 기다리니, 수인隨人소사少師(수나라 대부)를 진영陣營으로 보내어 강화회담講和會談주재主宰하게 하였다.
투백비鬪伯比(초나라 대부)가 초자楚子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한수漢水 동쪽에서 뜻을 얻지 못한 것은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삼군三軍과시誇示하고 우리의 갑옷과 무기를 갖추어서 무력으로 저들을 대하였기 때문에 저들은 두려워서 협심協心하여 우리에게 대항하기를 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을 이간시키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한수漢水 동쪽의 여러 나라 중에 나라가 가장 크니, 나라가 스스로 잘난 체하여 교만해지면 반드시 작은 나라들을 버릴 것이니, 작은 나라의 마음이 수나라를 떠나는 것은 우리 나라의 이익입니다.
소사少師는 본래 잘난 체하는 교만한 사람이니, 파리하고 약한 군사만을 보여주어 소사의 마음을 더욱 오만하게 만드소서.”라고 하였다.
웅률차비熊率且比(초나라 대부)가 말하기를 “나라에는 계량季梁(수나라 대부)이란 현신賢臣이 있으니 이런 계획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투백비鬪伯比가 말하기를 “후일을 위한 계책이니 장차 소사가 그 임금의 신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무왕武王은 군대의 위용威容을 무너뜨리고 소사를 영접迎接하였다.
소사가 돌아가서 초군楚軍을 추격하기를 청하니, 수후隨侯가 이를 허락하려 하였다.
그러자 계량季梁이 말리면서 말하기를 “하늘이 바야흐로 초나라를 돕고 있는데, 초나라가 파리한 군대를 보여준 것은 우리를 유인하려는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리 서두르십니까.
신이 듣건대 소국小國대국大國을 대적하는 경우는 소국은 유도有道하고 대국이 무도無道할 때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른바 ‘’란 백성에게 충실忠實하고 에게 진실眞實한 것입니다.
윗사람이 백성을 이롭게 하기를 생각하는 것이 이요, 축사祝史가 바른 말로 에게 고하는 것이 입니다.
지금 백성은 주리고 있는데 임금은 사욕을 만족하게 채우고, 축사祝史는 거짓말을 들어 제사 지내니, 은 이런 상태로 대국을 대적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공(隨侯)이 대답하기를 “내가 제사에 올리는 희생犧牲의 색깔이 순색純色이고 살졌으며, 자성粢盛이 풍부하고 구비되었는데, 어째서 에게 진실하지 못했다고 하는가?”라고 하니, 계량季梁이 대답하기를 “백성은 의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성왕聖王은 먼저 백성의 생활부터 이루어준 뒤에 을 섬기는 제사에 힘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희생을 올리며 ‘박석비돌博碩肥腯’이라고 하니, 이는 백성의 재력財力이 널리 축적蓄積되었다는 것을 이름이며, 가축家畜비대肥大하고 번성蕃盛하다는 것을 이름이며, 가축이 병이 없고 피부에 버짐이 없다는 것을 이름이며, 비대肥大한 가축이 구비되어 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자성粢盛을 올리며 ‘결자풍성潔粢豐盛’이라고 하니 이는 세 철에 재해災害가 없어 백성들이 화목하고 농사가 풍년이 들었다는 것을 이름이고,
술을 바치며 ‘가율지주嘉栗旨酒’라고 고하니 이는 상하가 모두 아름다운 덕을 지녀 사심邪心이 없음을 이르는 것이니, 바로 제물祭物의 향기가 멀리까지 퍼지는 것은 사람들의 행동에 참소와 사특함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 철의 농사에 힘을 다하고, 오교五敎수명修明하고, 구족九族친애親愛하고 나서 제사에 힘을 다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화목하여 이 복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움직이면 성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백성들의 마음이 각각 달라서 귀신에게 주인이 없으니, 임금께서 혼자 아무리 제사를 풍성하게 지낸들 무슨 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임금께서는 우선 정치를 닦고 형제의 나라를 친애하소서.
그렇게 하면 거의 화난禍難에서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수후隨侯는 두려워하여 정치를 닦으니, 나라가 감히 침벌侵伐하지 못하였다.
