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閔二年
이라 齊侯使公子
로 帥車三百乘
과 甲士三千人
하야 以戍
하다
僖之元年
에 齊桓公遷邢于夷儀
하고 二年
에 封衛于楚丘
하니 邢遷如歸
하고 이러라
傳
[左傳]僖元年
이라 諸侯救邢
하다 邢人潰
하야 出奔
하니 師遂逐狄人
하고 邢器用而遷之
하되 師無私焉
하다
注
[主意]齊桓公爲霸主하야 坐視邢衛之威亡이라가 至二年之後에야 而始救之者는
盖霸者之心이 喜於得名일새니라 故養其亂이 所以張其功이요 張其功이 所以隆其名也니라
王者之所憂
는 伯者之所喜也
注+憂喜二字 便見王霸用心不同요 伯者之所喜
는 王者之所憂也
니 王者
는 憂名
하고 伯者
는 喜名
注+三句是一篇主意 名字是一篇血脈이라
名胡爲而可憂耶
注+此下說王者憂名아 不經桀之暴
면 民不知有湯
注+桀暴而湯放之 而湯之名始著이요 不經紂之惡
이면 民不知有武王
注+이리라
使湯武幸而居唐虞之時
注+發明二王本心唐堯時虞舜時면 無害可除
注+無桀紂之害하고 無功可見
注+無弔民伐罪之功하야 湯自湯, 武自武, 民自民
하야 交相忘於無事之域
注+無名可稱이리니
則聖人之志願得矣
注+王者本心 正欲如此리라 功因亂而立
注+有桀紂之亂 而後有弔伐之功하고 名因功而生
注+有弔伐之功 而後天下知湯武之名하니 夫豈吾本心耶
注+王者 所以憂名리오
是故雲霓之望
注+孟子曰 湯一征自葛始 民望之 若大旱之望雲霓也이 非湯之盛也
注+湯不欲如此요 乃湯之不幸也
注+不幸有桀之亂며 壺漿之迎
注+孟子曰 東征 綏厥士女 其小人簞食壺漿 以迎其小人이 非武王之盛也
注+武王不欲如此요 乃武王之不幸也
注+不幸有紂之亂라 伯者之心
은 異是矣
注+引入本題 言伯者用心 與王者異니라
凡王者之所謂不幸
은 乃伯者之所謂大幸也
라 王者
는 恐天下之有亂
注+以亂爲不幸하고 伯者
는 恐天下之無亂
注+以亂爲幸하니
亂不極
이면 則功不大
注+功因亂而立故하고 功不大
면 則名不高
注+名因功而立故ㄹ새니라 將隆其名
注+霸者喜名 所以如此인댄 必張其功
注+欲功之大이요 將張其功
인댄 必養其亂
注+欲亂之極 ○養亂二字 以誅齊威之心이라
狄以閔之元年伐邢
注+이어늘 其後二年
에야 而齊始遷邢于夷儀
注+事在僖之元年하고 狄以閔之二年滅衛
注+見本題註어늘 其後二年
에야 而齊始封衛于楚丘
注+事在僖之二年하니
齊威之恤二國
이 必在於二年之後者
는 何也
注+總二事設問오 所以養其亂也
注+應前養亂字 斷齊威之罪니라
齊威之心
注+此下發明伯者之心喜名은 以爲當二國之始受兵
注+狄初伐邢衛時에 吾亟攘夷狄而却之
注+隨卽救之면 則亦諸侯救災恤隣之常耳
注+無甚高之名니
其迹必不甚奇
요 其事必不甚
이며 其恩必不甚深
注+三句 皆形容功不大名不高之意이니 曷足以取威定伯哉
注+如此則不足以取威名而定伯業아
先飢而後食之
면 則其食美
注+飢者甘食하고 先渴而後飮之
면 則其飮甘
注+渴者甘飮 喩始不救二國者 所以飢之渴之이니
今吾坐養其亂
注+應前養亂하야 待其社稷已頹
하고 都邑已傾
하며 屠戮已酷
하고 流亡已衆
注+頹 崩也 傾 壞也 酷 慘也 衆 多也 ○此四句 譬則先飢之渴之然後
에 徐起而救之
注+譬則飮之食之면
拔於危蹙顚頓之中
하야 置於豐樂平泰之地
注+譬則飢之得食 渴之得飮니 是邢衛之君
은 無國而有國
