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 文七年
이라 하다 戴己卒
에 하다 莒人以聲己辭
하니 하다
冬
에 徐伐莒
하니 하다 穆伯如莒涖盟
하고 且爲仲逆
하다 하야 登城見之
하니 美
어늘 自爲娶之
하다
仲請攻之
하니 公將許之
하다 曰 臣聞之
하니 兵作於內爲亂
이요 於外爲寇
라 寇猶及人
이어니와 亂自及也
라하니이다 今臣作亂
이어늘 而君不禁
하야 하시니 若之何
잇가 公止之
하다
惠伯成之
하야 하고 公孫敖反之
하야 復爲兄弟如初
하니 從之
하다
傳
【左傳】 文八年
이라 穆伯如周弔喪
이라가 不至
하고 以幣奔莒
하야 하다
傳
【左傳】 文十四年
이라 에 하다 穆伯生二子於莒
하고 而求復
이어늘 文伯以爲請
하니 襄仲使無朝聽命
하다
文伯疾
에 而請曰
하니 하소서 許之
하다 文伯卒
커늘 立惠叔
하다
傳
【左傳】 文十五年
이라 曰 魯
는 爾親也
니 면 魯必取之
리라 從之
하다 卞人以告
한대
하다 한대 惠伯曰 喪
은 親之終也
니 雖不能始
나 善終可也
라
史佚有言曰 兄弟致美
하야 救乏賀善弔災
하고 하야 情雖不同
이나 라하니 子無失道
면 何怨於人
가
注
【主意】 兄弟之属은 天也니 非較怨之地也라 人知襄仲之於穆伯에 昔怨而今解요 而不知胷中之天則無怨無人也라 不然이면 雖有叔仲惠伯이라도 豈能解其怨於立談之間哉아
問修怨於君子
면 必以爲非
注+問修怨於君子 必以爲非:此言君子忘怨요 問修怨於小人
이면 必以爲是
注+問修怨於小人 必以爲是:此言小人報怨라하니 二者皆未爲定論也
注+二者皆未爲定論也:斷二者皆非確然之論라
專於報怨者
는 商鞅氏之徒耳
요 范雎氏之徒耳
注+專於報怨者……范雎氏之徒耳:商鞅范雎戰國之佐 專以報怨爲事니 格之以聖人之門
이면 在所擯也
라 專於忘怨者
는 老聃氏之徒耳
요 莊周氏之徒耳
注+專於忘怨者……莊周氏之徒耳:老聃莊周漬虛之說 專以忘怨爲論니 格之以聖人之言
이면 亦在所擯也
라
吾聖人之門
엔 未嘗修怨
注+吾聖人之門 未嘗修怨:與鞅雎異하고 未嘗不修怨
注+未嘗不修怨:與老莊異이요 權其小大輕重而中持衡焉
注+權其小大輕重而中持衡焉:聖人處事 如權衡之稱物焉 怨之小者輕者可忘 而怨之大者重者不可忘也 謂如身之私怨 固可忘 若有君父之怨 則不可矣이라 小者忘之
하고 大者報之
하며 輕者忘之
하고 重者報之
요 未嘗倚一偏而主一說也
注+未嘗倚一偏而主一說也:一偏之說 如報怨忘怨之謂 此已上未是主意라
穆伯爲襄仲聘婦于莒
注+穆伯爲襄仲聘婦于莒:入事 詳見本題出處에 中道而奪之
注+中道而奪之:見其美而自娶之하니 夫豈細怨也哉
注+夫豈細怨也哉:妻爲人所奪 安得而不怨리오 而惠伯區區其間
하야 委曲調護
注+委曲調護:叔仲惠伯 調停一人之怨하야 始則釋其憾
注+始則釋其憾:復爲兄弟如初하고 終則全其恩
注+終則全其恩:帥兄弟以哭之하니라
彼非不知輕重小大之所在也
注+彼非不知輕重小大之所在也:應前權其小大輕重 彼 謂惠伯나 盖穆伯之於襄仲
에 兄弟也
注+盖穆伯之於襄仲 兄弟也:公孫敖與公子遂 爲仍從兄弟ㄹ새니라 怨之小大
를 在他人可言耳
注+怨之小大 在他人可言耳:說破起頭意나 兄弟之間
은 非較小大之地也
며 怨之輕重
을 在他人可言耳
나 兄弟之間
은 非較輕重之地也
注+兄弟之間……非較輕重之地也:兄弟無藏怒無宿怨 非可以此爲怨也 至此方是主意라
合以人者
는 有時而離