나라가 나라를 무찌르다
환공桓公 8년, 나라 소사少師가 그 임금에게 총애를 받으니, 나라 투백비鬪伯比가 말하기를 “나라를 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적국敵國에 틈이 생겼으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여름에 초자楚子침록沈鹿(초나라 땅)에서 제후를 회합會合하였는데, 나라와 나라가 회합에 참가하지 않으니, 위장薳章을 보내어 나라를 문책問責하게 하고, 초자楚子는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한수漢水회수淮水 사이에 주둔하였다.
계량季梁수후隨侯에게 항복하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저들이 우리의 항복을 허락하지 않은 뒤에 전투하면 우리의 군대를 격노激怒케 하고 적군敵軍을 태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소사少師수후隨侯에게 말하기를 “반드시 속전速戰하소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차 초군楚軍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수후隨侯방어防禦하려 할 때 멀리 초사楚師를 바라보자, 계량季梁이 말하기를 “초인楚人은 왼쪽을 높이니 초군楚君이 반드시 좌군左軍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초왕楚王과 마주치지 마시고, 우선 그 우군右軍을 공격하소서.
우군에는 양장良將이 없으니 반드시 패전敗戰할 것이고, 한쪽이 패전하면 초군楚軍군중群衆이 도망해 흩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소사가 말하기를 “초왕楚王과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으면 우리가 저들의 적수敵手가 아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라고 하니, 수후隨侯계량季梁의 말을 따르지 않고, 속기速杞(수나라 땅)에서 전투하다가 수군隨軍대패大敗하고 수후는 도망하였다.
투단鬪丹수후隨侯융거戎車노획鹵獲하고 융우戎右 소사少師생포生捕하였다.
가을에 나라가 나라와 화평和平하였다.
초자楚子가 허락하지 않으려 하자, 투백비鬪伯比가 말하기를 “하늘이 나라의 해악害惡을 제거하였으니, 수나라를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초자楚子는 수나라와 결맹하고서 환국還國하였다.
예전에, 남의 나라를 경복傾覆시킨 자는 자기의 계책을 숨기고 남을 은밀히 자기의 계책에 빠뜨려, 해를 당한 뒤가 아니면 깨달을 수 없게 하였으니, 어쩌면 그리도 계책이 심오하였는가?
처음 그 계책 속에 빠져 있을 때는 종일 동안 바쁘게 돌아다니며 힘을 다해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 화난禍難에 빠지는 것도 알지 못하다가, 군대를 잃고 나라가 망한 뒤에 전날 했던 일을 돌아보면 함정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런 뒤에 후회하며 발을 굴러도 미칠 수 없는 후회만 있으니, 아!
늦었도다.
계책의 심오한 것이 어찌 다시 이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이보다 더 심오한 것이 있으니, 상대가 패배한 뒤에 나의 계책을 아는 것은 오히려 심오한 계책이 되기에 부족하다.
천하에는 본래 기묘한 권모權謀와 치밀한 계책計策이 있으니, 상대가 이미 패배한 뒤에도 그렇게 된 까닭을 모를 뿐만이 아니라, 비록 수천 수백 년 뒤에도 그렇게 된 까닭을 알지 못하니 천하에 더할 수 없이 심오한 계략이라 이를 만하다.’
나는 투백비鬪伯比나라를 치기 위해 세운 모략을 보고서 그 모략의 심오함에 매우 감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세상에서 투백비의 계책을 논하는 자들은, 〈투백비가〉 ‘계량季梁의 정직함이 끝내 소사少師의 총애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니, 계량의 간언은 언젠가 반드시 쓰이지 않을 것이고, 소사의 말은 언젠가 반드시 쓰일 것이다.
나(투백비)의 계책이 비록 지금은 행해지지 못하나 끝내 후일에는 반드시 행해질 것이다.’라고 여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아!
이것이 어찌 투백비의 계책을 엿보았다고 하기에 충분하겠는가?
사람들은 처음에 수후隨侯나라를 추격하라는 소사의 청을 거절하고 정사를 닦으라는 계량의 간언을 따른 것을 보고 투백비의 계책이 행해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으니, 이는 그의 계략이 이미 그 사이에 깊이 행해지고 있음을 모른 것이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과 증삼曾參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은 반드시 세 번 와서 고한 뒤에야 사람들이 믿으니, 처음 고한 자는 분명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두 번째 고한 자도 분명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계속해서 고한 것은 어째서인까?
