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 文六年
이라 하고 使狐射姑將中軍
하고 趙盾佐之
러니 陽處父至自溫
하야 하다 라 故黨於趙氏
하니라
하고 而知其無援於晉也
하야 九月
에 賈季使續鞫居殺陽處父
하다 라
夷之蒐에 賈季戮臾騈하니 臾騈之人欲盡殺賈氏以報焉한대
臾騈曰 不可
하다 吾聞前志有之
하니 曰 敵惠敵怨
은 不在後嗣
가 忠之道也
라하니 어늘 아
은 非勇也
요 요 以私害公
은 非忠也
니 釋此三者
면 何以事夫子
리오하고
私者는 人之所惡也라 立乎人之朝하야 相結以私情하고 相交以私利하며 相報以私恩하야 不復知公義之所在는 固人之所共惡也라
是其爲私
는 雖人之所共惡
나 亦人之所共知
니 非可惡之尤者也
라 天下之尤可惡者
는 其惟私之私乎
ㄴ저
受私而矯情以示公하고 示公而匿機以行私하야 私中有公하고 公中有私하야 深閟險譎하야 擧世皆莫能窺라 此所謂私之私也니 君子之所尤惡也라
陽處父私於趙盾하야 犯君命하고 墮國法하며 擅蒐于董하야 奪賈季之位以畀盾하니 其私於盾者深矣라
使盾果公存心이면 必思命當出於君이요 而不當出於臣이며 君命旣定이어늘 而臣擅易之면 是無國法也라
竊財者謂之盜요 受其財者亦謂之盜며 擅命者謂之叛이나 受其命者亦謂之叛이니 其可貪一時之寵하야 而自納於叛乎아
苟盾持此義以固拒陽處父之命이면 吾始信盾之眞公也라 今盾安受處父之擅命하야 恬處正卿之位하야 受其利而欲逃其名하야 背惠棄思하고 疏絶處父하야 自示其公하야 以避受私之謗하니 盾之用心이 可畏也哉ㄴ저
何以知盾疏絶處父以示公也아 以賈季殺處父而知之也라 賈季所以敢殺處父者는 以其無援於晉也ㄹ새니라
晉國之權專出於盾하고 而盾之權專出於處父하니 有盾以爲處父援이면 天下之援豈有強於此者乎아
而賈季反謂處父無援於晉者는 是必盾旣得位之後에 視處父如路人하야 利害不相關하고 患難不相救니 此賈季所以知其無援也라
盾之不援處父者는 豈不知處父之恩不可負哉아 其矯情以示公者는 急於自解하야 而不暇顧人耳라
然其示公之中에 未嘗不匿機以行其私焉이라 賈季旣殺陽處父에 盾歸其獄於續簡伯하고 不探其情而誅賈季者는 盖以賈季之所以殺處父者는 不平其私於我也니 是處父之死由我也라
處父由我而死어늘 我爲處父復讐而殺賈季면 則未免於私之嫌也라 故宥賈季於遠하고 又送其帑以致勤厚之意는 皆矯情以示公也니 孰知其示公之中에 陰匿其至私而不悟乎아
盾之所使送賈季之帑者
는 臾騈
이라 ]賈季之讐
니라 送帑而使其讐
는 實欲臾騈盡殺賈氏以逞吾憾也
라
苟盾果出於善意면 則擧晉國之人에 豈無可任以送帑之責者리오 今不付之他人하고 而獨付諸其讐하니 則盾之情可見矣라
若臾騈從其黨之言하야 盡殺賈氏면 則全賈氏之思歸於盾하고 滅賈氏之惡歸於騈이라 外示公義하고 內復私怨하니 其機可謂險矣라
臾騈不悟其機하고 反謂盾行禮於賈季라하야 抑忿釋憾하고 衛之出竟하니 其事雖善이나 吾恐未必投盾之機也라
將殺
에 知田續有憾於艾
하고 使
追之曰 可以報江油之辱矣
注+:晉衛瓘傳라하니 續果殺艾
하니라
瓘使仇讐追鄧艾와 盾使仇讐送賈氏는 其機本同이라 然衛瓘之機淺이라 故田續悟其機而殺之하고 盾之機藏이라 故臾騈不悟其機而生之하니라
是全賈季者가 雖臾騈之美나 而本非盾之意也라 盾示之惡이로되 而騈誤以爲善하고 盾示之邪로되 而騈誤以爲正하니 人之誤每如此면 亦何患於誤乎아
惡機可以感善하고 邪機可以感正이라 是善常在於惡之中하고 而正常在於邪之中也라
善在惡之中이면 是天下本無惡이요 正在邪之中하니 是天下本無邪也라 是言也와 是理也가 微矣哉ㄴ저
양처보陽處父가 다시 군사훈련을 하다, 가계賈季가 양처보陽處父를 살해하다
傳
문공文公 6년, 진晉나라가 이夷에서 열병閱兵할 때에 〈오군五軍 중에〉 이군二軍을 감축[사舍]하고서 호야고狐射姑에게 중군中軍을 거느리게 하고 조돈趙盾을 그 부장副將[좌佐]으로 삼았는데, 양처보陽處父가 온溫에서 와서 다시 동董에서 열병閱兵하고서 중군장中軍將을 바꾸었다. 양자陽子는 성계成季의 부하이다. 그러므로 조씨趙氏를 도운 것이다.