注+國已亡而復存이요 邢衛之民
은 無身而有身也
注+身已死而復生니
深仁重施
注+如此則齊威仁恩深而施惠重를 殆將淺九淵而輕九鼎矣
注+淺與深對 輕與重對 言仁深而九淵爲淺 施重而九鼎爲輕也 ○九淵見列子 莊子云 淵有九 九鼎禹所鑄 見左傳리라 故其功名震越
하고 光耀
注+應前功之大名之高赫然
하야 爲五伯首
注+自入春秋 而齊威始伯 孟子曰 五伯威公爲盛하니라
向使絶之於萌芽
注+二國始亂而遽救之면 則名安得如是之著耶
注+則齊威安得此盛名也 以上發明伯者喜名之意아
嗚呼
注+此下深責齊威 養成二國之亂라 邢衛之難
에 曰君曰卿 曰士曰民
注+無貴無賤 均被狄難이 肝腦塗中原
하고 膏液潤野草
注+言被殺戮之慘하니
苟仁人視之
면 奔走拯救
요 不能一朝居也
注+何待二年之久리라 今齊威徒欲成區區之名
注+惟其喜名 所以養亂하야 安視其死
하야 至於二年之久
하니 何其忍耶
注+與仁人之用心 異矣아
長人之亂而欲張吾之惠
하고 多寇之虐而欲明吾之勳
注+文字中 有此等句法 最爲警策하니 是以萬人之命
으로 而易一身之名也
注+痛快喜名之弊 一至於此라
是誠何心哉
注+不仁之甚아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注+引孟子語 하면 怵惕惻隱之心
이 不期而生
注+人心皆有此仁故也하니 此人之眞心也
注+仁人心正 故曰眞라
眞心一發
이면 森不可禦
注+自然之心 故不可遏니 豈暇計其餘哉
注+非爲內(納)交要譽惡其聲而然也아 有人於此
注+承上文 入井設喩하니 謂彼未入於井而全之
면 其功淺
하고
旣入於井而全之
면 其功深
注+正如齊威坐視二國之亂이라하야 縮手旁觀
타가 俟其旣墜
하야 乃始褰裳濡足而救之
注+正如齊威救二國 必在二年之後면
則其父母必以爲再生之恩
注+因孟子所謂內(納)交於孺子之父母而發이라하고 鄕隣必以爲過人之行
注+因孟子所謂要譽於鄕黨朋友而發이라하야 義槪凜凜
이 傾動閭里
注+正如齊威功名震越光耀라
回顧前日未入井以救之者
注+再一轉佳를 父母不謝
注+無再生之恩하고 鄕隣不稱
注+無過人之行이면 若大不侔
注+彼有名 此無名라
然則爲孺子計者
注+孺子以譬邢衛컨대 寧遇前一人耶
注+未入井而救者아 寧遇後一人耶
注+已入井而救者 以諭齊威아 噫
라 此王伯之辨也
注+結語 王伯 首尾相應니라
제후齊侯가 조曹를 지키게 하고, 형邢을 옮기고, 위衛를 봉하다
제후齊侯가 조曹를 지키게 하고, 형邢을 옮기고, 위衛를 봉하다
傳
민공閔公 2년, 제후齊侯가 공자 무휴公子 無虧에게 병거兵車 300승乘과 갑사甲士 3,000인을 거느리고 가서 조읍曹邑을 지키게 하였다.
희공 원년僖公 元年에 제 환공齊 桓公이 형국邢國을 이의夷儀로 옮기고, 희공 2년에 위국衛國을 초구楚丘에 봉하였는데, 형인邢人들은 자기들의 본국으로 돌아가듯이 기뻐하였고, 위인衛人들은 자기들의 나라가 멸망된 것을 잊었다.
傳
희공僖公 원년, 제후諸侯가 형邢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 형인邢人이 흩어져 제후諸侯의 군대로 도망해 오니, 제후諸侯의 군대가 드디어 적인狄人을 축출逐出하고서 형인邢人의 기물器物을 모두 꾸려 옮겨주었는데, 제후諸侯의 군대 중에 그 기물器物을 사사로이 취한 자가 없었다.
