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 文元年
이라 初
에 楚子將以商臣爲太子
하야 訪諸令尹子上
한대 子上曰
요 니이다
는 恒在少者
니이다 且是人也
는 蜂目而豺聲
이니 라 不可立也
니이다 弗聽
하다
旣
에 하고 而黜太子商臣
하다 이라 告其師潘崇曰 若之何而察之
오 潘崇曰 享江
]
하라
從之
하다 江(芊)[羋]怒曰
여 宜君王之欲殺女而立職也
로다
告潘崇曰 信矣
라 潘崇曰
아 曰 不能
이라 아 曰 不能
이라 아 曰 能
이라
天下之言을 察於利害未驗之前은 人皆以爲難하고 察於利害旣驗之後는 人皆以爲易라
鯀能欺四岳於九載之初
나 而不能欺比屋於九載之後
注+鯀能欺四嶽於九載之初 而不能欺比屋於九載之後:하니 非比屋果智於四岳也
라 未驗之與已驗
이 其難易固不同也
ㄹ새니라
少正卯能欺子貢於兩觀方誅之始
나 而不能欺市人於兩觀旣誅之餘
注+少正卯能欺子貢於兩觀方誅之始 而不能欺市人於兩觀旣誅之餘:하니 非市人果智於子貢也
라 未驗之與已驗
이 其難易固不同也
ㄹ새니라
未見汨陳之禍에 而能察鯀之策이면 則天下皆堯矣요 未見僞辨之慝에 而能察少正卯之言이면 則天下皆孔子矣로되 如必待旣驗而後察之면 特比屋市人之智耳라
是故出夏癸於南巢
하얀 則必思伊尹不可再留
요 起商辛於牧野
하얀 則必思祖伊不可再用
注+是故出夏癸於南巢……則必思祖伊不可再用:이며 脫夫差於姑蘇
하얀 則必思子胥不可再生
注+脫夫差於姑蘇 則必思子胥不可再生:이라
當利害旣驗之後엔 雖至愚極暴之人이라도 猶知其可從而悔其不從也라
然則天下之言을 當利害未驗之時察之를 安得不謂之難乎며 自利害旣驗之後察之를 安得不謂之易乎아
吾獨以爲利害之未驗에 察言者若難而實易하고 利害之旣驗에 察言者若易而實難이라하노라
利害未驗之前엔 利未見利하고 害未見害는 吾心未爲利害之所分하니 則所用以察言者가 皆心之正也ㄹ새니라
以吾心之正으로 而察天下之言이면 其善其惡과 其邪其正이 畢陳于前而莫能遁이니 非難而易耶아
至於利害旣驗之後하야 吾見其言之驗이면 則竊意其言之可從이니 是以事信之요 而非以心信之也며 吾見其言之不驗이면 則竊意其言之不可從이니 是以事疑之요 而非以心疑之也라
人臣之以是諫非者는 君從之則有利하고 君不從之則有害하니 後世因其事之驗하야 而信其言之驗은 可也어니와 抑不知天下固有以非諫非者하니 雖能知君之過라도 而己之諫亦不免於過하며 雖能擧君之失이라도 而己之諫亦不免於失이라
君不從其言이면 固有害也나 君從其言이라도 亦有害也라 後世徒見其君不從其言之害요 而不見從其言之害하야 溺其事之驗하고 而忘其理之差하야 爭拾其遺說而襲之하니 盖有亂亡相尋而不悟者矣라
子上諫楚成王之立商臣이러니 旣中楚成之非矣나 而子上之所以諫者도 亦未免於非也라
旣曰君之齒未也오 而又多愛하니 黜乃亂也라하고 又曰楚國之擧는 常在少者라하니 此二說者는 實萬世禍亂之權輿라
使楚成從其前之說이면 則國本不建하야 儲位久虛니 得無起覬覦之姦乎아
使楚成從其後之說이면 則嫡庶不明하고 長幼失序니 得無開簒奪之萌乎아
有以立嗣爲諱
하야 如唐宣宗者
注+如唐宣宗者:는 實子上齒未之言誤之也
라 有以庶孼奪宗
하야 如隋文帝者
는 實子上擧少之言誤之也
라
其餘以此隊命隕姓者를 未易枚擧하니 豈非樂已驗之言而蹈未見之禍乎아
彼商臣之惡은 有非梟鴟其心者면 皆知疾趨而避之하니 其禍後世가 殆未若子上之烈也라
張角不足爲漢禍
요 而討張角者乃爲漢禍
注+而討張角者乃爲漢禍:며 盧循不足爲晉禍
요 而滅盧循者乃爲晉禍
注+而滅盧循者乃爲晉禍:며 商臣不足爲萬世禍
요 而排商臣者乃爲萬世禍
라
天下之禍는 固有機於此而動於彼者矣니 夫豈始慮所及耶아
초楚나라 태자太子 상신商臣이 성왕成王을 시해하다
傳
