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其人曰
오 文子曰 備豫不虞
는 古之善敎也
라 하니 오
天下之患은 不發於人之所備하고 而發於人之所不備하나니라 十事而記其九라도 來問者必其一之不記者也요 六經而習其五라도 來難者必其一之不習者也며 四封而守其三이라도 來攻者必其一之不守者也라
十而九焉하고 六而五焉하고 四而三焉이면 所備者不爲不多矣로되
然吾敵者
는 置其九而問其一
하고 置其五而難其一
하며 置其三而攻其一
하야 하야 專擇吾之不備而徑犯之
하니 何其逆料陰揣如是之巧邪
아
人之遊於世에 罕與所長遇하고 多與所短遇하며 罕與所精遇하고 多與所略遇라
雖左隄右防하고 朝戒暮警이라도 偶有毫芒之不盡이면 則禍必發於此요 而不發於其他하니 信矣로다 爲備之難也여
是非爲備之難也라 爲備不盡之難也니라 必猶有短然後에 人得而乗之하고 必猶有略然後에 人得而困之라
無所不長이면 彼孰得以乗吾短이며 無所不精이면 彼孰得以困吾略이리오
是故君子之爲備也에 人以爲無나 我以爲有하고 人以爲後나 我以爲先이라
蚤正素定하야 使胷中無一之不備면 及與事物接에 此來則與此應하고 彼來則與彼應하야 從容談笑라도 各就條理라
季文子聘
에 求遭喪之禮而行
이라 且卿大夫之出聘
에 所備者
는 요 요 요 至於遭喪之事
하야는 衆人以爲必無
ㄹ새 後其禮而不講者也
라
魯使如晉者의 冠盖相望하고 而輪蹄相躡이어늘 豈有他人皆不遭喪하고 而文子獨遭喪者乎아
文子獨以爲時無止
하고 變無常
하야 墻數年而一頹
로되 固有適遇其頹者矣
요 人百年而一死
로되 固有適遇其死者矣
니 安可
他人之不遭
하야 而必己之不遭者乎
아 於是屬意衆人之所無
하고 博講衆人之所後
하야 當暇豫之時
하야 而汲汲然求遭喪之禮
하니 吾意魯國之人竊笑文子之迂闊者多矣
리라
噫라 當暇豫之時하야 而求遭喪之禮하니 文子固迂闊也라 至晉而果遭襄公之喪하니 使未嘗講喪者處之면 其搶攘爲如何며 其顛錯爲如何오
及是時하야 回視文子之問禮면 果迂闊乎아 果不迂闊乎아 始笑文子之迂闊者가 未必不反服文子之精審也리라
嗚呼라 晝者夜之對니 未有常晝而不夜며 生者死之對니 未有常生而不死라 當晝而謀寢息之具者를 人未嘗有以爲怪하니 文子當晉侯之存而問遭喪之禮를 亦何足怪乎아
雖然이나 文子猶有所未盡也라 聘與喪無二禮어늘 而文子獨問喪하니 是猶以喪爲異也요 生與死無二理어늘 而子路獨問死하니 是猶以死爲異也라
異聘於喪이라 故欲備喪하고 異生於死라 故欲備死니라
合聘喪爲一本하고 貫生死爲一條者면 夫何備不備之足言哉아
계문자季文子가 진晉나라로 출사出使할 때에 상喪을 당할 경우 사용할 예의禮儀를 청구해 가지고 가다
傳
문공文公 6년, 가을에 계문자季文子가 진晉나라에 빙문聘問하려 할 때 〈그 종자從者에게〉 상喪을 당할 경우에 사용할 의물儀物[예禮]을 청구하게 한 뒤에 떠났다.
그 종자從者가 “어디에 쓰려는 것입니까?”라고 묻자, 문자文子가 말하였다. “뜻밖에 생길지 모르는 일[불우不虞]에 미리 대비하라는 것은 옛날의 좋은 교훈이다. 일을 당하여 구할 곳이 없으면 실로 난처하게 될 것이니 지나치게 구한다 하여 무엇이 해롭겠는가?”