傳
희공僖公 2년, 봄에 제후諸侯가 초구楚丘에 성을 쌓고서 위衛나라를 그곳에 봉封하였다. 경經에 회합會合한 제후諸侯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노 희공魯 僖公이 뒤늦게 갔기 때문이다.
注
제 환공齊 桓公이 패주霸主가 되어 형邢나라와 위衛나라가 위협을 당하고 망하는 것을 보고만 있다가, 2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구원한 이유는
패자霸者의 마음은 명예 얻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지러움을 기르는 것은 공功을 넓히려는 의도이고, 공을 넓히는 것은 명예를 융숭하게 하려는 의도이다.
왕자王者(
덕德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자)가 근심하는 것은
패자霸者(힘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자)가 좋아하는 것이며,
注+‘우憂’와 ‘희喜’ 두 자에서 곧 왕자王者와 패자霸者의 마음 씀이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패자가 좋아하는 것은 왕자가 근심하는 것이니, 왕자는 이름이 나는 것을 근심하고 패자는 이름이 나는 것을 좋아한다.
注+이 3구는 이 글의 주의主意이고, ‘명名’자는 이 글의 혈맥血脈이다.
이름이 나는데 어찌하여 근심하는가?
注+이 글 이하는 왕자王者의 우명憂名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걸왕桀王이 난폭하게 했던 세상을 겪지 않았다면 백성이
탕왕湯王이 있음을 알지 못했을 것이며,
注+걸桀이 난폭하여 탕왕湯王이 그를 추방하자, 탕왕의 이름이 비로소 드러난 것이다. 주왕紂王이 악행을 저질렀던 세상을 겪지 않았다면 백성이
무왕武王이 있음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注+제齊나라 사람이 연燕나라를 치자, 제 선왕齊 宣王이 물었다.
“어떤 이는 과인에게 연나라를 취하지 말라 하고 어떤 이는 과인에게 연나라를 취하라 합니다. 만승萬乘의 나라로 만승의 나라를 쳐서 50일 만에 함락하였으니 인력으로 이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는 하늘의 뜻이니〉 연나라를 취하지 않으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맹자孟子가 대답하였다.
“연나라를 취하였는데 연나라 백성이 기뻐한다면 취하십시오. 옛사람 중에 그렇게 하신 분이 있으니 무왕武王이 이런 경우입니다. 연나라를 취하였는데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아니하면 취하지 마십시오. 옛사람 중에 그렇게 하신 분이 있으니 문왕文王이 이런 경우입니다. 만승의 나라로 만승의 나라를 치는데, 도시락의 밥과 호리병의 음료수를 싸 가지고 가서 무왕의 군대를 맞이한 것이 어찌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겠습니까? 바로 물난리 불난리 같은 재앙을 피하고자 한 것입니다. 만일 물이 더 깊고 불이 더 뜨겁다면 백성들은 발길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할 것입니다.”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쳐서 취하니, 제후諸侯들이 연나라를 구원할 것을 도모하였다. 제 선왕이 말하였다.
“제후 중에 과인을 치려고 도모하는 자가 많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신은 70리를 가지고 천하에서 정치했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탕왕湯王이 이런 경우입니다. 그러나 1,000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서경書經≫에 ‘탕왕이 한번 정벌하기를 갈葛로부터 시작하시니, 천하 사람들이 믿어서 동쪽을 향하여 정벌하자 서쪽 오랑캐가 원망하였고, 남쪽을 향하여 정벌하자 북쪽 오랑캐가 원망하여 말하기를 「어찌하여 우리를 뒤에 정벌하는가?」라고 했다.’라 하여, 백성들이 큰 가뭄에 비오기를 바라듯이 정벌해주기를 바랐습니다. 정벌하자 시장에 가던 자들이 여전히 시장으로 갔으며 밭을 갈던 자들도 변함없이 밭을 갈았습니다. 폭군暴君을 주벌誅罰하고 백성을 위로하였으니 제때에 내리는 비 같아 백성들이 크게 기뻐한 것입니다. ≪서경≫에 ‘우리 임금을 기다리노니, 임금께서 오시면 소생하리라.’ 하였습니다.”