문공文公 원년, 당초에 초자楚子(성왕成王)가 상신商臣을 태자太子로 삼으려고 영윤令尹 자상子上에게 의견을 물으니, 자상子上이 말하였다. “임금님의 나이가 아직 젊으시고 또 사랑하는 아들이 많으니, 〈만약 그를 태자로 세웠다가 뒤에 다시〉 그를 폐출廢黜하게 된다면 화란禍亂이 생길 것입니다.
〈상신商臣은 나이가 많으니〉 초楚나라에 태자로 세워진 분은 항상 나이가 어린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 사람은 눈은 벌 눈과 같고 목소리는 늑대소리 같으니 잔인한 사람입니다. 세워서는 안 됩니다.” 초자楚子는 이 말을 듣지 않았다.
상신商臣을 태자로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성왕成王은 또 왕자王子 직職을 태자로 세우고 태자 상신商臣을 폐출廢黜하고자 하였다. 상신商臣은 그 소문을 들었으나 분명치 않아서, 그 스승 반숭潘崇에게 “어떻게 하면 분명히 알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반숭潘崇이 “강미江羋를 초대해 접대하되 존경하지 말라.”고 하였다.
상신商臣이 그의 말을 따라 그대로 하니, 강미江羋가 노하여 “아, 미천한 놈아[역부役夫]! 군왕君王께서 너를 죽이고 직職을 태자로 세우려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였다.
상신商臣이
반숭潘崇에게 “그 소문이 사실이다.”고 고하니,
반숭潘崇이 “그대가
직職을 섬길 수 있는가?”고 물으니
상신商臣이 “섬길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반숭潘崇이 다시 “
출분出奔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니
상신商臣이 “떠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반숭潘崇이 “그렇다면
대사大事를 거행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니
상신商臣이 “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楚나라 商臣이 궁에 들어가 아버지를 시해하다[楚商臣入宮弑父]
겨울 10월에 상신商臣이 궁갑宮甲을 거느리고 가서 성왕成王을 포위하였다. 성왕成王이 웅번熊蹯(웅장熊掌)을 먹고 죽기를 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으니 정미일丁未日에 왕이 목매어 죽었다.
시諡를 ‘영靈’이라 하니 〈성왕成王의 시신이〉 눈을 감지 않고, 다시 ‘성成’이라 하니 그제야 눈을 감았다.
천하의 말을 이해利害가 험증驗證되기 전에 밝게 살피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어렵게 여기고, 이해가 이미 험증된 뒤에 밝게 살피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쉽게 여긴다.
곤鯀(
하우씨夏禹氏의 아버지)이 9년 동안
홍수洪水를 다스리던 초기에는
사악四岳을 속일 수 있었으나 9년이 지난 뒤에는
注+≪尙書≫에 보인다. 평범한 이웃[
비옥比屋]도 속일 수 없었으니, 이는
비옥比屋이 과연
사악四岳보다 지혜로워서가 아니라 험증되기 이전과 이후의 살피기 어려움과 쉬움이 본래 같지 않기 때문이다.
