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 文十二年이라 秦伯使西乞術來聘하고 且言將伐晉하다
襄仲辭玉曰 君不忘先君之好
하야 照臨魯國
하야 鎭撫其社稷
하고 하노라 對曰 不腆敝器
니 不足辭也
라
主人三辭
하니 賓答曰
하야 不腆先君之敝器
를 使下臣致諸執事
하야 以爲
하야 要結
이라 所以藉寡君之命
하야 結二國之好
라 是以敢致之
하노라
天下之情은 待之厚者責之厚하고 待之薄者責之薄이라 厚責難勝이니 謗之所集이요 薄責易塞이니 譽之所歸라
是故로 名大於實者는 先榮而後辱하고 實大於名者는 先辱而後榮이라
非人情之多變也
라 失所期則
喜
하니 喜怒之變
이 卽榮辱之變也
라
總角之童
의 一拜一起
가 粗中儀節
이면 不
나 至於成人
하얀 則正冠束袵
하야 終日兢兢
이라도 少有惰容
이면 鐫譙四起
리니 天下之情
을 夫豈難見耶
아
秦之爲秦은 介在西戎하야 聲敎文物闕如也라 至於魯하얀 則習周公伯禽之敎하고 世秉周禮하야 爼豆羽籥과 弁冕鼎鉶에 蔚然先王之遺風在焉하니
雖宋衛陳鄭 號爲諸華者도 猶且下視之온 況如秦之僻陋在夷者乎아
當西乞術入境之時
에 魯人固預以戎狄待之矣
라 入粤者
는 不敢言鎛
이요 入胡者
는 不敢言弓
이며 入燕者
는 不敢言函
이요 어늘
孰謂西乞術出於戎狄下國하야 乃不量其力하고 欲與魯之君臣周旋酬酢於玉帛鐘鼓之間乎아
孫文子
는 有同登之辱
注+孫文子 有同登之辱:하고 范獻子
는 有歸費之辱
注+范獻子 有歸費之辱:昭二十하며 徐容居
는 有進含之辱
注+[역주] 徐容居 有進含之辱:하고 齊慶封
은 有茅鴟之辱
注+齊慶封 有茅鴟之辱:이어든 矧區區西乞術
이 詎能免此辱耶
아
想術奉璋薦瑞之際에 公卿環列하고 輿隷堵觀하야 俟其步武之蹉跌以爲嘲하고 伺其辭令之舛差以爲哂이라
今術俯仰音吐
에 容華暢
이 出於魯人之意表
하니 始以爲烏鳶
이러니 今乃爲鸞鳳
이요 始以爲蓬蒿
러니 今乃爲梧檟
라 此襄仲所以失聲歎息
하고 而繼之以重賄也
라
觀其儀하니 固魯人之常見이요 聽其言하니 亦魯人之常聞이라 襄仲所以變色而稱揚之者가 庸非以夷狄遇之耶아
曰不有君子면 其能國乎者는 駭而疑之也요 曰國無陋矣者는 矜而進之也라
前之倨
는 適所以爲後之恭
이요 前之輕
은 適所以爲後之重
이니 에 稱頌未已
어늘 而唾罵隨至者
론 亦有間矣
라
名逐我則逸하고 我逐名則勞라 甚智로되 而居以愚하고 甚辯이로되 而居以訥이라가 他日微見端倪하고 少出鋒頴이면 一談而人一警하고 一動而人一服이리니 雖欲逃名이나 名亦將逐之而不置矣리라
未智而先得智之名하고 未辨而先得辨之名이면 終日矻矻追逐하야 以求副其實이라도 一不稱이면 而萬有餘喪矣리라
昔之智者가 所以寧使名負我언정 而不使我負名也라 名負我면 則責在名하고 我負名이면 則責在我니 二者之勞逸相去亦遠矣라
雖然이나 此猶未免名與我之對也라 形不知有影이나 而影未嘗離形이요 聲不知有響이나 而響未嘗離聲이며 聖人不知有名이나 而名未嘗離聖人이라
傳
문공文公 12년, 진백秦伯이 서걸술西乞術을 보내와 빙문聘問하고 또 진晉나라를 토벌하려 한다고 말하였다.
