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 文六年
이라 八月
에 晉襄公卒
하다 靈公少
하니 하다
하리라 好善而長
하고 先君愛之
며 하니 라 置善則固
하고 事長則順
하고 立愛則孝
하고 結舊則安
이라 爲難故
로 故欲
君
인댄 有此四德者
라야 리라
趙孟曰
하니 리오 요 라 母淫子辟
하니 無威
요 陳小而遠
하니 無援
이라 將何安焉
이리오
杜祁以君故
로 讓
하고 以狄故
로 하니라 先君是以愛其子
하야 而仕諸秦
하야 이라
秦大而近
하니 足以爲援
이요 하니 足以威民
이라 立之
가 不亦可乎
아
傳
【左傳】 文七年
이라 秦康公送公子雍于晉曰
이라하고 乃多與之徒衛
하다
하야 頓首於宣子曰
하리라 어늘 而棄之
하니 若何
오
傳
【左傳】 哀五年
이라 齊燕姬生子
러니 하다 諸子鬻姒之
하니 諸大夫恐其爲太子也
하야 言於公曰 君之齒長矣
로되 未有太子
하니 若之何
오 公曰 二三子間於憂虞
면 則有疾疢
이니 亦姑謀樂
이요 가
秋
에 齊景公卒
하다 冬十月
에 公子嘉公子駒公子黔奔衛
하고 하다
萊人歌之曰 景公死乎不與埋
하고 三軍之事乎不與謀
하니 아
傳
【左傳】 哀六年
이라 하야 每朝
에 必驂乘焉
하다 曰
하니 將棄子之命
하리라 皆曰
이면 必偪我
리니 盍去諸
오
하니 子早圖之
하라 圖之
ㄴ댄 莫如盡滅之
니라 는 事之下也
라하고
又謂諸大夫曰
라 恃
得君而欲謀二三子
하야 曰 國之多難
은 貴寵之由
니 盡去之而後
에 君定
이라하야 旣成謀矣
니 오 作而後悔
라도 亦無及也
리라 大夫從之
하다
夏六月戊辰
에 陳乞鮑牧及諸大夫以甲入于公宮
하니 昭子聞之
하고 與惠子乘
하야 如公
하야 戰于莊
타가 敗
하다 國人追之
하니 國夏奔莒
하다
傳
【左傳】 哀
年
이라 陳僖子使召公子陽生
하니 陽生駕而見南郭且于曰
하노니 請與子乘之
하노라하고 出萊門而告之故
하다
闞止知之하고 先待諸外한대 公子曰 事未可知니 反하야 與壬也處하라 戒之하고 遂行하다 逮夜하야 至於齊하니 國人知之하다
一國之惡은 易以義奪이나 一夫之惡은 難以義爭이라 一國은 至衆也요 一夫는 至寡也라 義可以勝衆이나 而不可以勝寡는 何也오 公與私之異也라
有公惡하고 有私惡하니 惡出於公이면 雖衆易奪이어니와 惡出於私면 雖寡難爭이라 故君子之論難易에 不施諸衆寡之間하고 而施諸公私之際니라
廢立은 大惡也어늘 晉人欲立長君하야 捨靈公而迎公子雍하고 齊陳乞欲立長君하야 廢荼而召陽生하니 其惡同也라
然公子雍之謀는 一國之所共이니 宜若難奪이나 而穆嬴之弱으로 反能以義奪之하고 陽生之謀는 一夫之所專이니 宜若易爭이나 而鮑牧之強으로도 反不能以義爭之하니라
障稽天之浸이로되 而不能遏畎澮之流하고 掃燎原之焰이로되 而不能息束縕之火하니 抑有由矣라
晉人之迎公子雍하야 舍冢嗣而外求君은 視置君如奕棋이니 其爲惡固不待言이라
然其情非以私己也
며 非以求利也
며 非以危國也
요 欲得長君以靖難耳
