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左傳】 文十年
이라 初
에 楚范巫
가 하리다 라 故使止子玉曰
하고
하야 將入郢
에 이라가 하니 曰 臣免於死
나 又有讒言
하야 謂臣將逃
라하니 니이다 하니
凡人之情은 厭常而嗜怪하고 駭正而從僞하니 此古今之通病也라
奮臂大呼
는 不足以動一旅
로되 而狐鳴魚腹之詐
는 不移晷而成軍
注+ 不移晷而成軍:見陳勝傳하고 徒步獻書
는 不足以取一官
이로되 而祭竈闘棊之誕
은 不終朝而胙土
注+ 不終朝而胙土:漢郊祀志하니 久矣
로다 夫人之嗜怪而從僞也
여
天下之常道는 惟恐人之不嗜나 至於怪하야는 則惟恐嗜之太深하고 天下之正理는 惟恐人之不從이나 至於僞하야는 則惟恐從之太過니 巫覡之說이 怪僞之尤者也로다
楚巫矞似謂成王子玉子西호되 皆將强死라하니 三人者銘其說於心하니라
至於城濮之敗하야 成王汲汲赦子西子玉之罪하니 惟恐巫言之或驗이라
旣而子玉果不及止而死
注+至於城濮之敗……旣而子玉果不及止而死:하니 是巫言旣一中矣
라
有神妖之說誘之於前
하고 有子玉之死堅之於後
로되 爲成王者
가 尙不知戒
하고 溺愛奪嫡
이라가 取熊(蟠)[蹯]之禍
注+爲成王者……取熊:文年하니 是巫言旣再中矣
라
巫言其三而中其二하고 惟子西惸然孑立하야 顧影獨存하니 是宜朝警夕戒하고 擇地而行하야 深圖自免之術이어늘 乃顯行逆亂하야 以殺其身이라
巫者는 人之所甚信이요 死者는 人之所甚畏어늘 不信人之所信하고 不畏人之所畏하니 子西豈與人異情哉리오 盖所以信巫者는 私心也요 所以作亂者도 亦私心也ㄹ새니라
私心之生이 乍發乍止는 上無所蔕요 下無所根이니 烏能持久而不變耶리오
始怵於妖而信之하고 終怵於利而忘之는 以私奪私하야 互爲消長이니 無惑乎子西之遽忽其所信也로다
世衰道微하야 邪說暴行有作하고 張詭幻禍福之說하야 以誑脅愚俗하니 是亦巫覡類耳어늘
儒者或以陰助敎化許之
하야 遽謂
은 未必眞有
라 要可以引人爲善
이 은 未必眞有
라 要可以止人爲惡
이라 所示者虛
요 所得者實
이니 亦
負於天下耶
아
抑不知牆之始築에 有一鍤之虛면 則其頹敗가 必見於風雨之時하고 念之始發에 有一毫之虛면 則其渝毁가 必見於事變之日이라
人之始信禍福之說이면 固已失其本心矣라 以誑而趨善은 非本欲爲善也요 以脅而避惡은 非本不爲惡也라
是心本無
로되 暫爲禍福虛說之所誑脅爾
니 他日復爲利害所誑脅
이면 安得不變而之他耶
리오
此亦一誑脅也요 彼亦一誑脅也니 亦何分輕重於其間哉리오
有實理然後有實心하고 有實心然後有實事하니 豈有借虛說而能收實效者耶아
如成王子西는 其始信矞似之說이 至堅至篤이로되 曾未幾何에 蔑棄而不顧하니 則詭幻禍福之說은 不能久使人信明矣로다
其始之銳는 固可以占知其終之怠요 其始之執은 固可以占知其終之移라
本心不堅에 事物攻之者가 四面而至면 固可以拱手而俟其敗리니 何必親與之角哉리오 故吾始憂異端之難攻이나 而終知異端之不足攻也라
초楚나라 범읍范邑의 무당 율사矞似가 성왕成王․자옥子玉․자서子西는 모두 비명非命에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다
傳
문공文公 10년, 당초에 초楚나라 범읍范邑의 무당 율사矞似가 성왕成王과 자옥子玉․자서子西에게 “세 분께서는 장차 모두 비명非命에 죽을[强死] 것입니다.”라고 예언하였다. 성복城濮의 전쟁 때 성왕成王은 〈무당의 이 말을〉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자옥子玉의 자살自殺을 저지하기 위해 사자使者를 보내며 “죽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으나 미치지 못하였다.