천하天下의 환란患亂은 사람들이 방비하는 곳에선 발생하지 않고 사람들이 방비하지 않는 곳에서 발생한다. 열 가지 일 중에 아홉 가지를 기억했어도 와서 묻는 자는 반드시 기억하지 않은 한 가지 일이고, 육경六經 중에 오경五經을 이미 학습했어도 와서 논란論難하는 자는 반드시 학습하지 않은 일경一經이며, 사면四面의 국경 중에 이미 삼면三面을 수비했어도 와서 침공하는 자는 반드시 수비하지 않은 일면一面이다.
열 가지 일 중에 아홉 가지를 기억하고, 육경六經 중에 오경五經을 학습하고, 사면의 국경 중에 삼면을 수비하였다면 대비한 것이 많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적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아홉 가지 일은 버리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한 가지 일만을 묻고, 내가 학습한 오경五經은 버리고 내가 학습하지 않은 일경一經만을 논란論難하며, 내가 수비하고 있는 삼면은 버리고 내가 수비하지 않은 일면만을 침공하여, 틈을 엿보아 기회를 노려 오로지 내가 방비하지 않은 곳만을 골라 곧장 침범하니, 미리 헤아리고 추측함이 어쩌면 그리도 정교한가?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전에 미리 방비하기가 어려움을 근심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방비를 하되 극진히 하지 않으면 〈일이 닥쳤을 때 대처하기가〉 곤란困難하고, 방비를 하되 이미 극진히 하였으면 〈일이 닥쳤을 때 대처하기가〉 용이하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잘하는 일을 만나는 경우는 드물고, 잘하지 못하는 일을 만나는 경우는 허다하며, 정통한 일을 만나는 경우는 드물고, 소략한 일을 만나는 경우는 허다하다.
비록 좌우에 제방을 쌓고 아침저녁으로 경계하더라도 우연히 털끝만큼이라도 극진히 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화禍가 반드시 그곳에서 발생하고 다른 곳에서 발생하지 않으니, 방비하기가 어렵단 말이 진실이로다.
〈그러나〉 이는 방비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방비를 하되 극진히 하지 않으면 〈일이 닥쳤을 때〉 곤란하다는 것이다. 반드시 단점이 있은 뒤에야 다른 사람이 그 단점을 이용할 수 있고, 반드시 소략함이 있은 뒤에야 다른 사람이 그 소략함을 곤란하게 할 수 있다.
뛰어나지 않음이 없다면 누가 나의 단점을 이용할 수 있으며, 정통하지 않음이 없다면 누가 나의 소략함을 곤란하게 할 수 있겠는가?
만약 방비하지 않음이 없다면 화禍가 비록 발생하고 싶어도 발생할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미리 방비할 때에 사람들은 〈방비할 것이〉 없다고 하지만 나(군자)는 있다고 하며, 사람들은 나중에 하자고 하지만 나는 먼저 하자고 한다.
〈모든 일을〉 조기에 바로잡고 평소에 결정하여, 마음속에 한 가지 일도 미리 준비하지 않은 것이 없으면 사물과 접촉할 때에 미쳐, 여기에서 오면 여기에서 응대하고, 저기에서 오면 저기에서 응대하여 여유롭게 담소하며 〈응대하더라도〉 각각의 조리(갈피)가 이루어진다.
나는 이로써 방비를 미리 극진히 한 자는 〈일이 닥쳤을 때에 대처하기가〉 이처럼 용이하다는 것을 알았다.
계문자季文子가 진晉나라를 빙문聘問할 때에 상喪을 당할 경우 사용할 예의禮儀를 청구해 가지고 갔다. 대체로 경대부卿大夫가 빙문聘問하기 위해 출국出國할 때에 갖출 문건은 교로郊勞와 증회贈賄의 예의禮儀와 장전張旜과 전폐展幣의 예절禮節과 전대專對와 답부答賦의 언사言辭뿐이고, 상喪을 당할 때의 일로 말하면 사람들이 발생하지 않을 일로 여기기 때문에 그 예禮를 뒷전으로 여기고 강론講論하지 않는다.