소정묘少正卯가
양관兩觀 아래에서
주살誅殺되기 전에는
자공子貢도 속일 수 있었으나
양관兩觀 아래에서 주살된 뒤에는
注+≪孔子家語≫에 보인다. 시인市人들도 속일 수 없었으니, 이는
시인市人이 과연
자공子貢보다 지혜로워서가 아니라 험증되기 이전과 이후의 살피기 어려움과 쉬움이 본래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이 안배한 오행五行의 운행규율을 어지럽혀〉 홍수洪水의 재화災禍를 당하기 전에 곤鯀의 치수책治水策이 실패할 것을 밝게 살폈다면 천하 사람이 모두 제요帝堯가 되었을 것이고, 궤변詭辯하는 사악함이 드러나기 전에 소정묘少正卯의 말이 틀렸음을 살폈다면 천하 사람이 모두 공자孔子가 되었을 것이지만, 만약 반드시 이미 험증되기를 기다린 뒤에 살핀다면 다만 비옥比屋과 시인市人의 지혜일 뿐이다.
그러므로
하걸夏桀[
하계夏癸]이
남소南巢로 추방된 뒤에는 반드시
이윤伊尹을 다시 만류해 임용할 방법이 없음을 생각했을 것이고,
상신商辛이
목야牧野에서
기사회생起死回生하였다면 반드시
조이祖伊를 다시 임용할 방법이 없음을 생각했을 것이며,
注+모두 ≪尙書≫에 보인다. 부차夫差가
고소성姑蘇城에서 탈출하였다면 반드시
오자서伍子胥가 이미 죽어 다시 살릴 수 없음을 생각했을 것이다.
注+≪史記≫ 〈吳世家〉에 보인다.
이해利害가 이미 험증된 뒤에는 비록 지극히 어리석고 지극히 포학한 사람이라도 오히려 〈신하들의 충언忠言을〉 따라야 함을 알아서 당초에 따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그렇다면 천하 사람들의 말을 이해가 험증되기 전에 살피는 것을 어찌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천하 사람들의 말을 이미 이해가 험증된 뒤로부터 살피는 것을 어찌 쉽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홀로 이해利害가 험증되기 전에 말을 살피는 것이 어려운 것 같으나 사실은 쉽고, 이해가 험증된 뒤에 말을 살피는 것이 쉬운 것 같으나 사실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말하는 자들에 반대하고자 함을 즐겨서가 아니니, 이른바 바른 말이 반대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해가 험증되기 전에는 이로워도 이로운 줄을 모르고 해로워도 해로운 줄을 모르는 것은 내 마음이 아직 이해에 분란紛亂[분分]되지 않아서이니 마음을 써서 이해를 살피는 것이 모두 마음의 정리正理이기 때문이다.
나의 바른 마음으로 천하의 말을 살피면 선한 말, 악한 말, 간사한 말, 정직한 말이 모두 내 앞에 펼쳐져 도망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어려운 것 같으나 사실은 쉬운 것이 아닌가?
이해가 험증된 뒤에 이르러, 내가 그 말(예언)이 사실에 부합하는 것을 보면 속으로 그 말을 따를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니 이는 〈발생하는〉 사실을 믿는 것이지 마음을 믿는 것이 아니며, 내가 그 말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보면 속으로 그 말을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니 이는 사실을 의심하는 것이지 마음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과 의심이 마음에서 나오지 않고 〈발생하는〉 일에서 나온다면 그 폐해弊害를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인신人臣이 바른 말로 임금의 잘못을 간쟁하는 경우 임금이 그 간언을 따르면 유리하고, 임금이 따르지 않으면 유해有害하였으니, 후세 사람들은 그 일이 험증된 것으로 인해 그 말이 사실에 부합한다고 믿는 것은 괜찮지만, 천하天下에는 본래 옳지 않은 마음으로 임금의 잘못을 간하는 자도 있음을 알지 못하니, 〈그 이유는〉 신하가 비록 임금의 과오를 안다 하더라도 자기가 진간進諫하면 과오를 면할 수 없으며, 비록 임금의 잘못을 거론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진간하면 과실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금이 간언을 따르지 않으면 당연히 환해患害가 있겠지만 임금이 간언을 따르더라도 환해가 있을 수 있다. 후세 사람들은 다만 임금이 간언을 따르지 않으므로 인해 생기는 환해만을 보았고, 간언을 따름으로 인해 생기는 환해는 보지 못하여 그 일이 험증된 것에 빠져 그 이치가 어그러진 것은 잊고서 경쟁적으로 그 유설遺說들을 주워 모아 인습하니, 대체로 이것이 난망亂亡이 계속되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것이 내가 말한 쉬운 것 같으나 사실은 어렵다는 것이니, 초楚나라 자상子上의 일이 바로 이러하다.
