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莊十四年
이라 하야 하니 傅瑕曰 苟舍我
면 吾請納君
하리라한대
與之盟而赦之
하다 傅瑕殺
及其二子
하고 而納厲公
하다
厲公入하여 遂殺傅瑕하고 使謂原繁曰 傅瑕貳하니 周有常刑일새 旣伏其罪矣어니와
且寡人出에 伯父無裏言하고 入에 又不念寡人하니 寡人感焉하노라
對曰
하시니 社稷有王
이어늘 而外其心
하면 리잇가
苟主社稷이면 國內之民이 其誰不爲臣이리잇가 臣無二心이 天之制也니이다 子儀在位十四年矣니 而謀召君者가 庸非貳乎잇가
하니 若皆以官爵行賂勸貳
면 而可以濟事
하리니 君其若之何
릿가 臣聞命矣
라하고 乃縊而死
하다
注
[主意]傅瑕內叛之罪小하고 原繁中立之罪大하니 內叛之罪皆知之어니와 中立者는 君受其勝하고 己享其利하니 其爲罪莫大焉이라
國不亡於外寇하고 而亡於內寇하며 惡不成於有助하고 而成於無助하니라
國家之難
에 攻其外而無應於內
면 則攻者亦將窮而自止
리라 無宰嚭
면 則越不能亡吳
注+越王句踐伐吳 吳王敗之 越王以餘兵五千 棲會稽 吳王追而圍之 越王乃令大夫種行成於吳 請爲臣 吳王將許之 子胥言曰 天以越賜吳 勿許也 種還 以報句踐 句踐欲殺妻子 燔寶器 觸戰以死 重上句踐曰 吳太宰嚭貪 可誘以利 請間行言之 於是句踐乃以美女寶物間獻太宰嚭 嚭乃見大夫種於吳王 言曰 願赦句踐之罪 不幸不赦 句踐率五千人觸戰 必有當也 嚭因說吳王曰 越王以服爲臣 若赦之 此國之利也 吳王將許之 子胥諫曰 今不滅越 後必悔之 吳王不聽 卒赦越 罷兵而歸 後越卒滅吳 見史記하고 無郭開
면 則秦不能亡趙
注+秦使王翦攻趙 趙使李牧司馬尙禦之 秦多與趙王寵臣郭開金 爲反間 言李牧司馬尙欲反 趙王乃使趙(忽)[蔥]及齊將顔聚代李牧 李牧不受命 趙使人徵捕得李牧斬之 後三月 秦遂滅趙 며
無鄭譯劉昉
이면 則隋不能亡周
注+北史 不豫 召劉昉顔之儀入臥內 欲屬後事 天元瘖不能言 昉見靜帝冲幼 以楊堅后父有重名 遂與鄭譯等謀 引堅輔政從之 是日帝殂 秘不發喪 昉譯矯詔以堅總知中外兵馬事 帝立 以堅爲相國 進爵爲隋王 大定元年 遜位于隋하고 無裴樞柳燦
이면 則梁不能亡唐
注+昭宗天祐元年 朱全忠殺崔胤 請帝遷都洛陽 帝未及下樓 宰相裴樞已得全忠移書 促百官 驅士民 號泣滿路 二年 裴樞罷政事 初柳燦及第不四年爲宰相 時天子左右 皆全忠腹心 燦曲意事之 同列裴樞 皆朝廷宿望 意輕之 燦以爲憾 譖於全忠 故罷 四年 帝禪位于梁이라
是數國者에 非其人之內叛이면 人孰能取之리오 故曰 國不亡於外寇하고 而亡於內寇라하노라
天下未有皆助惡者也니 爲惡者未有皆得天下之助者也니라 彼爲惡者는 惟欲人皆中立無所偏助하야
注+出晉語와 注+見晉王祥傳와 注+見五代史馮道傳하야 陰拱黙居
하야 坐觀成敗
면 則吾事濟矣
라
故曰 惡不成於有助而成於無助
라하니라 是故禍莫甚於內叛
注+如傳暇殺鄭子而納厲公이요 姦莫甚於中立
注+如原繁於內外一無所濟 ○已上平說起이니라
二者之罪
가 孰爲大
注+分輕重오 曰 中立之罪爲大
注+主意深罪原니라 是何也
注+再說問오 內叛之罪易見
하고 中立之罪難知
注+答注+惟其難知所以罪大ㄹ새니라
人臣之叛君卽讐者
注+此下說內叛之罪易見 卽 就也는 五尺童子皆知疾之
注+人所同惡하고 雖所謂讐敵者資之以集事
注+如厲公資藉傅瑕而得入라도 亦未嘗不賞其功而疑其心也
注+雖賞其叛君卽己 必疑其叛己卽人니
君且叛之
어든 而況於人乎