진晉나라로 가는 노魯나라 사절使節의 행차가 끊임이 없고 수레바퀴와 말발굽 자국이 서로 맞닿을 정도인데, 어찌 다른 사람은 모두 상喪을 당하지 않고 유독 문자文子만이 상을 당할 리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문자文子는 홀로, ‘시일時日은 정지함이 없고 변화는 일정함이 없어서, 담장이 여러 해를 지나면 넘어지지만 반드시[고固] 그 담장이 넘어질 때를 만나는 자가 있고, 사람도 백년을 살면 사망하지만 반드시 그 사람이 사망할 때를 만나는 자가 있게 마련인데, 어찌 다른 사람들이 〈상사喪事를〉 당하지 않은 것을 믿고서 나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필하겠느냐.’고 생각하고서, 이에 사람들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여기는 예의禮儀에 생각을 집중하고 사람들이 뒷전으로 여기는 의절儀節을 다방면으로 강구하고서, 한가한 때를 당하여 서둘러 상喪을 당할 경우 사용할 예의禮儀를 청구하였으니, 내가 생각하기에 노魯나라 사람 중에 속으로 문자文子를 우활迂闊하다고 비웃는 자가 많았을 것이다.
아! 한가한 때를 당하여 상喪을 당할 경우 사용할 예의禮儀를 청구하였으니, 문자文子는 참으로 우활迂闊했다. 〈그러나 그가〉 진晉나라에 당도하여 과연 양공襄公의 상喪을 당했으니, 가령 상喪을 만났을 때에 대처할 방법을 일찍이 강구하지 않았다면 그 어지러움을 어이하고 뒤섞여 혼란함을 어이했겠는가?
이때에 미쳐 문자文子가 예禮를 물은 것을 되돌아보면 과연 우활했는가, 우활하지 않았는가? 처음에 문자文子를 우활하다고 비웃던 자들이 도리어 문자文子의 사태를 살핌이 정확한 것에 탄복하지 않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 낮은 밤의 상대이니 항상 낮만 있고 밤이 되지 않는 경우는 없고, 삶은 죽음의 상대이니 항상 생존하고 죽지 않는 경우는 없다. 대낮에 침구寢具를 마련하고자 꾀하는 것을 사람들은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데, 문자文子가 진후晉侯가 생존했을 때를 당하여 상을 당했을 때에 사용할 예의禮儀를 물은 것 또한 괴이해 할 것이 뭐 있는가?
더구나 문자文子가 물은 것이 다른 사람의 상을 당했을 때의 예의禮儀임에랴?
가령 자로子路처럼 살아 있으면서 죽음에 대해 물었다면 세상 사람들은 더욱 놀라움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그러나 문자文子에게도 오히려 진선盡善하지 못한 바가 있다. 빙문聘問과 상사喪事의 예절禮節이 동일한 것인데도 문자文子는 상사喪事만을 물었으니, 이는 오히려 상례喪禮를 다르다고 여긴 것이요, 삶과 죽음의 이치가 동일한 것인데도 자로子路는 죽음만을 물었으니, 이는 오히려 죽음의 이치를 다르다고 여긴 것이다.
〈문자文子는〉 빙문聘問이 상례喪禮와 다르다고 여겼기 때문에 상례喪禮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한 것이고, 〈자로子路는〉 삶이 죽음과 다르다고 여겼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빙문聘問과 상사喪事의 예禮를 합하여 한 뿌리로 여기고, 삶과 죽음의 이치를 관통하여 하나의 조리條理로 여긴다면 상례喪禮를 자세히 앎과 그렇지 못함, 사후死後를 자세히 앎과 그렇지 못함에 대해 말할 게 뭐 있겠는가?