자서子西에게도 사람을 보내어 자살을 저지하게 하였다. 자서子西는 목을 매었으나 끈이 끊어졌는데 마침 그때 왕王의 사자使者가 와서 마침내 그의 자살을 막고서 그를 상읍商邑의 공公(장長)으로 삼았다.
자서子西가 한수漢水를 따라 내려가다가 다시 장강長江을 거슬러 올라가서 초楚나라의 국도國都 영郢으로 들어가려 할 때 성왕成王이 저궁渚宮에 있다가 내려와서 자서子西를 만나니, 자서子西는 겁이 나서 변명하기를 “신이 죽음을 면하였으나 또 신臣이 도망가려 한다는 참언讒言이 있으니, 신은 사패司敗(형관刑官)에게 가서 죽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성왕成王은 그를 공윤工尹으로 삼았다.
〈뒤에 그는〉 또 자가子家와 함께 목왕穆王을 시해弑害하려고 음모하니, 목왕穆王이 그 음모陰謀를 듣고서 5월에 투의신鬪宜申(자서子西)과 중귀仲歸를 죽였다.
무릇 사람의 상정常情은 평범한 것을 싫어하고 괴이한 것을 좋아하며, 바른 것을 두려워하고 거짓을 따르니, 이것이 고금의 공통된 병폐이다.
팔을 걷어붙이고 큰 소리로 호통 치는 것으로는 한 여단의 군대를 감동시킬 수 없지만, 여우 울음소리와 물고기 뱃속에 글을 넣는 속임수로는 하루가 못되어 대군을
조성組成하였으며,
注+≪史記≫ 〈陳涉世家〉에 보인다. 걸어가서 글을 바치는 것으로는 관직 하나를 얻기에도 부족했지만,
조신竈神에게 제사 지내고 바둑알을 튕기는 허탄한 짓으로는 한나절이 되기 전에
봉지封地를 받았으니,
注+≪漢書≫ 〈郊祀志〉에 보인다. 오래되었도다! 사람들이 괴이한 것을 좋아하고 거짓을 따름이여!
천하天下의 상도常道는 오직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두렵지만 괴이怪異는 오직 너무 심하게 좋아할까 두려우며, 천하의 정리正理는 오직 사람들이 따르지 않을까 두렵지만 거짓은 오직 너무 심하게 따를까 두려우니, 무당의 말은 괴이하고 거짓됨이 더욱 심한 것이다.
초楚나라 무당 율사矞似가 성왕成王․자옥子玉․자서子西에게 “〈세 분께서는〉 장차 모두 비명非命에 죽을 것입니다.”라고 예언하니, 세 사람은 이 말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
성복城濮의 전쟁에 패전함에 미쳐 성왕成王은 서둘러 자서子西와 자옥子玉의 패전한 죄를 사면하였으니 이는 오직 무당의 예언이 혹시라도 들어맞을까 두려워서였다.
얼마 후
자옥子玉의 자살을 미처 저지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자옥子玉이 죽었으니
注+僖公 28년의 일이다. 이는 무당의 예언이 이미 한 사람에게 적중한 것이다.
신묘하고 요사스런 말이 앞에서 유혹하고
자옥子玉의 죽음이 뒤에서 확정되었는데도
성왕成王은 오히려 경계할 줄 모르고 〈
서자庶子의〉 사랑에 빠져 태자를 바꾸려다가
웅번熊蹯의
화禍를 당했으니
注+文公 원년의 일이다. 이는 무당의 예언이 이미 두 사람에게 적중한 것이다.