라 是固晉人之所同欲也
니 事則惡
이나 而心則公也
라
其心旣公이라 故迎子雍에 其事未嘗不出於公焉이라 卿士合謀하니 公之也며 支庶竝擇하니 公之也며 兩使如秦하니 公之也며 三軍竝迎하니 公之也라
擧國之人雖陷於惡逆이나 其心猶誤以爲公하야 一言一動이 皆明白簡直하고 未嘗有纎毫覆匿掩蔽之意하니 豈非公心尙存가
雖一國銳欲立雍하야 有排山倒海之勢나 穆嬴一女子로 動之以義하니 而一國之人이 怵迫焦灼하야 如負芒刺하고 如中刀槊하고 如臥薄氷하야 不畏秦師之銳鋒하고 而畏穆嬴之涕泣하야 亟棄雍而立靈公을 不啻如反掌之速하니
至於陳乞之立陽生
하야는 雖以齊國有憂
로 少君不可
爲名
하야 自附於晉人之義
나 然其意實貪策立之功
하야 以爲簒齊之資耳
라
心私則事私라 故其援立陽生이 自始至末히 無非相與爲私焉이라 僞參乗而事高國者는 乞以私而除陽生之害也요 託習馬而出魯境者는 陽生以私而應乞之召也라
乞之召陽生이 其始固已相與爲私라 故投暮夜之隙하야 以隱其歸하고 混饋者之中하야 以匿其迹하야 惴惴然若狗偷鼠竊之爲者하니라
其擅置廢立이 雖與晉人同이나 然陳乞則畏人之知하고 晉人則不畏人之知하며 陳乞畏事之泄이나 晉人則不畏事之泄하니 是晉人以公自處하고 而陳乞以私自處也라
陳乞先以私自處라 故雖聞鮑牧至公之義나 邈然如風之歷耳하니 盖乞之心이 自絶於義久矣라 故使百人搖之로되 猶不能少槪其心이어든 況一鮑牧哉아
大
惡出於公
이면 則其根淺而易搖
라 故雖一國之勢
라도 弱女子勝之而有餘
어니와 惡出於私
면 則其根深而難拔
이라 故雖一夫之謀
라도 強大夫排之而不足
이라
百圍之木도 根不附土면 未終朝而可仆어니와 拱把樸樕이라도 蟠根繞蔓於九泉之下면 雖千夫未易動也라
故君子能受萬人之公毁언정 而不願受一人之私讐하며 寧救萬人之公過언정 而不能救一人之私慝이니라
傳
문공文公 6년, 8월에 진晉 양공襄公이 졸卒하였다. 〈그 태자太子〉 영공靈公이 아직 어리니 진인晉人은 〈환난患難을 우려했기〉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을 임금으로 세우고자 하였다.
조맹趙孟이 말하였다. “공자公子 옹雍을 세워야 한다. 그는 선善을 좋아하고 나이가 많은 데다가 선군先君(문공文公)이 총애하였으며 또 진秦나라와 친근하니 진秦나라는 우리의 오랜 우호국友好國이다. 선善한 사람을 임금으로 세우면 나라가 공고해지고, 나이 많은 사람을 임금으로 섬기면 순리順理가 되고, 선군이 사랑한 사람을 세우면 효도가 되고, 오랜 우호국과 친분이 있는 사람을 세우면 나라가 편안해진다. 환난 때문에 나이 많은 임금을 세우고자 한다면 이러한 네 가지 덕이 있는 사람을 세워야만 반드시 환난이 제거될 것이다.”
가계賈季가 말하였다. “공자公子 낙樂을 세우는 것만 못하다. 신영辰嬴이 두 임금(회공懷公과 문공文公)에게 사랑을 받았으니, 그 아들을 임금으로 세우면 백성들이 반드시 안정될 것이다.”
