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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博議(4)

동래박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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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 公孫敖二子
【左傳】 文十五年이라 齊人歸公孫敖之喪이라 한대 雖不能始 善終可也
有言曰 하야 救乏賀善弔災하고 하야 情雖不同이나 라하니 子無失道 何怨於人 襄仲說하야 帥兄弟以哭之하다
他年 하니 愛之 聞於國하다 或譖之曰 將殺子라하니 獻子以告季文子하다
二子曰 夫子以愛我聞이어늘 我以將殺子聞하니 遠禮不如死라하고 하다
物之移人者莫如權位 仰視其冠이면 昔鶡今貂 俯視其服이면 昔縕今貉이요 飢視其食이면 昔簞今鼎이요 渴視其飮이면 昔瓢今巵 是孰使之然哉 權位移之也
其移有大者焉하니 卑者可使踞하고 重者可使浮하며 樸者可使華하고 恪者可使慢이라
其移又有大者焉하니 貴者自處於尊 未足駭어니와 使尊者反安於卑 可駭也 尊者反安於卑 未足駭어니와 使貴者倂忘其尊 可駭也
吾是以知權位之移者 不特其人而又且及他人하고 不特移當時而又且及後世하니 居權位之間者 可輕乎哉
始公孫敖生穀與難而出奔하야 復生二子于莒하니라 孟獻子實穀之子 其視公孫敖 則祖廟也 其視在莒之二子 則叔父季父也
二子還魯 傳稱孟獻子愛之聞于國이러니 及有戕伐之譖 二子則曰 夫子以愛我聞이어늘 我以將殺子聞하니 不亦遠於禮乎아하고 乃皆犯寇而死라하니라
味二子之言컨대 反視孟獻子若大父行하고 自處於孺子之列이어늘 左氏從而載之하니 亦忘二子之爲叔父也
獻子雖地居宗主하고 位列國卿이나 然天屬尊卑 要有常分하니 愛而不敬이면 固已非禮
二子見人爵之尊하고 而忘天屬之重이어늘 後人之載筆者 亦從而忘之하니 權位之移人可畏哉ㄴ저
本宗之親 長幼高下 雖牧圉皁隷甚戇而昏者라도 猶能數之어늘 今一移於權位하야 卑者自視若尊하고 尊者自視若卑하야 繆亂舛錯하야 不復能記하니 則他事遺落者可勝計乎
父兄之所訓 師友之所詔 其廢忘者不知其幾也 稚幼之所志 壯大之所習 其廢忘者不知其幾也 邦國之所係 朝廷之所紀 其廢忘者不知其幾也
凡吾前日之所學所聞 所講所畫 棊布派別하야 羅列胷次어늘 皆坐聲利而汨陳之하니 可不深懼耶
嗚呼 孟獻子之沒 至于今將二千祀矣 其聲華寵利 蕩爲太虛하야 不可控搏하니 焉有氣焰之能移人哉
然讀其書者 習其章句하고 安其訓詁하야 尙有不寤二子之爲叔父 獻子之爲兄子者어든 況於身處其時하야 親當其地 乃欲卓然自覺於沈酣膠擾之中인들 難矣哉ㄴ저


공손오公孫敖의 두 아들
문공文公 15년, 제인齊人공손오公孫敖(목백穆伯)의 상구喪柩을 돌려보냈다. 양중襄仲하려 하지 않자, 혜백惠伯이 말하였다. “상례喪禮친족親族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의식儀式이니, 비록 생시生時[]에는 잘 지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마지막으로 보내는 일은 잘하는 것이 옳습니다.
사일史佚의 말에 ‘형제 사이에는 아름다운 우애友愛를 다하여 궁핍窮乏을 구제하고 좋은 일을 축하하고 재난災難을 위로하며 제사를 공경하고 상사喪事를 애도하여, 비록 이 화목[]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우애를 단절하지 않는 것이 친족의 도리이다.’고 하니, 당신께서[] 도리를 잃지 않으면 그만이지 남을 원망할 게 뭬 있습니까?” 양중襄仲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형제들을 거느리고 가서 하였다.