가령 탕왕과 무왕이 다행히
요堯‧
순舜 시절에 살았다면
注+두 왕(탕왕湯王‧무왕武王)의 본심도 요堯임금 때나 순舜임금 때와 같음을 밝힌 것이다. 제거할 만한 해악이 없고
注+걸桀‧주紂 같은 해로움이 없다는 말이다. 드러날 만한 공적이 없어,
注+‘백성을 위로하고 죄인을 친 공적’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탕왕은 그저 탕왕이고, 무왕은 그저 무왕이고, 백성은 그저 백성이어서 무사한 세상에서 서로 상관이 없었을 것이니,
注+일컬을 만한 이름이 없는 것이다.
이는
성인聖人의 뜻과 바람이 제대로 실현된 것이다.
注+왕자王者의 본심은 바로 이와 같고자 하는 것이다. 공적功績은 난리로 인하여 세워지고
注+걸桀‧주紂의 어지러움이 있은 뒤에 백성을 위로하고 죄인을 친 공이 있게 되는 것이다. 명예名譽는 공적으로 인하여 생겨나니
注+백성을 위로하고 죄인을 친 공이 있은 뒤에 천하 사람들이 탕왕湯王‧무왕武王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우리들의
본심本心이겠는가?
注+왕자王者는 이 때문에 이름나는 것을 근심하는 것이다.
이러므로 비를 바라는 마음으로 탕왕의 군대를 맞이한 일이
注+≪맹자孟子≫에 “탕왕이 한번 정벌하기를 갈葛로부터 시작하였는데, 백성들이 바라기를 큰 가뭄에 비 오기를 바라듯이 하였다.”라 하였다. 탕왕의 번성이 아니라
注+탕왕湯王이 이와 같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탕왕의 불행이며,
注+불행히도 걸桀의 어지러움이 있었다는 말이다. 호리병의 음료수로 무왕의 군대를 환영한 일이
注+≪맹자孟子≫에 “동쪽을 정벌하여 그곳의 벼슬아치와 그에 따른 여인들을 편안하게 해주자, 그곳의 소인들은 도시락의 밥과 호리병의 음료수로 정벌하는 소인小人을 맞이하였다.”라 하였다. 무왕의 번성이 아니라
注+무왕武王이 이와 같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무왕의 불행이다.
注+불행히도 주紂의 어지러움이 있었다는 말이다. 패자의 마음은 이와 다르다.
注+본편의 일을 인용하여 패자霸者의 마음은 왕자王者의 마음과 다름을 말하였다.
왕자王者가 말하는 불행은 곧
패자霸者가 말하는 큰 행운이다. 왕자는 천하에 난리가 있을까 걱정하고
注+어지러움을 불행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패자는 천하에 난리가 없을까 걱정한다.
注+어지러움을 행운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는 난리가 극에 달하지 않으면 공적을 크게 세우지 못하고,
注+공功은 어지러움으로 인하여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적이 크지 않으면 명예가 높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注+명예는 공功으로 인하여 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예를 융숭하게 하려면
注+패자霸者는 명예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하는 것이다. 반드시 공적을 넓혀야 하고,
注+공功이 커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공적을 넓히고자 한다면 반드시 난리를 길러야 한다.
注+어지러움이 지극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양養’, ‘난亂’ 두 자로써 제 환공齊 桓公의 마음을 주벌한 것이다.
적인狄人이
민공閔公 원년에
형邢나라를 쳤는데
注+본편의 주석에 보인다. 2년 뒤에야
제齊나라가 비로소 형나라를
이의夷儀로 옮겼고,
注+이 일이 희공僖公 원년에 있었다. 적인이 민공 2년에
위衛나라를 멸하였는데
注+본편의 주석에 보인다. 2년 뒤에야 제나라가 비로소 위나라를
초구楚丘에 봉하였다.
注+이 일이 희공僖公 2년에 있었다.
제 환공齊 桓公이 두 나라를 구휼하기를 반드시 2년 뒤에야 한 것은 어째서인가?
注+두 일을 총괄하여 물은 것이다. 난리를 기르려고 해서였다.
注+앞글의 ‘양養’, ‘난亂’자에 호응하여 제 환공齊 桓公을 단죄한 것이다.