아 今日爲我所誘而叛君
注+此固同賞之功하니 安知他日不爲人所誘而叛我乎
注+此則可疑之心아
吾位未定
엔 則借之以成功
注+厲公初用傅瑕之意 如此하고 吾位旣定
엔 則除之以防患
注+厲公入後 殺傅瑕之意 如此이라 此傅瑕叛子儀而納厲公
注+子儀卽鄭子也이라가 終不免於厲公之誅也
注+已上是說傅瑕內叛之罪니라
乃若原繁之自爲謀
는 可謂密矣
注+輔說原繁中立之罪 原繁之罪 世罕知者 而東萊始發之 可謂誅心之論라 自莊公之世
로 用事於朝
注+莊公厲公之父 其時原繁已仕하야 歷忽亹儀突之變
注+四人皆莊公子 莊公卒昭公忽立 祭仲逐昭公 而納厲公突 厲公欲殺祭仲不克 復逐厲公 而納昭公 高渠彌弑昭公 而立子亹 齊襄公討之殺子亹 而立子儀 子儀立十四年 爲傅瑕所弑 而厲公復入하야 國四易主
注+忽亹儀突로되
汎然中立
하야 擧無所助
注+原繁之罪在此하야 入則事之
注+事之爲君하고 出則捨之
注+視如路人하니라
視君位如傳舍
注+傳舍 驛舍也하야 不置欣戚於其間
注+君入不喜 君出不憂하고 依阿取容
하야 優游卒歲
하니라
旣不爲人所愛
나 亦不爲人所憎
注+說盡此等人情狀 如五代時馮道正是如此하니 固可以獨全於艱危之時
니라
自古之持位保祿者
는 率用此術
注+言不但原繁之人하니 雖遇明主
라도 亦未易察其爲姦也
注+此言中立之罪難知 奸字應前니라
厲公以私憾殺之
注+怒其不附矣가 固非其正
注+殺之不以成罪이나 天其或者假手於厲公
하야 以大警爲臣者歟
注+此意高 謂天以原繁警中立之人아
觀繁對厲公之辭
컨대 曰 苟主社稷
이면 國內之民
이 其誰不爲臣
注+摘出原繁此語 發明中立之罪 最說着他病痛處이리오하니 信如是說
注+若果如繁之說이면 則苟據君位者
면 皆奉之無所擇
注+如下文所謂簒僭盜讐 皆可事之矣이라
簒亦君也
요 僭亦君也
요 盜亦君也
요 讐亦君也
注+文意沈着痛決深得排擊之體니 爲臣者皆操此心
注+如此繁之用心이면 則人君將安所恃乎
注+誰爲吾君效死以靖亂者아 甚矣
라 繁之姦也
注+爲奸莫甚於中立首尾相應여
嗚呼
注+此段又明內叛中立二事라 論人臣之罪者
는 至叛逆而極
注+言內叛之罪已大이라 然事克則卿
이요 不克則烹
注+事成則受賞 不成則受誅 ○此二句左傳所載石乞之言이니
成敗猶居其半也
注+或卿或烹 事未可必로되 至於中立者
注+此言中立之罪 尤大於叛逆하야는 自謂無往而不得志
注+得志如下文所云라
國有存亡
하고 君有廢興
하며 時有治亂
하고 民有安危
로되 吾之爵秩
은 常自如也
注+所謂無往而不得也니 彼何預於我哉
注+彼謂國也君也時也民也리오하니
其用心
이 可謂姦之尤者矣
注+與奸莫甚相應로다 中立如原繁
도 有時而干厲公之誅
注+繁固自謂無往不得志 而卒不免於戮하니
則世之取容者
가 果可以長無禍乎
注+所謂天假手於厲公 以大警爲臣者也아 吾故表原繁之誅
하야 以風中立之士云
注+風刺後世如原繁者 使自警也이로라
정 여공鄭 厲公이 부하傅瑕와 원번原繁을 죽이다
傳
장공莊公 14년, 정 여공鄭 厲公이 군대를 거느리고 역櫟을 출발하여 정鄭나라의 국도國都를 침공侵攻하기 위해 가다가 대릉大陵에 이르러 부하傅瑕를 잡으니, 부하가 “만약 나를 놓아준다면 내가 임금님이 다시 군위君位에 오르도록 주선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여공厲公은 그와 맹약盟約하고서 놓아주었다. 부하가 정자鄭子와 그의 두 아들을 죽이고 여공을 임금으로 맞아들였다.