후년後年에 〈목백穆伯(공손오公孫敖)의〉 두 아들이 나라에서 나라로 오니, 맹헌자孟獻子가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온 나라에 소문났다. 어떤 자가 맹헌자孟獻子에게 “〈저 두 사람이〉 장차 당신을 죽일 것이다.”고 참소하니, 맹헌자孟獻子는 이 말을 계문자季文子에게 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두 사람은 “부자夫子(맹헌자孟獻子)는 우리를 사랑하는 것으로 소문이 났는데 우리는 장차 부자夫子를 죽일 것으로 소문이 났으니, 와 거리가 멀지 않은가? 예와 거리가 멀면 죽는 것만 못하다.”고 하고서, 모두 죽었다.
사람을 바뀌게 하는 것으로는 권위만한 것이 없다. 그가 쓴 (모자)을 쳐다보면 예전엔 갈관鶡冠이더니 지금은 초관貂冠이고, 그가 입은 옷을 굽어보면 예전엔 솜옷이더니 지금은 담비 갖옷이며, 주릴 때에 그가 먹는 것을 보면 예전엔 대그릇에 담은 거친 밥이더니 지금은 정기鼎器에 삶아 조리한 음식이며, 목마를 때에 그가 마시는 그릇을 보면 예전엔 표주박이더니 지금은 옥술잔이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인가? 권위가 바꿔놓은 것이다.
이보다 더 크게 바뀐 것이 있으니, 겸손[]한 자를 거만한 자로 바뀌게 하고 신중한 자를 경박한 자로 바뀌게 하며, 질박한 자를 화려한 자로 바뀌게 하고 삼가는 자를 태만한 자로 바뀌게 한 것이다.
또 이보다 더 크게 바뀐 것이 있으니, 존귀한 자가 존귀한 체하는 것은 놀랄 것이 못되지만 존귀한 자로 하여금 도리어 비천에 안주하게 하는 것은 놀랄 만하고, 존귀한 자가 도리어 비천에 안주하는 체하는 것은 놀랄 것이 못되지만 존귀한 자로 하여금 자기의 존귀함을 모두 잊게 하는 것은 놀랄 만하다.
나는 이로 인해 권위가 바꾸는 것이 본인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람까지 바꾸고, 당시를 바꿀 뿐만 아니라 후세까지 바꾼다는 것을 알았다. 권위 가운데 있는 자들이 가벼이 여겨서야 되겠는가.
당초에 공손오公孫敖를 낳은 뒤에 출분出奔하여 나라에서 다시 두 아들을 낳았다. 맹헌자孟獻子는 실제로 의 아들이니, 공손오公孫敖 보기를 그의 조부처럼 하고 에서 낳은 두 아들 보기를 그의 숙부叔父계부季父처럼 해야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이 나라로 돌아왔을 때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맹헌자孟獻子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온 나라에 소문났는데 그들이 맹헌자孟獻子를 죽일 것이라는 참소가 있음에 미쳐, 두 사람은 ‘부자夫子(맹헌자孟獻子)는 우리를 사랑하는 것으로 소문이 났는데 우리는 장차 부자夫子를 죽일 것으로 소문이 났으니, 와 거리가 멀지 않은가.’라고 하고 〈성문에서〉 적을 막다가 죽었다.”라고 하였다.
두 사람의 말을 음미해보면 도리어 맹헌자孟獻子를 아버지뻘로 보고 자신들은 아들뻘로 자처한 듯한데, 좌씨左氏가 그대로 따라서 기록하였으니, 좌씨左氏도 두 사람이 〈맹헌자孟獻子의〉 숙부叔父가 됨을 잊은 것이다.
맹헌자孟獻子가 비록 종가宗家의 적장자이고 지위가 국경國卿의 반열에 있으나 천속天屬존비尊卑에는 반드시[] 정해진 분수가 있으니, 사랑하기만 하고 공경하지 않는 것은 본래 이미 예가 아니다.