무당이 예언한 세 사람 중에 두 사람은 적중했고 자서子西만이 외로이 홀로 서서 그 자신만 남았으니, 아침저녁으로 경계하고 처지를 가려 행동하여 죽음을 면할 방법을 깊이 도모함이 마땅한데, 도리어 공공연히 반란을 일으켜 제 몸을 죽이는 화를 자초하였다.
무당은 사람들이 깊이 믿는 바이고 죽음은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하는 바인데, 사람들이 믿는 것을 믿지 않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자서子西가 어찌 사람들과 심정이 달라서이겠는가? 이는 아마 무당의 예언을 믿은 것도 사심私心이고 난을 일으킨 것도 사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심이 생기는 것이 갑자기 발작하였다가 갑자기 정지하는 것은 위로 매달릴 꼭지가 없고 아래로 내릴 뿌리가 없기 때문이니, 어찌 오래 지속되고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요망한 말에 유혹되어[怵] 믿고, 끝에는 이익에 유혹되어 잊는 것은 사심으로 사심을 빼앗아 서로 소장消長하기 때문이니, 자서子西가 믿었던 것을 갑자기 잊은 것에 대해 의심할 게 없도다.
세상의 풍속이 쇠퇴하고 도덕이 미약해지자 사특한 언론과 포학한 행위가 일어나서 터무니없이 허황된 화복의 설說을 과장하여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고 위협하니, 이들 또한 무당과 같은 무리일 뿐이다.
〈그런데〉 유자儒者 중에는 간혹 〈이들의 설說이〉 남몰래 교화를 돕는다고 칭찬하면서, 대뜸 말하기를 ‘저들이 예궁蘂宮이니 금지金地니 하는 것은 반드시 참으로 〈천당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요점이 사람들에게 선행을 하도록 인도할 수 있는 데에 있고, 풍도酆都니 이리泥犁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은 반드시 참으로 〈지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요점이 사람들의 악행을 저지할 수 있는 데에 있다. 제시하는 것은 허구이고 얻는 것은 실재이니, 이 또한 어찌 천하天下 사람들을 저버리는 것이겠는가.’라고 한다.
그러나 〈무당의 말을 믿는 것은〉 담장을 처음 쌓을 때에 한 삽이라도 허술한 곳이 있으면 담장이 무너지는 것이 반드시 비바람이 칠 때에 드러나고, 생각이 처음 일어날 때에 터럭만치라도 허탄함이 있으면 생각이 바뀌는 것이 반드시 사변이 발생하는 날에 드러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사람이 화복의 설을 믿기 시작했다면 반드시 이미 그 본심을 상실한 것이다. 속임으로 인해 선善을 추구하는 것은 선을 하고자 하는 본심이 아니고, 위협으로 인해 악을 피하는 것은 악을 하지 않으려는 본심이 아니다.
본래 이런 〈선을 추구하고 악을 피하는〉 마음이 없는데 잠시 허황된 화복의 설에 속고 위협되어서일 뿐이니, 만약 다른 날에 다시 이해利害에 속고 위협되면 어찌 변하여 다른 데로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도 하나의 속임과 위협이고, 저것도 하나의 속임과 위협이니 또한 그 사이에 무엇으로 경중을 분별하겠는가.
진실한 도리가 있은 뒤에 진실한 마음이 있고, 진실한 마음이 있은 뒤에 진실한 일이 있으니 어찌 허탄한 말을 빌려 실제의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는가.
예컨대 초楚 성왕成王과 자서子西는 처음에 율사矞似의 예언을 믿은 것이 매우 견고하고 독실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무시해 버리고 돌아보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궤탄하고 허망한 화복의 설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래 믿게 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처음에 예민한 것은 진실로 종극에는 무뎌짐을 알 수 있고, 처음에 굳게 지키는 것은 진실로 종극에는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심이 견고하지 못한 사람에게 공격하는 사물이 사방에서 이르면 본래 손을 놓고서 패망을 기다릴 것이니, 무엇 때문에 그와 직접 쟁투爭鬪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처음에는 이단을 공격하기 어려울까 우려했더니 종극에는 이단은 공격할 가치도 없음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