여공이 들어가서 드디어 부하를 죽이고 원번原繁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부하는 두 마음을 품었으니, 주周나라는 이에 대한 처벌을 규정規定한 상법常法이 있으므로 그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았지만,
나를 받아들이고 두 마음을 품지 않은 자들에게는 내가 모두 상대부上大夫의 관직官職으로 허락(보답報答의 뜻)하려 하니, 나는 이 일을 백보伯父와 함께 상의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과인寡人이 외국外國에 나가 있을 때에 백보는 국내의 사정을 알려주지 않았고, 내가 역櫟에 들어와 있을 때에도 과인을 생각하지 않았으니, 과인은 매우 유감遺憾으로 여긴다.”라고 하였다.
원번原繁이 대답하기를 “선군 환공先君 桓公께서 우리 선인先人에게 명命하여 종묘宗廟의 석실石室을 맡아 관리하게 하셨으니, 사직社稷에 주인이 있는데, 외국外國에 나가 있는 분에게 마음을 둔다면 이보다 더한 두 마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 사직을 주관主管한다면(임금이 됨) 국내의 백성 중에 그 누가 신하가 되지 않겠습니까. 신하가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은 하늘이 정한 제도입니다. 그런데 자의子儀가 군위君位에 있은 지 이미 14년이나 되었으니, 군君(여공厲公을 가리킴)을 불러들이기를 꾀한 자들이 어찌 두 마음을 품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장공莊公의 아들이 아직 8명이나 남아있으니, 만약 모두 관작官爵을 뇌물로 삼아 두 마음을 품도록 권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니, 군君께서는 어찌하겠습니까? 신臣은 명에 따르겠습니다.” 하고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注
부하傅瑕가 내란을 일으킨 죄는 작고, 원번原繁이 중립을 지킨 죄는 크다. 내란을 일으킨 죄는 모든 사람이 다 알므로 〈죄를 피할 수 없지만,〉 중립을 지키는 자는 멸망(승勝)은 임금이 당하게 하고 이익은 자신이 누리니, 이보다 큰 죄가 없다.
국가國家는 외구外寇에 의해 망하지 않고 내구內寇에 의해 망하며, 악역惡逆은 방조자幇助者가 있는 데서 이루어지지 않고 방조자가 없는 데서 이루어진다.
국가가
외구外寇의
환난患難을 당하였을 때 외구가 성 밖에서 공격하더라도
내응內應하는 자가 없으면, 공격하는 외구 또한 곤궁하여 스스로 공격을 정지할 것이다.
오吳나라에
태재 비太宰 嚭가 없었다면
월越나라가
오吳나라를 멸망시키지 못하였을 것이고,
注+월왕 구천越王 句踐이 오吳나라를 토벌하니, 오왕吳王이 월군越軍을 패배시켰다. 월왕越王이 남은 군사 5천 인을 데리고 회계산會稽山으로 올라가 지키니, 오왕吳王이 뒤쫓아 와서 그곳을 포위하였다. 월왕越王이 대부 문종大夫 文種을 오吳나라에 보내어 화친을 요구하면서 신하가 되기를 청하니, 오왕吳王이 허락하려 하자 오자서伍子胥가 “하늘이 월越나라를 우리 오吳나라에 주려 하니 허락하지 마소서.”라고 하였다.