조맹趙孟이 말하였다. “신영辰嬴은 신분이 미천하여 부인夫人 중에 서열序列이 아홉 번째이니 그 아들이 무슨 위엄威嚴이 있겠는가? 그리고 또 두 임금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음탕淫蕩해서이고, 선군의 아들이 되어 대국大國으로 가서 벼슬을 구하지 않고 작은 나라로 가서 있으니 〈성정性情이 편벽되고 식견識見이〉 고루固陋(벽루僻陋)해서이다. 어미는 음탕하고 아들은 벽루僻陋하니 위엄이 없고, 진陳나라는 작은 나라로 멀리 떨어져 있으니 우리의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인데, 장차 무엇으로 백성을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두기杜祁는 양공襄公 때문에 핍길偪姞에게 서열序列을 사양하여 자기의 위가 되게 하고, 적인狄人 때문에 계외季隗에게 서열을 사양하고 자기는 그 다음이 되었다. 그러므로 서열이 네 번째가 된 것이다. 선군께서 이 때문에 그 아들을 총애하여 진秦나라로 보내 벼슬시켜 아경亞卿이 되게 하셨다.
진秦나라는 큰 나라로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충분히 우리의 도움이 될 수 있고, 어머니는 의롭고 아들은 선군의 총애를 받았으니 충분히 백성을 위복威服시킬 수 있다. 그를 세우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선멸先蔑과 사회士會를 보내어 진秦나라로 가서 공자公子 옹雍을 맞이해오게 하였다.
조맹趙孟이 선멸先蔑을 배신하고 영공靈公을 세우다
傳
문공文公 7년, 진秦 강공康公이 공자公子 옹雍을 진晉나라로 보낼 적에 “문공文公이 진晉나라로 들어갈 때는 호위護衛가 없었기 때문에 여생呂甥․극예郤芮의 난리가 일어난 것이다.”고 하고서 호위하는 군졸軍卒을 많이 주었다.
이때 목영穆嬴은 날마다 태자太子를 안고 조정朝廷에서 울면서 말하기를 “선군先君에게 무슨 죄가 있고 그 사자嗣子에겐 또 무슨 죄가 있는가? 사자嗣子를 버리고 임금으로 세우지 않고서 밖에서 임금을 찾고 있으니 이 아이를 어떻게 처리하려는 것인가?”라 하고서,
조정을 나와서는 태자太子를 안고서 조씨趙氏의 집으로 가서 선자宣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선군先君께서 이 아이를 안고서 그대에게 부탁하며 말씀하기를 ‘이 아이를 임금의 재목材木으로 키워준다면 나는 그대의 은혜를 받은 것으로 여기겠지만, 그런 재목으로 키우지 못한다면 나는 그대만을 원망할 것이다.’고 하셨소. 지금 선군先君은 비록 훙서薨逝하셨지만 그 말씀은 아직 귓가에 남아 있을 것인데, 이 아이를 버리려 하니 장차 〈이 아이를〉 어찌하려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선자宣子와 여러 대부大夫는 모두 목영穆嬴을 걱정하고 또 국인國人의 핍박을 두려워하여, 이에 〈공자公子 옹雍을 맞으려고 진秦나라로 간〉 선멸先蔑을 배신背信하고 영공靈公을 세우고서 〈군대를 일으켜 공자公子 옹雍을 호위護衛해오는〉 진군秦軍을 막았다.
제齊 경공景公이 국혜자國惠子와 고소자高昭子를 시켜 도荼를 세우게 하다
傳
애공哀公 5년, 제齊나라 연희燕姬가 아들을 낳았으나 성년成年이 되기 전에 죽었다. 〈제齊 경공景公이〉 제자諸子(제첩諸妾) 중의 하나인 육사鬻姒가 낳은 아들 도荼를 사랑하니, 대부大夫들은 그가 태자太子가 될까 두려워하여 경공景公에게 말하기를 “임금님의 연세가 높으신데 아직 태자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라고 하니, 경공景公이 말하기를 “그대들의 마음에 우려가 끼어들면 질병이 생길 것이니, 우선 즐겁게 지내기를 꾀할 것이지 임금 없는 것을 걱정할 게 뭐 있소.”라고 하였다.
경공景公이 병病이 위독해지자 국혜자國惠子와 고소자高昭子로 하여금 도荼를 태자로 세우고, 모든 공자公子들을 래萊에 안치安置하게 하였다.