대개 한 번이 있으면 두 번이 있고, 두 번이 있으면 세 번이 있으니, 두 사람의 말이 앞에 있지 않았다면, 비록 참언讒言을 잘하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세 사람이 말하여 곧이 듣게 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처음에 믿지 않은 것이 뒤에 믿게 된 원인이니, 이것을 안다면 투백비鬪伯比의 계책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수후隨侯가 처음에 소사少師의 청을 거절한 것은 뒤에 소사의 청을 따르게 된 원인이고, 수후가 처음에 계량季梁의 말을 따른 것은 뒤에 계량의 말을 거절하게 된 원인이다.
계량은 나라의 명망 있는 인물이니 임금이 평소 경외敬畏한 자이다.
투백비鬪伯比는 마음속으로 ‘내가 단번에 성공하려 한다면 저 소사가 비록 총애를 받고 있으나, 어찌 임금으로 하여금 대번에 평소 경외하는 자의 간언을 어기게 할 수 있겠는가?
지금 먼저 약한 모습을 보여 소사를 유인한다면 소사는 반드시 초나라를 치자고 청을 할 것이고, 계량은 반드시 정사를 닦으라고 간할 것이다.
수후는 평소 경외하는 상대에게 두려움을 느껴 반드시 힘써 계량의 간언을 따르고 소사의 요청을 거절할 것이니, 계량의 간언을 무사한 때에 헛되이 쓰이게 하고 유사시에 또 임금에게 간언하면, 임금은 반드시 번잡하다고 여길 것이다.
수나라가 믿을 사람은 오직 계량 한 사람뿐인데, 계량의 계책이 쓰이지 않는다면 후일에 우리가 거병擧兵할 때에 누가 다시 그 사이에서 방해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대체로 사람의 마음은 사태가 급박하여 어찌할 수 없어서 억지로 경외하는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은 한 번 따르는 데 불과할 뿐이니, 두 번째에 이르러서도 어찌 다시 따르려 하겠는가?
사태가 급박하여 어찌할 수 없어서 억지로 총애하는 자의 말을 거절하는 것은 한 번 거절하는 데 불과할 뿐이니, 두 번째에 이르러서도 어찌 다시 거절하겠는가?
두 번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경외하는 사람의 말을 억지로 따를 때에 비록 따르더라도 이미 불평스러운 마음이 있을 것이고, 총애하는 사람의 말을 억지로 거절할 때에 비록 거절하더라도 이미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수후隨侯의 불평스러운 일념一念이 처음 계량季梁의 간언을 따를 때에 생겨나서 몇 년 동안 쌓여 불평이 날로 증가하였으니, 초나라가 두 번째 쳐들어왔을 때에 계량의 간언이 어찌 폐기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차마 하지 못하는 일념一念이 처음 소사少師의 말을 거절할 때에 생겨나서 몇 년 동안 쌓여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날로 깊어졌으니, 초나라가 다시 쳐들어왔을 때에 소사의 말이 어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번에 계량의 간언을 거절한 것은 전에 그의 간언을 따른 데서 기인起因하고, 이번에 소사의 청을 따른 것은 전에 그의 요청을 거절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생각건대, 수후隨侯가 두려워하여 정사를 닦을 때에 온 나라 사람이 서로 축하하면서 임금이 간언을 받아들인 현명함만 칭송했지, 투백비鬪伯比가 기뻐하면서 나라가 이미 자기의 계책에 빠졌다고 홀로 웃고 있는 줄은 몰랐을 것이다.
수년 전에 수나라를 깨뜨릴 계책을 세우고서 수년 뒤에 수나라를 깨뜨리는 공을 거두었으니, 투백비의 계책은 참으로 은미隱微하였다.
내가 일찍이 투백비鬪伯比의 계책을 깊이 고찰하건대, 이미 군대의 위용威容을 무너뜨리는 속임수를 빌려 소사少師의 욕망에 맞춰주고, 다시 소사의 청을 빌려 계량季梁을 자극해 간하게 하였으며, 다시 계량의 중망重望을 빌려 수후隨侯를 두려워하게 하고, 다시 수후의 거절을 빌려 소사의 부끄러움을 증가시켰으며, 다시 소사의 총애를 빌려 계량의 계책을 저지하게 하였다.