문종이 돌아와서 구천에게 보고하니, 구천은 처자를 죽이고 보기寶器를 불태우고서 죽기로 싸우려 하였다. 문종이 구천을 말리며 말하기를 “오나라 태재 비太宰 嚭는 탐욕스러워서 이익으로 유혹할 수 있으니, 은밀하게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설득하게 하소서.”라고 하니, 구천은 이에 문종에게 미녀와 보기를 가지고 샛길로 가서 태재 비에게 바치게 하였다. 비는 미녀와 보기를 받고서 대부 문종을 데리고 가서 오왕吳王을 뵙게 하였다.
문종이 오왕에게 말하기를 “구천의 죄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불행하게도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구천은 5천 인을 거느리고서 죽기로 싸울 것이니, 반드시 오나라도 그에 해당하는 숫자의 군대를 잃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태재 비가 이어 오왕을 설득하기를 “월왕이 복종하여 신하가 되겠다고 하니, 그를 용서하면 이는 오나라에 이익이 됩니다.”라고 하니, 오왕이 허락하려 하였다. 오자서가 “지금 월나라를 격멸擊滅하지 않으면 후일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간諫하였으나, 오왕은 그의 간언을 듣지 않고 끝내 월왕을 용서하고서 전쟁을 중지하고 돌아왔다. 뒤에 월나라가 마침내 오나라를 격멸하였다. ≪사기史記≫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에 보인다. 조趙나라에
곽개郭開가 없었다면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멸망시키지 못하였을 것이며,
注+진秦나라가 왕전王翦을 보내어 조趙나라를 공격하니, 조나라는 이목李牧과 사마상司馬尙을 보내어 방어하게 하였다. 진秦나라가 조왕趙王의 총신 곽개寵臣 郭開에세 많은 돈을 주어 간첩으로 만들어 이목과 사마 상이 모반하려 한다고 말하게 하였다. 조왕은 그 말을 믿고서 조총趙蔥과 제齊나라 장군 안취顔聚를 보내어 이목을 교대하게 하니, 이목이 그 명을 받들지 않았다. 그러자 조나라는 사람을 보내어 이목을 체포하여 참수하였다. 석 달 뒤에 진나라가 드디어 조나라를 멸망시켰다.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보인다.
북주北周에
정역鄭譯과
유방劉昉이 없었다면
수隋나라가
북주北周를 멸망시키지 못하였을 것이고,
注+≪북사北史≫에 의하면, 북주 천원北周 天元이 병이 위독해지자, 유방劉昉과 안지의顔之儀을 침실로 불러들여 후사後事를 부탁하려 하였으나, 천원은 이미 혀가 굳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유방은 정제靜帝가 어리고 양견楊堅(수 문제隋 文帝)이 황후의 아비로 높은 명망이 있는 것을 보고서, 드디어 정역鄭譯 등과 함께 ‘양견을 불러들여 국정國政을 보좌하게 하자.’고 모의하고는, 〈그 모의를 양견에게 말하니〉 양견이 그 말을 따랐다. 이날 선제宣帝가 죽으니, 비밀에 부쳐 상喪을 발표하지 않고서 유방과 정역이 조서를 위조하여 양견을 ‘총지중외병마사總知中外兵馬事’로 삼았다. 정제靜帝가 즉위하여 양견을 상국相國으로 삼고 작위를 올려 수왕隋王으로 삼았다. 대정大定 원년에 정제는 수왕에게 황위皇位를 선양禪讓하였다. 당唐나라에
배추裴樞와
유찬柳燦이 없었다면
후량後梁이
당唐나라를 멸망시키지 못하였을 것이다.