양중襄仲이 〈진백秦伯이 보낸〉 옥玉을 사양하며 말하기를 “진군秦君께서 선군先君의 우호友好를 잊지 않고 노魯나라에 왕림枉臨하여 우리나라[사직社稷]를 안무安撫하고 거듭 대기大器를 주셨습니다만 과군寡君은 감히 옥玉을 사양하십니다.”고 하니, 서걸술西乞術이 대답하기를 “변변치 못한 폐기敝器여서 사양하실 만한 가치도 없습니다.”고 하였다.
주인主人(양중襄仲)이 세 번 사양하니 빈賓(서걸술西乞術)이 대답하기를 “과군께서는 노군魯君과 잘 지내 주공周公과 노공魯公께 복을 구하기를 바라시어, 변변치 못한 선군先君의 폐기敝器를 하신下臣으로 하여금 집사執事에게 바쳐 서절瑞節로 삼아 우호友好를 맺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과군의 명命으로 〈이 옥을 바쳐〉 두 나라 사이에 우호를 맺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히 이 옥玉을 바치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양중襄仲이 말하기를 “군자君子가 없다면 〈진秦나라가〉 어찌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겠는가? 진秦나라는 비루鄙陋한 나라가 아니다.”고 하고서 〈서걸술西乞術이 돌아갈 때〉 많은 예물을 주어 보냈다.
천하의 상정常情으로 말하면 기대하는 것이 많은 자에게는 요구하는 것도 많고, 기대하는 것이 적은 자에게는 요구하는 것도 적다. 많은 요구는 상대로 하여금 감당하기 어렵게 하니 내 몸에 비방이 모이는 원인이 되고, 적은 기대는 만족하기 쉬우니 내 몸에 명예가 돌아오는 원인이 된다.
이러므로 명성이 실제보다 큰 자는 앞에는 영예로우나 뒤에는 욕되고, 실제가 명성보다 큰 자는 앞에는 욕되나 뒤에는 영예롭다.
이는 인정에 변화가 많아서가 아니라, 기대한 것보다 부족하면 노하고 기대한 것보다 넘치면 기뻐하기 때문이니, 기뻐함과 노함이 변하는 것은 바로 영예와 치욕이 변하는 것이다.
성년이 되지 않은 아이의 절하고 일어나는 동작이 대략 의절儀節에 맞으면 아침이 지나기 전에 칭찬이 온 마을에 퍼지지만, 성인成人의 경우는 관을 단정히 쓰고 옷깃을 여미고서 하루 종일 조심하고 삼가더라도 만약 게으른 모습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꾸짖는 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난다. 천하 사람의 상정을 어찌 알기 어렵겠는가.
진秦나라의 강역은 서융西戎 사이에 끼여 있어서 교화와 문물이 전무하지만, 노魯나라로 말하면 주공周公과 백금伯禽의 교화를 익히고 대대로 주周나라의 예禮를 지켜, 조두爼豆(예기禮器)․우약羽籥(무악舞樂)․변면弁冕(예모禮帽)․정형鼎鉶(식기食器) 등에 성대하게 선왕의 유풍이 남아 있다.
비록 제하諸夏로 불리는 송宋․위衛․진陳․정鄭도 오히려 하시下視했는데 하물며 궁벽하고 누추한 이적夷狄의 땅에 사는 진秦나라이랴?
서걸술西乞術이 노魯나라 국경에 들어왔을 때, 노魯나라 사람은 본래 그를 융적戎狄으로 대우하기로 생각했을 것이다. 월越나라에 들어간 자는 감히 농기구에 대한 지식을 말하지 못하고, 호胡 지역에 들어간 자는 감히 활에 대한 지식을 말하지 못하며, 연燕나라에 들어간 자는 감히 갑옷에 대한 지식을 말하지 못하고, 노魯나라에 들어간 자는 감히 예禮에 대한 지식을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서걸술西乞術이 하국下國인 융적戎狄 출신으로 도리어 스스로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옥백玉帛을 바치고 종고鐘鼓를 울리는 사이에서 노魯나라의 군신君臣과 읍양진퇴揖讓進退하며 술잔을 주고받을 줄을.
사방의 나라에서 군명君命을 받들고 노魯나라에 사신으로 와서 성문[치문雉門]의 양관兩觀 아래에 이른 자들 중에 예절을 어겨 치욕을 받고 물러가지 않은 자가 드물다.