8월 을해일乙亥日에 진晉 양공襄公이 졸卒하였다. 〈그 태자太子〉 영공靈公이 아직 어리니, 조맹趙孟(조돈趙盾)이 공자公子 옹雍을 세우려 하였다. 그러자 가계賈季가 말하기를 “공자公子 낙樂을 세우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조맹趙孟이 선멸先蔑과 사회士會를 보내어 진秦나라로 가서 공자公子 옹雍을 맞이해오게 하니, 가계賈季도 진陳나라로 사람을 보내어 공자公子 낙樂을 불러오게 하였는데, 조맹趙孟이 사람을 보내어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돌아오는 공자公子 낙樂을〉 비郫에서 죽이게 하였다.
가계賈季는 양자陽子가 자기의 반차班次(위차位次)를 바꾼 것에 원한을 품고, 또 진晉나라 안에 그를 돕는 세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 9월에 속국거續鞫居를 시켜 양처보陽處父를 죽이게 하였다. 경經에 “진晉나라가 그 대부大夫를 죽였다.”고 기록하였으니, 이는 자기의 권한을 넘어 남의 권한을 침범하였기 때문이다.
겨울 10월에 양중襄仲이 진晉나라에 가서 양공襄公의 장례葬禮에 참예하였다.
11월 병인일丙寅日에 진晉나라가 속간백續簡伯(속국거續鞫居)을 죽이니 가계賈季가 적狄으로 도망갔다. 선자宣子(조맹趙孟)는 유병臾騈을 시켜 가계賈季의 처자妻子를 적狄으로 보내주게 하였다.
이夷에서 훈련訓鍊할 때에 가계賈季가 유병臾騈에게 모욕을 준 일이 있었으므로 유병臾騈의 부하가 가씨賈氏의 일족一族을 모두 죽여 보복하려 하자,
유병臾騈이 말하였다. “안 된다. 내가 듣건대 전대前代의 기록에 ‘은혜와 원수는 직접 본인에게 갚고 그 후손에게 갚지 않는 것이 충후忠厚한 도道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부자夫子(선자宣子)는 가계賈季를 예우하는데 내가 부자夫子의 총애를 이용해[이以] 사사로운 원한을 갚는다면 잘못이 아닌가?
남의 총애를 이용해[개介] 〈원한을 갚는 것은〉 용맹이 아니고, 원수를 제거하려다가 원수를 더 만드는 것은 지혜가 아니며, 사적私的인 일로 공적公的인 일을 방해하는 것은 충성이 아니니, 이 세 가지를 버린다면[석釋] 무엇으로 저 분을 섬기겠는가?”
그의 처자妻子와 기용器用․재물財物을 모두 싣고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호위하여 국경國境까지 보내주었다.
사심私心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바이다. 임금의 조정朝廷에 관리官吏가 되어 사사로운 정의情誼로 서로 결탁하고, 사사로운 이익으로 서로 교제하며, 사사로운 은혜로 서로 보답하여, 다시 공의公義가 있는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은 본래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는 바이다.
이런 사심은 비록 사람들이 함께 미워하는 바이지만 또한 사람들이 함께 아는 바이니, 오히려 가장 미워할 만한 허물이 못되고, 천하의 허물 중 가장 미워할 만한 것은 오직 깊이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 사심일 뿐이다.