제 환공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注+이 이하는 패자의 마음은 명예를 좋아함을 밝힌 것이다. ‘두 나라가 전쟁을 시작하였을 때
注+오랑캐가 처음 형邢과 위衛를 정벌했을 때를 이른다. 내가 서둘러
이적夷狄을 물리쳐 퇴각시킨다면,
注+‘따라서 즉시 구원했다면’이라는 말이다. 이는
제후諸侯로서 재앙을 구원하고 이웃나라를 돕는 일반적인 일일 뿐이니,
注+매우 높게 이름날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 자취가 분명코 그다지 특별하지 않고, 그 일이 분명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을 것이며, 그 은혜가 분명코 그다지 깊지 않을 것이니,
注+이 3구는 모두 공이 크지 않으면 명예도 높을 수 없다는 뜻을 형용하였다. 어찌 위엄 있는 명예를 취하고 패자의 공업을 정립하기에 충분하겠는가?
注+이와 같다면 위엄 있는 명예를 취하여 패업을 정하기에 부족하다는 말이다.
먼저 굶주리게 한 뒤에 먹게 하면 먹는 것이 달 것이고,
注+굶주린 자는 먹을 것을 달게 여긴다. 먼저 목마르게 한 뒤에 마시게 한다면 마시는 것이 달 것이다.
注+목마른 자는 마실 것을 달게 여긴다. 처음에 두 나라를 구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을 굶주리게 하고 목마르게 하고자 한 것임을 비유하였다.
지금 내가 앉아서 난리를 기르다가,
注+앞글의 ‘양養’, ‘난亂’에 호응한다. 그들의
사직社稷이 무너지고,
도읍都邑이 경복되고, 참혹하게 도륙되고,
유망자流亡者가 많게 된
注+퇴頹는 붕괴이고, 경傾은 파괴이고, 혹酷은 참혹이며, 중衆은 많음이다. ○이 네 구는 비유하자면 먼저 굶주리게 하고 목마르게 하는 것이다. 뒤에 천천히 일어나 구원한다면,
注+비유하자면 마시게 하고 먹게 하는 것이다.
이는 위태롭고 전복된 속에서 건져내어 풍요롭고 태평한 곳에 살게 하는 것이니,
注+비유하자면 굶주린 자를 먹게 할 수 있고, 목마른 자를 마시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형나라‧위나라 임금의 처지에서는 나라가 없어졌다가 있게 된 것이고,
注+나라가 이미 없어졌다가 다시 있게 된 것이다. 형나라‧위나라 백성의 처지에서는 몸이 없어졌다가 있게 된 것이다.
注+몸이 이미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깊고 중한 은혜를
注+이와 같다면 제 환공齊 桓公의 어진 은혜가 깊고, 베풀어준 은혜가 중한 것이다. 구연九淵의 물보다 깊게 여기고
구정九鼎의 철보다 무겁게 여길 것이다.’
注+천淺은 심深에 상대되는 말이고, 경輕은 중重에 상대되는 말이니, 인仁이 깊어 〈상대적으로〉 구연九淵이 얕음이 되고, 베풂이 무거워 〈상대적으로〉 구정九鼎이 가벼움이 된다는 말이다. ○구연九淵은 ≪열자列子≫ 〈황제黃帝〉편에 보인다.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에 “깊은 못에 아홉 가지 이름이 있다.”라 하였다. 구정九鼎은 우禹임금이 주조한 것으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보인다. 그러므로 그의
공명功名이 진동하고 혁혁히 빛나
注+앞글의 ‘공지대 명지고功之大 名之高’에 호응하는 말이다. 오패五霸의 으뜸이 되었으니,
注+춘추시대春秋時代에 들어선 이래로 제 환공齊 桓公이 처음 패자가 되었다. ≪맹자孟子≫ 〈고자 하告子 下〉에 “오패五霸 중에 제 환공齊 桓公이 가장 성하였다.” 하였다.
지난번에 가령 난리가 시작되었을 때에 즉시 난리를 구제하였다면
注+‘두 나라가 처음 어지러웠을 때 빨리 구원했다면’의 뜻이다. 어떻게 이처럼 명성이 드러날 수 있었겠는가?
注+그렇다면 제 환공齊 桓公이 어찌 이런 성대한 명예를 얻었겠느냐는 말이다. 이상의 글은 패자가 명예를 좋아하는 뜻을 발명하였다.
아!