소사의 마음속에 심은 작은 에 온 나라의 군신君臣이 모두 감염되어, 저들(隨나라의 군신君臣) 스스로 승부를 겨루고 저들 스스로 일어나고 넘어지며 저들 스스로 주고 빼앗기를 마치 수레바퀴와 기계처럼 끊임없이 반복하여 조금도 쉬지 않으니, 나(투백비)는 단정히 앉아 손을 마주 잡고 말이나 감정에 드러내지 않고 느긋하게 지친 수나라를 제압制壓하였다.
비록 지나간 사적事迹이 되어 사책史冊에 기록되어 있으나, 독자들도 오히려 그 두서를 알 수 없는데 하물며 당시에 직접 그 그물에 걸린 자이겠는가?
그렇다면 장차 어떻게 하여야 이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불이 붙을 곳이 없으면 뜨거운 불이 을 태울 수 없고, 병이 붙을 곳이 없으면 전염병의 기운이 사람을 병들게 할 수 없다.
투백비鬪伯比나라의 토벌을 여러 해 동안 계획하였으면서도 수나라가 스스로 궤멸된 때를 이용하여 일거에 평정하지 않고, 도리어 적을 자손에게 남겨주었다.
수나라를 치는 데는 용감하였고 수나라를 멸망시키는 데는 겁을 냈으니, 이는 먼저는 훌륭하였고 뒤에는 졸렬해서가 아니라, 소사가 이미 죽어서 수나라에 병이 붙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 소인小人의 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비록 간언을 잘 따르더라도 기뻐할 것이 못 되고, 소인의 뿌리를 이미 제거하였으면 비록 군대가 패배하더라도 근심할 것이 못 되니,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소인의 뿌리를 제거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역주
역주1 [역주] 董成 : 董은 正(처리)이다. 董成은 涖盟과 같은 말인데, 涖盟은 두 나라 임금이 서로 만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보내어 會盟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역주2 [역주] 故難間也 : 저 漢水 동쪽의 諸侯들이 두려워서 協心해 우리에게 대항할 계책을 꾀하였기 때문에 저들의 마음을 離間시키기 어려웠으니, 이는 바로 楚나라의 失策이라는 말이다.
역주3 [역주] 張 : 스스로 잘난 체하여 교만 방자한 것이다.
역주4 [역주] 楚之利也 : 작은 나라들의 마음이 隨나라를 떠나면 隨나라의 형세가 외로워서 원조하는 나라가 없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楚나라의 이익이라는 말이다.
역주5 [역주] 少師侈 請羸師以張之 : 隨나라 少師는 마음이 본래 스스로 잘난 체하여 교만 방자하기 때문에 鬪伯比가 楚子에게 精銳軍은 숨기고 파리하고 약한 군사만을 보여줌으로써 소사의 마음을 더욱 오만하게 만들어 우리 楚軍을 깔보게 하라고 청한 것이다.
역주6 [역주] 以爲後圖 少師得其君 : 季梁의 諫言은 한 번 받아들여지는 데 불과할 뿐이고, 결국에는 隨侯가 少師를 시켜 계획을 세우게 할 것이므로 後日을 위한 계획이라고 한 것이다. 魯 桓公 2년 傳에 “蔡侯와 鄭伯이 鄧에서 회합한 것은 비로소 楚나라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楚子가 이때부터 강성하여 마침내 中國과 대항하였다. 그러므로 傳에 그 사실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始終을 드러내었다.
역주7 [역주] 王毁軍而納少師 : 鬪伯比의 계획을 따른 것이다. 楚나라 군대의 軍容을 무너뜨리고 少師를 맞아들인 것이다. 소사가 董成하기 위해 楚軍 진영으로 왔기 때문에 楚가 精銳兵은 숨기고 파리하고 약한 군사만을 보여준 것인 듯하다.
역주8 [역주] 隨侯將許之 : 楚軍이 약하다고 믿은 것이다.