두 사람이 인작人爵의 존귀함만 보고 천속天屬의 중요함을 잊었는데, 후대에 역사를 기록하는 자 또한 그대로 따라 〈기록하고 숙질 관계임을〉 잊었으니 권위가 사람을 바꾸는 것이 참으로 사람을 두렵게 한다.
본종本宗(동종同宗) 친속의 장유長幼고하高下는 비록 마소를 치는 목동이나 노복으로 매우 어리석은 자들도 오히려 항렬을 계산할 수 있는데, 지금 일단 권위의 영향을 받자 항렬이 낮은 자는 마치 자기가 높은 것처럼 보고, 항렬이 높은 자는 마치 자기가 낮은 것처럼 보아, 뒤섞이고 어지러워 다시 기억조차 할 수 없으니 그밖에 유실된 일들을 이루다 셀 수 있겠는가.
부형父兄이 훈계한 것과 사우師友가 일러준 것들을 버리고 잊은 것이 얼마인지 모르겠고, 어린 시절에 뜻한 바와 장성한 뒤에 학습한 것들을 버리고 잊은 것이 얼마인지 모르겠으며, 나라에 관계되고 조정에 기강이 될 만한 것들을 버리고 잊은 것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내가 지난날 배우고 들었던 것과 강구하고 계획했던 〈수많은〉 것들이 바둑판의 조밀한 돌처럼 갈라지고 펼쳐져서 가슴속에 벌여 있는데, 지금은 모두 명리名利로 인해 어지러이 흩어졌으니, 깊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맹헌자孟獻子가 죽은 지가 지금 거의 이천 년에 가까워 그 화려했던 명성과 이로운 은총이 모두 허공중에 흩어져서 다시 붙잡을 수 없으니 어찌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는 기세가 있겠는가.
그러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읽는 자들은 그 장구章句를 익히고 그 훈고를 편안히 여겨 여전히 두 사람이 숙부가 되고 맹헌자孟獻子가 조카가 됨을 깨닫지 못하는 자가 있는데, 하물며 몸이 그 시대에 살면서 직접 그러한 처지에 놓였다면 술에 흠뻑 취해 어지러운 가운데 탁월하게 자각하고자 한들 어려웠을 것이다.


역주
역주1 : 敖(穆伯)가 자기의 아내 될 여자를 가로챈 것을 원망했기 때문이다.〈杜注〉
역주2 : 惠伯은 叔彭生이다.〈杜注〉 이는 親戚과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다.〈附注〉
역주3 : 武王 때의 史官으로 이름이 佚이다.〈附注〉
역주4 : 각각 그 아름다운 友愛를 다하여야 親族 사이의 의리를 마치는 것이라는 말이다.〈杜注〉
역주5 : 죽은 형제의 제사를 공경히 지내고 형제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다.
역주6 : 天性에서 우러나는 형제간의 지극한 우애를 단절하지 않는 것이 친족을 親愛하는 도리라는 말이다.〈附注〉
역주7 : 敖(穆伯)가 莒나라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다.〈杜注〉
역주8 : 穀(穆伯의 아들)의 아들 仲孫蔑이다.〈杜注〉
역주9 : 은혜를 입으면 보답하는 것이 禮이니 이미 獻子의 사랑을 받았으면 은혜를 보답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 보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장차 獻子를 죽일 것이라는 汚名을 받았으니, 禮와의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不亦遠於禮乎’라고 한 것이다.(≪左氏會箋≫)
역주10 : 句鼆(구맹)과 戾丘는 魯나라 邑이다. 성문을 공격하는 敵軍을 막다가 죽은 것이다.〈杜注〉 본서에 제시된 ≪春秋左氏傳≫ 인용문에는 ‘皆死’ 앞에 “一人門於句鼆 一人門于戾丘(한 사람은 句鼆의 城門을 지키다가, 또 한 사람은 戾丘의 성문을 지키다가)”가 생략되었다.

동래박의(4)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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