注+合以人者 有時而離:如交遊知友之類나 合以天者
는 無時而離
注+合以天者 無時而離:如父子兄弟之類라 兄弟之屬
은 天也
注+兄弟之屬 天也:以天合矣니 人怨不足以害之
注+人怨不足以害之:天倫之愛 非怨可害니라
襄仲之怨穆伯
을 以人觀之
注+襄仲之怨穆伯 以人觀之:自人情觀之면 則固大矣
요 重矣
注+則固大矣 重矣:大則不小 重則不輕나 以天視之
注+以天視之:自天理視之면 則兄弟之親
은 與生俱生而不可離
注+則兄弟之親 與生俱生而不可離:天合之心 豈較輕重小大之地니 豈以恩而加
하고 豈以怨而損哉
注+豈以恩而加 豈以怨而損哉:不爲恩而加 不爲怨而損리오
雨暘變於前
이나 太虛之眞體未嘗動也
注+雨暘變於前 太虛之眞體未嘗動也:譬之太虛 不爲雨暘而變其眞體也요 恩怨交於前
이나 兄弟之眞情未嘗動也
注+兄弟之眞情未嘗動也:亦猶兄弟不爲恩怨而移其眞情라 曰雨曰暘
이나 而眞體之中
에 本不知有雨暘
이요 自恩自怨
이나 而眞情之中
에 本不知有思怨
이라
襄仲向者之怨
은 私情之怨耳
注+襄仲向者之怨 私情之怨耳:以私情而蔽其天也요 今者之解
는 私情之解耳
注+今者之解 私情之解耳:解私情而還其天也라 乃若胷中之天
은 則向無怨而今無解也
注+乃若胷中之天 則向無怨而今無解也:兄弟之天 不以怨而無 不以解而有라 不然
注+不然:若胷中素無此天理이면 則豈惠伯立談之頃
에 所能回耶
注+則豈惠伯立談之頃 所能回耶:惠伯雖善調護 豈能解其怨乎리오
焚廪捐階之虐
注+焚廪捐階之虐:引舜事證 孟子 萬章曰 父母使舜完廩捐階 瞽瞍焚廪 捐 棄也 階 梯也과 治棲入宮之侮
注+治棲入宮之侮:同上 象曰 二嫂使治朕捿 象往入舜宮를 百世之後
에 讀其書者
도 猶爲舜切齒
注+百世之後……猶爲舜切齒:舜弟象日以殺舜爲事 且入宮而取其室 悖逆如此 後世讀其書者 無不代舜切齒而怨之어늘
而舜之恩意
가 源源不絶者
注+而舜之恩意 源源不絶者:舜不惟 怨象之心 且封之有痺 以富貴之 又欲常常而見之 故源源而來는 非以德而報怨也
注+非以德而報怨也:以德報怨 出論語 引此以言兄弟之間 無怨可報라 以弟待象
이요 而不以象待象也
注+以弟待象 而不以象待象也:舜知愛弟而已 不知象之害已며 以天觀象
이요 而不以人觀象也
注+以天觀象 而不以人觀象也:舜知天屬之愛 不知象之人僞라 盖鬱陶而思舜者
注+盖鬱陶而思舜者:孟子 象曰鬱陶思君爾 忸怩는 乃象之天
注+乃象之天:思其兄者 象之天理이요 彼傲而害舜者
注+彼傲而害舜者:書堯典曰象傲는 特象之人耳
注+特象之人耳:害其兄者 象之人僞라 舜之胷中純乎天
注+舜之胷中純乎天:聖人之心 純乎天理이라 故見象之天而不見象之人也
注+故見象之天而不見象之人也:所以以天觀象 而不以人觀象라
使惠伯立於舜之朝
注+使惠伯立於舜之朝:假設如此면 將化於舜之天而不自知矣
注+將化於舜之天而不自知矣:自然與舜相忘於天理之中니 雖有喙三尺
注+雖有喙三尺:莊子云 丘願有喙三尺이라도 焉攸用
注+焉攸用:假使惠伯有三尺之喙 善爲辭說 何能復措一辭乎이리오
傳
문공文公 7년, 목백穆伯이 거莒나라에서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그 아내의 이름이 대기戴己이다. 대기戴己는 문백文伯을 낳고 그의 동생 성기聲己는 혜숙惠叔을 낳았다. 대기戴己가 죽자 목백穆伯이 또 거莒나라에 행빙行聘하니 거인莒人이 성기聲己가 있다는 이유로 사절하였다. 그러자 목백穆伯은 양중襄仲을 위해 행빙行聘하였다.