사사로운 도움을 받고도 감정을 숨기고서 공정한 척하며, 공정한 척하면서도 교사巧詐한 마음을 숨기고서 사욕을 부리며, 사욕을 부리면서도 외모는 공정한 척 꾸미고, 공정한 척하면서도 마음속에 음험陰險하고 간사한 사욕을 깊이 숨겨서, 온 세상 사람이 모두 그 진상을 엿볼 수 없게 한다. 이것이 이른바 깊이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 사심이니 군자가 가장 미워하는 바이다.
양처보陽處父는 조돈趙盾을 사사로이 후대하여, 군명君命을 어기고 국법國法을 무너뜨리면서까지 멋대로 동董에서 열병閱兵하여 가계賈季의 〈중군中軍의〉 직위를 빼앗아 조돈趙盾에게 주었으니, 그가 조돈趙盾에게 사사로이 은혜를 베푼 것이 깊었다.
가령 조돈趙盾이 과연 공평무사한 마음을 가졌다면 반드시 명령은 임금에게서 나와야 되고 신하에게서 나와서는 안 되며, 임금의 명으로 이미 결정한 것을 신하가 마음대로 바꾼다면 이는 국법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재물을 훔친 자를 도둑이라 하지만 그 재물을 받은 자도 도둑이라 하며, 임금의 명을 멋대로 바꾼 자를 반신叛臣이라 하지만 반신의 명을 접수하는 자도 반신이라 하니, 어찌 한때의 영화를 탐하여 스스로 반신의 대열로 들어가겠는가?
만약 조돈趙盾이 이런 의리義理를 지켜 양처보陽處父의 명을 굳게 거절하였다면 나는 비로소 조돈趙盾이 참으로 공정하였다고 믿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조돈趙盾은 양처보陽處父가 멋대로 바꾼 명을 편안히 받아들이고 정경正卿의 자리에 편안히 앉아서 그 명리名利만을 받아들이고 그 죄명罪名은 피하기 위해 은덕을 저버리고 양처보陽處父를 멀리하여 관계를 끊고서, 자기의 공정함을 드러내 보여 사사로운 도움을 받았다는 비방을 피하였으니, 조돈趙盾의 마음 씀이 참으로 끔찍하다.
무엇을 가지고 조돈趙盾이 양처보陽處父를 멀리하고 관계를 끊어서 자기의 공정함을 보인 것을 아는가? 가계賈季가 양처보陽處父를 죽인 것을 가지고 알 수 있다. 가계賈季가 감히 양처보陽處父를 죽인 것은 진晉나라에 그를 후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진晉나라의 정권은 오로지 조돈趙盾에게서 나오고 조돈趙盾의 권력은 오로지 양처보陽處父의 도움에서 나왔으니, 조돈趙盾이 양처보陽處父의 후원자가 되었다면 천하에 어찌 이보다 강한 후원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가계賈季가 도리어 진晉나라에 양처보陽處父를 후원하는 사람이 없다고 여긴 것은, 이는 필시 조돈趙盾이 지위를 얻은 뒤에 양처보陽處父를 노인路人(무관한 사람)처럼 보아 피차의 이해利害에 상관하지 않고 환난患難을 서로 구조救助하지 않았을 것이니, 이것이 가계賈季가 〈양처보陽處父에게〉 후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까닭이다.
조돈趙盾이 양처보陽處父를 후원하지 않은 것은 어찌 양처보陽處父의 은덕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몰라서였겠는가? 그런데도 진정을 숨기고서 자기의 공정함을 보인 것은 스스로 〈공정하다는 것을〉 해명하기에 급급하여 남(양처보陽處父)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돈趙盾은 자기의 공정함을 보이는 중에도 교사巧詐한 마음을 숨기고서 사심私心을 실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가계賈季가 양처보陽處父를 살해한 뒤에 조돈趙盾은 그 죄罪[옥獄]를 속간백續簡伯에게 돌리고서 계속 그 진상을 수사해[探] 〈양처보陽處父를 주살하도록 사주한〉 가계賈季를 주살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가계賈季가 양처보陽處父를 살해한 까닭은 양처보陽處父가 나에게 사사로이 은혜를 베푼 것을 불만으로 여겨서인 듯하니, 그렇다면 양처보陽處父는 나 때문에 죽은 것이다.