자상子上은 초楚 성왕成王이 상신商臣을 태자太子로 세우려는 것을 간諫하였더니, 얼마 뒤에 초楚 성왕成王의 잘못을 정확히 맞추었으나 자상子上이 간한 방법 또한 잘못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미 “임금님의 나이가 아직 젊으시고, 또 사랑하는 아들이 많으니, 〈만약 그를 태자로 세웠다가 뒤에 다시〉 그를 폐출廢黜하게 된다면 화란禍亂이 생길 것입니다.”라고 하고, 또 “초楚나라에 태자로 세워진 분은 항상 나이가 어린 분이었습니다.”라고 하였으니, 이 두 종류의 말은 실로 만세 화난禍難의 시초이다.
가령 초楚 성왕成王이 자상子上의 전설前說을 따랐다면 국본國本을 세우지 않아 태자의 자리가 오래 비었을 것이니 어찌 분수 밖의 자리를 넘보는 간계姦計가 일어나지 않았겠는가.
가령 초楚 성왕成王이 자상子上의 후설後說을 따랐다면 적서嫡庶가 분명치 않고 장유長幼가 순서를 잃었을 것이니 어찌 찬탈의 화禍가 싹트지 않았겠는가.
나는 이 두 가지 화가 웅장熊掌의 변란과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뒤였을지 모르겠다.
후세에는 상신商臣이 시역弑逆할 것이라고 예언한 자상子上의 말이 험증된 것을 보고서 드디어 그 말을 믿었다가 화란에 빠진 자가 있다.
당唐 선종宣宗처럼
注+≪新唐書≫ 〈本紀〉에 보인다. 후사後嗣를 세우는 일에
기휘忌諱한 것은 실로 “임금님의 나이가 아직 젊으십니다.[齒未]”라고 한
자상子上의 말이 그르친 것이고,
수隋 문제文帝처럼
서얼庶孽이
적자嫡子의 자리를 빼앗은 것은 실로 “태자로 세워진 분은 항상 나이가 어린 분이었습니다.[擧少]”라고 한
자상子上의 말이 그르친 것이다.
그 밖에도 이로 인해 성명性命을 상실한 자를 일일이 열거하기가 쉽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이미 험증된 말을 즐겼다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화에 빠진 것이 아니겠는가?
저 상신商臣의 죄악으로 말하면 〈제어미를 잡아먹는〉 올빼미의 심보를 가진 자가 아니라면 모두 급히 피할 것이니, 〈그 말이〉 후세에 화를 끼치는 것이 아마도 자상子上의 말만큼 혹독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장각張角이
한漢나라를 망칠
화수禍首가 될 만하지 못하고
장각張角을 토벌한 자가 도리어
한漢나라를 망친 화수이며,
注+魏나라 曹操를 이른다. 노순盧循이
진晉나라를 망칠 화수가 될 만하지 못하고
노순盧循을
격멸擊滅한 자가 도리어
진晉나라를 망친 화수이며,
注+宋나라 劉裕를 이른다. 상신商臣이 만세의 화수가 될 만하지 못하고
상신商臣을 배척한 자가 도리어 만세의 화수이다.
천하의 화환禍患은 본래 조짐은 여기에서 일어나지만 결과는 저기에 나타나는 것이니, 어찌 〈화환이 시작될〉 초기에 미리 헤아림으로써 〈그 결과를〉 알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