注+당 소종唐 昭宗 천우天祐 원년에 주전충朱全忠이 최윤崔胤을 죽이고서 황제에게 낙양洛陽으로 천도遷都하기를 청하였다. 황제가 미처 누관樓觀에서 내려오기도 전에 재상 배추裴樞는 이미 주전충이 보낸 공문公文을 받고서, 백관에게 동도東都 낙양으로 갈 것을 재촉하고 백성들을 몰아내니, 울부짖는 소리가 길에 가득하였다. 천우 2년에 배추가 참지정사參知政事에서 파면되었다. 당초에 유찬柳燦은 급제한 지 4년도 되지 않아 재상이 되었다. 이때 천자의 좌우가 모두 주전충의 심복이었는데, 유찬은 양심을 버리고 정성을 다해 그들을 섬겼다. 평소 조정에 높은 명망이 있던 동렬同列 배추 등이 모두 마음속으로 그를 경시하니, 유찬은 원한을 품고서 주전충에게 참소하였다. 그러므로 파면된 것이다. 천우 4년에 당 애제唐 哀帝는 후량 태조後梁 太祖에게 선위禪位하였다.
이 몇 나라에 그 사람들이 안에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누가 그 나라를 탈취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국가는 외구外寇에 의해 망하지 않고 내구內寇에 의해 망한다.”고 한 것이다.
천하에는 모두 악역惡逆을 방조하는 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니, 악역惡逆을 한 자들이 모두 천하의 방조를 얻었던 것은 아니다. 저 악역을 감행한 자들은 오직 사람들이 모두 중립中立을 지켜 한쪽만을 방조하지 않기를 바라,
이극里克이
여희驪姬의 일에,
注+≪국어國語≫ 〈진어 이晉語 二〉에 보인다. 왕상王祥이
사마염司馬炎의 일에,
注+≪진서晉書≫ 〈왕상전王祥傳〉에 보인다. 풍도馮道가
오계五季 때에 처신한 것처럼
注+≪오대사五代史≫ 〈풍도전馮道傳〉에 보인다. 말없이 앉아
성패成敗를
관망觀望한다면 자기의 일이
성취成就될 것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악역은 방조자가 있는 데서 이루지지 않고 방조자가 없는 데서 이루진다.”고 한 것이다. 이러므로
화禍는 내부의
반역叛逆보다 심한 것이 없고,
注+전가傳暇가 정자鄭子를 죽이고 여공厲公을 임금으로 맞아들인 일과 같은 것이다. 간사奸邪는 중립보다 심한 것이 없다.
注+원번原繁이 안팎으로 한 가지도 도움을 주지 않은 일과 같은 것이다. ○이상의 글은 일반적인 말로 문장을 시작하였다.
이 두 가지 죄 중에 어느 죄가 더 큰가?
注+죄의 경중輕重을 구분하는 말이다. 나는 중립의 죄가 크다고 생각한다.
注+죄의 근원에 깊이를 둔 것이 이 글의 주의主意이다. 왜냐하면,
注+다시 묻는 말이다. 내반內叛의 죄는 발견하기 쉽지만,
注+답변하는 말이다. 중립의 죄는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注+알기 어렵기 때문에 죄가 크다고 한 것이다.
신하로서 임금을 배반하고 원수에게 붙는 자는
注+이 글 이하는 내란의 죄는 알기 쉬움을 말하였다. 즉卽은 나아감이다. 어린아이도 모두 미워할 줄을 알고,
注+사람들이 모두 미워하는 것이다. 비록 그의 도움으로 성공한
수적讐敵도
注+여공厲公이 부하傅瑕에 의지하여 국내로 들어올 수 있었던 일과 같은 경우를 말한다. 그 공은 칭찬하면서도 그 마음은 의심하지 않은 자가 없었으니,
注+비록 그가 자기 임금을 배반하고 나에게 붙은 것은 칭찬하였지만, 반드시 자기를 배반하고 남에게 붙을 것을 의심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는 어째서인가? ‘그가 임금을 배반하고 나에게 붙었으니, 제 임금도 배반한 자인데 하물며 남이겠는가? 오늘 나에게 유인되어 제 임금을 배반하였으니,
注+이는 본래 칭찬해줄 공이라는 말이다. 후일에 다른 사람에게 유인되어 나를 배반하지 않을 줄을 어찌 알겠는가?