양처보陽處父가 나 때문에 죽었는데, 내가 양처보陽處父의 원수를 갚기 위해 가계賈季를 죽인다면 〈공심公心이 아닌〉 사심私心으로 행사行事했다는 혐의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계賈季를 용서하여 멀리 도망가게 하고, 또 그 처자妻子를 보내주어 근후勤厚한 뜻을 보인 것은 모두 진정을 숨기고서 공정함을 보이기 위함이었으니, 누가 조돈趙盾이 공정함을 보이는 중에도 은밀히 지극한 사심을 숨겨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한 줄을 알겠는가?
조돈趙盾이 가계賈季의 처자를 호송護送하도록 파견한 자는 유병臾騈인데, 유병臾騈은 가계의 원수이다. 가계賈季의 처자를 호송하게 하면서 그 일을 그의 원수에게 시킨 것은 실로 유병臾騈이 가씨賈氏의 족속을 모조리 다 죽여 자기의 원한을 풀어주기를 바란 것이다.
가령 조돈趙盾이 〈가계의 처자를 호송하게 한 것이〉 과연 좋은 뜻에서 나왔다면 온 진晉나라 사람 중에 어찌 처자를 호송하는 책임을 맡길 만한 사람이 없었겠는가? 그런데 지금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유독 가계賈季의 원수에게 맡겼으니, 조돈趙盾의 내정內情을 알 만하다.
만약 유병臾騈이 그 부하들의 말을 받아들여 가씨賈氏를 모두 다 죽였다면 가씨賈氏를 보전하려 한 은혜는 조돈趙盾에게 돌아가고 가씨賈氏를 전멸全滅한 죄악은 유병臾騈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조돈趙盾이 겉으로는 공의公義를 행하는 척하면서 안으로는 사원私怨을 보복하려 하였으니 그 심사가 음험陰險하다고 할만하다.
유병臾騈은 그의 기심機心(간교한 심보)을 깨닫지 못하고서 도리어 조돈趙盾이 가계賈季에게 예禮를 행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분노를 억제하고 원한을 버리고서 그 처자를 호위해 출경出境시켰으니, 그 일이 비록 훌륭했지만 나는 이 일이 반드시 조돈趙盾의 기심機心에 부합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진晉나라
위관衛瓘이
등애鄧艾를 살해하려 할 적에
전속田續이
등애鄧艾에게 원한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전속田續에게
등애鄧艾를
추포追捕하게 하며 말하기를 “
강유江由의
치욕恥辱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注+≪晉書≫ 〈衛瓘列傳〉에 보인다.고 하였는데
전속田續이 과연
등애鄧艾를 살해하였다.
위관衛瓘이 등애鄧艾의 원수로 하여금 등애鄧艾를 추포하게 한 것과 조돈趙盾이 가계賈季의 원수로 하여금 가씨賈氏를 호송하게 한 것은 그 심사가 본래 동일하다. 그러나 위관衛瓘의 심사는 얕아서 〈알기 쉽기 때문에〉 전속田續이 그 심사를 깨닫고서 살해하였지만, 조돈趙盾의 심사는 깊이 숨어 있기 때문에 유병臾騈이 그 심사를 깨달을 수가 없어서 가씨賈氏의 일족을 살려주었다.
이렇고 보면 가계賈季의 일가一家를 보전한 것이 비록 유병臾騈의 미행美行이지만 본래 조돈趙盾의 뜻이 아니었다. 조돈趙盾은 악행惡行을 하도록 암시한 것인데 유병臾騈은 도리어 그것을 선의善意로 오해하였고, 조돈趙盾은 부정不正한 짓[사邪]을 하도록 암시한 것인데 유병臾騈은 도리어 그것을 정리正理로 오해하였으니, 사람들의 오해가 매양 이와 같다면 오해에 대해 걱정할 게 뭐 있겠는가?
악惡한 심기心機(심사心思)가 사람들의 선의善意를 감동시킬 수 있고, 사기邪機(부정한 마음)는 사람들의 정의正義를 감동시킬 수 있다. 이 말은 선의善意는 항상 악의惡意 가운데 있고 정리正理는 항상 부정不正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선善이 악惡 속에 있다면 천하에 본래 악惡이 없다는 것이고, 정正이 부정不正 속에 있다면 천하에 본래 부정不正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과 이 이치는 참으로 미묘微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