가을에 제齊 경공景公이 졸卒하였다. 겨울 10월에 공자公子 가嘉, 공자公子 구駒, 공자公子 검黔은 위衛나라로 도망가고, 공자公子 서鉏, 공자公子 양생陽生은 노魯나라로 도망해왔다.
내인萊人이 노래하기를 “경공景公이 죽었는데도 매장埋葬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삼군三軍의 일에도 참여해 모의하지 못하였으니, 공자公子들이여! 공자公子들이여! 장차 어디로 가실 것인가?” 하였다.
진걸陳乞이 고소자高昭子와 국혜자國惠子를 축출하다
傳
애공哀公 6년, 제齊나라 진걸陳乞이 고소자高昭子와 국혜자國惠子를 섬기는 것처럼 위장하여 조정朝廷으로 나아갈 때마다 반드시 참승驂乘(동승同乘)하였고, 수종隨從할 때마다 반드시 대부大夫들을 무함誣陷해 말하기를 “저들은 모두 교만하니 장차 당신의 명命을 버릴 것입니다. 저들은 모두 ‘고소자高昭子와 국혜자國惠子가 임금의 총애를 얻으면 반드시 우리를 핍박할 것이니, 어찌 저들을 제거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저들은 본래부터 두 분을 해치려고 획책劃策하였으니 두 분께서도 조기에 계책을 세우십시오. 계책을 세우신다면 저들을 다 죽이는 것이 좋습니다. 망설이며 결단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것은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가장 낮은 계책입니다.”고 하고,
조정朝廷에 당도하여서는 말하기를 “저들은 호랑虎狼입니다. 제가 두 분 곁에 있는 것을 보면 당장 저를 죽이려 할 것이니, 제가 저들의 자리로 가도록 허락하시기를 청합니다.”고 하였다.
대부大夫들에게 가서 또 말하기를 “저 두 사람이 화란禍亂을 일으키려 합니다. 임금의 총애를 믿고서 여러분을 모해謀害하고자 하여, ‘국가에 화란이 많은 것은 귀총貴寵들 때문이니, 저들을 다 제거한 뒤에야 임금님의 자리가 안정될 것이다.’라고 말하고서 이미 계획을 정하였으니, 어찌 저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움직이지 않으십니까? 저들이 움직인 뒤에는 후회해도 미칠 수 없습니다.”라고 하니, 대부大夫들이 그의 말을 따랐다.
여름 6월 무신일戊辰日에 진걸陳乞이 포목鮑牧 및 대부大夫들과 갑사甲士를 거느리고 공궁公宮으로 들어갔다. 소자昭子가 이 소식을 듣고서 혜자惠子와 함께 수레를 타고 공궁公宮으로 가서 장莊에서 교전交戰하다가 패배하였다. 국인國人이 추격하니 국하國夏는 거莒나라로 달아났다.
傳
애공哀公 6년, 진희자陳僖子가 사람을 보내어 공자公子 양생陽生을 부르자, 양생陽生이 수레에 말을 메워 타고 가서 남곽차우南郭且于를 보고 말하기를 “전에 계손季孫에게 말을 헌상獻上한 적이 있었으나, 그 말이 상등마上等馬에 들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이 말을 바치는 바이니 그대와 함께 타고서 〈이 말이 어떤지 시험해보기를〉 청합니다.”고 하고서, 내문萊門을 나와서 그 사실을 고하였다.
이때 감지闞止가 그 사실을 알고서 먼저 나와 밖에서 기다리자, 공자公子가 말하기를 “일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니 너는 돌아가서 임壬과 함께 있으라.”고 하고서, 〈누설하지 말도록〉 경계하고 드디어 길을 떠났다. 밤에 제齊에 이르니 국인國人들이 모두 그가 돌아온 것을 알았다.
희자僖子가 자사子士의 모친을 보내어 양생陽生을 봉양하게 하고 그에게 음식을 올리는 자들도 모두 들여보냈다.