역주9 [역주] (令)[今] : 저본에는 ‘令’으로 되어 있으나, 《춘추좌씨전》에 의거하여 ‘今’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역주] 聖王先成民而後致力於神 : 먼저 人民을 길러 成就시킨 뒤에 귀신을 섬기는 일에 힘을 다했다는 말이다.
역주11 [역주] 修其五敎 : 아비는 道義로 자식을 인도하고[父義], 어미는 자식을 慈愛하고[母慈],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兄友], 아우는 형에게 공손하고[弟恭],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子孝]이다.
역주12 [역주] 九族 : 外祖父‧外祖母‧從母(母親의 자매)의 아들 및 妻父‧妻母‧姑母의 아들, 姊妹의 아들, 딸의 아들과 모든 나의 同族을 이르는데, 모두 外親으로 服은 있으나 氏族이 다른 자들이다.
역주13 [역주] 禋 : 精潔하고 敬虔함이다.
역주14 [역주] 鬼神乏主 : 백성이 神의 주인이니, 民心이 화목하지 못한 것이 바로 귀신에게 주인이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역주15 [역주] 可矣 : 鬪伯比가 楚子에게 告한 것이다. 前年에 말한 隨나라를 교만 방자하게 만들 計策을 시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역주16 [역주] 季梁請下之……所以怒我而怠寇也 : 항복하기를 청하면 楚軍이 태만해지고, 항복을 허락하지 않으면 我軍이 노할 것이니, 저들은 태만하고 우리는 憤怒하면 전쟁을 해볼 만하다는 말이다.
역주17 [역주] 楚人上左 : 季梁이 또 楚나라의 法은 왼쪽을 귀하게 여긴다고 말한 것이다. 대체로 夷狄의 풍속이 이와 같으니, 이를테면 左衽의 類도 이에 해당한다.
역주18 [역주] 鬪丹獲其戎車與其戎右少師 : 鬪丹은 楚나라 대부이다. 戎車는 임금이 타는 兵車이다. 戎右는 車右이다. 少師를 총애하였기 때문에 그를 車右로 삼은 것이다.
역주19 [역주] 隨及楚平 : 패전한 뒤에 楚나라에 항복하고 和平을 청한 것이다.
역주20 [역주] 天去其疾矣 : 害惡을 제거하는 것[去其疾]은 少師가 잡혀 죽은 것을 이른다.
역주21 [역주] 噬臍 : 사향노루가 배꼽에 달린 향주머니 탓에 사냥꾼에게 잡히기 때문에 제 배꼽을 물어뜯으려 해도 입이 닿지 않는다는 뜻으로, 후회하여도 이미 늦었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역주22 [역주] 市中有虎 :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한 사람이 말하면 믿지 않고, 두 사람이 말하면 사실일까 의심하고, 세 사람이 말하면 사실이라고 믿는다는 고사에서 나와, 아무리 터무니없는 말일지라고 여러 사람이 말하면 믿게 된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는 戰國時代 魏나라의 장군 龐葱이 邯鄲에 인질로 가면서 자신이 떠난 후 참소하는 말이 많을 것을 염려하여 魏王에게 참소를 믿지 말라고 하며 한 말인데, 과연 길을 떠나자마자 방총을 참소하는 말이 이르렀고, 이후 방총은 위나라로 돌아올 수 없었다. 《戰國策 魏策》
역주23 [역주] 曾參殺人 : 아무리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도 계속 듣다 보면 사람들이 믿는다는 말이다. 춘추시대 孔子의 제자 曾參과 同名異人이 있었는데, 그가 살인을 하자 동네 사람이 증참의 어머니에게 와서 “증참이 사람을 죽였다.”고 하니, 증참의 어머니는 믿지 않고 태연히 베를 짰다. 다른 사람이 와서 또 “증참이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증참의 어머니는 여전히 베를 짜다, 또 다른 사람이 와서 “증참이 사람을 죽였다.”고 하자, 그 말을 곧이 듣고 담을 넘어 도망갔다고 한다.
역주24 [역주] 〈者〉 : 저본에는 없으나, 사고전서본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5 [역주] (能)[肯] : 저본에는 ‘能’으로 되어 있으나, 사고전서본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동래박의(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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