겨울에 서徐나라가 거莒나라를 토벌하니 거인莒人이 노魯나라에 와서 결맹結盟을 요청하였다. 목백穆伯이 거莒나라로 가서 결맹에 참가하고서 양중襄仲을 위해 여자를 맞이해왔다. 언릉鄢陵에 당도하여 성城에 올라 그 여자를 바라보니 미인美人이므로 그 여자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였다.
양중襄仲이 목백穆伯을 공격하기 위해 문공文公에게 허락을 요청하니 문공文公이 허락하려 하였다. 그러자 숙중혜백叔仲惠伯이 간諫하기를 “신臣이 듣건대 병란兵亂이 내부內部에서 일어나는 것을 ‘난亂’이라 하고 외부外部에서 일어나는 것을 ‘구寇’라고 하는데 외구外寇는 화禍가 사람들에게 미치지만 내란內亂은 화가 스스로에게 미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신하가 내란을 일으키려 하는데 군君께서 금하지 않으시어 외구가 침입할 마음을 내도록 인도하시니 〈만약 외구가 쳐들어온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라고 하니, 문공文公은 양중襄仲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혜백惠伯이 두 사람을 화해시켜 양중襄仲은 그 여자를 포기하고 공손오公孫敖는 그 여자를 거莒나라로 돌려보내고서 다시 형제가 옛날처럼 지내도록 권하니 두 사람은 모두 그의 말을 따랐다.
목백穆伯이 예물禮物을 가지고 거莒나라로 도망가다
傳
문공文公 8년, 목백穆伯이 조상弔喪하기 위해 주周나라에 가다가 경사京師로 가지 않고, 가지고 간 예물禮物을 가지고 거莒나라로 도망하여 기씨己氏를 찾아갔다.
목백穆伯이 노魯나라로 돌아왔다가 다시 거莒나라로 가다
傳
문공文公 14년, 목백穆伯(공손오公孫敖)이 기씨己氏를 찾아 거莒나라로 간 뒤에 노인魯人은 문백文伯을 목백穆伯의 후계자後繼者로 세웠다. 목백穆伯이 거莒나라에서 아들 둘을 낳은 뒤에 노魯나라로 돌아오기를 요구하자 문백文伯이 〈목백穆伯을 위해 노魯나라 조정에〉 청원請願하니, 양중襄仲이 그가 돌아온 뒤에 조정朝廷에 나와 정사政事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목백穆伯이 돌아온 뒤에 외출하지 않더니 2년 뒤에 전 재산을 다 가지고 다시 거莒나라로 갔다.
문백文伯이 병이 들자 문공文公에게 청하기를 “신臣의 자식은 어리니 신臣의 아우 난難를 후계자로 세워주소서.”라고 하니, 문공文公이 허락하였다. 문백文伯이 죽자 혜숙惠叔을 후사後嗣로 세웠다.
얼마 뒤에 목백穆伯이 노魯나라에 많은 재물財物를 바치고서 귀국을 허락해달라고 청하였다. 혜숙惠叔이 〈그를 위해〉 청하니 문공文公이 허락하였다.
돌아오다가 제齊나라에서 졸卒하였다. 노魯나라에 상喪을 고하고 귀장歸葬하기를 청하였는데 허락하지 않았다.
제인齊人이 공손오公孫敖의 상구喪柩를 돌려보냈으나 성기聲己가 그 상구를 보지 않다
傳
문공文公 15년, 제齊나라의 어떤 사람이 맹씨孟氏를 위해 계책을 내어 말하기를 “노魯나라는 저 사람의 친속親屬이니 관棺을 장식하여 당부堂阜에 갖다 두면 노魯나라에서 반드시 가져갈 것이다.”고 하였다. 이 말을 따라 그대로 하니 변인卞人이 이 일을 혜숙惠叔에게 알렸다.