한 나라의 공공公共의 악념惡念은 의리로써 빼앗기 쉽지만 한 개인의 〈사적인〉 악념惡念은 의리로써 빼앗기[爭] 어렵다. 한 나라는 사람의 수가 매우 많고 한 개인은 수가 매우 적다. 의리가 많은 수의 사람은 이기지만 적은 수의 사람은 이기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공公과 사私가 다르기 때문이다.
〈악惡에는〉 공악公惡이 있고 사오私惡이 있으니, 악념惡念이 공심公心에서 나온 것이라면 사람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빼앗기가 쉽지만 악념이 사심私心에서 나온 것이라면 사람의 수가 아무리 적어도 빼앗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어렵고 쉬움을 논평함에 있어 〈논점을〉 인수人數의 중과衆寡에 두지 않고 마음의 공사公私에 둔다.
〈멋대로〉 임금을 폐립廢立하는 것은 더없이 큰 악행惡行이다. 그런데 진인晉人(조맹趙孟)은 나이 많은 공자公子를 임금으로 세우기 위해 영공靈公을 버리고 공자公子 옹雍을 맞이해 세우려 하였고, 제齊나라 진걸陳乞은 나이 많은 공자公子를 임금으로 세우기 위해 태자太子 도荼를 폐출廢黜하고 양생陽生을 불러들여 임금으로 세웠으니 그 악행이 동일하다.
그러나 공자公子 옹雍을 맞이해 세우고자 한 계모計謀는 온 나라 사람들의 공공公共의 생각이었으니 빼앗기 어려울 것 같았으되 연약한 목영穆嬴도 도리어 의리로써 빼앗았고, 양생陽生을 불러들여 임금으로 세운 계모는 한 개인이 멋대로 결정한 일이니 빼앗기 쉬울 것 같았으되 강력한 포목鮑牧도 도리어 의리로써 빼앗지 못하였다.
하늘에 닿을 큰물은 막았으면서 봇도랑에 흐르는 작은 물을 막지 못하고, 들판을 태우는 큰불은 껐으면서 한 뭉치의 솜에 붙은 불씨를 끄지 못한 데에는 아마도 까닭이 있을 것이다.
진인晉人이 공자公子 옹雍을 맞이하여 〈임금으로 세우고자〉 적장자를 버리고 밖에서 사군嗣君을 구한 일은 임금 세우는 것을 마치 바둑돌 놓는 것처럼 본 것이니 그것이 악행이 되는 것은 본래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 마음은 일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며 이익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며 국가를 위해危害하기 위함이 아니었고, 나이 많은 공자公子를 임금으로 세워 국난國難을 평정하고자 한 것에 불과하였다. 이는 본래 진晉나라 사람들이 공동으로 원한 바이니 벌린 일은 악행이었으나 마음은 공심公心이었다.
그 마음이 이미 공심이었기 때문에 공자公子 옹雍을 맞이해 임금으로 세우려 할 때에 계모計謀한 일이 공심에서 나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경사卿士가 공동으로 모의하였으니 공중公衆의 의사였고, 서자庶子를 선택하였으니 공중公衆의 의사였으며, 두 사자使者를 진秦나라에 보냈으니 공중公衆의 의사였고, 삼군三軍이 함께 맞이하였으니 공중公衆의 의사였다.
온 나라 사람이 비록 악역惡逆에 빠지기는 하였으나 그 마음은 오히려 공심公心으로 오인誤認하여, 말과 행동이 모두 명백하고 솔직하였으며 일찍이 조금도 숨기거나 은폐하려는 뜻이 없었으니, 어찌 공심이 여전히 존재한 것이 아니겠는가?
비록 온 나라 사람들이 공자公子 옹雍을 세우고자 하는 기세가 산을 밀어내고 바다를 뒤집을 듯이 강력하였으나 목영穆嬴이 한 여자女子로서 사람들을 의리로 감동시키자, 온 나라 사람들이 두렵고 초조해하며 등에 가시를 진 듯, 칼을 맞은 듯, 얇은 얼음을 밟은 듯이 하여, 진군秦軍의 예봉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영穆嬴의 흐느낌을 두려워하여, 서둘러 공자公子 옹雍을 버리고 영공靈公을 세우기를 손바닥을 뒤집듯이 신속하게 할 뿐이 아니었다.