注+이것이 바로 의심할 만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나의 지위가
확정確定되기 전에는 그의 도움을 빌려 성공하였지만,
注+여공厲公이 처음에 부하傅瑕를 쓴 의도가 이와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나의 지위가 확정된 뒤에는 그를 제거하여 후환을 방지할 것이다.’
注+여공厲公이 국내로 들어온 뒤에 부하傅瑕를 죽인 의도가 이와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부하傅瑕가
자의子儀를 배반하고
여공厲公을 받아들였다가
注+자의子儀가 바로 정자鄭子이다. 끝내 여공의
주살誅殺을 면하지 못한 까닭이다.
注+이상은 부하傅瑕의 내란죄에 대하여 말하였다.
원번原繁이 자신을 위한
계모計謀야말로 치밀하였다고 이를 만하다.
注+문장을 전환하여 원번原繁이 중립을 지킨 죄를 말하였다. 세상에 원번의 죄를 아는 자가 드문데 동래東萊가 비로소 밝혀내었으니, ‘주심誅心(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았을지라도 그 의도에 죗값을 묻는 법)의 의론’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장공莊公 때부터 조정에서 정권을 담당하면서,
注+장공莊公은 여공厲公의 부친이다. 당시에 원번原繁이 이미 벼슬하고 있었다. 공자 홀公子 忽‧
미亹‧
의儀‧
돌突의
정변政變을 겪어
注+네 사람(홀忽‧미亹‧의儀‧돌突)은 모두 정 장공鄭 莊公의 아들이다. 장공이 죽은 뒤에 소공昭公(홀忽)이 군위君位를 승계承繼하였는데, 채중祭仲이 소공을 축출하고서 여공厲公(돌突)을 임금으로 받아들였다. 여공이 채중을 죽이려 하였으나 실패하자, 채중은 여공을 축출하고서 소공을 다시 임금으로 받아들였다. 고거미高渠彌가 소공을 시해弑害하고 자미子亹를 임금으로 세우니, 제 양공齊 襄公이 정鄭나라를 토벌하여 자미를 죽이고 자의子儀를 임금으로 세웠다. 자의가 임금이 된 지 14년이 되던 해에 부하傅瑕에게 시해되니, 여공이 다시 들어와서 임금이 되었다. 나라의
군주君主가 네 번 바뀌었으나,
注+〈정 장공鄭 莊公의 네 아들인〉 홀忽‧미亹‧의儀‧돌突을 가리킨다.
전혀 마음을 쓰지 않고
중립中立을 지켜 누구도 돕지 않고,
注+원번原繁의 죄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들어와서 임금이 되면 섬기고
注+임금으로 섬겼다는 것이다. 쫓겨나면 버렸다.
注+길 가는 사람처럼 무관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군위君位를 마치
여관旅館처럼 보아
注+전사傳舍는 역사驛舍이다. 그 사이(임금이 바뀌는 일)에 기뻐하거나 걱정하는 마음을 두지 않았고,
注+임금이 들어와도 기뻐하지 않고, 임금이 쫓겨 나가도 근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오직 새 임금에게 아부해 몸을 용납하기만을 구하여 편안히 일생을 마치고자 하였을 뿐이다.
이미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였고, 그렇다고 또 사람들에게 미움도 받지 않았으니,
注+이런 사람들의 정상情狀을 극진히 말하였다. 이를테면 오대五代 때의 풍도馮道가 바로 이와 같은 사람이다. 진실로
위난危難한 시대에 자기의 몸을 잘 보전하였다고 하겠다.
예로부터 지위를 지키고
작록爵祿을 보전하려는 자들은 대체로 이런 방법을 썼으니,
注+〈그런 행동을 하는 자가〉 단지 원번原繁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비록
영명英明한 임금을 만나더라도 그 간사함을 쉽게 살피기가 쉽지 않다.
注+이는 중립의 죄는 알기 어렵다는 말이다. ‘간奸’자는 앞의 글에 호응한다.