혜숙惠叔은 〈목백穆伯이 죽은 지 이미 8~9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애훼哀毁한 모습으로 귀장歸葬을 청하면서 조정朝廷에 서서 임금의 명을 기다렸다. 문공文公이 귀장을 허락하니 〈혜백惠伯은 목백穆伯의 관棺을〉 가져다가 빈殯하였다.
제인齊人이 상구喪柩를 전송하였기 때문에 경經에 “제인齊人이 공손오公孫敖의 상구을 돌려보냈다.”고 기록하였으니, 이는 목백穆伯이 맹씨孟氏의 조부祖父이고 또 노魯나라의 공족公族이기 때문이다. 장례葬禮는 공중共仲의 예例를 따랐다.
성기聲己는 〈목백穆伯의 상구를〉 보지 않으려고 당堂에 휘장을 치고서 곡哭하였다. 양중襄仲이 곡哭하려 하지 않자, 혜백惠伯이 말하였다. “상례喪禮는 친족親族을 마지막[종終]으로 보내는 의식儀式이니 비록 생시生時[시始]에는 잘 지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마지막으로 보내는 일은 잘하는 것이 옳습니다.
사일史佚의 말에 ‘형제 사이에는 아름다운 우애友愛를 다하여 궁핍窮乏을 구제하고 좋은 일을 축하하고 재난災難을 위로하며 제사를 공경하고 상사喪事를 애도하여, 비록 정情이 화목[동同]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우애를 단절하지 않는 것이 친족의 도리이다.’고 하니, 당신께서 도리를 잃지 않으면 그만이지 남을 원망할 게 무엇이 있습니까?”
양중襄仲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형제들을 거느리고 가서 곡哭하였다.
注
형제兄弟는 천생天生으로 결합된 존재이니 서로 다투거나 원망할 자리가 아니다. 사람들은 양중襄仲이 목백穆伯에 대한 지난날의 원한이 지금 풀린 줄로만 알고, 가슴속의 하늘(마음)에는 원한도 없고 인人(미상未詳)도 없다는 것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비록 숙중혜백叔仲惠伯의 화해가 있었다 하더라도 어찌 그 원한을 잠시 동안의 담설談說로 풀어버릴 수 있었겠는가?
군자君子에게 원한을 갚음에 대해 물으면 반드시 옳지 않다고 하고,
注+이것은 君子는 원한을 잊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소인에게 원한을 갚음에 대해 물으면 반드시 옳다고 한다.
注+이것은 小人은 원한을 갚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말은 모두
정론定論이 될 수 없다.
注+이 두 가지는 모두 확정된 논의가 아니라고 단정한 것이다.
오로지 원한을 갚기를 주장하는 자는
상앙商鞅과
범저范雎의 무리이니,
注+商鞅과 范雎는 戰國時代의 보좌로 오로지 원한을 갚기만을 일삼았다. 이들을
성인聖人 문하門下의 〈
도道로써〉 헤아려보면[
격格] 반드시 내쳐야 할 대상이고, 오로지 원한을 잊을 것을 주장하는 자는
노담老聃과
장주莊周의 무리이니,
注+老聃과 莊周는 淸靜虛無의 說로 오로지 원한을 잊기만을 논하였다. 이들을 성인의 말씀으로 헤아려보면 또한 반드시 내쳐야 할 대상이다.
우리 성인의 문하에서는 원한 갚기를 강조한 적이 없고,
注+商鞅․范雎의 경우와 다르다. 원한 갚지 말기를 강조한 적도 없었으며,
注+老子․莊子의 경우와 다르다. 오직 일의
대소大小와
경중輕重을 헤아려 알맞게 처리하였을 뿐이다.
注+聖人이 일을 처리하는 것은 마치 저울로 물건을 다는 것과 같으니, 작고 가벼운 원한은 잊어야 하지만 크고 무거운 원한은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一身의 사사로운 원한은 실로 잊어야 하지만 君父의 원한이라면 잊어서는 안 된다. 작은 원한은 잊고 큰 원한은 갚았으며, 가벼운 원한은 잊고 무거운 원한은 갚았고, 한 쪽에 치우치거나 일방의 말만을 주장하지 않았다.
注+한 쪽의 말이란 원한을 갚고 원한을 잊는 따위를 이른다. 이 이상은 이 글의 主意가 아니다.