나는 이로써 악념惡念이 공공公共에서 나온 것은 아무리 사람의 수가 많아도 빼앗기 쉽다는 것을 알았다.
진걸陳乞이 양생陽生을 세운 것으로 말하면, 제齊나라에 우환이 있을까 염려하여 어린 임금은 〈우환을 극복할 계획을〉 모의할 수 없는 것으로 명분을 삼아 〈연장자를 임금으로 세우는〉 진晉나라의 의리를 따르려 했으나, 그러나 그 의도는 실로 임금을 세운 공을 탐하여 〈장래에〉 제齊나라를 찬탈簒奪할 구실로 삼으려 한 것뿐이다.
용심用心이 사사로우면 행사行事도 사사롭다. 그러므로 그가 양생陽生을 도와 임금으로 세운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사심을 가지고 상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참승參乗을 위장해 고소자高昭子와 국혜자國惠子를 섬긴 것은 진걸陳乞이 사심을 품고 〈두 사람을 섬겨〉 양생陽生을 위해 해악을 제거하기 위함이었고, 말을 길들인다는 핑계로 노魯나라 국경을 몰래 빠져나온 것은 양생陽生이 사심을 품고 진걸陳乞의 부름에 호응하기 위함이었다.
진걸陳乞이 양생陽生을 부른 것이 그 시작부터 이미[固已] 서로 사심으로 상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두운 밤 시간에 맞추어 오게 하여 돌아온 것을 숨기고, 밥을 나르는 사람들 속에 끼어 있게 하여 그 종적을 숨기고도 두려워하고 불안해함이 마치 개와 쥐가 물건을 훔치는 꼴과 같았다.
그(진걸陳乞)가 멋대로 임금을 폐립廢立한 것이 비록 〈형세는〉 진인晉人(조맹趙孟)과 같았으나, 진걸陳乞은 남들이 알까 두려워하였고 진인晉人은 남들이 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진걸陳乞은 일이 누설되는 것을 두려워하였고 진인晉人은 일이 누설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이는 진인晉人은 공심公心으로 자처自處하고 진걸陳乞은 사심私心으로 자처하였기 때문이다.
진걸陳乞이 먼저 사심으로 자처하였기 때문에 비록 포목鮑牧이 말한 지극히 공정한 의리를 듣고도 귓가를 스치는 바람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니, 이는 진걸陳乞의 마음이 스스로 의리를 끊은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을 시켜 그의 마음을 뒤흔들게 하여도 오히려 그 마음을 조금도 감동[개槪]시킬 수 없는데, 하물며 한 포목鮑牧이겠는가.
대체로 악념惡念이 공심公心에서 나왔으면 그 뿌리가 얕아서 쉽게 흔들린다. 그러므로 비록 한 나라의 강대한 기세라 하더라도 연약한 여자가 여유 있게 이길 수 있지만, 악념惡念이 사심私心에서 나왔으면 그 뿌리가 깊어서 뽑아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비록 한 개인의 음모陰謀라 하더라도 강한 대부大夫가 배제排除하기에 힘이 부족하다.
백 아름의 나무라도 뿌리가 땅에 박히지 않았으면 아침이 가기 전에 넘어뜨릴 수 있지만, 한 줌 굵기의 복속樸樕(잡목雜木)이라도 뿌리가 땅속 깊이 서려 있으면 비록 천 사람의 힘으로도 쉽게 흔들 수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만인萬人의 공훼公毁(공공의 헐뜯음)는 받을지언정 한 사람의 사수私讐(개인의 원수로 여김)는 받기를 원치 않으며, 차라리 만인의 공과公過(공공의 허물)를 바로잡을지언정 한 개인의 악념惡念은 바로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