여공厲公이 사사로운 원한으로 원번을 죽인 것이
注+〈여공厲公은 원번原繁이 자기편에〉 붙지 않은 것에 노한 것이다. 진실로 정당하지 못하였으나,
注+죄가 되지도 않는데 죽인 것이다. 이는 혹 하늘이 여공의 손을 빌려 그를 죽여서 신하 된 자들을 크게 경계하려 한 것이리라.
注+이 뜻이 매우 고상하니 하늘이 원번原繁의 일을 통해 중립을 지키는 자를 경계한 것이라는 말이다.
원번原繁이
여공厲公에게 대답한 말을 보면, “만약 사직을
주관主管한다면(임금이 됨) 국내의 백성 중에 그 누가 신하가 되지 않겠습니까?”
注+원번原繁의 이 말을 적출하여 중립을 지키는 죄를 밝혔다. 〈이것이〉 그의 병통을 가장 잘 말한 부분이다.라고 하였으니, 진실로 이 말대로라면
注+‘과연 원번原繁의 말과 같다면’이라는 말이다. 가령 임금의 자리를 점거한 자가 있으면 그들을 모두 가릴 것 없이 임금으로 받들겠다는 것이다.
注+아래 문장에 이른바 찬탈한 자, 참칭한 자, 자리를 훔친 자, 원수라도 모두 섬길 수 있다는 말이다.
찬탈簒奪한 자도 임금으로 받들고, 임금을
참칭僭稱한 자도 임금으로 받들고, 임금의 자리를 훔친 자도 임금으로 받들고, 원수도 임금으로 받들겠다는 것이니,
注+글의 뜻이 매우 결단력이 있으며 깊이 배격하는 문체이다. 신하 된 자가 모두 이런 마음을 갖는다면
注+‘원번原繁처럼 마음을 쓴다면’이라는 말이다. 임금은 장차 누구를 믿어야 하겠는가?
注+우리 임금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난리를 안정시킬 자가 누구이겠느냐는 말이다. 심하도다. 원번의 간사함이여!
注+앞글의 ‘간막심어중립奸莫甚於中立’과 수미상응首尾相應하는 말이다.
아!
注+이 문단은 또 내란內亂과 중립中立, 두 가지 일에 대하여 밝힌 것이다. 인신人臣의 죄를 논하는 자는
반역叛逆을 가장 큰 죄로 여긴다.
注+내란의 죄가 매우 크다는 말이다. 그러나 일이 성공하면
경卿이 되고 실패하면
팽형烹刑을 당하니,
注+일이 성공하면 상을 받고, 성공하지 못하면 주벌을 받는다는 말이다. ○이 두 구절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기록된 석걸石乞의 말이다.
성공과 실패의 확률이 반반이지만
注+때로는 경卿이 되고 때로는 팽형烹刑을 당하니 일을 단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중립을 지키는 자는
注+이는 중립을 지키는 죄가 반역의 죄보다 더 크다는 말이다. 스스로 ‘가는 곳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이 없다.
注+뜻대로 됨이 아래 글에 말한 바와 같다.
나라에는
존망存亡이 있고 임금에게는
폐흥廢興이 있고 시국에는
치란治亂이 있고 백성에는
안위安危가 있지만 나의
작록爵祿은 항상 여전하니,
注+이른바 ‘가는 곳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이 없다.’는 말이다. 저것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注+피彼는 나라, 임금, 시국, 백성을 이른다.라고 하니,
그 마음 씀이 더욱
간악姦惡하다 하겠다.
注+앞글의 ‘간막심奸莫甚(간막심어중립奸莫甚於中立)’과 상응하는 말이다. 원번原繁처럼 중립을 지킨 자도
여공厲公에게
주륙誅戮을 당할 때가 있었으니,
注+원번原繁이 스스로 ‘본래 가는 곳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으되, 끝내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는 말이다.
중립을 지켜 세상에 몸을 용납하기를 구하는 자가 과연 영원히
화禍가 없을 수 있겠는가?
注+이른바 하늘이 여공厲公의 손을 빌려 신하 된 자들을 크게 경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원번이
주륙誅戮된 일을 드러내어 중립을 표방하는 사람들을
풍자諷刺하노라.
注+후세의 원번原繁과 같은 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경계하게 하고자 하여 풍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