목백穆伯이
양중襄仲을 위해
거莒나라로 가서
빙례聘禮를 거행하고서
注+〈여기부터 본편의〉 일로 들어간다. 本題의 出處에 자세히 보인다. 〈
양중襄仲의 아내 될 여인을 데리고 돌아오다가 그 여인의
미색美色에 반하여〉
중도中途에서 그 여인을 가로채 자기의 여자로 만들었으니,
注+그 여인이 美女인 것을 보고서 자기의 아내로 삼은 것이다. 〈아내를 빼앗긴
양중襄仲에게는〉 이 일이 어찌 작은 원한이었겠는가?
注+자기 아내가 될 여인을 남에게 빼앗겼으니 어찌 원한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혜백惠伯이 중간에서 마음을 다해 완곡한 말로 화해시켜,
注+叔仲惠伯이 한 사람의 원한을 조정한 것이다. 처음에는
양중襄仲의 원한을 풀게 하고
注+다시 兄弟가 처음(과거)처럼 〈사이좋게 지내게〉 된 것이다. 뒤에는 형제간의
은정恩情을 보전하게 하였다.
注+형제를 거느리고 가서 哭한 것이다.
저
혜백惠伯이
경중輕重과
대소大小의 소재를 모르지 않았지만,
注+앞의 “그 小大와 輕重을 헤아린다.”고 한 것에 호응한 것이다. 彼는 惠伯을 이른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은 것은〉
목백穆伯과
양중襄仲이
형제兄弟이기 때문이다.
注+公孫敖와 公子 遂는 여전히 從兄弟로 잘 지냈다. 원한의 대소를 다른 사람은 말할 수 있으나
注+첫머리의 뜻을 설파한 것이다. 형제는 원한의 대소를 따질 자리가 아니며, 원한의 경중을 다른 사람은 말할 수 있으나 형제는 원한의 경중을 따질 자리가 아니다.
注+兄弟 사이는 분노를 간직함이 없고 원한을 묵힘이 없으니, 이로써 원한을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와서 비로소 主意를 말하였다.
사람이 필요에 따라 맺은 관계[人合]는 사이가 벌어질 때가 있지만,
注+交遊하는 知友(서로 마음을 아는 벗) 같은 부류이다. 천생天生으로 결합된 관계[
천합天合]는 벌어지는 때가 없다.
注+父子나 兄弟 같은 부류이다. 형제는
천합天合이니
注+〈父母와 兄弟는〉 하늘이 맺어준 사이이다. 인합人合의 원한이 해칠 수 없다.
注+天倫 사이의 恩愛는 원한이 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목백穆伯에 대한
양중襄仲의 원한을 사람들의 감정으로 보면
注+人情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참으로 중대하지만
注+크면 작지 않고 무거우면 가볍지 않다. 천리天理로 보면
注+天理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형제간의
친정親情은
출생出生과 함께 생겨나서 벌어질 수 없는 것이니,
注+‘하늘이 맺어준 〈형제의〉 마음이 어찌 輕重과 小大로 따질 처지인가?’의 뜻이다. 어찌 은혜로 인해 더 많아지거나 원한으로 인해 더 줄어들겠는가?
注+恩愛한다 하여 〈情이〉 더 많아지지도 않고, 怨恨한다 하여 〈정이〉 더 줄어들지도 않는다.
비가 내리거나 날이 개는 날씨는 수시로 변하지만
태허太虛[
우주宇宙]의 본체는 변동함이 없듯이
注+비유하면 太虛(우주)가 비가 오거나 날이 갬으로 인해 그 본체가 변화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람의 은혜와 원한도 수시로 발생하지만 형제의
친정親情은 변동함이 없다.
注+兄弟도 恩怨으로 인해 그 진정이 바뀌지 않는 것과 같다. 〈날씨는 비록〉 비가 올 때도 있고 갤 때도 있으나 우주의 본체 속에는 본래 비가 오고 갬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듯이, 사람에게는 은혜도 있고 원한도 있으나 형제의
친정親情 속에는 본래 은혜와 원한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다.
양중襄仲의 지난날의 원한은
사정私情의 원한이고
注+私情이 그 天性을 가렸기 때문이다. 오늘의 화해는
사정私情의 화해일 뿐이다.
注+사사로운 감정을 해제하고 天性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가슴속의
천성天性으로 말하면 지난날의 원한도 없고 오늘의 화해도 없다.