〈
위衛나라의〉
손문자孫文子는
노魯 양공襄公과 계단을 나란히 오르는 잘못을 범해 치욕을 당했고,
注+≪春秋左氏傳≫ 襄公 7년에 보인다. 〈
진晉나라의〉
범헌자范獻子는
비費를 돌려주기 위해 온 사신을 대우했던 예로 대우받는 치욕을 당했으며,
注+≪春秋左氏傳≫ 昭公 21년에 보인다. 서徐나라의
용거容居는
반함飯含하려다가 치욕을 당했고,
제齊나라
경봉慶封은 〈
모치茅鴟〉를 낭송하는 치욕을 당했는데,
注+≪春秋左氏傳≫ 襄公 18년에 보인다. 하물며 보잘것없는
서걸술西乞術이 어찌 이러한 치욕을 면할 수 있었겠는가.
注+≪春秋左氏傳≫ 襄公 28년에 보인다.
생각건대 서걸술西乞術이 규장圭璋을 들고 서옥瑞玉을 바칠 때에 〈노魯나라의〉 공경대부들은 사방에 빙 둘러서고, 노복들은 담처럼 둘러서서 구경하면서 그 걸음걸이가 법도에 어긋나기를 기다려 비웃고, 그 사령辭令이 잘못되기를 기다려 비웃으려 하였다.
그런데 지금 서걸술西乞術의 진퇴進退하는 동작과 성음聲音․담론[談吐]에 풍치가 있어 화려하기가 노인魯人의 생각 밖이니, 처음에는 까마귀나 솔개 소리로 여겼더니 지금은 도리어 난새나 봉황의 울음 같고, 처음에는 흔한 쑥대로 여겼더니 지금은 도리어 오동나무 같은 재질이니, 이것이 양중襄仲이 자기도 모르게 탄식하고 이어 많은 예물을 준 이유이다.
그의 거동을 보면 본래 노인魯人이 항상 보던 것이고, 그의 말을 들어보면 또한 노인魯人이 항상 듣던 것이었다. 양중襄仲이 얼굴색을 바꾸면서 그를 칭찬한 것이 어찌 이적夷狄으로 대우한 것이 아니겠는가.
“군자君子가 없다면 〈진秦나라가〉 어찌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은 놀라 의심한 것이고, “진秦나라는 비루鄙陋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한 것은 칭찬하여 격려한 것이다.
이것이 전일의 오만이 후일의 공손으로 변한 이유이고, 전일의 경시가 후일의 중시로 변한 이유이니, 〈주인周人이〉 정인鄭人에게 박璞을 칭찬하는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정인鄭人이 침을 뱉으며 욕하는 말이 뒤따른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명예가 나를 좇아오면 편안하고 내가 명예를 좇아가면 고달프다. 매우 지혜로우면서 어리석은 체하고, 매우 언변이 좋으면서 어눌한 체하다가 후일에 단서를 약간 드러내고 예리한 언변을 조금 내보여, 한 번 말하여 사람들을 일제히 놀라게 하고 한 번 행동하여 사람들을 일제히 복종하게 한다면, 비록 명예를 피하고자 해도 명예가 실로 나를 좇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지혜롭지 않은데 먼저 지혜롭다는 명예를 얻고 구변이 없는데 먼저 구변이 있다는 명예를 얻으면, 종일 동안 힘써 명예를 좇으며 실제에 부합하기를 구하여도 하나라도 서로 맞지 않으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옛날의 지혜로운 자들이 차라리 명예가 나를 저버리게 할지언정 내가 명예를 저버리지 않았던 까닭이다. 명예가 나를 저버리면 책임이 명예에 있고, 내가 명예를 저버리면 책임이 나에게 있으니 양자兩者의 고달픔과 편안함의 차이가 매우 크다.
비록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명예와 나를 대립관계로 보는 데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형체는 그림자가 있음을 모르나 그림자는 형체를 떠난 적이 없고, 소리는 메아리가 있음을 모르나 메아리는 소리를 떠난 적이 없으며, 성인聖人은 명예가 있음을 모르나 명예가 성인을 떠난 적이 없다.
아! 어찌 춘추시대의 선비들이 미칠 수 있는 바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