注+이 이하는 제 환공齊 桓公이 두 나라의 난리를 양성한 것임을 깊이 책한 것이다. 형邢나라와
위衛나라의 난리는 임금과
공경대부公卿大夫, 선비와 백성 할 것 없이
注+귀천貴賤에 상관없이 모두 오랑캐의 난리를 입었다는 말이다. 모두 그들의
간뇌肝腦가
중원中原의 길을 뒤덮었고
고혈膏血이 들판의 풀들을 적시는 참혹한 지경이었다.
注+살육殺戮의 참혹함을 당했다는 말이다.
만일
인인仁人이 그것을 보았다면 분주히 달려가 구원하여 하루아침도 가만히 있지 못하였을 것이다.
注+어찌 2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제 환공齊 桓公은 한갓 하찮은 이름을 이루고자
注+오직 명예를 좋아하기 때문에 난을 기른 것이다. 2년이라는 오랜 시간 그들의 죽음을 편안히 쳐다만 보고 있었으니 어쩌면 그리도 잔인하였는가?
注+인인仁人의 마음 씀과는 다르다.
남의 난리를 조장하여 나의 은혜를 확장하고자 하고, 도적의 학대를 많게 하여 나의 공훈을 밝히고자 하였으니,
注+문장 안의 이런 수법은 가장 좋은 경구警句가 된다. 이는
만인萬人의 목숨을
일신一身의 명예와 바꾼 것이다.
注+명예를 좋아하는 폐단이 한결같이 이런 데에 이름을 통쾌하게 표현한 것이다.
진실로 이것이 무슨 마음인가?
注+불인不仁함이 심한 것이다. 지금 어떤 이가,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을 언뜻 보면,
注+맹자孟子의 말을 인용하였다. 두렵고 측은해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날 것이니,
注+인심人心은 모두 이런 어진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의 진실한 마음이다.
注+인仁은 인심人心의 바른 것이기 때문에 진眞이라 한 것이다.
진실한 마음이 일단 일어나면 빽빽한 마음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인데
注+스스로 그러한 마음이기 때문에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무슨 겨를에 그 나머지 일을 따지겠는가?
注+어린아이의 부모와 친분을 맺기 위함이 아니고, 명예를 구하기 위함도 아니며, 〈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듣기 싫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어떤 이가
注+윗글을 이어 ‘우물에 들어가는 일’을 가설하여 비유하였다. “저 아이가 아직 우물에 들어가기 전에 온전하게 구해준다면 그 공이 얕고,
우물에 빠진 뒤에 온전하게 구해준다면 그 공이 깊을 것이다.”
注+바로 제 환공齊 桓公이 두 나라의 난리를 좌시한 것과 같은 것이다.라 하여 수수방관한 채 기다렸다가, 그가 이미 빠진 뒤에 비로소 바지를 걷고 발을 적시어 구원한다면,
注+바로 제 환공齊 桓公이 2년 뒤에야 두 나라를 구원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의 부모는 반드시 다시 살려준 은혜라 여기고,
注+≪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 上〉에 이른바 ‘어린아이의 부모와 친분을 맺는 것’이란 말로 인하여 발설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뛰어난 행동이라고 여겨,
注+≪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 上〉에 이른바 ‘마을 사람들과 벗들에게 명예를 구하는 것’이란 말로 인하여 발설한 것이다. 늠름凜凜하고 의로운
기개氣槪가 마을에 진동할 것이다.
注+바로 제 환공齊 桓公의 공명功名이 진동하고 빛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전일에 아이가 우물에 빠지기 전에 구제한 자에게
注+다시 한 번 아름다운 일로 전환한 것이다. 부모가 사례하지 않고,
注+다시 살려준 은혜가 없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칭송하지 않았던 것을
注+남보다 뛰어난 행적이 없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전혀 다르다.
注+저(빠진 뒤에 구하는) 일은 명예가 있으나, 이(빠지기 전에 구하는) 일은 명예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를 위한 계책으로
注+어린아이를 가지고 형邢나라와 위衛나라에 비유한 것이다. 앞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나은가?
注+우물에 들어가기 전에 구원해주는 자를 말한다. 뒤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나은가?
注+우물에 빠진 뒤에 구원하는 자로써 제 환공齊 桓公을 비유한 것이다. 아! 이것이
왕자王者와
패자霸者의 분별이다.
注+맺는 말이다. 왕백王伯는 수미首尾가 상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