注+兄弟 사이의 天生의 親情은 원한으로 인해 없어지지도 않고, 화해로 인해 생기지도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注+‘만약 가슴속에 본래 이러한 天理가 없었다면’의 뜻이다. 〈
양중襄仲과
목백穆伯 사이의 원한을〉 어찌
혜백惠伯이 잠시 동안의
담설談說로 만회할 수 있었겠는가?
注+‘惠伯이 아무리 잘 調護했더라도 어찌 그 원한을 解除할 수 있었겠는가?’의 뜻이다.
창고에 불을 지르고서 사다리를 치운
고수瞽叟의
악행惡行과
注+舜의 일을 이끌어 증거로 삼은 것이다. ≪孟子≫에 萬章이 말하기를 “舜의 父母 瞽瞍가 舜에게 창고를 수선하게 하고는 순이 창고 지붕으로 올라가자, 瞽瞍가 사다리를 치워버리고서 창고에 불을 놓았다.”고 하였다. 捐은 버림이고, 階는 사다리이다. 두 형수로 하여금 자신의 잠자리에 시중을 들게 하겠다고 하고서
순舜의
침실寢室로 들어간
상象의 모욕적인 행위는
注+≪孟子≫에 〈舜의 아우〉 象이 말하기를 “두 형수는 나의 잠자리를 돌보게 할 것이다.”라고 하고서 舜의 집으로 가서 그 寢室[宮]로 들어갔다. 백세百世 뒤에 그 기록을 읽는 자도 오히려
순舜을 위하여 〈대신〉 이를 간다.
注+舜의 아우 象은 날마다 舜을 살해하기를 일삼았고, 또 舜의 집으로 가서 그 아내를 취하려 하였다. 悖逆스러움이 이와 같으므로 후세에 그 기록을 읽는 자 중에는 舜을 대신해 이를 갈면서 원한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도
순舜이
은정恩情을 끊임없이 이어간 것은,
注+舜은 象을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또 그를 有痺에 封하여 부유하고 존귀하게 만들어주고, 또 항상 보고 싶어 하였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오게 한 것이다. 덕德으로써 원한을 갚은 것이 아니라
注+德으로써 원한을 갚는다는 말은 ≪論語≫에 나오는데, 이 말을 인용하여 형제 사이에는 보복할 원한이 없다는 것을 말하였다. 상象을 아우로 대우하고
상象이 한 짓으로
상象을 대우하지 않은 것이며,
注+舜은 아우를 사랑할 줄만 알았을 뿐이고, 象이 자기를 해코지하는 줄을 몰랐다. 상象을
천합天合으로 보고
인합人合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注+舜은 天屬의 사랑만을 알았고, 象의 人僞는 알지 못하였다. 〈그리워 마음이〉 우울하여
순舜이 생각났다고 한 것은
注+≪孟子≫에 “象이 ‘형님이 그리워 마음이 우울했습니다.’라고 하고는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라고 하였다. 바로
상象의
천성天性이고,
注+그 형을 그리워한 것은 象의 天理이다. 오만하게
순舜을 해코지 한 것은
注+≪尙書≫ 〈堯典〉에 “象이 오만하였다.”고 하였다. 상象의
인욕人欲일 뿐이다.
注+그 형을 해코지한 것은 象의 人僞이다. 순舜의 가슴속에는 순전한 천리뿐이었기 때문에
注+聖人의 마음은 純全한 천리뿐이다. 상象의 천성만을 보고
상象의 인욕을 보지 않은 것이다.
注+그러므로 天理로써 象을 보았고, 人僞로써 象을 보지 않았다.
가령
혜백惠伯이
순舜의 조정에 벼슬하였다면
注+이 같은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아마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순舜의 천성에 감화되었을 것이니,
注+자연히 舜과 함께 天理 가운데서 서로 잊게 될 것이다. 비록 뛰어난 말재주가 있다 해도
注+≪莊子≫에 “孔丘는 3尺의 부리(뛰어난 말재주)를 갖기를 원했다.”고 하였다. 어디에 쓰겠는가.
注+‘가령 惠伯이 3尺의 부리를 가져 말을 잘했다 하더라도 어찌 다시 한 마디인들 할 수 있겠는가?’라는 뜻이다.帝舜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